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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영원히 산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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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영원히 산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 깨어라!—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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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1
깨71 1/8 12-15면

당신이 영원히 산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과학자들은 인간의 수명을 수십년간 더 연장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100세까지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것이 그들의 목표라고 흔히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 목표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만일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전망을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매우 단조로울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이 없어질 것이다.’ ‘영원히 살려면 완전해야 하고, 완전은 지루한 것이 될 것이다.’ ‘병이나 고통이나 악이 없다면 사람들은 좋은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러한 추리가 그럴듯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인가?

그러한 생각을 말하는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것을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 자신이 이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고 말하는 것이다.

좋은 것을 인식하기 위하여 나쁜 것이 필요치 않다

예를 들어 건강과 대조하기 위하여 꼭 병이 필요한가? 자기 아내가 암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남편에게 그 말이 어떻게 들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과연 사람들은 몸이 건강하면 사는 것에 지치는가? 과연 그들의 환경이 너무나 즐겁고, 먹을 것이 풍부하면 사는 것이 지루해지는가? 과연 사람들이 해야 할 건전한 일이 많이 있고 평화와 의가 풍부하면 사는 것에 지치는가?

혹은 이러한 것들과 반대되는 것들 때문에 사는 것이 어려운가? 병과 재난과 불화가 많기 때문에 사는 것이 종종 불쾌하지 않은가?

더욱이 건전한 사고력은 우리의 신체 감각을 둔하게 하는 것은 병과 노령으로 인한 쇠약이라고 우리에게 알려 준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먹고 마시고 일하는 즐거움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완전함에 지루함이란 없다

완전한 상태로 영원히 사는 것은 마침내 삶의 즐거움을 없게 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잠간 멈추어 생각해 보라. 보통 사람이라면 일년에 1,000끼니 이상의 식사를 한다. 30세가 된 사람이라면 30,000여 끼니의 식사를 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그가 수천 끼니의 식사를 했을 때보다 식사가 덜 즐겁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당신이 하루쯤 굶어야만 다음 식사가 지루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당신은 먹는 것을 즐기기 위하여 굶주림으로 인한 영양 실조를 경험해야 할 이유는 없다. 아홉개의 손가락의 가치를 인식하기 위하여 한개의 손가락을 잘라야 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완전한 남녀도 시장하거나 목마르거나 피곤해 지는가? 물론 그렇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인간으로서 이 지상에 오셨을 때에도 그는 시장함과 목마름과 피곤함을 느끼셨다. 당신은 그 사실을 성서에 있는 그의 생애에 관한 기록에서 읽을 수 있다.—요한 4:6, 7; 마태 4:2; 누가 8:22-24와 비교.

우리는 “완전”이란 말의 뜻을 잘못 이해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완전성을 빼놓고는 다른 모든 것의 완전성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즉 각각 그 목적에 따라서 완전하다는 것이다. 완전한 마치가 못을 박는 데는 훌륭하지만 나무를 자를 수는 없다. 그렇지 않은가? 완전한 톱이 좋은 마치가 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완전성이란 각각 그것이 설계되고 만들어진 목적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상대적이다.

인간에 있어서도 이와 같다. 오랜 시간 활동하고 나면 육체는 시장하고 목마르고 쉬고 싶어진다. 이러한 육체의 감각은 창조주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에 넣어 주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왕국의 의로운 통치 아래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겠다는 성서의 웅대한 약속은 어떠한가?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계시 21:3, 4.

성서가 여기에서 묘사한 것은 ‘에덴’에서 최초의 인간 부부가 반역함으로 말미암아 오게 된 “처음 것들”이 제거될 것을 말한 것이다. 이 “처음 것들”은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그들의 후손 즉 온 인류에게 오게 된 아픔과 고통과 죽음이다.—로마 5:12.

이 성서 기록은 사람의 눈에 티가 들어가도 그의 눈물관이 막혀서 더는 그 티를 씻어내기 위하여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님이 분명하다. 촉감과 압력 또는 고통을 느끼게 하는 인간의 신경 계통의 반응도 이와 같다. 완전한 인간이 맨발로 풀속에 있는 가시를 모르고 밟는다면 그의 완전한 신경은 가시 찔린 고통을 느끼게 할 것이다. 그의 피 안에 있는 방어 조직은 일군의 백혈구와 함께 부상한 곳을 치료하기 위하여 일할 것이다. 그러나 완전한 인간에게는 부상이 일부 조직의 파괴를 가져오게 하지 않을 것이다. 또는 위산과다로 인한 소화 불량이나 위궤양, 편두통, 관절염, 심장병, 또는 암에 걸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행복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증가시키는 것임에 틀림없다.

