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구아’—그 비극적인 악몽
‘니카라구아’ 주재 「깨어라!」 통신원 기
이 도시를 알리는 간판은 지금도 서 있다. 그것은 묵묵히 ‘마나구아’, 주민 404,700명이라고 알려 주고 있다. 그리고 도시 중앙부에는 또 다른 ‘목격자’가 말없이 증언을 해 주고 있다. 국립 궁전 정문 입구에 달려있는 시계는 12시 35분을 가리키며 멈춰있다.
1972년 12월 23일 토요일 그 이른 새벽 컴컴한 때에 ‘니카라구아’의 수도는 무시무시한 지진으로 죽어 버렸다.
진앙(震央)이 상가 중심지 바로 아래였기 때문에 ‘마나구아’는 단 30초 만에 사람이 살 수 있는 도시로서의 존재가 끊어져 버렸다. 사망자 수는 공식적으로는 12,000명 이상이지만 부서진 가옥 속에 생매장된 사람들의 정확한 수를 밝힌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할 것이다.
도시를 휩쓴 악몽
금요일 저녁 10시경에 경고의 진동이 있었을 때에 그 도시는 대부분 평안히 쉬고 있었다. 그러나 ‘마나구아’는 그러한 진동을 많이 경험했던 것이다. 그러한 현상은 해마다 자주 발생하지만 일반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난 12월 토요일 새벽의 경우는 달랐다.
오전 12시 35분 직후 그 막강한 지진을 살아남은 사람들은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짙은 먼지 구름이 도시를 온통 뒤덮었다. 사람들은 무서움에 질려 말이 없었다. 먼지가 흩어지기 시작하니까 두번째 충격이 들이닥쳤다. 처음 것만큼 강하지는 않았으나 벽을 헐어내릴 만큼은 강하였다. 그 다음 오전 2시경 세번째 진동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허물어질래야 허물어질 것도 없었다.
결국 먼지가 맑아지자 도시 전체가 모두 동일한 반응을 나타내었다. 고대 애굽에서 집집마다 장자들이 죽임을 당하였을 때처럼 타격을 입은 사람들의 울부짖음과 탄식이 솟아났다. (출애굽 12:30) 참상이 얼마나 심하였는가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구조 작업이 시작되자 사방에서 사람이 죽은 사실을 뼛속이 오싹할 정도로 역력히 알게 되었다.
이른 새벽에 시내 도처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중앙 시장에서 큰 불이 일어났는데 15구획이나 되는 넓은 지역을 휩쓸어 버렸다. 물도 전기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중앙 소방서는 파괴되어버렸고, 현대적 소방 장비는 부서져서 쓸 수 없게 되었다.
개개인들의 악몽
도시 전체에 걸쳐서 집집마다 모두 동일한 악몽을 당하였다. 수천, 수만 가지의 예가 다 동일하였다. 집이 내려 앉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부스러기를 비집고 기어 올라와 먼지가 가득한 폐허 속에서 헐떡이면서 숨을 돌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헤쳐 나오지 못하고 말았다. 빠져 나온 사람들은 즉시 자기 가족 구조 활동에 착수하였다.
여덟 자녀를 둔 한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의 남편이 맨먼저 부서진 더미 속에서 빠져 나왔읍니다. 나를 파내 준 다음에 우리는 미친듯이 아이들을 찾았읍니다. 상가 지역에서 일어난 큰 화재의 불빛이 앞을 보는 데 도움이 되었읍니다. 속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면 그곳을 파곤 하였읍니다. 이쪽에 팔이 나와 있고 저쪽에 다리가 하나 나와 있고 하였읍니다. 천행으로 아이들을 다 구출할 수 있었읍니다.”
79세 된 ‘로라 디아즈’라는 여호와의 증인은 쉬고 있다가 지진으로 침대 옆 벽이 무너져 거기에 묻혀 버렸다. 그의 딸은 겨우 빠져 나와 즉시 도움을 달라고 소리질렀다. 이웃 사람 몇명이 소리를 듣고 와서 함께 이미 의식을 잃은 그분을 파내었다. ‘로라 디아즈’는 의식을 회복하고 현재 요양중이다.
