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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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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0
깨70 9/8 22-23면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우리는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준 선한 충고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찌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한 1서 3:11, 12.

그리스도인들은 왜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그 이유는 서로 사랑하는 것은 정당하고 의로운 요구 조건이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한걸음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즉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의 아들을 보내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또한 지혜의 길이다. 왜냐 하면 “사랑은 덕을 세우”며 사랑은 사랑하는 자와 사랑을 받는 양편을 세워 주기 때문이다.—요한 1서 4:10, 11; 고린도 전 8:1; 사도 20:35.

사랑의 정 반대는 미움으로서 그것은 자기의 동료들이나 그리스도인 형제들에 대한 미움이다. 우리가 악을 미워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며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은 악을 미워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시 97:10) 그러나 그것은 원칙에 입각한 미움이다.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미움은 무너뜨린다. 그것은 다음의 말씀과 같이 살인으로 비유되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아담’의 첫째 아들 ‘가인’은 이 점에 있어서 우리에게 경고의 본이 된다. 미움은 ‘가인’에게 하나님의 책망을 무시하게 하였으며 그의 동생 ‘아벨’을 고의적으로 살해하게 하였다.—요한 1서 3:15.

의심할바 없이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첫 아들 ‘가인’을 낳고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이 사실은 ‘하와’의 다음과 같은 말이 지적하는 바와 같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창세 4:1) ‘가인’은 특별한 대우를 받고도 남았으며 그리고 그는 그것에 도취하였다. ‘가인’은 그의 동생 ‘아벨’이 태어 났을 때 틀림없이 멸시의 눈초리로 쳐다 보았을 것이다. 그는 거만한 사람이었다.

‘가인’과 ‘아벨’이 여호와 하나님께 희생을 바쳤을 때 이 모든 사실이 드러났다. ‘가인’이 실과와 야채를 바친 반면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을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셨다. (창세 4:3-5)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아벨’은 올바른 마음 상태를 가지고 믿음으로 올바른 희생을 바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점에 있어서 ‘가인’은 부족하였다.—히브리 11:4; 요한 1서 3:12.

‘가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보다 낮다고 생각한 ‘아벨’을 열납하시는 것을 보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여 살인적인 증오감을 불러일으켰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마음 상태를 아시고 ‘가인’을 다음과 같이 책망함으로써 도움의 손길을 펴셨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즉 만일 네가 믿음을 실천하고 올바른 희생을 바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창세 4:5-7.

이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오래 참음으로써 거만하고 시기심 많은 ‘가인’의 위험한 마음의 태도를 경고하셨으며 ‘가인’도 ‘아벨’의 본을 받아 자신을 낮춘다면 여호와의 은총을 누릴 수 있음을 알려 주셨다. 피흘림이 관련된 적절한 희생은 동물 희생이었으며 피흘림은 인간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하기 위하여 필요하였다.—히브리 9:22.

그러나 ‘가인’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그의 거만과 시기에 찬 미움은 동생에 대한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주시는 책망에도 귀를 막게 하였다.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즉 ‘들로 나가자’고] 그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아벨’은 명백히 너무나 순진하였으므로 그의 시기에 찬 미움을 전연 깨닫지 못하였으며 그러므로 그는 어떠한 야비한 행위도 전연 추측하지 못하고 형을 따라 나갔다.—창세 4:8.

‘가인’은 그의 동생을 냉혹하게 살해하였다. 그것은 전연 순간적 충동에 의한 행위가 아니었으며 흥분된 순간의 발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미리 계획된 살해였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고하셨으며 그는 그 경고를 무시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그의 동생을 살해할 목적으로 다른 가족들이 못보는 먼 들로 동생을 유인하였다. 그후 여호와께서 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을 때 ‘가인’은 위선과 거짓말로 대답하였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고 대답하였다. (창세 4:9) ‘가인’은 ‘요한’의 말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미움에 찬 살해 때문에 영생의 희망을 완전히 상실하였다.—요한 1서 3:12.

실로 자신의 형제나 동료 인간에 대한 개인적인 미움은 경계해야 할 성품이다. 그것은 오해나 부당한 대우로부터 생겨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가인’의 경우와 같이 미움 중에서도 가장 나쁜 거만과 시기심 때문일 수도 있다. 거만과 시기심은 철저한 이기심을 조성시킨다. 이것은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에 대하여 가졌던 미움과 같은 것이며 결국은 ‘유대’ 지도자들에게 역시 살인을 범하게 하였다. 예수께서는 정당하게 그들의 아비가 ‘사단’ 마귀임을 지적하셨으며 그들이 ‘게헨나’의 멸망을 피할 수 없음을 알리셨다.—마태 23:33-36; 요한 8:44.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위가 우리에게 어떤 면으로 불리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에 미움이 생기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우리의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얼마나 나쁘고 악한가를 자각함으로써 그리고 용서하고 잊어버리도록 힘씀으로써 그리고 사실에 대하여 이치적이 되려고 노력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해친 사람이 근본적으로 악한 것이 아니며 그렇지 않다면 그는 그리스도인 형제가 될 수 없으며 그도 많은 선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도 우리처럼 여호와를 섬기고 있을지도 모르며 더욱 잘 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또한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려 하며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의 즐거움을 빼앗아 가게 허용하는 것은 말이 안되며 어리석은 일임을 자각할 수 있다. (마가 12:31; 베드로 전 4:8) 물론 우리가 만일 용서하거나 잊어버릴 수가 없다면 마태 18:15-17에 기록된 예수의 교훈을 따를 의무가 있으며 우리는 우리의 형제를 얻기 위하여 개인적으로 그에게 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가인’이 취한 악한 행로에서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경고의 교훈이 있는데 그것은 책망과 경고를 주는 충고를 결코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경고는 훈계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다. ‘가인’은 거만하고 고집세게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훈계의 책망에 귀를 기울이기를 거절하였다. ‘가인’의 행위는 악한 것만큼 또한 어리석었다. 그는 메시야의 조상이 될 수 있었지만 그 대신 그의 후손들은 홍수에서 멸절되었다.—잠언 6:23.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형제들을 사랑하라는 ‘요한’의 충고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미움이 뿌리박지 않도록 경계할 것이다. 동시에 언제나 훈계의 책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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