영원히 흥미를 느끼게 할 일들

그러나 영원히 사는 사람에게 항상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할 일이 있을 것인가? 그의 지성과 재능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있을 것인가? 대화는 끊임 없이 고무적이고 즐거운 것이 될 것인가? 혹은 얼마 안가서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알게 될 것인가?

할 일이나 배울 것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창조주께서 이 지구를 만드실 때에 얼마나 광대하고 웅대한 일터와 실험소를 갖추어 주셨는가를 고려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인간이 현재까지 만든 모든 것들을 고려해 보라. 그리고 인간의 복잡한 발명품들 즉 ‘컴퓨터’나 ‘텔레비’ 수상기, 비행기, ‘로케트’같은 모든 것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우주에서 가져온 물질로 만든 것들이 아님을 기억하라. 그렇지 않고 그것들은 화학 요소와 광물과 철물 창고인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지면에서 나온 것으로 만든 것들이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얼마나 광대한가!

오늘날 연구를 통하여 얻는 지식이 어찌나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지 어떤 개인이나 조직도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이다. 인간 수명이 너무나 짧기 때문에 사람들은 많은 것에 관하여 조금 알거나, 조그만 것에 관하여 많이 아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의 지식은 넓지만 매우 얕거나, 깊지만 매우 좁다. 그들은 흔히 짧은 수명이 다하기 전에 “생애의 한 가지 일”을 해 놓으려고 매우 제한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다. 과학자들은 그들이 마침내 어떤 연구 분야에서 하나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마침내 발견하면 그들은 틀림 없이 다른 편에 있는 또 다른 열 두 가지 문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땅 위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를 알므로 더는 화재거리가 없는 “모두 아는” 것으로 가득차게 될 염려는 없다.

당신은 당신의 집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으며 생전에 그 집을 얼마나 구경하였는가? 당신이 살고 있는 가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비행사들이 “우주의 보석”이라고 묘사한 태양계의 위성인 당신이 살고 있는 바로 이 땅을 말하는 것이다.

세계의 여행가라 할지라도 흔히 주요 도시나 관광 요지라는 곳인 지상의 아주 작은 부분 외에는 잘 알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아리조나’ 주(미국)의 ‘그랜드 캐년’이나 ‘노르웨이’의 협만, ‘아프리카’의 ‘세렌게티’ 평원, ‘뉴질랜드’의 ‘사우드’ 섬의 눈이 덮여 있는 준봉들 그리고 ‘타이티’의 열대 풍경같은 것을 구경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본 높은 산과 깊은 ‘캐년’, 많은 폭포, 비옥한 계곡, 굽이쳐 흐르는 강, ‘테이블’과 같은 고원, 그늘지게 하는 숲, 울퉁 불퉁한 돌이 있는 바닷가 또는 야자수가 늘어서 있는 빛나는 해변마다 각각 독특한 아름다움과 눈을 끄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아직도 수천개가 있다.

식물, 동물, 및 사람

식물학자들은 약 335,000종의 식물이 있다고 열기한다. 미국에만도 1,035종류의 나무가 있다. 이러한 나무들에는 사막에서 자라는 ‘죠수아’나무로부터 웅대한 ‘시쿼이어’나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진한 색깔의 사탕 단풍나무와 흰 물푸레나무 및 푸른 전나무가 들어 있다.

땅에서 피는 꽃으로 여러 가지 꽃을 조화시켜 매일 같이 다른 꽃으로 바꾸어 가면서 꽃꽂이를 한다 해도 100년 동안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한다 해도 우리는 나팔 꽃에서 분꽃에 이르기까지, 우아한 금낭화와 은방울꽃에서 직경이 1‘미터’나 되고 무게가 7‘킬로그램’이나 되는 큰 꽃인 ‘인도네시아’의 ‘라플레시아 아놀디’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꽃들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상의 동물들은 어떠한가? 생물학자들은 5,000종류의 포류 동물과 3,000종류의 양서류와 6,000종류의 파충류와 9,000종류의 새 그리고 30,000종류의 물고기가 있다고 하며, 그 외에도 800,000여 종류의 곤충들이 있다고 한다.

