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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호원의 생활
  • 깨어라!—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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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파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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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3
깨73 5/22 8-12면

간호원의 생활

「깨어라!」 필자 취재담

나는 서 인도 제도의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아직 십대였을 때, 즉 1940년대 말에 간호원 생활을 시작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자메이카’와 미국에서 간호원 생활을 24년이나 해온 셈입니다.

나는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병자와 환자를 수천명이나 간호했읍니다. 수술실에서도 일해 보았고, 사고를 당한 외상과 골절의 중상자도 돌보았고, 죽어가는 사람도 위로해 보았고, 기타 수십 가지 간호의 임무를 수행했읍니다. 슬픔과 실망 그리고 즐거움과 의기양양함 등 간호원들이 겪는 느낌을 많이 겪어 보았읍니다.

“왜 이 직업을 택했는가? 나는 도저히 간호원 노릇은 하지 못하겠다” 하는 질문을 나는 많이 받았읍니다. 또는, “선천적으로 간호원 할 사람은 따로 있어”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읍니다. 그러나 사실이 그러합니까?

어려운 직무

다른 직종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간호원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용기도 필요하고 동료 인간을 돕고자 하는 진정한 의욕도 있어야 합니다. 또한 전염병에 자주 접하기 때문에 신체적으로도 건강해야 합니다. 그러나 훌륭한 간호원은 환자들에게 특히 동정심이 있어야 하고 그들의 필요에 응해 주기 위해서 기꺼이 자기를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하기는 말하는 것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간호원은, 온 종일, 날이면 날마다, 환자들을, 심지어 죽어가는 사람들까지 돌보게 됩니다. 이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굳어지고 환자의 필요에 냉담해지는 경향이 있읍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어서는 안됩니다. 자기 환자들의 딱한 처지를 보고 깊은 인정을 나타내는 간호원들이 있읍니다.

수년전 ‘뉴욕 브루클린’에 소재한 ‘카아슨 팩 메모리얼’ 병원에서 간호하였던 젊은 환자를 나는 기억합니다. 그는 36세 정도 되는 정말 좋은 부인이었읍니다. 약 3년 전에 그 부인은 암으로 유방을 제거하였는데, 또 암 수술을 받게 되었읍니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환자같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의 몸에는 암이 온통 번져 있었읍니다.

그 부인은 살고자 하는 의욕이 대단히 강하였기 때문에 나는 참으로 그에 대해 동정심을 느꼈읍니다. 그 부인은 자기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았읍니다. 그러나 그 부인은 두번째 수술을 받은 지 5주일 정도밖에 살지 못하였읍니다. 그의 남편과 어머니는 그 환자의 상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문병을 올 때면 참으로 딱하였읍니다. 환자가 서서히 죽어갈 때에, 그리고 친척들의 깊은 슬픔을 볼 때엔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특히 슬픈 것은, 환자 자신은 살 것으로 생각하고 장래의 어떤 일을 계획하는데, 모든 증거로 보아서 그가 죽을 것이 틀림없을 때입니다. 우리는 애써 자신의 감정을 감추려고 합니다. 때로는 별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가끔 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병실에서 나와 버리곤 합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슬프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실망이 될 때도 있읍니다. ‘브루클린’의 ‘샌트 존스 에피스코펄’ 병원에서 만났던 약 50세 되는 환자를 나는 기억합니다. 2주일쯤 전에 그는 심장마비를 일으켰읍니다. 그러나 호전되었읍니다. 그는 조금도 불평하는 일이 없었고 아주 협조적이었읍니다. 주위 사람들이 다 그를 좋아하였읍니다.

그날 아침 나는 그 사람에게 면도와 목욕을 시켜 주었고 그는 침대에 일어나 앉아 음식을 먹었읍니다. 보기에 대단히 양호하였읍니다. 의사도 들어와서 진찰해 보고는 잘 회복되고 있다고 말해 주었읍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불렀읍니다. 즉시 그에게 달려가서 “왜 그러십니까?” 하고 물었읍니다. 그는 겨우 가냘픈 소리로 “B—양.” 하고는 뒤로 넘어져 의식을 잃었읍니다.

이 일은 전혀 예고 증세도 없이 갑자기 일어났읍니다. 즉시 응급 산소 호흡기를 대고 회생시키려고 해 보았으나 헛수고였읍니다. 그는 이미 죽어 있었읍니다. 나는 정말 열심히 그를 간호하였고 그가 틀림없이 회복되리라고 확신했었읍니다. 참으로 허전하더군요. 조금 후에 그의 아내가 들어왔읍니다. 나는 그 여자를 위로하느라 애를 썼읍니다. 간호하다 보면 그런 경우도 있읍니다. 어떤 경우엔 이겨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족감과 즐거움

그러나 반면에, 간호하는 일은 진정한 만족감을 주기도 합니다. 사람들을 도와주고,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줄 수 있는 기회가 있읍니다. 왜 이 직업을 선택합니까? 그것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병들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서 택해야 합니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였읍니다.

