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전서
연구 노트—10장
모두 구름 아래 있었고 모두 바다를 건넜으며: 바울은 여기서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있었던 놀라운 기적을 언급한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홍해의 물이 이스라엘 사람들 양옆으로 벽을 이루게 하셔서 그들이 마른 땅을 밟고 바다를 건널 수 있게 하셨다. (출 14:21, 22, 29) 여호와의 보호와 돌봄을 상징하는 구름기둥이 그들 위에 그리고 그들 뒤에 있었다. (출 14:19, 24; 민 14:14)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를 건널” 때 “구름 아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모세 안으로 침례를 받았고: 또는 “모세 안으로 잠겼고”. 여기서 바울은 이스라엘 회중이 상징적으로 받은 침례 즉 상징적으로 잠긴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경우에 그리스어 밥티조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조상들이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지도자인 모세에게 맡겨진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여호와께서는 천사를 통해 그 침례를 베푸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밑바닥에서 동쪽으로 이동할 때 그들은 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또한 그들은 구름에 가려져 있었으므로 그들을 쫓아오던 파라오의 군대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다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자유롭게 된 민족으로 동쪽 해안으로 이끌어 내셨는데, 그것은 비유적으로 그들을 물 밖으로 끌어올리신 것과 같았다. (출 14:19, 22, 24, 25) 이스라엘 백성이 이 침례를 받기 위해서는 모세와 연합해야 했고 홍해를 건너는 내내 그의 인도를 따라야 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인도를 따라야 했다는 의미에서 “모세 안으로” 상징적인 침례를 받은 것이다.
바위: 여기서 “바위”로 번역된 여성형 그리스어 명사 페트라는 기반암, 절벽, 커다란 바위, 반석을 의미할 수 있다. 이 그리스어는 마 7:24, 25; 16:18; 27:60; 눅 6:48; 8:6; 롬 9:33; 벧전 2:8에도 나온다. (마 16:18 연구 노트 참조) 이스라엘 백성은 적어도 두 번 서로 다른 곳에서 기적을 통해 바위에서 물을 공급받았다. (출 17:5-7; 민 20:1-11) 따라서 물의 근원인 바위가 그들을 따라왔다고 할 수 있다. 이 바위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는데, 그분은 유대인들에게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은 내게 와서 마시십시오”라고 말씀하셨다.—요 7:37.
그리스도를 의미했습니다: 또는 “그리스도였습니다”. 이 표현에는 “~이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동사의 한 형태가 사용되었는데, “상징하다; 의미하다”를 뜻한다.—마 26:26 연구 노트 비교.
본보기: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티포스의 복수형)는 이 문맥에서 “경고의 본보기” 또는 “교훈”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 구절과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바울은 하느님의 고대 백성의 역사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력한 경고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언급한다.
해로운 것을 바라지 않게: 이스라엘 백성은 “해로운 것” 또는 일부 번역판에 따르면 “악한 것”을 바라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여호와께서 마련해 주신 좋은 것들에 대해 감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서 기적으로 공급해 주신 만나에 대해 거듭거듭 멸시하는 태도를 나타냈다. (민 11:4-6; 21:5) 그들은 여호와께서 메추라기를 충분히 공급해 주셨을 때에도 감사할 줄 모르고 수치스러울 정도로 탐욕을 나타냈다. 메추라기 자체가 “해로운 것”은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먹고 싶어 했던 파, 양파, 오이도 해로운 것이 아니었다. (민 11:19, 20, 31-34) 이스라엘 백성이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갈망을 나타냈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해로운 것”, “악한 것”이 되었다.
여러분은 그들 중 어떤 사람들처럼 우상 숭배자가 되지 마십시오: 여기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산 기슭에서 금송아지를 숭배한 일을 언급한 것이다. (출 32:1-6) 그들은 몇 주 전에 그러한 악한 행동을 금하는 여호와의 명령을 따르겠다고 동의했으면서도 그 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동을 했다. (출 20:4-6; 24:3) 그들이 여호와를 자신들의 하느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처럼 우상을 숭배한 것을 가리켜 아론이 “여호와를 위한 축제”라고 부르기까지 한 것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 드리는 숭배와 우상 숭배를 혼합하려고 하는 잘못을 범한 것이었다.
성적 부도덕을 저지른 ··· 성적 부도덕을 저지르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압 평원의 싯팀에서 모압 여자들은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유혹하여, 성적 부도덕을 범하고 프올의 바알을 숭배하는 더러운 행위에 빠지게 만들었다.—민 25:1-3, 9. 고전 5:1 연구 노트 참조.
