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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답’과 ‘아비후’—경고의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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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0
깨70 7/8 22-23면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나답’과 ‘아비후’—경고의 본

‘나답’과 ‘아비후’는 성서에 나오는 이름 가운데 잘 알려진 이름이 아니다. 성서 족보에 그들의 명단이 나오는 외에 그들은 단지 세 가지 간단한 사건과 관련되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몇 가지 사건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심장한 성서적 기록이 되기에 충분하다.

‘나답’과 ‘아비후’는 ‘엘르아살’과 ‘이다말’과 함께 예언자 ‘모세’의 형인 ‘이스라엘’의 처음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들이다. 그들은 ‘아론’의 아들들로서 ‘아론’의 영예에 참여하였었다. 그들은 제사장보들이었기 때문이다. 장자인 ‘나답’은 그의 아버지가 죽으면 대제사장직을 이을 자였다.—출애굽 28:1.

우선 무엇보다도 ‘나답’과 ‘아비후’는 초기 ‘이스라엘’의 광야 여행시 여호와 하나님을 잘 알게 되는 면에 있어서 특별한 방법으로 혜택을 입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과 칠십인의 “장로”들을 초대한 자들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 이들 “존귀한 자들[이] ··· 참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고 먹고 마셨다.” 그러므로 그 곳에서 ‘나답’과 ‘아비후’는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인 장로로서 영예를 받았었다.—출애굽 24:1-11.

그 다음해 ‘아론’과 그의 네 아들들은 모든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감명깊은 의식으로 제사직에 임명되었다. 이것은 또 한번 ‘나답’과 ‘아비후’가 그들의 형제들과 아버지와 함께 특별한 영예를 즐기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아들 다섯 사람 모두는 칠일간 회막문에 거하여야 하였다. 제 8일에 이들은 제사장들로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희생을 바치는 일을 시작하였다.—레위 8:1-9:24.

‘나답’과 ‘아비후’는 여덟째 날이 끝나기 전에 솔선적인 행위를 한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이 엄숙한 임명을 하찮게 생각하였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 돌아간 모든 영예에 도취된 나머지 거만하고 야심적이 되었는가? 주제넘게도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다가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레위 10:1, 2.

그들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지 못한 것에 대한 얼마나 큰 보상이었는가? 그들은 마치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그들의 아버지보다 더 많이 알며 그러므로 지도와 훈계와 인도가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같이 느꼈던 모양이다. ‘나답’과 ‘아비후’ 또한 그들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이 부족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여호와의 숭배를 위한 아버지의 성직을 알아차렸을 것이며 결코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분향을 드릴 것을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엄숙한 제사직 봉사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했던 것은 그때 포도주나 기타 술을 마셨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경박한 생각을 갖게 하고 어떤 일을 대단히 주제넘게 행하게 하고 명하지도 않은 불로 경솔히 제사하도록 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 사고가 있은 직후에 ‘아론’에게 주신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교훈은 최소한 그것을 의미한 것같다.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레위 10:8-11.

사도 ‘바울’은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나니라” 하고 우리에게 확언하므로 우리는 ‘나답’과 ‘아비후’의 행로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고린도 전 10:11.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다. 무엇보다 첫째로 모든 장자들에게 자신을 너무 높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의 뜻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장자 ‘나답’이 이 사건에 있어서 주동자였었을 것이다. 장자로서 잘못된 자들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아담’의 장자 ‘가인’과 ‘이삭’의 장자 ‘에서’, ‘야곱’의 장자 ‘르우벤’, 그리고 ‘다윗’ 왕의 장자 ‘암논’이다.

또한 이 기록에는 모든 젊은이들이 특히 그들의 부모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부모에게 지도를 구하고 연장자들에게 존경심을 보이도록 하는 교훈이 들어있다. 젊은이들은 그들과 그들의 부모들 그리고 기타 연장자들 사이에 “세대 차”가 허용되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않된다. 왜냐 하면 이 차는 그들을 그릇 걷게 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명백히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나답’과 ‘아비후’가 그들의 아버지에게 이와 같은 정신 태도를 가졌더라면 확실히 그들은 이와 같은 슬픈 결과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출애굽 20:12; 잠언 6:20.

이 기록에는 또한 주제넘음에 대한 경고가 포함되어 있다. 왜냐 하면 이 사건은 “교만[주제넘음, 신세]이 오면 욕도 오[느니라]”는 원칙을 예시하기 때문이다. (잠언 11:2) 우리가 만일 특권을 받게 되거나 특별한 영예가 주어질 때 우리는 자신을 너무 높게 생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않된다. 그러한 사람들은 종종 겸손하게 지도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대신 그들의 상급자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려고 한다.

그러나 끝으로 ‘알코홀’ 음료에 과도한 영향을 받을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된다. 성서는 하나님의 선물 가운데 한 가지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이며 우리는 “근심하는 자에게 포도주”를 줄 것이라고 한 것은 사실이다. 성서는 또한 우리에게 소량의 포도주가 위장병이나 기타 질병에 좋다고 말했다.—시 104:15; 잠언 31:6; 디모데 전 5:23.

그러나 중요한 책임을 수행할 때에 맑은 생각을 가져야 하고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힘을 조절해야 할 때에 포도주나 어떤 다른 ‘알코홀’ 음료를 마시는 것이 현명한가? ‘알코홀’이 몸에 끼치는 영향에 관하여 한 권위자인 ‘엠. 에이. 브록크’ 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알코홀’은 사람을 현실의 상태에서 더욱 유쾌하고 욕망을 채울만한 정신 상태로 끌어 올린다.” 그리고 더욱이 “혈액에 ‘알코홀’이 들어 가면 운전사는 사실상 잘못 운전하면서도 더 잘 운전하는 것 같이 느낄 것이다.”—1969년 9월 15일호 「시대에 대한 중대한 담화」.

그렇다. ‘알코홀’은 정신을 자극시키며 정신 작용을 저하시킨다. ‘솔로몬’ 왕의 관찰은 건전한 것이다. “포도주[과음한]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음료를 마시는데 있어서 때와 장소 그리고 분량에 대하여 조심하지 않으면 않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음료를 전도 봉사에 종사하기 직전이나 종사하는 동안에 마시므로 공연한 원망을 듣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잠언 20:1.

참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있는 ‘나답’과 ‘아비후’의 경고의 본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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