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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을 보이며 신뢰하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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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3
파63 6/15 223-227면

사랑을 보이며 신뢰하라

사랑은 여러면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여 줍니다. 그중의 하나는 신뢰함으로써 옵니다. 오래 전에 기록된 사랑에 관한 사도 「바울」의 논설에서 말한 것처럼 『사랑은 . . . 모든 것을 믿』읍니다. 즉 말씀가운데 기록된 하나님의 하신 말씀을 전부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그것 전부를 파악하지 못한다 하드라도 또 때로는 아직 인간이 사실 전부를 알지 못하고 어떤 사실에 관한 과학적인 설명을 못찾았음으로 불가능한 것처럼 들리는 말이라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기본적 원칙을 말하였는데 즉 사랑은 자연적으로 신뢰를 하며 남을 이유없이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고린도 전 13:4, 7.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는 또한 신뢰하십니다. 사실 그는 창조시부터 오랜 연기(年紀)를 통해서 천사들을 신뢰하여 오셨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첫 인간 부부인 「아담」과 「하와」를 신뢰하셨읍니다. 장래를 들여다 보심으로써 그들이 무엇을 행할것인지 예지할 수 있으셨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으셨읍니다. 그럴 필요도 없었거니와 욕망도 없으셨던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축복하시고 그들이 감사나 배은 망덕을 스스로 표시할 기회를 갖게 하셨읍니다.—요한 1서 4: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대우하시는데도 이와 동일하였다는 것은 얼마나 사실입니까! 그는 얼마나 관용하시고 얼마나 신뢰하셨읍니까! 그는 재삼재사 그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입증할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특히 「욥」의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은 사랑스러운 신뢰심을 보이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악마의 비방하는 혐의를 쉽사리 믿지 않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말하듯이 「욥」이 다른 동기를 가지고 자기를 섬긴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읍니다. 사랑스럽게 하나님께서는 「욥」을 충성자로 신뢰하셨고 악마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욥 1:1, 8; 2:10.

하나님의 본을 따라 두번째로 본을 세우신 분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셨읍니다. 그는 자진하여 죽을 정도까지 하늘의 아버지를 전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써 사랑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께서 부활시켜 주실 것을 신뢰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자기 동료를 대우하시는데서도 사랑의 신뢰심을 보이셨읍니다. 그에게 오는 사람들을 보고 신앙심을 오랫동안 입증하여야만 병을 고쳐주겠다는 의심스러운 생각을 강요하지 않으셨읍니다. 혹은 12사도 중 하나가 자기를 배반할 것을 아셨다 하여 사도들 전부를 의심하여 노려 보시지도 않으셨읍니다.—요한 6:64; 12:4-6; 17:12.

사랑은 당신으로 하여금 마치 아이가 부모를 신뢰하듯이 하늘의 아버지를 신뢰하게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행동으로써 그러한 신뢰를 입증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읽는 바를 전부 이해하지 못하드라도 또 불충분한 지식이나 잘못된 이치에 기초한 소위 과학이 의심을 일으키게 한다 하드라도 당신은 그의 말씀인 성경을 신뢰할 것입니다.—신명 7:9; 마가 11:22; 요한 17:17.

이웃을 신뢰하는 점에 있어서 당연히 『황금율』은 당신이 신뢰해야 할 것을 알려 주고 있읍니다. 왜냐 하면, 당신은 이웃이 신뢰하여 주기를 원하지 않읍니까? 물론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누가 6:31.

사실 남을 신뢰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신뢰는 관용한 마음의 표현이며 관용은 행복을 지어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한번 말씀하신 바와 같읍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사도 20:35.

특히 가족의 성원들, 즉 부부간에 신뢰함으로써 사랑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사랑은 충실한 것을 의당한 것으로 생각하므로 부당한 질투를 없애게 합니다. 사랑은 침소봉대 하지 않읍니다. 신뢰하지 않고 턱없이 의심하는 것은 사랑과 친절이 없는 소치입니다. 그것은 남으로 낙심케 하고 마찰을 생기게 합니다. 누구나 때때로 실수 안 하는 일은 없읍니다. 그러므로, 관용하고 남이 의심스러운 일을 하드라도 그에게 유리하게 생각하여 줄 것이며 비록 잘못을 하였다 하드라도 자비로히 대하여야 할 것입니다.—골로새 3:12-14.

이유없이 의심하는 것은 「사단」 자신이 취한 행로와 같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람이 주장하는 바와는 다르며, 하나님의 종들이 보수를 위하여만 그를 섬긴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사단」은 모든 것을 걸고 도박했읍니다. 즉 아무도 신뢰할만한 자가 없다는 것이었읍니다. 참으로 이런자를 본받아서는 안될 것입니다!—욥 1:9-11; 계시 12:10.

이런 점에서 「사단」의 흉내낸 사람들 중에 역사상 유명한 사람의 하나는 약 50년 전에 사망한 미국 해학소설가(諧謔小說家) 「마아크 트웨인」입니다. 최근 처음으로 발간된 저서 「지상으로부터의 편지」에서 그는 「사단」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인류를 비방하며 멸시하였읍니다. 이 책에는 그가 성경을 어떻게 생각하였는가를 포함하고 있읍니다. 즉 『성경은 매우 재미 있는 책이다. 그 중에는 얼마간의 고상한 시가 있고 약간의 지혜로운 우화도 있고 피 흐르는 역사와 좋은 도덕도 포함되었으며 음탕이 가득하고 일천개 이상의 거짓말이 포함되어 있다.』고 그는 기록하였읍니다. 필요없이 의심을 가진고로 그는 성경에 없는 것을 읽었고 사실 있는 것을 읽어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동료에 대하여도 동일한 회의적 태도를 가졌읍니다. 『어떤 사람이나 인간은 달과 같아서 남에게 보이지 않는 컴컴한 면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유명한 해학소설가가 「유모어」를 잃고 불평한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선하여라. 그리하면 나 같이 고독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람 중에서 누구보다도 선하셨던 분이 예수였는데, 그는 고독하시기는 커녕 군중으로부터 떠나지를 못하셨던 것입니다. 그가 행하는 기적 때문 뿐 아니라 그의 생명의 말씀 때문에 그랬었읍니다.—마가 6:30-34; 누가 21:37, 38.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조금도 없으므로 「마아크 트웨인」은 자기 두딸과 아내의 사망으로 인하여 더욱 무정하게 되어 『공사에 관하여 가혹한 문장을 씀으로써 그의 감정을 진정시켰던 것이다.』라고 「백과사전 아메리카나」는 말하였읍니다. 그는 의심을 심고 고독을 거두었읍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께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같은 분량을 받게 된 것입니다.—누가 6:38; 갈라디아 6:7.

그러나 사랑은 신뢰한다 하여 속이기 쉽거나 어리석다는 것은 아닙니다. 천만에요! 하나님의 말씀은 역시 말하기를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잠언 14:15.

그러면 신뢰와 경계를 어떻게 균형잡을 수 있읍니까? 자기를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며 천진난만하고 단순함으로써 소용없이 남을 의심하지 않음으로써 균형잡을 수 있읍니다.—마가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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