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호(礁湖)에서의 생활
‘가나’ 주재 「깨어라!」 통신원 취재담
나는 밤에 정든 다리에 서서 ‘에베리에’ 어부들이 통나무 배를 타고 밤 고기 잡이를 떠나는 것을 바라보는 때가 있다. 그들이 조용히 노를 저으며 밤의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때때로 나는 그들을 따라 다시 한번 초호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여진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나도 ‘에베리에’인이며 초호가 한 때는 나의 생활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코트디브와르’의 ‘아비잔’ 시, 분잡하고 번창하는 도시에 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가끔 도시의 먼지와 소음과 ‘시멘트’ 벽을 멀리하고 다시 한번 통나무배를 타고 초호 가장 자리의 급류 사이로 미끌어지듯이 빠져나가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힌다.
나는 나의 아버지와 함께 물에서 여러 번 즐거운 밤 시간을 보냈다. 한쪽에는 모래와 바다가 있고 다른 쪽에는 초록색 ‘정글’이 있는 초호는 평화로왔고 소리라고는 철썩거리는 물소리와 가끔 들려오는 동료 어부의 부르는 소리 뿐이었다. 가끔 만월이 되어서 만물이 은빛으로 변하곤 했었다. 그물도 은빛, 그물에서 반짝이며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도 은빛, 고기도 은빛이었고, 초호의 검은색 수면 물 건너편에서 달 빛은 우리 배에 은빛 오솔길을 만들어 주었다.
여러 가지 고기 잡이 방식
우리가 고기를 잡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의 아버지와 나는 보통 어두움이 덮였을 때에 떠났다. 마을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우리는 그물을 던졌다. 우리는 조금 물러나 십여분 기다리곤 하였다. 그 다음에 노로 물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고기는 깊은 곳에 있다가 깜작 놀라 그물로 들어간다. 한 두번이면 대개 일 가족 당일분의 식품은 능히 마련할 수 있었다.
투망이 널리 보급되어 있다. 그 그물은 둥글고 가장자리로 돌아가면서 납덩이 혹은 돌맹이가 달려 있다.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미끼인 ‘카사아버’ 부스러기를 물에다 뿌리고 초호의 모래 바닥에 장대를 찔러 꽂아 위치를 표해 놓는다. 그후에 우리는 잠깐 물러났다가 다시 와서 미끼를 먹으러 몰려든 잉어가 있는 곳에 그물을 던진다.
작은 통나무 배에 똑바로 서서 이 큰 그물을 치는 것은 하나의 기술이다. 풋나기 어부들은 대개 고기를 잡는 대신 고기에게 그물을 치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낸다. 그러나 물위로 그물이 획하고 내는 소리와 고기떼 주위로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내려가는 모양은 참으로 흥취를 자극한다.
마을 사람들은 열명 혹은 스무명의 집단을 이루어 나갈 때도 있다. 그래야 더 큰 그물을 사용할 수 있고 실제로 큰 고기, 무게가 4.5‘킬로그램’까지 나가는 큰 고기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홍수림(紅樹林) 늪에서 손으로 고기를 잡을 때에는 마을 사람들이 많이 합세한다. 지정된 지점에서 약 20‘미터’ 떨어진 곳에 배를 두고 홍수림 쪽으로 빠르게 헤엄쳐 가며 일제히 바닥에서 손으로 진흙을 퍼 올린다. 잉어는 진흙투성이가 된 물에서 헤엄을 칠 수가 없으므로 홍수림 나무 뿌리 사이에 있는 구멍에 갇혀 있다. 어부들은 맨 손으로 잉어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두운 구멍으로 손을 찔러넣고 잉어가 잡히기를 바랄 때에 그것은 좀 섬칫한 데가 있다.
초호의 전설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림
지금은 내가 초호의 고요하고 어두운 평화로운 저녁을 좋아하지만 여러 번 내가 아버지와 함께 초호에 나갔을 때에는 두려웠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홍수림 늪에서 겁이 나는 때가 흔히 있었다. 왜냐 하면 이러한 곳 중 어떤 곳은 괴물이 출몰하며 그 괴물이 악어나 큰 고기로 둔갑을 하고 그 곳에서 방심하는 어부를 기다리는 수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아코우’가 거대한 불귀신이며 머리에서 발끝까지 치렁 치렁한 머리로 덮여 있다고 생각되었다. 만일 한낮에 혹은 한밤중에 이상한 휘파람 소리를 들으면 그것이 ‘아코우’가 접근하고 있다는 징조이며 그럴 때면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나무토막 위에 뛰어 올라가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이런 이야기는 모두 어린 나에게 공포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나는 얼마 전에 성서로부터 그러한 이야기에 대한 진리를 배웠으며 이제 나는 내가 한 때 가졌던 두려움에 대하여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는 한밤중에 혹시 이상한 휘바람소리가 들리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이 지방의 종려주 즉 ‘방구이’를 너무 마시고 밤 늦게 흥청거리며 돌아오는 사람의 소리이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지방의 마술사와 마을의 예언자들이 악한 영들과 접촉하려는 경우에 여호와의 종이라는 사실이 나에게 보호가 될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시 23:4; 야고보 4:7.
내가 마을의 단순한 생활을 동경하는 것은 사실이나 감사히 여겨야 할 것이 나에게 많이 있다. 나는 사람을 속박하는 여러 가지 미신에서 해방되었고 나의 시간을 더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이곳 ‘아비잔’에서 나는 성서에 있는 진리의 소식을 접촉하였으며 이곳에는 위안을 주는 성서의 진리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곳에 머물면서 그들을 돕는 것을 행복하게 여긴다. 그러나 어부였던 시절의 생활은 여러 가지 면으로 행복한 생활이었다. 누가 아는가? 앞으로 언젠가 내가 다시 배를 타고 전과 같이 나가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게 될지. 그 때까지 나는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