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를 취함
‘수리남’ 주재 「깨어라!」 통신원에게 기고됨
돌이켜 보면 모든 일이 매우 순진하게 시작되었다. 내가 열아홉살 밖에 되지 않았을 때, 그때 나는 매우 마음이 끌리는 이 청년을 만났다. 우리는 함께 ‘데이트’를 하곤 했다. 우리는 매우 순진하게 시간을 즐겼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순진한 상태는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임신을 하였던 것이다.
우선 내가 말해야 할 일은 내가 사는 나라에서는 남녀가 서로 합의하여 함께 사는 일이 별스런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정식 결혼하지 않고 사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는 많은 남녀들은 그들의 합의 생활이 법적 결혼으로 등록되면 문제가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되면, 양편은 법으로 묶여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법적 결혼을 하지 않고 그냥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더구나 여러 교회 종파들은 그러한 합의 생활을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상 그것을 묵인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많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회 성원들이 이러한 합의 관계 상태에서 남편과 아내의 행세를 하면서 함께 살고 있다. 교회 성찬식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고려되지는 않지만 그 외에는 교회 내에서 좋은 신분을 가진 자로 간주된다.
나는 아이를 가지고 있는 동안 관습대로 나의 부모 집에 머물러 있었고, 그 남자는 나를 보기 위하여 계속 찾아 왔다. 그러나 그의 둘째 아이를 가지고 있을 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 왔다. 어머니가 한 신문을 보여 주시는데 거기에는 그가 다른 여자와 결혼을 약속한 광고가 실려 있었다! 내가 더욱 놀란 것은 그 결혼이 다음 주에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뭔가 잘못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가 찾아왔을 때, 그가 사실을 부인할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하면서 내가 읽었던 기사를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그 광고를 냈다는 것을 조용히 시인하면서, 하지만 실제로 그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주장하였다. 어리석게도 나는 그가 나에게만 관심이 있다는 확언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나를 단단히 실망시킨 것은 그 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그는 그 여자와 결혼해 버린 것이다!
나의 부모는 만일 내가 이 남자와 헤어져서 더 이상 그와 관계하지 않는다면 나와 내 자식의 부양을 맡아 주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이에 동의하였지만, 그가 결혼한지 이틀 후 그는 나의 집에 다시 나타나서 내가 자기에게 돌아올 것을 간곡히 권하였다. 그는 주장하기를 그 여자가 임신하게 되어 그 여자쪽의 부모들의 강압에 못이겨 결혼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올바로 사는 방법이 아니고 그의 약속이나 서약이 나를 망쳐버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가 나를 위하여 세로 얻은 집으로 가기 위하여 부모의 집을 떠났다.
이제 나는 ‘수리남’에서 ‘부이텐브로운’이라고 하는 하나의 “첩”이 된 것이다. 이런 입장이 여기서는 아주 흔한 일이다. 심지어 남자들은 ‘아브라함’이나 다른 족장들도 첩을 가졌었으니까 이런 일은 성경적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일부주의(一夫主義)가 여자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일처주의(一妻主義)가 남자에게는 마땅한 것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 당시 나는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가 이러한 상태에서 살던 5년 동안에, 그는 내게 끊임없는 애정을 보였다. 그러나 그의 태도가 돌변하였다. 그는 자기의 생활 태도에서 참을성을 잃게 되었다. 가끔 그는 아무 이유 없이 나를 구타했으며, 한번은 내가 그의 네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인데, 나를 계단에서 밀어버린 적도 있었다. 나는 이러한 무서운 상태로부터 구해달라고 하나님께 가끔 기도한 일이 있었음이 생각난다.
나는 여러 번 그를 떠나겠다고 위협하였고 세번씩이나 그렇게 하려고 단단히 결심하는 용기를 가졌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약해져서 다시 돌아왔다. 내가 만일 돌아가지 않는다면, 나와 내 어린 자식들에게 어떤 무서운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똑 같은 문제, 우리의 생활 방식을 가지고 말다툼을 하였다. 나는 항상 이것이 사람이 살고, 자녀를 양육하는 길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더욱 심한 구타를 하게 만들었고 잠정적인 별거를 하게 만들었다.
적시에 받은 도움
그러던 어느날 한 부인이 내 집을 찾아 왔다. 그 부인은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나는 그가 와서 나와 함께 주간 성서 연구를 해 줄 것을 승락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나의 친척들은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받도록 강신술자에게 가도록 설복하였다. 그 강신술자는 분말 같은 것을 주면서 “남편”의 음식과 음료에 몰래 타라고 하였다. 그것이 모든 어려운 일을 해소시켜 주고, 나의 배우자의 사랑을 내게로 돌이킬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것도 개선시켜 주지 못하였다. 사실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어느날 주간 성서 연구를 끝내고 나는 나의 증인 친구에게 강신술자에게 갔었던 일은 말하지 않고, 내 사정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친절히 그러나 단호히 성서 연구를 계속할 것을 격려하였으며, 능히 이겨낼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도 때가 되면 해소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도록 격려해 주었다. 나는 나의 결혼 상태에 관하여 진실을 명백히 털어 놓았다. 나의 전체 사고 방식이 변화된 것은 「의로운 새 질서의 소망 가운데서 생활함」이라는 성서 연구 보조 서적을 논의한 후였다.
