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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리아’—군국주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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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2
깨72 9/22 22-23면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시리아’—군국주의 제국

현세계에서 군국주의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국가의 안보가 군사력에 달려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막대한 돈이 병력과 군비 유지비로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는 군인이 정부를 지배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군국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고대 세계를 주름 잡던 제국 가운데 ‘아시리아’는 군국주의 제국으로 유명하다. ‘아시리아’란 말만 들어도 사람들의 간담이 서늘해지던 때가 있었다. 도시들과 왕국들과 나라들이 ‘아시리아’ 진격군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기원전 8세기에 ‘아시리아’ 군주 ‘산헤립’은 그의 대변자 ‘랍사게’를 통하여 “열국의 신들 중에 그 땅을 ‘앗수르’[‘아시리아’]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고 뽑낸 일이 있다.—열왕 하 18:33.

‘아시리아’인들은 전쟁 포로를 참으로 잔인하게 다루었다. 불에 태우기도 하였고 산 채로 가죽을 벗기기도 하였다. 또는 뾰죽한 형주 꼭대기에 꿰어 그 끝이 배를 뚫고 가슴 속에 들어 가게 하였다. 혹은 또 눈을 멀게 하거나 코와 귀와 손가락을 잘라 내기도 하였다. 흔히 포로들을 코나 입을 꿴 갈고리에 끈을 매어 끌고 다녔다.

‘아시리아’인들이 그들에게 완강히 대항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다룬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그들에게 군사적으로 유리하였을 것임이 분명하다. 잔인 무도한 ‘아시리아’인들에게 희생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많은 도시가 항복하였다. 따라서 ‘아시리아’인들은 별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피정복민으로부터 그들의 주된 목표인 공물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들은 심지어 그러한 공물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권위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몇가지 면에서 현대의 강대국들 즉 다른 나라에서 그들의 상업적 이익이 보장되기만 하면 그 나라를 침략하지 않는 국가들의 정책과 비슷하다.

지금까지 발견된 고대 ‘아시리아’ 기록들은 주로 군사적 업적을 다루고 있는 것들이다. 여러 왕들은 자기들이 감행한 전투와 변태적인 고문 행위를 뿌끄럼 없이 자랑하였고 전쟁 장면들은 흔히 그들의 웅장한 궁전을 장식하는 조각의 주제가 되어 있다. 고고학상의 발굴물에 대하여 ‘오스턴 레이어드’ 경은 이렇게 논평하였다.

“‘아시리아’ 궁전의 내부는 사람을 위압할 만큼 웅장하였음에 틀림없다. ··· (첫 현관에는) 전쟁, 침공, 승전, 추격의 공적, 종교 의식을 묘사한 벽화가 있었는데 설화 벽고로 새겨졌으며 찬란한 색깔로 칠하여져 있었다. 각 그림 밑에는 표현된 장면을 설명하는 글이 빛나는 구리로 가득 채워진 글자로 새겨져 있었다. 조각된 작품 위에는 다른 사건을 묘사하는 그림 즉 내시들과 용사들을 대동한 왕이 그의 포로들을 받아들이며 다른 군주들과 협약을 맺거나 어떤 거룩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묘사하는 그림이 있었다. 이러한 그림은 채색을 한, 정교하고 우아한 테로 둘려 있었다. 상징적인 나무, 날개가 있는 황소, 험상궂은 짐승들은 장식물 가운데서 이채로왔다. 현관의 상단에는 최고 신 앞에서 숭배를 드리는 왕 혹은 내시로부터 성찬배를 받는 으리으리한 화상이 있었다. 왕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왕의 무기를 들고 있는 용사들과 사제들 혹은 주임 성직자들이었다.”