간호하다 보면 또한 진정한 흥분과 즐거움을 느낄 때도 있읍니다. 특히 틀림없이 죽을 것 같은 환자를 살렸을 때에 그러합니다. ‘자메이카’에서 간호원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서 있었던 일을 나는 기억합니다. ‘몬테고 베이’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지방 재봉사가 심한 상처를 입었읍니다. 문이 갑자기 닫히는 바람에 ‘샤츠’에 꽂아두었던 기다란 바늘이 가슴 깊숙히 박혀버렸던 것입니다.

병원에 옮겨왔을 때에 그는 숨을 겨우 쉬었읍니다. 급히 ‘엑스레이’를 찍었읍니다. 사진을 보니 바늘끝이 직접 심장에 닿기는 하였으나 관통하지는 않았읍니다. 즉시 수술을 시작하였읍니다. 심장 위를 절개하였으며, 직접 심장을 볼 수 있었읍니다. 바늘은 빼내고 그 사람은 살아났읍니다! 그의 생명을 건진 수술 ‘티임’에서는 함께 일한 보람을 느꼈읍니다. 그 이후 그러한 즐거움을 여러 번 맛보았읍니다.

다른 경우에도 그 동일한 병원 수술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읍니다. 열살쯤 되는 두 소년이 학교에 가는데 ‘트럭’이 그들을 들이받아 흙담벼락에 짓눌렸던 것입니다. 한 소년은 가슴이 완전히 쪼개져 심장과 폐가 드러나게 되었고, 다른 아이는 다리에 중상을 입었읍니다.

수술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앰뷸란스’ 직원이 그들을 옮겨왔읍니다. 도착하자 마자 나는 그들의 상처에서 옷을 베어내었읍니다. 밖으로 비져나온 한 소년의 심장이 박동하는 것을 실제로 보니 무서웠읍니다. 도저히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의사들은 즉시 장시간에 걸친 수술을 시작하였읍니다. 그들은 가슴을 씻어내고 찢어진 내부를 꿰메고 항생 약품을 넣고 상처 부분을 싸맸읍니다. 나는 여러 달 동안 그 소년을 간호하였읍니다. 그는 완전하게 회복되었읍니다!

환자들의 감사

간호를 받아 건강을 회복한 환자들이, “댁에서 제 생명을 구했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고 말할 때에는 정말 격려가 됩니다. 그 동안 내게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몇명 있었읍니다. 이러한 격려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간호원 직업에 보람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전 환자들 중에 지금도 나와 접촉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읍니다. 예를 들면, 한 ‘유대’인 부인은 휴가를 갈 때면 한번도 잊지 않고 내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 부인은 참으로 다루기 힘든 환자였읍니다. 2주일 동안 그 부인은 18명의 간호원을 갈아치웠읍니다! 나 외에는 다른 간호원들은 아무도 그 부인과 같이 있으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환자들에게 굿굿하면서도 친절하게 하면 그들이 보통 좋은 반응을 보입니다.

나는 환자들을 참으로 동정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병실 간호를 좋아합니다. 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는 것이 참으로 가치가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친절히 해줄 수 있읍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감사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특히 병석에 있을 때엔 배려와 친절을 깊이 감사합니다.

나의 어머니께서 한번 이런 이야기를 하신 일이 있읍니다. ‘자메이카’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데, 두 여자가 곁에서 어느 간호원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입원해 있을 때에 그 간호원이 얼마나 친절했었으며 자기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해주었던가 등을 이야기하고 있었읍니다. 그중 한 사람이 그 간호원의 이름을 말하는데, 바로 내 이름이더라는 것입니다. 어머님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면서 “그 간호원이 내 딸입니다!” 하고 말했답니다.

간호원이 되기로 결심함

내가 간호원에 관심을 갖게 된 경위는 약간 특이합니다. ‘몬테고 베이’에서 휴가를 하고 있는 동안 어느 동료와 함께 맹장 수술을 받은 소녀를 문병하러 갔었읍니다. 그 병원은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었고,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읍니다. 나는 그 소녀에게 만일 내가 수술을 받는 일이 있다면 이 병원에 와서 그 애가 누워있는 그 침대에 있고 싶다고 말하였읍니다.