그 소책자에서 나의 주의를 사로잡은 내용을 인용하면 이러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보호나 치료를 받을 목적으로 마귀 숭배나 무당들에게 호소하지 않을 것입니다.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믿음을 두라는 명령을 그로부터 받았읍니다.” 동시에 에베소 6:14-18의 성귀가 인용되었다. 거기에는 또한 등에 어린 아기를 업은 그리스도인 부인이 장신구를 걸친 무당의 도움을 거절하는 손짓을 하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후에 우리는 또한 “결혼에 있어서의 존귀한 행실”을 취급한 동 소책자의 한 중요한 제목을 토론하였다. 그 토론을 하는 동안 나는 오늘날 남자들이 한 여자 외에 다른 여자들과 관계를 갖는 문제에 있어서 본으로서 ‘아브라함’이나 다른 족장들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예수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히브리’인들이 행하던 일부다처제는 더이상 허용되지 않게 되었으며, 그리스도인 남자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하며,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디모데 전 3:2, 12; 고린도 전 7:2) 이것은 얼마나 훌륭한 가르침인가!
내게 실로 도전이 되었던 그 소책자의 항목은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만일 당신의 가족 생활이 습관이라든가 혹은 다른 이유 때문에 성서의 이러한 요구 조건에 있어서 부족하다면 당신이 성경으로부터의 이 훌륭한 충고를 듣는 것 자체가 당신에게 도전을 해 오는 것입니다. 당신은 필요한 변화를 하시겠읍니까?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결혼의 창시자이시자 인류의 모든 순종적인 가족들에게 새 질서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여 주실 분이신 여호와께로부터의 풍부한 축복을 다짐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올바른 결정을 함
그러므로 나는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는 나의 생활을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에 일치시켜야 하였다. (히브리 13:4) 나는 합법적으로 다른 사람과 결혼한 이 남자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가 무서웠다. 만일 내가 그를 다시 떠난다면 그는 나를 죽이겠다고 하였다. 그는 심지어 나와 함께 성서 연구를 한 그 증인 부인도 해하겠다고 위협하였다.
그 친절한 부인은 여호와의 약속은 자기의 생활에 의로운 원칙을 적용하려고 하는 자들을 돕는다는 사실을 확신시키므로 나에게 힘을 주었다. (시 34:7) 그는 나에게 여호와의 도움을 구하도록 기도하라고 권하였다. 나는 그의 충고에 감사하였고 그래서 그가 말한 대로 하였지만, 아직 상태는 암담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내가 아직도 강신술자가 내게 준 가루 얼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생각났다. 즉시 나는 그것을 버렸다.
그러자 무엇인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나는 결심을 하였다. 바로 다음 연구 때 나는 그 증인 부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나의 생활을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바와 일치시키기 위하여 이 남자를 떠나야 할 것을 압니다. 나는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읍니다. 나와 여섯명의 자녀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조그마한 집을 찾는데 좀 도와 주시겠읍니까?” 그는 자기가 도움을 베풀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곧 쓸만한 집이 발견되었다. 내가 짐을 꾸리고 있는데 합의 생활을 하는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내가 실제로 자기를 떠난다는 것을 믿지 못하였다. 그가 내 결심이 얼마나 단호한지를 알게 되자 그는 더 나은 생활을 하도록 하겠다고 여러 가지 약속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미 결심한 바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이는 오직 여호와께서 나를 돕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정말 집을 얻었는지 믿을 수 없으니 내가 구해논 집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날 저녘 그는 내가 새로 얻은 집으로 와서 나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권하였다. 내가 거절하자 그는 나를 때리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겁을 내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내게 힘을 부어주셨다. 구타하는 소란으로 인하여 집주인은 강제로 그를 내 쫓았고, 다시 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여호와께 계속 기도하였으며, 그러는 동안 내 결심이 계속 흔들리지 않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나를 다시는 좌절시키지 못하였다.
행복한 결과
드디어 여호와의 요구 조건에 일치하게 생활하게 된 것은 얼마나 만족할 만한 일이었는가! 내가 이러한 결심을 하므로 인하여 나의 자녀들은 얼마나 행복하고 기쁘게 되었는가! 그들의 생활은 끊임없는 말다툼과 구타로 인하여 좋지 않은 영향을 받았었다. 지금 그들은 진심으로 만족과 행복으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로서 나는 쉽게 분별할 수 있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나는 가족을 위하여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다행히 나는 오전 8시간과 오후 2시간 사이에 일할 수 있는 마련이 되었다. 이로 인하여 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에 돌아왔을 때 그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 우리는 다 함께 서적 연구 모임에 참석하였고, 그리하여 여호와를 섬기는 데 가족으로 연합하였다.
때때로 나는 일하러 갈 때나 시장에 갈 때 전 “남편”을 만나는 일이 있다. 그가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나는 조용히 여호와께 힘을 달라고 기도하였으며 나는 항상 그에게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와 생활상에 적용되는 다른 성서 원칙에 관하여 증거하려고 노력하였다.
내가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를 처음으로 배우던 그 때를 지금 회상해 보면, 그것은 너무나 거리가 먼 내 생활에 지극히 큰 도전을 가져다 주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것이—그렇게 엄청난 변화를 수반한—얼마나 여려운 결정이었었는가를 새삼 느낀다. 그러나 지금 내가 솔직히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겪었던 고난을 벗어버리고 나와 내 자녀들은 현재 행복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힘의 원천이셨으며, 그분을 통하여서만 내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굿굿함을 얻을 수 있었고, 또 그러한 결정에 흔들리지 않고 고착할 수 있었다. 여호와께서 이 “마지막 날”에 생활 방식을 변경시키고,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의로운 견해를 굳게 지키도록 나와 같은 사람들을 돕도록 자기의 종들을 마련해 주신 것에 진실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