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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예수회 회원들의 자기 교회에 대한 견해
  • 깨어라!—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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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로한 ‘예수회’ 회원들도 동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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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2
깨72 3/8 8-12면

어떤 예수회 회원들의 자기 교회에 대한 견해

“예수회”(Jesuit)라는 칭호는, 1534년에 ‘스페인’의 ‘로마 가톨릭’ 군인 ‘이그나시우스 로욜라’가 창설한 조직에다 비평자들이 경멸적인 별명으로 붙이기 시작한 데서 유래하였다.

“예수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 내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한 종교 조직이다. 현재는 예수회 회원들이 전세계에 34,000명 이상이며, 미국에만도 약 8,000명이 있다.

16세기의 ‘프로레스탄트’ 종교 개혁을 저지하기 위하여 조직된 것은 아니었지만, ‘예수회’는 ‘로마 가톨릭’교가 그 일을 해 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그들의 방법과 열정이 지나치게 과격하였기 때문에, ‘유럽’과 ‘아메리카’의 여러 정부는 그것을 금지하였다. 1773년에는 교황까지도 그것을 금지시켰다. 그 금지령은 “영원히” 계속되도록 되어 있었지만, 그 후의 교황은 1814년에 그 금지령을 철회하였다.

1964년에 ‘아이티’ 정부는 “국내 평화와 국토의 단합을 이룩하기 위하여” ‘예수회’ 회원들을 추방하였다. 현재 미국 내의 ‘예수회’ 회원들은 병무소집을 반대하는 데 있어서 앞장을 서고 있다. 이런 예로, ‘베리간’ 형제들은 징집 서류를 파손한 죄로 형을 살고 있다. 그들은 훌륭한 ‘예수회’ 회원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이다.

‘예수회’의 훈련

‘예수회’ 회원들이 오랫 동안 가장 좋아하는 직업은 교육자이다. 미국 내의 ‘예수회’ 회원 약 3분의 2는, ‘가톨릭’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거나 그러한 직업의 훈련을 받고 있다.

‘예수회’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5년 정도의 훈련을 받는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최근에는 수년 더 단축되었다. 그리고 현재 ‘예수회’는 전세계에 220개의 대학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는 ‘와싱톤’ 시의 ‘조지 타운’ 대학교와 ‘뉴욕’ 시의 ‘포드함’ 대학교가 들어 있다.

그러한 훈련의 목표는 무엇인가? ‘예수회’ 회원은 아니지만, ‘가톨릭’의 권위자인 ‘풀톤 제인. 시인’의 말을 빌리면 “‘예수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고, 이단에 대항하여 ‘로마 가톨릭’ 신앙을 방어하고, 선교 사업에 참여하고, 어린 사람들을 교육시킨다.” ‘로마 가톨릭’ 내의 다른 단체들처럼 ‘예수회’ 회원들도 정절, 빈곤 및 순종을 서약한다.

순종의 교육은 오랫 동안 ‘예수회’의 표준이 되어왔다. ‘로욜라’는 자기의 제자들에게 “맹종”의 원리, 즉 절대적이고 무조건의 순종을 가르쳤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마치 죽은 자가 아무 방향으로든지 끌려다니며, 아무런 취급이든지 받아들이는 것처럼 순종하에서 생활하는 자들은 상급자를 통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이끌리며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터득해야 한다.”

그러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회’는 종교적 편협의 문제에 있어서 앞장을 섰으며, ‘로마 가톨릭’교에 배치된 것이면 무엇이든 “이단”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이 편협의 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심어주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페르디난드’ 2세를 아주 잘 훈련시켰기 때문에 그는 종교 개혁의 잔재를 일소하겠다고 결심하였던 것이다. 그의 행동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유럽’의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사이에 일어났던 일련의 전쟁 곧 30년 전쟁을 일으키는 데 한 몫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페르디난드’에게 ‘예수회’의 목소리는 하나님의 목소리였다. 그는 ‘프로테스탄트’교인들을 다스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황무지를 다스리겠노라고 말하였다.

‘새’ ‘예수회’ 회원들

‘예수회’에서 이러한 순종에 대한 훈련을 실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순종이라는 이 특성이 와해되어가고 있다. 현재에는 한 종류의 ‘예수회’만이 있는 것도 아니며, 교회에 대한 전적 순종에 대해서도 다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는—물론 다른 나라에도 그렇지만—기본적으로 세 종류의 ‘예수회’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이 많은 보수파, 젊은 과격파, 그리고 중도파이다. 그들의 견해가 서로 크게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오늘날 ‘예수회’ 회원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가 ‘유대’교의 정의를 내리기만큼이나 불가능하다고 말하였다. 수년 전에 ‘바오로’ 교황이 ‘예수회’를 책망한 이유를 이런 점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회’ 총재도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이 “적절한 한계를 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견해 차이 때문에 어떤 ‘예수회’ 회원들은 자신을 잃게 되고 인생에 있어서의 사명감을 잃고 있다. 현 ‘예수회’ 총재 ‘아루페’도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이 세상에 제공할 것이 거의 혹은 전혀 없을까, ‘예수회’로서의 우리의 존재를 정당화할 만한 말이나 행동이 거의 없을까 나는 우려한다. 우리가 내일의 문제에 대하여 어제의 대답을 반복하고, 사람들이 더 이상 알아듣지 못하는 방법으로 말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까지 미치지 못하는 언어로 연설하지나 않나 우려한다.”