당신은 몇 가지 동물에 대하여 참으로 잘 아는가? 아마 당신은 얼마의 동물에 관하여 책에서 읽었고 동물원에서 구경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얼마나 되는 동물들의 산지에 대하여 알고 있으며, 매력적인 특징을 살폈으며 그들 각자의 특성에 대하여 배웠는가? 예를 들면 400가지나 되는 벌새들 중에서 얼마나 되는 벌새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가? 황옥색 벌새, ‘루비’색 벌새, 또는 길이가 5‘센티미터’에 불과한 작은 벌새를 잘 아는가? 이들은 불타는 듯한 붉은 색과 진한 보라색, 빛나는 ‘오렌지’색, 그리고 비취 색깔로 무지개 색을 이루는 산 보석들이다. 혹은 당신은 웅대한 ‘콘도르’ 독수리나 벌린 날개가 4‘미터’나 되는 신천웅새를 얼마나 잘 살펴 보았는가?

땅과 바다와 공중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을 잘 알게 되려면 굉장히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현재 수명보다 훨씬 더 긴 수명을 가지고도 그러한 것들을 살피기 시작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훨씬 더 흥미 있는 것은 지상의 여러 가지 인종들일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특성과 의상, 좋아하는 음식, 건축술, 음악 및 다른 특이한 성품들이 거의 꽃만큼이나 다양하다. 완전성이란 이와 같은 다양성이나 성품의 대조를 제거하여 그들 모두를 똑같이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치 장미꽃이 완전하려면 모두 붉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과 같다.

오늘날 지상에 있는 모든 인종들을 다 잘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상 많은 경우에 있어서 더욱 더 위험하다. 그러나 성서가 약속하고 있는 영원한 생명은 다만 그들의 창조주와 그의 진리와 공의와 의로운 표준을 사랑하고 인식하며, 그들의 이웃을 그들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의 열매 즉 사랑, 즐거움, 평화, 오래 참음, 친절, 착함, 믿음, 온유 및 자제의 성품을 맺으므로써 그들은 이 지구를 우정적이고 협조적이고 관대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영적 동산으로 만들 것이다.—갈라디아 5:22, 23, 신세.

그러므로 공고한 기술, 철공, 건축술, 조원술, 가내 장식, 예술, 음악, 및 문학은 올바른 동기로서 사용될 것이다. 이것은 표현과 아름다움의 새로운 수준을 만들게 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작품들을 구경하고 그들과 친숙해지는 것은 끊임 없는 즐거움의 근원이 될 것이다.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됨

이러한 모든 것보다도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우주의 주권자 여호와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해 주는 점이다. 생에 있어서 이보다 더 부요하고 만족하고 존귀한 일은 없다.

영원을 통하여 사람은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에 관하여 더욱 더 배울 수 있다. 그렇지만 그에 관하여 모든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우리의 창조주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였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 여호와]의 마음을 알았느뇨?”—로마 11:33, 34; 전도 3:11.

같은 이 사도는 여호와 하나님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능력과 신성이 그의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라].”—로마 1:20.

우주와 우주 안에 있는 별과 은하수에 관한 지식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최상의 지혜에 대하여 아무런 의심도 갖게 하지 않는다. 그 분은 최고의 물리학자시요, 화학자시요, 설계자시요, 건축자이시다. 과거 여러 세기의 「시편」 필자들은 이 사실을 깊이 인식하여 이렇게 기록하였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시 8:1, 3, 4.

보이는 창조물이 그 창조주에 관하여 증명해 주기는 하지만 그의 말씀인 성서를 통하여 우리는 참으로 그를 즉 그의 성품과 그의 목적과 그의 방법과 그의 표준을 알게 된다. 우리는 그의 말씀인 성서를 통하여 그는 우리 죽어가는 인생을 생각하시고 또한 돌보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참으로 완전하게 영원히 산다는 것이 어떻게 지루한 것이 되겠는가? 산다는 것은 기쁨과 즐거움과 흥미로 영원히 가득찰 것이다.

[14면 삽화]

생명은 당신에게 지상에 있는 모든 아름다운 곳들을 구경할 만한 시간을 제공해 주었는가?

[15면 삽화]

··· 혹은 새와 인간의 다양함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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