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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주는 것은 동정심으로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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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주는 것은 동정심으로 하는 것인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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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1
파61 12/1 443-444면

당신이 주는 것은 동정심으로 하는 것인가?

준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그것은 사실상 받는 일보다 더 기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한번 이렇게 말씀하신 일이 있읍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우리의 주는 것이 이기적인 동기에서가 아니고 지혜에 의하여 주는 때에만 적용되는 것입니다.—사도 20:35; 고린도 전 13:3.

그렇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는 것이 가장 유익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는 그것은 첫째로 비이기적인 것이고 실용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즉 감정이입(惑情移入)이 필요합니다. 감정이입이란 스스로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들과 같이 생각하고 느낀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감정이입이란 그보다 더 깊은 뜻이 있읍니다. 즉 그것은 상대방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 그에게 필요하다고 느끼게 합니다. 감정이입이란 다만 이웃을 기쁘게 하고자 할 뿐 아니라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그를 기쁘게도 하고자 합니다.—로마 15:2.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사품을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알려줍니다. 하나님 자신이 바로 사랑의 화신(化身)이십니다. 그가 주시는 것은 모두 감정이입으로 인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곱날 중 하루를 안식일로 주셨읍니다. 이것은 감정이입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은 피곤하게 되시는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한 사람들이 얼마나 안식일을 즐길 것인가를 상상하셨던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실용적이십니다. 사람이 이틀이나 사흘, 혹은 나흘마다 쉴 필요는 없읍니다. 또 그렇다 하여 이주일이나 한달에 한번만 쉬게 하시지도 않으셨읍니다.—야고보 1:17; 요한 1서 4:8; 이사야 40:28.

또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가장 흔하게 주신 것을 보아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감정이입으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읍니다. 그러한 것으로서 햇빛과 신선한 공기, 음식, 물 등이 있읍니다. 이뿐 아니라 사랑의 창조주께서는 인간에게 여러 가지를 먹고 싶어하고 마시고 싶어하게 하시고 그러한 욕구를 만족케 하실 마련을 해 놓으셨읍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욕구를 가진 인간으로 하여금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그러한 것을 얻을 수 있게 하지 아니 하시므로 인간이 그의 축복을 감사할 줄 알게 하셨으며 또한 인간이 그러한 모든 것을 즐기는 것을 다스리는 지혜로운 규칙을 주시는 일을 빼놓지 않으셨읍니다.—창세 2:15.

처음 사람이 은혜 모르는 태도를 취하였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즉시 땅의 피조물에 대하여 손을 씻어버리시는 일이 없이 그들을 구해 낼 준비를 하셨읍니다. 이 준비야말로 참다운 감정이입을 표시한 것이었읍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로 하여금 우리 죄를 위하여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한 감정이입이 과거에 표시된 일도 없으며 표시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고 순종하는 인류로 하나님의 은총을 다시 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요한 1서 4:9, 10.

이 선물의 다음에 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이것은 불완전한 인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과거와 현제와 미래에 대한 빛을 비추어 주며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위대하신 벗과 사귈수 있게 해 주고 사람 자신을 위한 최선의 길로 인도해줍니다.—디모데 후 3:16, 17.

만일 우리가 주는 것이 감정이입이 표시된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들의 주관으로만 좌우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무엇인가를 주고자 한 대상자의 견지를 생각해 보고자 할 것입니다. 그것이 즉 감정이입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만 주기 쉬운 것이나 혹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 또는 제일 근사하게 보이는 것을 준다는 올무 즉 잘못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실상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예레미야 17:9.

주의하지 않는다면 부모가 쉽사리 이런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만일 그들이 주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감정이입을 표시하는 것이라면 즉 다른 사람에게 제일 유익한 것을 주므로 그를 즐기게 하고자 원한다면 그들은 자녀들이 제멋대로 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자녀에게 용돈 주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고 그들이 용돈을 어떻게 쓰는지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그들은 다만 자녀들에게 「텔레비죤」을 사주기만 한다든가 또는 영화구경을 할 돈을 주는 것에 끝이지 않고 자녀들이 구경하는 것이 건전하고 건설적이며 교육적인 것인가를 확인할 것입니다.

이것은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갑정이입, 즉 그리스도인다운 감정이입을 가진 부인은 남편의 어리석은 짓에도 비위만 맞추고자 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과식하는 것이 남편의 결함인줄 알면서도 더 식사할 것을 권하는 일 같은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편은 아내가 맞추어 입은 옷이 꼴불견임을 마음속으로는 알면서도 입으로는 칭찬 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정에도 감정이입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일등품 「넥타이」를 살수 있는 사람이 궁핍한 친구에게 5불이나 되는 근사한 「넥타이」를 선사하였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 가난한 친구는 그것에 맞추어 입을 좋은 「와이샤쓰」가 없읍니다. 갑정이입을 가졌다면 조금 싼 「넥타이」를 사더라도 「와이샤쓰」를 함께 선사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따금 관대한 마음을 표시할 때 타인의 필수물을 전혀 무시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사치품이 보기에는 더 근사할지 모르지만 실용품이 더 유익할 것입니다.

말할 것 없이 물질적으로 궁핍할 때 그 궁핍을 채울 방도가 있다면 감정이입은 좋은 말로써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처럼 경우에 맞는 말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좋은 행위로 대용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만 한다면 그것은 무익하고 헛된 것입니다.—잠언 25:11; 요한 1서 3:18.

만일 우리가 주는 것이 감정이입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 주는 방법도 고려할 것입니다. 어떻게 주어야 하는가? 공을 내세우는 태도로 줄 것인가? 혹은 아첨과 함께 은혜 갚기를 원한다는 것을 은근히 표시하며 줄 것인가? 감정이입에는 이런 가격표가 붙지 않습니다.

감정이입은 지혜롭게 균형을 잡습니다. 주는 일에 있어서 감정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동시에 지나치게 감정적이 된다든가 극단적으로 감상적이 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에 감정이 포함되어 있읍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그는 모든 것을 아름답고 때에 맞도록 마련하셨읍니다. 그중에는 그의 말씀인 성경도 있읍니다. 감정은 작은 일에서 나타납니다. 즉 우리가 선물을 어떻게 줄 것인지? 어떻게 포장할 것인지? 또는 개인적 취미를 가하는 것 등, 그렇습니다. 선물을 준다는 자체가 우리가 이해한다는 것을 표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감정이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전도 3:11.

때에 알맞게 주는 것은 감정이입의 또 하나의 표현입니다. 해 아래서 행하여지는 모든 목적에는 각각 그 때가 있읍니다. 특히 곤란한 때에 영적이나 물질적 도움은 그것이 약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매우 중요한 것이 됩니다. 감정이입은 격려를 할 때와 책망을 할 때를 옳게 선택하게 합니다.—전도 3:1-8.

무엇보다도 가장 뚜렷한 것은 만일 우리가 주는 것이 감정이입으로 인한 것이라면 때와 수준에 맞추어 관대하게 줄뿐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줄 것입니다.—로마 12:8; 고린도 후 9:7.

그러므로 우리가 주는 것이 감정이입으로 인한 것이 되게 함으로써, 위대하신 수여자의 본을 따르도록 하십시다.—야고보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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