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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덕에 대하여 종교는 어디로 인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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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덕에 대하여 종교는 어디로 인도하고 있는가?
  • 깨어라!—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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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2
깨72 10/22 8-11면

도덕에 대하여 종교는 어디로 인도하고 있는가?

근년에, 도덕 문제에 있어서 세계 종교 내에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이 말은, 음행, 간음 및 동성애에 대하여 그러하다는 것이다.

연합 장로 교회는 새로운 “성생활 규례”를 제안하였다. 「퍼레이드」지는 그것이 “대단히 자유주의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성 관계에 있어서 커다란 요인인 죄를 사실상 제거해버린다”고 말하였다. 거기서 제창한 변화 가운데는, “함께 [음행으로] 생활하기를 원하는 결혼하지 않은 성인들을 규제하는 모든 제약을 제거”하자는 것이 들어있다.1

「타임」지는 이렇게 부언하였다. “그 보고서는 간음이 정당화될 수 있는 ‘예외적인 상황’을 말하고 있다. ··· 그 보고서는 또한 교회가 미혼자들에 대하여 집단적인 또는 기타의 성 생활의 가능성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2

연합 감리 교회의 가정 생활 위원회는 독신자들의 성교를 용납하는 결의문을 발표하였다.3 ‘루터’ 교회는 21명의 교인들이 집필한 85‘페이지’의 소책자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서는 혼전 성교가 단지 이기적인 이유로 행해졌을 때에만 나쁘다고 하였다.4

‘덴마아크’의 어느 교직자는 자기 교구 잡지(Vedbæk-Gl. Holte Kirkehilsen)에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성 행위를 결혼 생활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아무런 이득이 없다. ··· 젊은이들이 결혼 전에 성 관계를 가지는 것은 윤리적 견지로나 그리스도교의 견지로도 정당할 수 있으며, 결혼한 사람들이 결혼 밖에서 성 관계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로 정당할 수 있다.”5

그리고 ‘일리노이스’ 주 ‘모르몬’ 감리 교회 목사인 ‘더불류. 엘. 구스틴’이 있다. 그는 수백명 앞에서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큰 소리로, 명확한 소리로 말합니다만 간음에는 유익점이 있읍니다.”6

‘로마 가톨릭’ 교회 내에서도 관용의 추세가 일어나고 있는가? 「타임」지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두 계열에서 완만한 자유화가 일어나고 있다. 첫째, 전통적 도덕률의 적용을 약화시키는 교직자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그들은 흔히 불법적인 성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대단히 비장성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범죄가 항상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근거하에서 그렇게 한다.

“둘째, 어떤 신학자들은 교회의 도덕 표준 배후에 놓여 있는 ‘자연 법칙’ 이론에 도전하고 있다. 자연 법칙에 따르면, 어떤 행위는 ‘자연에 역행’할 경우에만 나쁘다. 그러나 신 도덕주의자들은 실제 ‘자연’이 무엇인가를 교회가 확실히 알고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7

이 모든 사실을 듣고 당신은 놀라는가? 만일 당신이 세계 종교 내에 일어나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잘 알고 있지 않다면 놀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들이 특수한 예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한 보도들은 대단히 많기도 하고 거세기도 하기 때문에 분명히 하나의 추세임에 틀림없다. 특히 젊은 교직자들에게서 그러하다.

동성애는 어떠한가?

동성애라고? 교회들이 그러한 행위를 용납하지야 않겠지 하고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증거를 검토해 보라.

한 집단의 ‘퀘이커’ 교도들은 “성에 대한 ‘퀘이커’ 교도의 견해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가운데 이러한 내용이 들어 있다. “동성애자를 왼손잡이보다 더 개탄스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 두 개인 사이에 진정한 애정을 표현하고 그 두 사람에게 쾌감을 주는 행위가 우리에게는 죄스럽게 보이지 않는다.”8

‘도미니코’회의 ‘로마 가톨릭’ 교직자들은 신학 계간지(The Thomist)를 발행하고 있는데, 최근호에 이러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경우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자기 생활에서 만족스러운 정도의 인간성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동성애적 결합을 마지못해 받아들일 수도 있다.”9

감독 교회의 한 주간지(The Living Church)는 ‘샌프란시스코’의 교직자 ‘알. 더불류. 크로미’의 기사를 게재하였는데, 거기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 자체 죄가 되는 성행위란 없다. ··· 나는 또한 동성의 두 사람이 사랑을 표현할 수 있고 성 관계로 그 사랑을 심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10

「타임」지는 보도하기를, 가정 생활에 대한 연합 감리 교회 위원회가 “독신자들의 성관계, 동성애 및 규정하지 않는 ‘다른 형태의 관계’ 등을 암암리에” 찬성하였다고 하였다.11 연합 장로 교회가 제창한 새로운 성생활 규례는 “동성애자들이 그리스도교 신앙과 정 반대되는 입장에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낙인을 완전히 제거”할 것을 권고하였다고 「퍼레이드」지는 설명하였다.12

현재 거의 전적으로 동성애자들만으로 형성된 교회들이 있다. 어느 교회의 부목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첫째로 그리스도 교회이며, 둘째로 동성애자들이다.”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그 교파의 교회에 연합 장로 교회에서 임명받은 교직자가 있는데, 13세 내지 20세 된 동성애자들을 위하여 매월 무도회를 연다.” 그 교회의 연중 중요한 사교 행사는 “왕과 여왕을 뽑는 5월의 축제였는데, 남자의 복장을 한 여성 동성애자가 왕으로 뽑혔고 여왕은 남자였다.”13 그는 여자를 닮았었다.

