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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제로서의 경력을 끝낸 전환점
  • 깨어라!—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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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1
깨71 3/8 15-17면

사제로서의 경력을 끝낸 전환점

‘베네주엘라’ 주재 「깨어라!」 통신원 기

성모 ‘레지오’회에서 2년간, 사제직을 위한 신학교 준비 과정으로 7년간을 보낸 후, 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될 상태로 직면하였다. 나는 자격을 온전히 갖춘 ‘로마 가톨릭’ 사제가 되기 위하여 남은 3년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인가? 상태는 진전되어 명백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될 지점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인가?

내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상실하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종교 문제에 면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연구가 부족하였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훌륭히 발전하고 있었다. 신학교 상급반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는 ‘미사’ 독송을 하고 음악을 지휘하는 차례를 때때로 갖기도 하였다.

휴가가 되어 고향에 가면, 때때로 나는 지방 교구에서 차부제(次副祭)를 대리하도록 선택되었었다. 이 일에는 종도 서간의 일부분을 봉독하는 일, 성찬상에서 빵과 포도주를 부제(副祭)의 손에 넘겨 주는 일, 및 ‘미사’ 경본, 즉 연중 매일을 위한 ‘미사’ 기도 전서(典書)를 교송(交誦)하는 일이 포함되었다. 나의 친지들은 자기들 중에서 나온 젊은이가 성단에 올라서서 차부제로서 섬기는 것을 자랑스럽게 바라보곤 하였다. 한 때는 막 완공된 작은 성당의 봉헌식에서 섬긴 일도 있었다. 나는 사실상 사제가 되는 목표를 향해 발전하고 있었다.

종교에 대한 초기 관심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나는 항상 종교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나의 가족은 명목상으로는 ‘로마 가톨릭’ 집안이었으나, 별로 독실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교회에 갔으며, 그곳에서 한 집단의 어린이들과 교리 문답 공부를 할 특전을 받았다. 시간이 흘러서, 나는 교회 내에서 그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의 하나인, 성모 ‘레지오’회에 등록할 결정을 하였다. 이 조직에 속하여 나는 ‘마리아’ 숭배를 전교할 목적으로,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가르침을 다른 젊은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일을 하였다.

이와 같이 2년이 흘러갔다. 그 동안 나는 ‘레지오’회에 관한 교리에 정통하게 되었다. 그후 지방 사제가 신학교 입학 문제를 가지고 나에게 접근해 왔다. “사제가 되어보지 않겠나?” 하고 그는 물었다. “신학교 입학을 고려해 본 일이 있나?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되어보지 않겠나?”

물론 나는 언젠가는 사제가 된다는 생각도 좋은 일이라고 느꼈으나, 그에게 즉답을 할 수 없었다. 고려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연간 하숙비가 550불이 들고, 게다가 첫해에는 책값이 155불이 더 드는 것이다. 그 돈이 어디서 나올 것인가? 그뿐 아니라, 나의 부모는 내가 사제직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결코 환영하지 않았다.

그 사제는 강요적이었다. 그는 장학금 형식의 원조를 제의하였으며 그리하여, 나의 비용의 큰 몫이 대신 지불되는 것이었다. 또한 부모의 반대도 사제들이 자주 인용한 다음과 같은 성귀에 의하여 해소되었다. “아무라도 나와 내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녀나, 전답을 버린 자는, 지금 이 세상에서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녀와 전답을 ··· 백배로만 더 받지 않을 자 없느니라.” (말구 10:29, 30, 천주교역) 이 문제를 일년간 심사숙고한 후, 나는 제의를 수락하기로 결심하였으며, 나의 신학교 입학을 위한 마련들이 이루어졌다.

신학교 교육

이제 내가 가장 열망하던 소망이 실현되는 것같이 보였다. 신학교 생활은 나를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이끌어 주며, 삶과 미래에 관한 나의 모든 진정한 의문에 대하여 대답해 줄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환멸이 닥쳐왔다. 나는 내가 바라던 것을 얻지 못하였다. 그뿐 아니라, 어떤 학생들의 참을 수 없는 나쁜 습관과 행실은 내게 매우 근심거리가 되었다.

일상생활은 규칙적이었다. 오전 6시에 기상을 하고 우리는 먼저 십자 성호를 긋고 “성모경”을 암송한 다음 ‘미사’에 나갔다. 묵상 시간이 그 뒤를 잇는데, 이 시간에는 보통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 관한 연구가 포함된다. 그 다음 우리는 학과 공부를 복습하였다. 조반 후의 한시간 반은 청소 및 화초에 물을 주는 일 등에 할애되었다. 우리는 선택된 독송(讀誦)을 들으며 식사를 하기 때문에 식사 시간에는 조용하였다.

그러나 하루 5시간의 학과 공부는 내게 만족한 것이 못되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데 거의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과는 일반 다른 학교에서도 배우는 ‘라틴’어, ‘스페인’어, 미술, 음악, 철학, 생물학, 역사 등이었다. 단지 일주일에 4시간만 교회의 교리를 가르치는데 바쳐졌다.

