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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3
깨73 6/22 3-4면

겸손—참는 데 도움이 되는 것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느 성서 학자가 동료 여행자들과 함께 이른 아침에 ‘여리고’의 폐허를 답사하고 나서 ‘호텔’로 돌아와 늦은 아침 식사를 하게 되었다. ‘웨이터’는 음식을 식탁 말석에 가져다 놓았다. 음식을 담은 그릇이 식탁 상석에 이르렀을 때에는 접시가 비어 있었다. 그 학자는 참을성 있고 침착하게 ‘웨이터’가 음식을 더 가져올 때까지 기다렸다. 상석에 앉은 사람에게 식사를 먼저 가져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았을 때, 이 학자로 하여금 그처럼 참고 기다릴 수 있게 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의 겸손이었다.

이 사람처럼 참는다는 것은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 오래 참는 것, 침착성을 유지하는 것, 역경에서도 화를 내지 않는 것 등을 의미한다. 참음은 평화와 조화에 기여한다. ‘아랍’ 사람들의 격언에, “참음은 즐거움의 열쇠요, 성급함은 슬픔의 열쇠”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기 때문에 아내들은 남편에 대해 참을 필요가 있고, 남편들은 아내에 대해 참을 필요가 있고, 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해, 선생들은 학생들에 대해, 감독자들은 자기 감독 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참을 필요가 있다.

오늘날 성급함은 일반화된 약점이다. 누구든지 바쁜 것 같이 보인다. 그 외에도 자존심과 야심이 대단히 많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정상을 향한 경주에서 자기를 저해하는 것 같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 참지를 못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미래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의 것이다”는 ‘러시아’ 격언을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현명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참으라고, 오래 참으라고 충고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 길이 참으라. ··· 마음을 굳게 하라.”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하였다. 왜 그런가?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이다.—야고보 5:7, 8; 고린도 전 13:4; 갈라디아 5:22.

참을성을 나타내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은 겸손이다.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라]”는 ‘솔로몬’ 왕의 영감받은 말씀을 볼 때 그것은 분명해진다. (전도 7:8) 바꾸어 말하면, 교만한 사람은 참을성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겸손은 참음을 나타내는 데 불가결한 것이다.

교만 곧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생각이 건전치 못하다고 하나님의 말씀은 알려 준다. (로마 12:3) 다른 사람과 대할 때에 참을성이 없게 된다. 그런 사람의 정신 태도는, “왜 내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가?” “다른 사람의 어리석고 이기적인 행동으로 인한 자극과 신경질을 왜 내가 참아야만 하는가?”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거야?” 하는 식이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노하기를 더디하거나 오래 참기는 고사하고 불쾌감을 금방 표현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겸손은 참을성을 보이도록 도움을 준다. 그것은 우리로 다른 사람을 기꺼이 돕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겸비하다면 우리는 자신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지 않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며, 특별 대우나 특별 배려를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을 인식하며, 능력에 있어서 모두 차이가 있음과 다른 사람에 대해 참을성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것이다. 그러므로 관대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 세기 동안, 수천년 동안 참아오셨음을 성서는 알려 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다루신 점에서 표현된 바와 같이 하나님은 참으로 인간에 대해 참을성을 보이셨다. “여호와께서 ···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다. 결국 의로운 분노로 조치를 취하실 때까지 그렇게 하셨다. 참으셨는가? 그렇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한 불충실성에 대한 형벌로 ‘바벨론’에 사로잡혀가게 하시기 전에 여러 세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셨다.—역대 하 36: 15, 16.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현 악한 세대에 대해서도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참으신다. 하나님은 이 부패한 낡은 세상을 멸망시킬 만한 충분한 근거를 장기간에 걸쳐서 가지고 계신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악을 일소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데 느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베드로 후 3:9) 겸손과 참음은 서로 따라 다니기 때문에 지존자, 우주 주권을 가진 주께서 겸손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도 그 점을 알려준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높은 위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느니라.]” 그리고 시편 필자 ‘다윗’은 증거하였다.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시 113:5-7; 18:35.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겸손과 인내가 서로 따라다닌다는 이 원칙을 사도들을 대하실 때에 실로 아름답게 나타내셨다. 사도들은, 틀림없이, 그들의 영적 비장성, 사소한 경쟁심 및 무딘 이해력 때문에 예수의 참을성에 많은 시험을 가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번이라도 그들을 대하실 때에 화를 내셨는가? 오히려 그는 참을성 있게 그들이 배워야 할 교훈을 설명해 주셨다. (누가 9:46-48) 그러면 그는 겸손하셨는가? 사도들의 발을 씻어주신 점에 나타난 바와 같이 그는 참으로 겸손하셨다. 사실상 ‘스가랴’의 예언에는 그가 겸손할 것이 밝혀졌다.—스가랴 9:9; 요한 13:4-15.

성서는 또한 고대 하나님의 충실한 종들의 참음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그들에 대해,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겸손하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야고보 5:10; 베드로 전 5:5.

그러므로 겸손하도록 노력하라. 누구든지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높이 생각해서는 안된다. (로마 12:3) 우리는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며, 판단을 잘못하며, 죄를 짓는다. (열왕 상 8:46) 어떤 분야에서는 우리가 잘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뛰어날 것이다. 지혜로운 일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충고를 따르는 것이다. 만일 그처럼 겸손한 정신 태도를 가진다면 다른 사람에 대해 참을성을 나타내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빌립보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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