‘네델란드’, 미국 등 몇 나라에서는 동성애자들이 교직자들의 주례로 “결혼”을 하였다. ‘프랑스’에서 ‘네델란드’ 사제 한 사람은 전국적인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시인한 일이 있었다. ‘프랑스’의 ‘다니엘로우’ 추기경은 이 사실에 대해 질문을 받고 “동성애자도 교회에 속할 완전한 권리를 가지고 있음은 명백하다.”14고 말하였다.

동성애자들을 교회 내에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광범한가? 「크리스찬 센추리」지는 저명한 신학자 ‘노만 피텐저’의 다음과 같은 말을 게재하였다. “동성애 그 자체는 죄가 아니라고 말하는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15

어떻게 설명하는가?

이들 교직자들은 음행, 간음, 동성애 등을 용납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그들은 하나님이 그러한 것을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혼전 성 관계가 죄인가에 대하여, ‘알. 이. 테일러’는 “이 문제에 대하여, 성서는 확정적이고 분명한 대답을 주지 않는다”16고 말하였다.

신학자 ‘조셉 플레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 행위가 결혼의 범위 내에서만 표현되어야 한다고 하는 주장은 단지 그렇다는 추정일 뿐이다. 혼전 행위를 명확하게 금하는 말은 없다. ···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결혼 밖에서의 성 행위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17

‘퀘이커’ 교도 집단이 제출한 논문에서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동성애자들을 공격하고자 하는 자들은 주로 그[사도 ‘바울’]에게 의존한다. 기록된 그의 견해에 관하여는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고린도 전 6:9) 그러나 그의 견해는 개인적 견해였을 수도 있으며, ··· 그러므로 성 ‘바울’의 견해 그 자체가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18

그러한 주장을 보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최종적으로 규정하는 말이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행위를 저지르도록 공적으로 조장하는 것이 된다. 모든 교직자들이 다 이러한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은 자기 교회 내에서 목사나 사제로서 좋은 신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물론, 당신 개인은 당신의 교회가 그러한 것들을 승인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의 목사가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 보았는가? 다른 곳의 그 교회 교직자들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당신은 아는가? 또한 당신의 종교에서 음행, 간음, 동성애자들에 대하여 징계 조치를 행한 때가 있었는가?

진리는 무엇인가?

흥미있는 시험을 해 본다면 진리가 어느 방향에 있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자문해 보라. 만일 당신이 남편이라면, 당신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성 관계를 가지는 것을 원하겠는가? 만일 아내라면, 당신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성 관계를 가지는 것을 승인하겠는가?

만일 당신이 부모라면, 아들이 간음 혹은 동성애하는 자가 되는 것을 환영하겠는가? 당신의 딸이 음행 또는 동성애를 하게 된다면 기뻐하겠는가? 만일 당신이 청소년이라면,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간에 충실하게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원하겠는가?

만일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아니다” 하고 대답한다면, 이 문제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멀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문제에 대하여 많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의심을 둘 여지가 없이 명명백백하다. 또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어느 성서 필자가 성 도덕에 관하여 말하였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진리인 것이다.—디모데 후 3:16, 17.

음행과 간음과 동성애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많은 성경 귀절 가운데 몇 가지만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음행을 피하라.” (고린도 전 6:18);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히브리 13:4); “음란하는 자나 ···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린도 전 6:9, 10) ‘가톨릭’ 성서에서는 동성애자들은 “더러운”, “변태”, “악행”, “타락”이라고 하였다. (‘두웨이’, ‘예루살렘’ 성서)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특별히 경고하고 있다.—로마 1:26-32.

그것에 조금이라도 불명확한 점이 있는가? 어떻게 교직자들이 진리를 모를 수가 있겠는가? 그들이 모르는척할 때만 그럴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미혹을 받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있다. (고린도 전 6:9) 그러므로 부도덕을 용인, 핑계 혹은 권장하는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의 인도를 따르지 않도록 조심하라.19

그러한 종교 지도자들의 거짓말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러면, 누구에게서 나왔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을 “거짓의 아비”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당시 거짓말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하셨다. (요한 8:44) 그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이 사실을 검토해 본다면, 세계 종교를 묘사한 하나님의 말씀이 참됨을 알 수 있다.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다고 하였으며, 그의 손에는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고 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고 하였다!—계시 18:24; 17:2, 4.

참조 문헌

1. Parade, May 17, 1970.

2. Time, December 13, 1971, p. 73.

3. Ibid.

4. Ibid.

5. Vedboek-Gl. Holte Kirkehilsen, July-August 1964.

6. Western Voice, Fort Worth, Texas, Oct. 3, 1968. p. 1.

7. Times, December 13, 1971. p. 74

8. Towards A Quaker View of Sex, Revised Edition, 1964, pp. 26, 41.

9. The Thomist, July 1971, p. 479.

10. The Living Church, January 8, 1967, p. 19.

11. Time, December 13, 1971, p. 73.

12. Parade, May 17, 1970.

13. Christianity Today, September 11, 1970, pp. 48, 49.

14. From transcript of French television series “The Church Tomorrow?” which ran from December 1970 to March 1971.

15. The Christian Century, December 15, 1971, p. 1469.

16. The Expository Times, May 6, 1965, p. 253.

17. Moral Responsibility—Situation Ethics at Work, Joseph Fletcher, pp. 134, 138.

18. Towards a Quaker View of Sex, pp. 32, 33.

19. Courier-Mail, Brisbane, Australia, February 21,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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