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70 10/22 22-23면
  • 당신의 마음을 보호하라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당신의 마음을 보호하라
  • 깨어라!—1970
  • 비슷한 자료
  • 정욕만을 위한 사랑을 경계하라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2
  • 암논
    성경 통찰, 제2권
  • 암논의 이기심이 비극을 초래하다
    그리스도인 생활과 봉사—집회 교재—2022
  • 다말
    성경 통찰, 제1권
더 보기
깨어라!—1970
깨70 10/22 22-23면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당신의 마음을 보호하라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증명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경고의 원칙에 의한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잠언 4:23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을 수 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은 깊이 간직된 감정, 동기, 욕망 그리고 동경이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것들이 올바른 경로로 인도받지 않는다면 사람에게 쉽게 슬픔과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오셨을 때 그는 마음을 보호하는 문제를 철저히 납득시키셨다. 종교인 지도자들은 마음의 순결보다도 의식적인 순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이니라].”—마가 7:21, 22.

마음을 보호하지 못하였을 때 그러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음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다윗’ 왕의 장자 ‘암논’과 관련하여 우리를 위하여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는 천박하고 이기적인 욕망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젊어서 난폭한 죽음을 당하였다. 우리를 위하여 자세한 내용이 사무엘 하 13장에 기록되어 있다.

‘암논’은 그의 이복누이이며 처녀인 아름다운 ‘다말’을 미친듯이 사랑하였다. 그는 이 격정적인 사랑으로 너무나 괴로워하고 있었으므로 이 사실이 다른 사람들 즉 그의 사촌이며 친구인 ‘요나답’의 눈치를 받게 되었으며 ‘요나답’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암논’은 ‘요나답’에게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내가 아우 ‘압살론’의 누이 ‘다말’을 연애함이니라.” 짓궂고 부정직한 친구인 ‘요나답’은 ‘암논’에게 병든 체하였다가 그의 아버지에게 이복동생 ‘다말’로 하여금 그에게 식사를 대접해 주도록 요구하라고 충고하였다.

‘암논’은 이 천박한 충고를 열심히 따랐으며 그의 아버지인 왕 ‘다윗’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다말’을 ‘암논’의 집에 보내어 과자를 만들어 ‘암논’에게 주도록 하였다. ‘다말’은 충실하게 응하여 ‘암논’이 보는데서 “위로의 과자”를 만들었다. ‘다말’이 과자를 다 준비하였을 때 ‘암논’은 모든 다른 사람을 그의 방에서 나가게 하였다. 그리고 ‘다말’과 단 둘이만 있게 되었을 때 그는 ‘다말’을 붙잡고 동침할 것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도덕감이 강한 처녀인 ‘다말’은 그 요구를 물리쳤으며 ‘암논’에게 다음과 같이 간청하였다. “아니라, 내 오라비여 나를 욕되게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치 못할 것이니 이 괴악한 일을 행치 말라. 내가 이 수치를 무릅쓰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괴악한 자중 하나가 되리라.”

그러나 ‘암논’은 이러한 이치적인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정욕은 전적으로 이기적이었다. 그는 보통 젊은이가 처녀를 연애하는 경우와 같이 ‘다말’을 행복하게 하는 것에는 조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강압적으로 그의 이복 누이이며 아름다운 처녀 공주를 강간하였다. 이러한 사건에 있어서 왕왕 그러한 것처럼 그는 순전히 그의 이기적인 정욕을 충족시킨 다음에는 ‘다말’을 미워하였다.

그 다음 기록은 ‘암논’이 전에 ‘다말’을 사랑했고, ‘원했던 것’ 만큼 ‘다말’을 미워하기 시작하였으며 즉시 밖으로 나가라고 명하였다고 알려 주고 있다. 그러나 ‘다말’은 나가기를 거절하였다. 그러므로 ‘암논’은 그의 하인에게 “이 계집을 내어 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고 명령하였다. 이제 ‘사랑하는’ ‘다말’이 아니라 “이 계집”이었다. ‘암논’의 하인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다말’을 방 밖으로 끌어 내었다. ‘다말’은 심한 괴로움과 굴욕을 당하고 그의 머리에 (그 당시에 대단히 슬픈 일이 있을 때 하는 습관대로) 재를 끼얹고 아름다운 옷을 찢으며 울면서 돌아갔다.

