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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라우디오 루시아
  • 깨어라!—1992
깨어라!—1992
깨92 6/15 31면

글라우디오 루시아

글라우디오 루시아

기원 56년경 바울이 예루살렘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그곳에 있던 로마 수비대의 군 지휘관.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군 지휘관(천부장)으로서 휘하에 1000명의 부하를 거느렸다. 루시아라는 그의 희랍식 이름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희랍인이었음을 시사한다. 그는 글라우디오(클라우디우스) 통치중에 거액을 들여 로마 시민권을 얻었을 것이며, 그 당시 시민권을 손에 넣은 사람들 사이의 관례대로 재위중인 황제의 이름을 따랐다. (사도 22:28; 23:26) 로마 역사가 디오 카시우스에 의하면, 글라우디오 황제 통치 초기에 로마 시민권이 종종 거액에 팔렸다.—「디오의 로마사」(Dio’s Roman History), LX, 17, 5, 6.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사도 바울과의 관계 때문에 사도 행전 기록에 등장한다. 그와 휘하의 군사들 및 그와 함께한 군대 장교들은 소요를 일으킨 폭도들의 손에 죽을 뻔한 바울을 구출하였다.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사도 바울을 붙잡은 다음 그를 결박하도록 명하였으며, 소란 때문에 심문을 통하여 그에 대한 고발의 진상을 확인할 수 없게 되자, 사도 바울을, 안토니아 탑에 있는 병영으로 데려가라고 명령하였다.—사도 21:30-34.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바울을 이전에 반란을 선동하여 4000명의 “자객”을 데리고 광야로 간 애굽(이집트)인으로 오인하였다. 그러나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자, 그는 계단—아마도 요새의 계단—에서 무리에게 말하게 해달라는 사도 바울의 요청을 들어 주었다.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가야 할 자신의 임무에 대해 언급하자마자 폭동이 다시 일어났으며,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바울을 병영 안으로 데려가 채찍질하며 자세히 심문하라고 명령하였다.—사도 21:35-40; 22:21-24.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는 보고를 받고 나서 직접 신상 조사를 한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바울을 결박함으로써 로마 사람의 권리를 침해한 것 때문에 두려워하였다. (사도 22:25-29) 로마 시민권을 가졌다고 거짓으로 주장하는 사람은 사형을 면할 수 없었으므로, 그런 거짓 주장을 한다는 것은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이었음을 고려할 때, 루시아가 사도 바울 자신의 말을 근거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바울의 주장을 받아들인 이유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황제는 “씨족의 성(姓)에 관한 한 외국 태생의 남자들이 로마식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였다. 그는 로마 시민권의 특전을 불법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에스퀼리누스 광장에서 처형하였다.”—「황제 열전」(The Lives of the Caesars), 글라우디오 XXV,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바울에 대한 고소와 관련하여 진상을 규명하고자 하여 산헤드린을 소집하도록 명하였다. 그때 바울이 부활을 주제로 하여 말을 꺼내자 산헤드린 성원들 사이에서 의견 충돌이 아주 심해졌으므로,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사도 바울이 그들에 의해 찢길까 염려하여 그들 가운데서 바울을 빼내도록 병사들에게 명령하였다.—사도 22:30; 23:6-10.

그 후, 바울의 조카로부터 사도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음모를 알게 되자,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군대 장교 둘을 불러 바울을 벨릭스 총독에게로 데려가기 위해 오후 9시에 가이사랴로 떠날 수 있도록 보병 200명, 마병 70명, 창군 200명을 준비하라고 명령하였다. (사도 23:16-24) 로마법에 따라, 그는 또한 벨릭스 총독에게 진상을 알리는 글을 보냈다. 그러나 이 편지가 전부 사실에 입각한 것은 아니었다.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바울의 무죄를 인정하기는 하였지만, 실상은 사도 바울을 결박하고 채찍질까지 하며 심문하라는 명령을 내림으로써 바울의 시민권을 침해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로마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이 바울을 구했다는 인상을 풍겼다.—사도 23:25-30.

제자 누가가 그 편지의 내용에 대해 알았던 것으로 보아, 바울의 소송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아마 그 편지도 낭독되었을 것이다. 혹은 가이사에게 상소한 후에, 사도 바울이 그 편지의 사본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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