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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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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0
깨70 4/22 22-23면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누구의 잠언인가?

「잠언」서에 들어 있는 잠언들은 누구의 기록인가? 약 3천년 동안 성서의 증거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예를 들면 잠언 1:1은 이렇게 말한다.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또한 잠언 10:1에서는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표제어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잠언 25:1은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의 편집한 것이니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잠언 30:1은 “‘야게’의 아들 ‘아굴’”을 언급하고 있으며, 잠언 31장은 “‘르무엘’ 왕의 말씀한 바 곧 그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잠언이라” 하는 말로써 시작된다.

따라서 「잠언」서는 다섯 군데에서 필자의 이름을 명기하고 있다. 마지막 두 장이 ‘솔로몬’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잠언이라고 말한 사실과 ‘르무엘’이 심지어 그의 어머니의 잠언이라고 말한 사실은 1장부터 29장까지의 잠언이 ‘솔로몬’의 것이라고 말한 이유가, 어떤 사람의 주장과 같이 당시 ‘솔로몬’의 지혜가 단순히 유명하였기 때문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는 증거이다. 그 잠언들은 분명히 ‘솔로몬’이 말한 3천 개의 잠언의 일부였을 것이다. 성서의 증거에 부가하여 이것들이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일치하게 말하는 전통의 증거가 있다.—열왕 상 4:29-34.

그러나 현대의 종교 비평가들은 대체로 이 모든 증거와 논증을 배척한다. 그리하여 「신 가톨릭 백과 사전」(1967년)은 “‘솔로몬’이 현자로서의 명성을 좋아했기 때문에” 「잠언」과 같은 책이 “작자 불명의 잠언을 수집한 것이지만 익명으로”—즉 거짓으로—“그의 것”으로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의 주요 저서인 「해석자의 성서 사전」(1962년)은 “어느 잠언도 ‘솔로몬’의 시대까지 소급한다고 보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왜 많은 현대 종교 권위자들은 잠언 1장부터 29장까지에 들어 있는 잠언들을 ‘솔로몬’ 왕이 기록했다고 말하기를 거부하는가? 그런 사람들이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들이 믿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속은 것이 아닐까? 그들의 이론은 너무나 빈약하다.—고린도 후 4:4; 데살로니가 후 3:2.

「하퍼 성서 사전」(1957년)은 “군주에 대하여 명예를 손상시키는 방법으로 말한 것은 ‘솔로몬’ 시대가 아니라 ··· 그 후의 기간을 대표한다(잠언 16:14; 19:12; 20:2; 25:3)”고 비평한다. 그러나 이러한 귀절들이 실제로 군주의 품위를 떨어뜨리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귀절들은 왕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할 뿐이다. 참조된 성귀 중 가장 강력한 귀절은 이러하다. “왕의 진노는 사자의 부르짖음 같으니 그를 노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 것이니라.”—잠언 20:2.

그렇다. 그러한 귀절들은 군주나 왕을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그들을 높여 준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인 것과 같이 왕을 권력으로 인하여 두려워해야 되었기 때문이다. (잠언 9:10) 이것을 증명하여 잠언 24:21은 “내 아들과 왕을 경외하[라]”고 말한다. ‘여로보암’은 이 원칙을 실증하였다. 그는 왕을 불쾌하게 하였기 때문에 그것도 다른 사람 아닌 ‘솔로몬’을 불쾌하게 하였기 때문에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도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열왕 상 11:26, 40.

「잠언」서에는 군주의 명예를 손상시키기는커녕 그들을 적극 옹호하는 많은 귀절들이 들어 있다.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 위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잠언 20:28; 22:11) 그러므로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적절한 일일 것이다. 「잠언」서가 ‘솔로몬’ 시대에 기록될 수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예로서 왕의 분노에 관하여 언급하는 귀절은 인용하고, 왕의 친절과 인자에 관하여 언급하는 더 많은 귀절들을 무시하는 것이 정직한가?—잠언 16:10; 20:8, 26; 29:4, 14.

「잠언」서가 후기에 기록되었다고 증명하려고 사용하는 또 다른 점은 「잠언」이 일부일처제가 그 시대의 가정에 우세하였다고 말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모세’ 율법이 일부다처를 허용했다고 해서 일부다처가 ‘솔로몬’ 시대의 가정에 우세하였다는 말이 되는가?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결코 그럴 수 없다.

「잠언」서에서 ‘아람’어 단어가 있다고 하여 또한 「잠언」이 후기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솔로몬’ 왕은 이웃 나라와의 접촉으로 인하여 혹은 그의 이방 아내들로 인하여 ‘아람’어 표현을 잘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짙다. 그 뿐 아니라 ‘아람’어는 ‘솔로몬’ 제국의 일부였던 ‘시리아’의 언어였다.

잠언 31:10-31에 ‘알파벳’ 순서의 시가 나오는 점을 들어 「잠언」서가 후기에 기록되었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그들은 ‘알파벳’ 시문이 “비교적 후기의 ‘히브리’ 문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솔로몬’ 왕의 아버지였던 ‘다윗’ 왕이 쓴 많은 시는—시편 9, 10, 25, 34, 37, 145편 등에서 볼수 있는 바와 같이—‘알파벳’ 시로 되어 있다.

현대의 비평가들은 또한 「잠언」서의 일부 잠언과 어떤 이방 잠언 사이의 유사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성서 연구생들에게는 「잠언」서로부터의 직접 인용과 간접 인용이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에 여러 번 나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하다.a 또한 창조주를 단지 7회 혹은 8회만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반면에 약 75회는 “여호와”로 즉 거의 각 장에서 그렇게 부르는 사실은 가장 주목할만하다. 분명히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와 같은 충고는 이방 잠언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잠언 18:10.

더 나아가서 「잠언」서가 상징적 심장 즉 마음을 극히 중요시하는 점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았음을 증거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심장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 ‘레브’는 성서 가운데에서, 「잠언」보다 네 배나 긴 「시편」을 제외하고는, 「잠언」에 가장 여러 번 나온다. 이 책에 들어 있는 말은 기발한 표현 가운데 “마음이 부족한”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잠언 6:32로부터 24:30까지(신세) 열 한번 나오며, 성서의 다른 곳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또한 이 책이 약 15회에 걸쳐 여호와를 경외하는 중요성을 말한 사실은 이 책의 저자가 하나님이심을 더욱 증명한다.

참으로, 「잠언」서의 내용이 성서가 제시하는 그대로라는 증거는 강력하고 명백하다. 「잠언」서의 필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그 책 자체의 증거를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다.

[각주]

a 잠언 1:16—로마 3:15; 잠언 3:7—로마 12:16; 잠언 3:11, 12—히브리 12:5, 6; 잠언 3:34—야고보 4:6; 잠언 10:12—베드로 전 4:8; 잠언 11:31—베드로 전 4:18; 잠언 25:21, 22—로마 12:20; 잠언 26:11—베드로 후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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