그 날이 일요일이었읍니다. 그런데 그 다음 토요일 나는 응급 환자가 되었읍니다. 그리고 동일한 병실, 동일한 침대에 눕게 되었으며, 동일한 의사에 의하여 동일한 수술 곧 맹장 수술을 받게 되었읍니다.

거기에 누워 치료를 받고 있을 때, 처음으로 간호원이 흥미있는 직업이겠구나 하고 생각해 보았읍니다. “나는 내 몸과 몸의 구조에 대해 너무 무식하다”고 스스로 생각하였읍니다. 나는 몸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더 잘 알고 싶었으며, 그래서 간호원이 되기로 결심하였읍니다.

간호 교육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간호 훈련을 신청하였읍니다. 훈련받고 싶은 장소를 본인이 선택하였으므로 나는 ‘몬테고 베이’에 있는 그 아름다운 병원을 선택하여 거기에 들어갔읍니다.

우리의 교육은 주로 간호 실기였읍니다. 도착 첫 주일부터 병실에서 일을 하였읍니다. 우리는 수습생이라고 불리웠읍니다. 전부 백색 옷을 입은 정규 간호원과 구별하기 위해 우리는 푸른 제복에 하얀 앞치마와 검은 양말을 신었읍니다.

우리는 오전 6시에 병원에서 일을 시작하여 오후 6시까지 일하였으며, 낮에 약간 쉬는 시간이 있었읍니다. 저녁에는 간호 공부를 하였읍니다. 그러나 두 세시간의 이론 교육을 제외하고는 온 종일 실습에 시간을 보냈읍니다.

경험 많은 간호원들이 우리에게 환자 목욕시키는 법, 관장하는 법, 주사놓는 법, 붕대 교환하는 법, 혈압 재는 법 등등을 가르쳐 주었고, 그들 앞에서 이런 일을 실제 해 보았읍니다. 미국에서는 의사들만이 하도록 되어 있는 어떤 일도 우리는 배웠읍니다. 예를 들면, 만일 어떤 사람이 팔이나 다리에 큰 상처를 입으면 우리는 의사를 부르지 않고 손수 상처를 꿰메었읍니다. 머리의 상처이거나 대단히 중상일 경우에만 의사를 불렀읍니다.

그러나 오늘날 어떤 곳에서는 간호 교육을 대부분 책으로 이론만 가르치고 실습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나는 주사도 놀줄 모르는 간호 학교 졸업생을 보았읍니다. 간호 대학을 나온 어느 간호원은 여덟 가지 관장법을 술술 외우기는 하면서도 한번도 실제 해보지는 않았다고 말하였읍니다!

시련과 압력

간호에 대해 책에서 읽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읍니다. 내가 수습생으로서 2주일쯤 되었을 때에 한 간호원이 내게 방금 죽은 여자의 틀니를 끼어 넣으라고 하던 일을 나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읍니다. 나는 내가 죽는 줄로 생각하였읍니다. 나는 울음을 터트렸읍니다. 그러나 그 간호원은 끝까지 시켰읍니다.

최초의 시체 해부 곧 검시(檢屍)를 보는 것 역시 무서운 일이었읍니다. 그날 밤 우리는 모두 앓아 누웠읍니다. 나는 식사도 못하고 잠도 못잤읍니다. 우리에게 살펴보라고 의사가 보여주던 내장 기관들의 그림이 머리에 너무나 생생하였읍니다! 그렇지만 나는 내부 구조에 관하여 배우고 싶어하였읍니다. 분명히 그랬었읍니다.

2학년 때에 나는 수도인 ‘킹스톤’에 있는 종합 병원으로 옮겼읍니다. 그곳 열대성 질병 병실에서 나는 대부분 ‘장티푸스’ 환자들을 간호하였읍니다. 졸업반인 3학년의 교육은 빨리 지나갔읍니다. 이제는 우리가 간호원 자격을 받는가의 여부가 최종 시험의 합격 여부에 달렸읍니다. 한가지 시험은 우리가 여러 명의 의사 앞에 앉아서 그들이 묻는 아무 질문에나 대답을 하는 것이었읍니다. 실기 시험으로 나는 의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소변 중의 당분 함량을 검사하였읍니다. 나는 어찌나 긴장하였던지 손이 마구 떨렸읍니다. 그래도 합격은 하였읍니다. 이제 전문적인 곧 유자격 간호원이 된 것입니다.