그러나 많은 신입 ‘예수회’ 회원들이 단언하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자기네가 정해진 규칙에 맹목적으로 순종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1966년에 예수회 사제로 임명된 ‘존 리유로우’는 1969년 11월 「아틀랜틱」지에 “순종이나 불순종의 문제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기술하였다. 이러한 냉담한 정신은 자기들의 상급자들을 “극도로 당황케” 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예수회’ 회원 ‘리유로우’는 또한 이렇게 기술하였다. “미국의 새로운 ‘예수회’ 회원들은 자기의 양심과 벗들과 상의해서 행동을 하며, 자기 상급자가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이냐는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예수회’ 회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들은 모두가 기존 권위에 의심을 일으키고 권위의 약점을 파헤친 사람들이며, 그러면서도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설립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실로 난처한 입장이 아닌가!

이러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감정은, 반항적인 사제들과 교회 내의 분열에 대한 교황의 언급에 관한 한 사람의 말에서 볼 수 있다. 이 ‘예수회’ 회원은 이렇게 말하였다. “교황의 말은 우리가 소수의 보수적인 ‘로마’ 추기경들의 사고 방식에 절대적으로 굴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황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은 그리스도교 교회는 단순한 교직체의 교회보다는 훨씬 더 광범하다는 사실이다. 날보고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편에 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들 젊은 ‘예수회’ 회원들은 말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도 독립적으로 한다. 그러므로 그들 중 두 사람은 ‘쿠크’ 추기경이 미국 군대 내의 군사 사제라는 이유로 그들이 사제로 임명받을 때에 ‘쿠크’ 추기경으로부터 “평화의 키스”를 받기를 거절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직책이 ‘가톨릭’ 주교에게는 합당치 않다고 ‘예수회’ 회원들은 생각한 것이다.

‘스페인’의 ‘예수회’ 회원 45명은 그들의 수뇌인 ‘아루페’ 총재가 ‘바르셀로나’ 도시를 방문하였을 때에 그와 회합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무슨 이유였는가? ‘아루페’가 이전에 ‘프랑코’와 회담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프랑코’가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원칙을 짓밟으면서도 ‘가톨릭’교인인체 한다”고 주장한다.

연로한 ‘예수회’ 회원들도 동요하고 있다

현재 자기 교회를 비평적인 눈으로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30대 이하의 젊은 ‘예수회’ 회원들만은 아니다. 60대에 들어선 나이 많은 ‘예수회’ 회원들 중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사람 중에 65세인 ‘칼 라너’가 있는데 어떤 ‘예수회’ 회원들로부터 “당대 최고의 신학자”라고 인정받는 사람이다. 이 독일 신학자는 많은 보수파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이 동의하지 않는 발표를 하고 있다. 그는 ‘유모어’감을 가지고 자기의 교회 비평론을 다음과 같이 변호하였다. “언제까지나 칼을 갈고 있을 수만은 없다. 가끔 어떤 것을 자르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너’는 이렇게 주장한다. ‘가톨릭’ “신학자들은 교회와 교회의 신학에 있어서 상당한 오류가 있었고 오늘날도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훨씬 더 심중히 반성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이러한 오류는 생의 많은 분야에 관련된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의 구체적인 생활에 크게 영향을 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류는 교리에도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도보다 훨신 더 많이 관련되어 있다.”

‘예수회’의 ‘라너’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라고는 부르면서도, 공식 ‘가톨릭’ 교리에 나타난 대로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거절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는 또한 ‘미사’를 그렇게 자주 거행하는 것을 반대하였으며, ‘미사’를 대‘미사’, 소‘미사’, 장엄 ‘미사’ 등으로 구분짓는 것도 반대하였다. 그는 또한 결혼, 이혼, 유아 세례, 사제의 독신 생활 등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입장에 대하여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말하였다.

교황에 대한 ‘예수회’의 평가

‘노틀담’ 대학교의 신학 교수이며, 61세된 ‘예수회’ 회원 ‘존 엘. 매켄지’가 그의 교회에 대하여 한 말도 흥미가 있다. “‘로마 가톨릭’교는 전체 역사상 가장 큰 위기에 처하여 있으며” 교회가 “권위의 위기와 신앙의 위기로 향해서 가고 있다”고 고백하는 말로 그는 비평을 시작하였다.

‘예수회’의 ‘매켄지’는 교회의 공식적인 교리와는 반대로 ‘로마 가톨릭’ 교회가 4세기에 “‘콘스탄틴’의 개종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는 “엄격히 말해서 사도들은 후계자를 남겨두지 않았다”고 말하고 “교권 계승에 대한 전체적인 연쇄가 있었다는 역사적 증거가 없다”고 하였다. 성서에 들어 있는 ‘베드로’의 지위에 대한 어떤 말을 가지고도 교황의 권위를 변호할 수 없다고 그는 설명하였다.

