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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2
파82 4/15 6-7면

성서 비평가들이 그들의 생각을 바꾸다

20세기에 들어와 보다 정확한 성서 교본에 이르는 커다란 진전을 보여 왔다. 많은 초기 사본들, 특히 ‘체스터 비티’와 ‘보드머 파피리’ 및 ‘사해 두루마리’의 발견은 많은 학자들이 달성되리라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원본에 가까운 교본을 가능하게 하였다. 원 ‘히브리’어와 희랍어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로 성서를 세계 곳곳의 여러가지 언어로 보다 정확히 번역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진전으로 말미암아 현재는 200년전의 사상을, 설령 그것이 그 당시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더라도, 분명히 훨씬 앞지르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요한 야콥 그리제바하’(1745-1812년)의 사상이 우리 시대에 다시 거론되고 있는 것을 알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1976년에 독일 연방 공화국의 ‘뮌스터’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는 이 학자의 저술에 대한 것만 다루었다. 오늘날 그의 연구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난 이유는 무엇인가?

23세에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그리제바하’는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의 사본들을 조사하기 위해 ‘유럽’을 여행하며 도서관들을 방문하였다. 그 연구 결과가 1774년과 1775년에 출판되었고, 그의 희랍어 교본(후기판들)은 ‘뉴우컴’ 대주교, ‘아브넬 크니랜드’, ‘사무엘 샤아프’, ‘에드가 테일러’ 및 (「앰패틱 다이아글롯」의) ‘벤자민 윌슨’을 포함한 수 많은 성서 번역가들에 의해 사용되었다.

처음으로, ‘그리제바하’는 기원 1516년의 그의 희랍어 교본에서 ‘에라스무스’가 사용했던 사본들보다 오래된 것들을 포함시켰다. 이 연구의 중요성은 다음과 같은 논평으로 보아 분명하다. “‘그리제바하’는 신약의 여러가지 변형들 가운데 가장 좋은 어구들을 찾으려고 많은 시간을 소비하였다. 그의 저술은 현대 교본 비판의 기초를 놓았으며, 오늘날 우리가 즐기고 있는 안전한 신약에 대한 적지 않은 공적이 그에게 있다.”—‘J. J. 그리제바하’: 「1776년부터 1976까지의 공관 복음서 및 교본 비판 연구」, 11면.

1776년에 ‘그리제바하’는 비교난에 성귀를 늘어 놓은, 쉽게 대조해 볼 수 있는 ‘마태’, ‘마가’, ‘누가’의 「복음서」를 내 놓았다. 그 이래, 그 복음서들은 “같은 견해”를 제시하기 때문에 “공관”(共觀) 복음서라고 불리워 왔다. ‘그리제바하’는 이들 복음서들이 그 이름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으며, ‘마태’ 자신은 그가 기록한 사건의 목격 증인이었고, “사도들은 성령을 통하여 실수의 위험없이 교리를 이해하고 전달하기에 적합했다”고 굳게 믿었다.

‘그리제바하’는 자신의 연구로부터 최초의 「복음서」를 ‘마태’가, 두번째를 ‘누가’가, 세번째를 ‘마가’가 기록하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리제바하’의 생애 중에도 「마가 복음」이 최초로 기록된 「복음서」라는 견해가 ‘G. S. 스토르’에 의해 제시되었다. 그 때부터 이 이론은 「복음서」이면에 ‘큐’(Q)딱지가 붙은 미지의 분실한 문서가 있다는 신념과 함께 폭넓은 지지를 얻어 왔다. 그후 학자들은 이 이론에 다른 가닥들과 출처들을 첨가하여, 그 토론과 노작(勞作)은 수십권의 서적과 수천가지 논문에 달하였다. 그러므로 그것은 많은 이론가들에게 “믿음의 조항”의 성질을 띨 정도로 중요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리제바하’는 따돌려졌고, 종종 호된 비판을 받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 분야를 지배해 온 ‘출처 문서’ 이론이 지금 비판을 받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자기들의 생각을 바꿈에 따라, 그들은 ‘그리제바하’의 사상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현재 어떤 대안들을 생각해내던 중, 이러한 사상이 「복음서」들에 대해 존재하는 의문들을 적절히 해결하기 위해 발견되었다.

‘출처 문서’ 견해는 성서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점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해쳐왔다. (디모데 후 3:16, 17) 그러한 경향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한 것을 볼 때 새로운 것이 아니다. “거기 있는 어떤 사람들이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꾸며낸 이야기와 지리한 족보 이야기에 정신을 팔지 못하게 하시오. 그런 것들은 쓸데없는 변론을 일으킬 뿐이요[억측들만 조장시키며, 개표역]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경륜을 알게 해주지는 못합니다.”—디모데 전 1:3, 4, 새번역.

얼마 전에 거의 혼자서 「마태 복음」이 먼저 기록되었음을 옹호했던 ‘B. C. 버틀러’ 주교가 전체 의문의 열쇠를 정확히 지적하여 이렇게 말한 것은 흥미있다. “진리를 발견하기 원하는 편견없는 탐구자로서 「공관 복음서」 전체를 읽고 또 읽어 본다면 그 저자들 자신이 진지하게 사실로 믿었던 것을 기록한 정직한 사람들임을 대체로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 그는 만일 사실상 그들이 있었던 일로 묘사한 것들이 역사적 사실들이 아니었다면 그런 일들을 사실로 믿을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조사」(Searchings), 85면.

영감받지 않은 분실된 기록의 어떤 것도 ‘마태’, ‘마가’, ‘누가’ 및 ‘요한’의 「복음서」 보고에 대한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의 영향력아래 기록하였다. 물론, 인간들의 잘못된 이론이 아주 오랫동안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 경우에는 약 200년이나 영향을 주었다.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믿음은 침식되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현명하다면 우리는 성서의 신빙성과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음을 알려주는 축적되어온 모든 증거들에 유의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자주 생각을 바꾸는 비평가들을 떠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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