산파 교육

그러나 면허를 받은 간호원으로 일을 하기 전에 나는 6개월 동안 ‘킹스톤’ ‘빅토리아 주빌리’ 병원에서 조산원 교육을 받았읍니다. 조산원 면허를 받으려면 40건의 조산 경험이 있어야 하고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야만 합니다.

최초의 조산 경험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합니다. 정말 소름이 끼쳤읍니다! 살아있는 쌍동이를 받아낼 줄 알았는데 죽어 있었읍니다. 손으로 받아보니 죽어 있었어요. 나는 너무나 놀래 죽을 번하였읍니다!

훈련 도중 우리는 온갖 종류의 난산을 다루는 방법을 배웠읍니다. 예를 들면, 정상적으로 머리가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아기의 발이 먼저 나오는 수도 있고, 손이 먼저 또는 다른 각도로 나오는 수도 있읍니다. 우리는 이러한 아기들을 어떻게 분만시키는가를 배웠으며, 그 이후 그러한 아기를 여러 차례 후유증 없이 성공적으로 분만시켰읍니다. 또한 탯줄이 아기의 목을 감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이러한 경우에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배웠읍니다.

그러나 특히 우리는 분만 도중에 아기를 어떻게 다루어 어머니가 파열상을 입지 않도록 할 것인가를 배웠읍니다. 많은 의사들은 으례히 산모를 째서 아기를 분만시킨 다음 벤 자리를 꿰맵니다. 그들은 그것이 더 용이하기 때문에 회음 절개술이라고하는 이 수술을 합니다. 그러나 능숙한 조산원이라면, 거의 모든 경우에, 산모를 수술하지 않고 아기를 분만시킬 수 있읍니다. 내가 분만시킨 수 백명의 아기들 중에서 내가 그 수술을 할 필요가 있었던 경우는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뿐입니다.

여러 햇동안 나는 ‘자메이카’에서 조산원으로 일하면서 간호 훈련생들을 교육시키고 기타 병원일도 하였읍니다. 그러다가 1958년에 ‘뉴욕’으로 왔읍니다.

조심성과 관심의 결핍

지금은 진료 간호를 하고 있지만 3년 전까지는 ‘브루클린’ 여러 병원에서 병실 간호를 하였읍니다. 어떤 사람이든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때때로 나는 의사들이나 간호원들이 조심성과 주의가 부족한데 크게 놀라곤 합니다. 수술받은 환자 몸 안에 기구나 수건을 그대로 넣어놓고 꿰맨 경우를 몇가지 알고 있읍니다.

내가 5, 6년 전에 간호했던 환자인데, ‘브루클린’의 환자였읍니다. 복부 수술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다음 그 여자는 심한 통증을 느꼈읍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화를 내면서 아무 일 없다고 말하였지만 그 여자는 계속 통증이 심했읍니다. 그래서 병원에 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았읍니다. 배속에 의사의 ‘핀셋’이 들어 있었읍니다!

나 보기에 어떤 의사들은 너무나 부주의하고 소홀하게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수술을 하기 전에는 심장을 알아보기 위한 심전도 측정, ‘엑스레이’ 사진 등등 몇 가지 검사를 하게 되어 있읍니다. 그러나 의사들이 그러한 일을 하지 않아서 심각한 결과를 당한 예들을 나는 알고 있읍니다.

내가 ‘브루클린’ 어느 병원에서 간호한 바 있는 한 환자는 넘어져서 팔을 부러뜨렸읍니다. 그것뿐이었읍니다. 의사들은 그를 수술실로 옮겨갔읍니다. 마취를 시키자 그 여자는 심장이 마비되어 점차 약해지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들은 즉석에서 심장 절개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 여자는 의식을 한번도 회복해 보지 못한채 며칠 후에 죽었읍니다. 그러나 의사들이 검사를 해 보았더라면 그 사람의 심장 상태를 알고 조심을 했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정도보다 더 많이 발생합니다. 나는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알고 있읍니다. 이곳 ‘뉴욕’에서 일하고 있는 나의 벗들도 알고 있읍니다. 섭섭한 말이지만, 오늘날 많은 간호원들과 의사들은 환자들의 복지에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돈벌이에, 월급에 주로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간호원의 자리에 교대로 들어갔을 때에 그들이 환자를 너무 허술하게 해 놓았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주의를 준 예가 많이 있읍니다. 환자가 편안치 않았읍니다. 간호원은 침대보를 갈아 주지 않았고, 환자를 일으켜 가벼운 운동을 시키지 않았고, 목욕이나 다른 것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겨우 젖은 수건으로 환자의 얼굴을 문질러 준 것뿐이었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간호 방법이 아닙니다.