그의 친오빠 ‘압살롬’이 그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짐작하였다. ‘압살롬’은 ‘다말’에게 이 일을 말하지 말라고 한 다음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으며 ‘다말’은 그곳에서 은둔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암논’의 행위에 대하여 증오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의 동생의 체면에 대하여 복수할 계획을 하였다. 이년 후 ‘압살롬’은 양털깎는 축제에 부왕 ‘다윗’과 그의 종들이 참석할 것을 권하였다. ‘압살롬’은 ‘다윗’이 거절하였으므로 ‘다윗’에게 ‘암논’과 왕의 다른 아들들이 참석하게 해 주도록 설득하였다.

‘압살롬’은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그의 종들에게 ‘암논’이 술로 기분이 좋아지면 “‘암논’을 쳐 죽일” 것을 명령하였다. ‘압살롬’의 종들이 명령에 따라 ‘암논’을 죽였을 때 왕의 나머지 모든 아들들은 두려워서 도망하였다. 그러므로 ‘암논’은 그의 마음을 지키지 못한 댓가로서 그의 생명을 지불하였다. 왜냐 하면 이기적인 정욕을 따르므로서 그의 누이 ‘다말’의 처녀성을 범하였기 때문이다.

‘암논’의 종말은 자기의 마음을 지키는 중요성에 대한 성서적인 원칙의 참됨을 명백히 증명하여 주고 있다. 그리고 ‘암논’의 이점에 대한 실패는 다른 사람들 즉 사랑스러운 ‘다말’과 또한 의심할 바없이 ‘다말’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많은 슬픔을 초래하였다. 그것은 틀림없이 ‘다말’의 아버지에게도 슬픔을 초래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아마 ‘밧세바’와 관련된 ‘우리아’에 대한 자신의 죄 때문에 ‘암논’에게 직접 행동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암논’의 난폭한 죽음으로써, ‘다윗’이 큰 죄를 지었을 때 ‘나단’이 말한 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하였다.—사무엘 하 12:10.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교훈이 되는가? 그것은 자기의 마음을 지키는 중대성에 관한 교훈이다. 만일 젊은 남자가 자기의 마음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는 이기적이고 성적인 정욕이 너무나 그의 마음과 정신을 괴롭게 하므로 그는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될 뿐 아니라 그의 이기적인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소녀를 유혹하여 음행을 할 수 있게 단둘이 있을 계획을 꾀하게 될 것이다. 처녀는 약해져서 어리석게도 이러한 방법으로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나타낼 수 있다거나 음행을 허락함으로써 자신이 그 남자와 결혼할 것을 보증하는 것이라고 추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그가 진심으로 그 처녀를 사랑한다면 그들이 존경할만한 결혼을 할 때까지 기꺼이 기다릴 것이다.

“음행을 피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역행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추후 항상 죄책감이 따라 다닌다. 소녀는 임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소년은 압력 때문에 그 처녀와 결혼하게 될 것인가? 그가 그렇게 하더라도 소녀는 사생아 때문에 수치를 당하게 된다.—고린도 전 6:18.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참 그리스도인 회중과 연합한 젊은이라면 그와 같은 행위는 제명 처분을 받아 회중에서 끊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가 복귀되기를 원한다면 아무도 그에게 말하지 않는 회중집회에 참석함으로써 회개의 증거를 보이는 그의 성실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한 후에 그는 얼마 동안 근신에 처하게 될 것이며 그후 수년간 여호와의 조직에서 특권과 진출이 없을 것이다.

경고의 원칙에 의하여 성서가 성서 자체의 참됨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마음을 보호하는 것은 지혜의 길이다. 왜냐 하면 생명의 근원이 마음의 보호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보호하지 못하면 왕 ‘다윗’의 시대에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슬픔과 파멸을 초래하게 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슬픔을 초래하게 된다. 그리고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러한 행로가 여호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한다는 사실이다.—시 90:7, 8.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