그들 중 2만 3000명이 하루에: 바울은 성적 부도덕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기 위해 민 25:9에 나오는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고전 5:9 연구 노트 참조) 민 25:9에서는 “그 재앙으로 죽은 자가 2만 4000명이었다”고 알려 주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그 숫자와 바울이 여기서 언급한 숫자가 일치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왔다. 하지만 바울은 2만 3000명이 “하루에” 죽었다고 구체적으로 밝히는데, 이것은 재앙의 직접적인 결과로 죽임을 당한 사람이 2만 3000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재판관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민 25:4, 5) 민수기에 나오는 2만 4000명이라는 수는 하느님께서 백성들의 죄에 대해 책임을 물으신 지도자들을 비롯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모두 포함된 수일 것이다.
그분을 시험하지 맙시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여호와를 시험한 여러 경우를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한 것 같다. 그러한 몇몇 경우들이 출 16:2, 3; 17:2, 3, 7; 민 14:22에 언급되어 있다. 이 구절에서 여호와를 시험한 것처럼 ··· 그들은 뱀에게 물려서 죽었습니다라는 표현은 바울이 한 가지 특정한 경우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 일이 민 21:5, 6에 언급되어 있는데, 그 구절에서는 “백성은 계속 하느님과 모세를 대항하여 말했고” 그러자 “여호와께서 백성 가운데 독사를 보내셨다”고 알려 준다. 바울은 이 구절을 기록할 때 시 78:18을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는데, 그 구절에서 시편 필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대들었다[직역하면 “하느님을 시험했다”]”고 알려 준다.—이 구절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면 부록 다3 소개; 고전 10:9 참조.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이 투덜거린 것처럼 투덜거리지 마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은 여러 번 여호와께 불평하며 투덜거렸다. 예를 들어, 그들은 가나안 땅을 살피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이 나쁜 보고를 했을 때 모세와 아론을 심하게 비난했다. 그들은 모세 대신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자고 제안하기까지 했으며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민 14:1-4) 후에 반역자들인 고라, 다단, 아비람과 그들의 편에 선 자들이 멸망되자 “온 회중이 ··· 투덜거렸다.” 그처럼 투덜거린 사람들은 그러한 처벌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한 것 같으며, 그들의 불평하는 태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재앙을 가져오셨으며, 그 재앙으로 이스라엘 백성 1만 47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민 16:41, 49)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투덜거린 것을 그분 자신에게 투덜거린 것으로 여기셨다.—민 17:5.
본보기: 또는 “경고의 본보기”.—고전 10:6 연구 노트 참조.
세상 제도들의 끝에 이른: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한 뒤, (고전 10:1-10) 당시의 세상 제도들 즉 체제들의 끝을 언급한다. (용어 설명 “세상 제도(들)” 참조) 그러한 “세상 제도들”은 율법 계약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며, 제사직, 희생과 식품 규정에 관한 제도, 축제와 안식일이 있는 장막 숭배와 성전 숭배 제도, 후에는 인간 왕이 다스리게 된 국가 제도를 포함했다. 이스라엘 시대 또는 유대 시대를 구분 짓는 많은 특징들은 기원 70년에 온전히 끝에 이르게 되었다. 그때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면서 율법에 규정되어 있던 유대인의 제사직, 희생, 성전 숭배가 영구적인 끝을 맞게 되었다. 또한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었던 유대인들은 이방 민족들 가운데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눅 21:24에 나오는 예수의 예언과 이 구절에 나오는 “[유대] 세상 제도들의 끝”에 관한 바울의 말이 성취되었다.