근년에 간호원들의 태만은 비위를 상하게 할 정도입니다. 그 때문에 살 만한 환자도 죽는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환자들이 불편해서 부자를 누르고 또 누르고 하는데도 간호원들은 그저 의자에 앉아 있고 가보지 않는 경우를 보았읍니다. 그들은 그저 담배 피우는데, 개인적 안일에만 관심이 있는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병원이 다 이렇지는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읍니다. 간호원이나 의사들 모두가 이런 것은 아닙니다. 사실상,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환자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경향이 분명히 있으며, 다른 의사들과 간호원들도 이 점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을 나는 들었읍니다.

낙태와 수혈

‘뉴욕’ 여러 병원에서 행해지는 태아의 대량 살륙은 오늘날 심해가고 있는 타락에 대한 또 다른 증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발생하고 있는 현상은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에 어떤 도시 병원에서는 간호원을 낙태 수술실에서 일 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근에 발표된 ‘뉴욕’의 낙태법은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데, 그 때쯤되면 태아는 몸의 각 부분이 역력히 형성된 인간임을 쉽사리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어떤 경우엔 낙태시킨 태아가 살아 있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간호원들은 사람들을 죽도록 놔두라고 지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정규 간호원 한 사람은 이 문제에 관하여 간호 잡지에 대단히 흥미있는 사실을 썼읍니다. 이런 내용이었읍니다.

“도덕적 측면은 차치하고라도, 현재 태아는 법적으로 한 개인 취급을 받고 있다. 즉 상속권이 있고 태어나기 전의 상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가 있다. ··· 그러므로 임부는 아기를 낳은 다음에 그를 두들기고 혹사하고 죽일 권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죽일 권리가 없는 것이다.”—「미국 간호학회지」—1970년 12월호.

내가 일하고 있는 병원에는 일주일에 십여명의 여자들이 낙태를 하러옵니다. 어떤 여자들은 몇개월 내에 두번째 낙태를 합니다. 나는 의사들에게 주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이러한 소녀들을 거절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돈벌이가 좋은 사업입니다. 의사들은 주로 돈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은 낙태에 전혀 관여하지 않습니다. 서류 작성도 하지 않습니다. 내 양심이 그것을 허락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수혈에 관하여도 비슷한 입장을 취합니다. 피를 받은 다음에 간염에 걸린 사람들을 나는 보았읍니다. 결코 회복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순환계 과부하 또는 수혈의 다른 부작용 때문에 죽기도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수혈은 생명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초래하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읍니다. 내가 아는 어떤 의사들은 피의 사용을 점차 줄이고 있읍니다. ‘피를 멀리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영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자신의 건강에 유익하다고 나는 믿습니다.—사도 15:28, 29.

간호하는 일이 인식을 강화해 줌

나는 간호하는 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읍니다. 그중 한 가지는, 사람의 몸이 얼마나 놀랍게 만들어졌는가를 인식하도록 해주었읍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위대한 창조주의 솜씨입니다. 내가 간호원 일을 시작한지 얼마 후에 나로 하여금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한 일이 발생하였읍니다.

어느날 저녁 ‘자메이카’의 어느 수술실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까 놀랜 부모들이 어린 소녀를 급히 데리고 왔읍니다. 그 애가 동전을 삼켰는데 그것이 목구멍에 걸렸읍니다. ‘엑스레이’를 보니 동전 주변에 점막이 형성되고 있었읍니다. 입으로는 꺼낼 수가 없기 때문에 즉각적인 수술이 필요하였읍니다. 그런데 수술을 시작하자마자 정전이 되었읍니다. 그래서 내가 손전등을 비추고 그동안 의사는 대단히 섬세한 수술을 진행하였읍니다.

바라보고 있으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읍니다. 나는 그 때, ‘저 손까락 좀 보라. 과연 능란하구나!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던 일을 기억할 수 있읍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의사의 손까락 덕분에 그 소녀는 살아났읍니다.

그러나 의사들이나 간호원들이 어떤 재주를 부려도 환자의 죽음을 막지 못하는 경우가 흔히 있읍니다. 또 한 사람의 사망자가 날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허전하던 경우를 많이 당하였읍니다. 나는 자주 궁금히 생각해 보았읍니다. ‘왜 인간은 고생을 하고 죽어야만 하는가? 인간이 이처럼 죽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목적인가’ 하고.

나는 그 대답을 찾게 된 것을 무척이나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도움을 받아서,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할 새로운 사물의 제도를 설립하실 하나님의 웅대한 목적을 이해하게 되었읍니다. (계시 21:3, 4) 간호원인 나는 더욱더 그 약속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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