물론, 성서는 ‘미사’ 도중 복음서와 서간들을 독송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해설을 하는 일도, 일부 학생들의 나쁜 행습을 근절하기 위하여 그 교훈을 도덕적으로 적용시키는 일도 없었다.

여호와의 증인인, 나의 누이는 가끔 편지를 써서 성서에 관한 사실들을 설명해 보내 주었으나 나는 거의 그의 편지를 받지 못하였다. 수석 사제가 그 편지들을 중간에서 갈취했던 것이다. 휴가 때 나의 누이는 성서로부터 여러 가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의 노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뿐 아니라 그의 설명은 교회의 가르침과 상위하였던 것이다.

성서가 말해 주었다

신학교에서는 매일 반 시간씩 “영적” 독서를 하는 것이 상례이다. 이 시간에는 “성자”의 생애를 서술한 아무 책이나 읽는 것이다. 어느날 저녁, 나는 그러한 책이 없었기 때문에 ‘나카-코룬가’ 역 ‘포케트’판 성서를 뒤적이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읽기 시작할 것인가를 알지 못하고,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성서를 펴서 출애굽기 19장에서 읽기를 시작하였다. 20장 4, 5절에 이르기까지는 잘 내려갔다.

그러나 다음 순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우상을 만드는 것과 숭배하는 것에 관한 성귀를 발견하고는 얼마나 놀랐는가! 나는 내 눈을 거의 믿을 수 없었다. 나는 항상 성서는 신성한 것으로 생각해 왔다. 나는 성서를 덮고 숙고하였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나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지금까지 나를 속여온 것인가?” 그러나 곧, “교회의 가르침에 대하여 이런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공연히 지옥불로 떨어질런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하고 생각하였다.

나는 반 시간의 낭독 시간을 채우기 위하여 다시 성서를 폈다. 이번에는 이사야 40장이 펼쳐졌다. 할당된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나는 이사야 42:8에 도달하였다. 그 귀절은 이러하였다.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나는 크게 동요되었다. 다시 한번 나는 성서는 내게 직접적으로 말하여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를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얼마나 혼란되게 느겼던가! 나의 종교가 옳지 못한 진로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가능한가? 그 순간 취침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도움을 구함

그날 밤 한 잠도 이룰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날이 밝기 무섭게 주교에게로 달려 갔다. 나는 그에게 출애굽기 20:4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의 대답은 그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폐지된 ‘모세’의 율법의 일부라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그 율법의 일부인 십계명이 그들의 교리 문답에서 가르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주교님은 한 부분은 폐지되었고 다른 부분은 폐지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실 수 있읍니까?”라고 나는 질문하였다. 그는 일부분은 그리스도인들의 유익을 위하여 남겨졌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읍니까? 만일 예수께서 율법을 폐지하기 위하여 오셨다면, 그것은 전체 율법일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라고 나는 역설하였다. 그는 나를 학생들의 정신 문제 상담 담당인 정신 훈육 주임에게로 보냈다.

나의 질문을 만족시키려는 그의 노력은 신비와 철학에 근거한 것이었다. 즉각적으로 이 곳에서 진리를 결코 획득할 수 없음을 인식한 나는 신학교를 중퇴하기로 단안을 내렸다. 그는 여러 가지 주장을 내세워 나로 머무르게 하려고 하였다. “친구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기 위하여 머물러 있어야 한다. 자네는 상급생이다. 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말 저런 말로 나를 설득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의 결심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결국, “가도 좋다. 그러나 이곳에서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그리고 삼일을 더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였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시간은 학생들의 외출을 마련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는데, 이는 그들이 내가 떠날 때 내 주위에 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진리를 발견함

나는 아무 것도 없이, 심지어 나 자신의 소유물까지도 남겨둔채 혼란되고 좌절된 마음을 안고 단신으로 떠났다. 어떠한 일이 발생하였는지를 듣게 된 나의 누이는 내게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 책을 주고 각 ‘페이지’를 성서와 대조해가면서 주의 깊이 읽으라고 권고하였다. 즉시 나와 성서 연구가 사회되었으며 나는 일주일에 세번이나 네번 하자고 강요하였다. 두달 후, 나는 물의 침례로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나의 헌신을 상징하였다.

즉시 나는 다시 신학교로 향하였으며, 나의 가방 속에는 “성실한 ‘가톨릭’ 신도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이라는 기사가 들어있는 「깨어라!」지들로 가득차 있었다. 사제는 내가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학생들이 나를 마지하러 계속 나왔기 때문에 그의 목적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는 그들에게 증거하였고 여러 부의 잡지를 남겼다. 그 결과는? 22명의 학생들이 중퇴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들 중 여섯명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 책을 연구하기로 동의하였다. 사실상 그들 중 한명은 ‘카라카스’에서 개최된 최근 여호와의 증인의 지역 대회에 참석하였다.

현재 사람들은 내가 ‘가톨릭’ 교회의 학생 사제로서가 아니라, 여호와의 특권을 받은 증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문을 두들길 때 놀랍게 생각하고 있다. 실로 여호와께서 자기의 말씀으로써 내게 말씀하셨으며 자기의 조직으로 나를 인도하신 것은 내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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