이방 사람들이 희생으로 바치는 것은 악귀들에게 바치는 것이지: 앞 구절에서 바울은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우상 숭배가 위험한 실제 이유는 그 배후에 있는 세력 때문이다. 여기 나오는 바울의 말은 신 32:17을 인용한 것이거나 그 내용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수 있다. 비슷한 사상이 시 106:36, 37에도 나온다. 예수께서는 우상 숭배의 배후에 “악귀들의 통치자”인 사탄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마 12:24-26) 따라서 이방 사람들이 우상이나 거짓 신에게 희생을 바칠 때 그것은 사실상 악귀들을 숭배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러한 의식에는 흔히 희생으로 바쳐진 고기의 일부를 먹는 일이 포함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이 섬기는 신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 따라서 악귀들과 친교를 나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호와의 잔: 앞 구절인 고전 10:16에서 바울은 주의 만찬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 잔을 언급한다. 그는 그 구절에서 주의 만찬 때 사용하는 그 잔을 가리켜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이라고 부른다. 예수께서는 주의 만찬을 제정하실 때, 제자들에게 포도주 잔을 돌리기 전에 축복의 말씀 즉 기도를 하셨다. (마 26:27, 28; 눅 22:19, 20) 예수께서 세우신 그러한 본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만찬에서 잔을 돌리기 전에 축복의 말씀 즉 기도를 드린다. 하지만 예수의 대속 희생을 비롯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모든 마련을 해 주신 분은 여호와이시다. 또한 예수께서는 자신의 희생의 가치를 여호와께 바치셨다. 그 희생이 어떻게 사용될지는 여호와의 뜻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새 계약에 대해 예언하고 그 계약을 제정하신 분도 여호와이셨다. (렘 31:31-34) 따라서 그 잔을 “여호와의 잔”이라고 부르는 것은 타당하다.—부록 다3 소개; 고전 10:21ㄱ 참조.
악귀들의 잔 ··· 악귀들의 식탁: 주의 만찬은 친교 식사이다. 그 만찬은 어떤 면에서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바친 친교 희생과 비슷하다. (레 3:1-16; 7:28-36; 고전 10:16) 그리스도인이 우상 숭배자들이 희생으로 바친 음식을 먹는다면 악귀들과 함께하는 것이 될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이 주의 만찬에도 참여하고 거짓 신들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의 식사에도 참여할 수는 없었다.
여호와의 식탁: 이 표현은 말 1:7, 12을 인용한 것이거나 그 내용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 여겨지는데, 그 구절들에서는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제단을 “여호와의 식탁”이라고 부른다. “식탁”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이유는 제단에 바쳐진 제물이 “음식[직역하면 “빵”]”에 비해지기 때문이다. (말 1:7; 각주; 겔 41:22) 제단이 하느님을 대표하는 것이었으므로, 이스라엘 사람이 하느님께 바친 친교 제물의 일부를 먹는 것은 하느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과 같았다.—이 구절에 나오는 여호와의 잔에 대한 연구 노트 및 부록 다3 소개; 고전 10:21ㄴ 참조.
‘우리가 여호와를 질투하시게 하려는 것입니까’?: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형태로든 우상 숭배에 참여하여 여호와께서 질투하시고 분노하시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바울은 신 32:21을 그대로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그 내용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그 구절을 문맥과 함께 살펴보면 (신 32:19-21) “그들이 신이 아닌 것으로 나를 격노하게[또는 “질투하게”, 각주] 했다”라고 말씀하신 분이 여호와이심을 알 수 있다.—이 구절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면 부록 다3 소개; 고전 10:22 참조.
허용되지만: 고전 6:12 연구 노트 참조.
고기 시장에서 파는 것은 무엇이든 ··· 먹으십시오: “고기 시장”(그리스어 마켈론)에서는 고기나 생선뿐 아니라 다른 식품들도 판매했다. 신전에서 사용하고 남은 고기를 상인들이 사서 상점에서 판매하기도 했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고기에는 더는 “신성한” 의미가 없었으며 다른 고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전에서 나온 고기라고 해서 그 자체가 나쁘거나 더럽혀진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피를 적절하게 뺀 고기라면 살 수 있었다.—고전 8:1, 4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 이 구절에서 인용한 시 24:1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부록 다1 및 다2 참조.
먹지 마십시오: 후기에 만들어진 일부 그리스어 사본들과 그리스어를 다른 언어로 옮긴 고대 번역본들에는 이 표현 뒤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땅도 주께 속한 것이요, 거기에 충만한 것도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몇몇 현대 번역판들도 그런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많은 초기 사본들에는 28절에 그러한 표현이 들어 있지 않다. 따라서 그 표현은 원문의 일부가 아닌 것 같다. 비슷한 말이 고전 10:26에 나오는데, 그 구절의 경우에는 그 말이 원문의 일부라는 점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없다.—부록 가3 및 고전 10:26 연구 노트 참조.
하느님의 회중: 대개 “회중”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엑클레시아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여러 가지 대상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용어 설명 “회중” 참조) 이 단어는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집단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마 16:18; 히 2:12; 12:23) 이 구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의 회중”의 성원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말라고 권하는데, 그는 “하느님의 회중”이라는 표현을 더 좁은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여기서 그 표현은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받는, 그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