이러한 설명으로 보아 분명하지만 전쟁은 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아시리아’ 왕은 ‘아시리아’의 최고 신 ‘앗수르’의 대제사장이었다. 그리고 전쟁은 국교의 가장 참된 표현이었다. 왕 ‘티글랏 필레세르’ 1세는 자기의 군사적 행동에 대하여 “나의 주 ‘앗수르’의 격려를 받고 내가 출전하였다”고 말하였다. ‘아시리아’의 군주 ‘앗수르 바니팔’은 자기의 연대기에서 “‘앗수르’, ‘신’, ‘샤마쉬’, ‘라만’, ‘나부’, ‘니느웨’의 ‘이쉬타르’, ‘니닙’, ‘네르갈’, 그리고 ‘누스쿠’의 명령으로 나는 ‘마나이’ 땅으로 진입하여 그곳 일대를 개선하였다.”고 말하였다. ‘사르곤’ 왕은 정기적으로 전쟁에 나가기 전에 여신 ‘이쉬타르’에게 도움을 기원하였다. ‘아시리아’ 군대는 장대에 달려있는 목제 혹은 금속 상징물이었던 신들의 기치를 앞세우고 행군하였다. 전조를 중요시하였다. 이러한 전조는 제사드린 동물의 간을 조사하고 새의 나르는 모습을 관찰하고 혹은 혹성들의 위치를 보고 결정하였다.

사제들은 ‘아시리아’인들의 승리의 혜택을 입었으며 따라서 실제로 전쟁을 격려하였다. ‘더불류. 비. 라이트’는 그의 저서 「고대 여러 도시」에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싸우는 것이 그 나라의 본업이었다. 그리고 사제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조장하였다. 그들은 주로 전리품으로 생활을 하였으며 전리품 가운데 일정한 비율이 반드시 그들에게 배당된 다음에 다른 사람들이 나누어 가졌다. 왜냐 하면 이 약탈자의 경쟁은 다분히 종교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을 생각하여 볼 때 성서에서 ‘아시리아’의 수도를 가리켜 “피성”이라고 부른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훔 3: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오랫 동안 이 도시에 대하여, 아니 ‘아시리아’ 제국 전체에 대하여 관용을 보이셨다. 그러나 그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니느웨’가 황폐될 때를 미리 지적하였다. 예를 들면 예언자 ‘스바냐’는 여호와께서 하실 일에 대하여 영감을 받아 이렇게 기술하였다. “여호와가 ··· ‘니느웨’로 황무케하여 사막같이 메마르게 하리라. 각양 짐승이 그 가운데 떼로 누울 것이라.”—스바냐 2:13, 14.

이 예언은 ‘바벨론’ 왕 ‘나보폴라살’과 ‘메데’ 왕 ‘시악사레스’ 연합군이 ‘니느웨’를 포위 공격하여 함락시켰을 때에 성취되었다. 도시는 분명히 불에 탔다. 그 증거로 많은 ‘아시리아’ 유물이 불에 탄 흔적이나 그에 따라 연기에 그슬린 얼룩이 나타나 있다. ‘니느웨’에 대하여 ‘바빌로니아’ 연대기는 “그들은 그 도시의 막대한 전리품을 가져 갔고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강대국이었던 ‘아시리아’ 제국은 수도 ‘니느웨’의 황폐와 더불어 불명예스러운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니느웨’는 폐허가 되어 있다. 봄이면 양떼가 고대 도시의 위치를 알리는 두개의 언덕 중의 하나인 ‘큐유니크’ 언덕 근처 혹은 꼭대기에서 풀을 뜯는다.

‘아시리아’ 제국의 멸망은 하나님의 말씀이 참됨을 웅변적으로 증명하여 주며 또한 군사력이 참다운 보호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력히 증거하여 준다! 그러한 군국주의가 사제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시리아’를 구출하지는 못하였다. 마찬가지로 유혈의 죄가 있는 사람들과 나라들이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을 축복과 승인을 받고 있지만 우주의 지존하신 주권자 여호와 하나님께 불가불 문책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승인을 받는 길를 따르고자 결심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참다운 안전과 보호가 있기 때문이다. 잠언 18:10에 있는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는 말씀은 참으로 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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