10세기의 ‘로마 가톨릭’ 교회 역사로 내려와서 ‘매켄지’는 ‘로마’ 교황청이 역사상 최악의 도덕적 파탄을 겪었다고 하였다. 그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가치없는 사람들의 세력 아래서 교황청의 부패는 믿기 어려운 정도에 이르렀다. ··· 교황의 직책에 선출된 협잡군들과 악당들은 영적 지도력을 행사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다른 교황들의 잘못을 지적한 다음, 그는 교황의 직책을 설명하고 나서, 교황청을 정치적 정부의 내각과 비교하였다. 그러나 재무성에 해당하는 직책은 없다. ‘매켄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교황 행정부의 이 분야는 잘 은폐되어 있다. ··· 자금[그는 그것이 “엄청나다”고 하였다]의 출처도, 소비처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왜 알려지지 않는가? 왜냐 하면,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나 세속적인 문제에 있어서나 “교황은 인간 권위자에게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추기경과 주교에 관하여

국회 상원에 비할 수 있는 추기경회에 대하여, ‘매켄지’는 이렇게 논평하였다. “추기경회의 역사를 보면, 그것이 대단히 해로운 정치적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교황을 선출한 어떤 선거는 “설명할 수 없는”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이 ‘예수회’ 회원은 또한 ‘가톨릭’교 추기경의 반 이상이 ‘이태리’ 사람인데 “‘이태리’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반은 아니다”고 지적하였다. 이것은 추기경의 임명이 영적 자격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임명을 받는 것은, 그 추기경이 ‘로마’ 고위층에 친한 벗이 있고 영향력이 있음을 나타낸다. 그것은 교황과 친분이 있음을 나타내는 경우도 많다.”

또한 지식이 있는 성서 연구생들에게 관심이 있는 말은, “교회가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 같은 식의 주교는 신약에 나오지 않는다. ··· 교회는 한 사람에게 귀속되어 있는, 지방의 최고 권세자로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한 ‘매켄지’의 말이다. 이러한 교회의 성격 때문에 야심적인 사람들이 그러한 권세를 얻기 위하여 파렴치한 책략을 쓰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교직자들의 야심을 과거에도 오랫 동안 그랬거니와 현재에도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된 문제거리임을 솔직히 말해야 한다”고 그는 말하였다.

기타의 논평

이 신학자는 또한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은 사제직은 신약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정확하게 지적하였다.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교직자 평신도의 구분은 성서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논평하였다.

강제적인 독신 규정도 성서의 뒷바침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매켄지’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독신 생활은 신약에서 임의로 선택할 문제로 권고했다는 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 많은 사제들이 독신 생활을 하지 않는 지역에서는 이러한 규정은 순전히 커다란 위선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규정에 의하여 어떤 가치 있는 것이 보존되리라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는 또 지적하기를 “교직자들의 간음과 이혼에 대해 심한 ‘스캔달’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며, 사람들은 확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제의 축첩에 대한 ‘스캔달’은 모르고 있다”고 하였다.

교회의 가르침에 대하여, 그는 “장기적으르 분석해 볼 때에 ‘로마 가톨릭’ 교회가 좋은 신학보다는 나쁜 신학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대한 한가지 예로 그는 유아 세례를 들었다. 신약만이 아니라, 고대 교회 권위자들의 증언도, 유아들이 아니라, 세례에 대한 “성인 희망자를 전제로 한 것”이다. ‘미사’에 빵만 사용하는 것도 비성경적이다. “본래에는 두 가지[빵과 포도주] 다 수령하였다는 사실을 아무 ‘로마 가톨릭’ 신학자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교리에 대하여, ‘사람이 일요일 ‘미사’에 불참했다고 해서 지옥에 가지 않는 것처럼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이 ‘예수회’ 회원 ‘매캔지’는 말하였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하여, 어느 ‘가톨릭’ 교인이 기술하기를, 교회는 “미국 군인들이 ‘히로시마’에 피임 설명서와 피임 기구들을 투하했더라면, 미국이 70,000의 생명을 앗아간 폭탄을 투하했을 때보다 훨씬 더 염려했을 것”이라고 했다고 그는 지적하였다.

이와 같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엘리트’라고 하는 ‘예수회’ 회원들이 그런 식으로 자기 의견을 피력하고 있으니 ‘가톨릭’ 교회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하는 것이 이상하겠는가? 성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다고 한 예수의 말씀이 생각날 것이다. (마가 3:25)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렇게 진동시키겠다고 말씀하셨고 또한 견고한 기초에 세워진 것만 남겠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어디에 위치를 정해야 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하나님의 왕국 곧 하나님의 아들이 다스리시는 의로운 정부만이 지속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주고 있다. 당신의 영원한 복지를 위하여, 지금, 하나님의 왕국을 충성스럽게 지지하고 또 그것을 선포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도록 하라.—학개 2:6, 7; 히브리 12:2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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