‘콘치타 곤잘레스’라는 사람은 그날 밤늦게까지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벽이 무너지자 그 여자는 즉시 재봉틀 밑으로 피신하였다. ‘시멘트 불록’이 재봉틀 위로 쏟아졌지만 그 여자는 안전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처럼 다행하지가 못하였다. 그 도시의 서북쪽에 사는 한 가족은 새 집으로 이사온지 얼마되지 않았다. 그 집은 ‘시멘트 불록’ 집이었다. 창문 밖에 붙여 놓은 철창은 안전감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흙으로 만든 집처럼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여덟 식구 모두 생매장되어 죽었다.
그리고 또 한곳에서는 그 토요일 새벽에까지 행복한 결혼 피로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두꺼운 ‘콘크리트’ 천정이 춤추는 사람들 위로 내리 깔리자 모두 공포에 휩싸였다. 30명이 죽었다.
그러나 놀랍고 특이하게 살아남은 예들도 있었다. 어느 겁에 질린 어머니는 미친듯이 두살난 딸아이를 찾으려고 자기 집더미 속을 파헤쳤다. 후에 보니 그 아기는 피해를 입지 않고 뒷방안에서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그랜드 호텔’ 318호실 투숙객은 방금 ‘샤워’를 마쳤다. 자기 방문을 열려고 하니 열리지가 않았다. 한참 후에 방안에서 한 부부가 방을 열어 주었다. 발가벗은채 당황하고 어리둥절하여, “남의 방에서 뭘하는거요?” 하고 항의하였다.
“남의 방이라니? 이건 418호 우리 방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양편 다 3층이 무너져서 4층이 그 위에 내려앉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발가벗은 그 남자는 죽음을 면하였지만 3층에 투숙하였던 다른 많은 사람들은 생명을 잃었다.
그 많은 죽은 사람들을 매장하기 위하여 공동 묘지에 기다란 구덩이를 팠다. 시체를 차곡 차곡 줄맞춰 쌓던 광경은 두고 두고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관에 담겨 매장되었으나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였다. 시체를 ‘비닐’ 종이에 싼 것도 있고, 담요, 홋 이불에 싼 것도 있고, 어느 시체는 벌거벗은 것도 있었다. 시체 4구를 한꺼번에 휴대용 양복장 속에 넣고 밧줄로 묶어서 구덩이 속에 집어 넣기도 하였다.
구조 활동과 구호 활동
비극에 대한 보도가 퍼져나가자 충격을 받은 외부 사람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른 나라들은 거의 즉시 의약품 및 기타의 구호품을 보내 왔다. 그러므로 지진 피해자들은 얼마 안가서 보조를 받게 되었다.
식품과 음료수를 맨먼저 공급하기 시작한 단체 중 하나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사용하는 기관인,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 지부였다. 그 위치는 ‘마나구아’의 동부, 진원지로부터 18구획 떨어진 곳이다. 그 건물은 약간의 피해밖에 입지 않았다. 그 사방에 있는 대부분의 집들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 토요일 오전 그 도시에 쌀쌀한 새벽동이 터오자 여호와의 증인의 각 회중 감독자들은 혼연 일치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특히 자기 동료 증인들의 안부를 알고싶어 하였다. 그들은 한사람씩 한사람씩 회중 성원들을 방문하여 치료를 요하는 사람들이나 또는 다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알아 보았다. 이렇게 조사한 다음 전체적 내용을 지부에 보고하면 그곳에서 구호 활동을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가를 결정하였다.
몇 시간 내에 보고가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토요일 정오까지 ‘마나구아’ 16개 회중 가운데 15개 회중이 보고를 완료하였다. 놀랍게도, 그 도시에 사는 1,000명 이상의 증인들 중 한 사람도 죽은 사람이 없었다. 긁히고 베이고 다치고 한 사람은 너무 많아 일일히 말할 수도 없지만, 뼈가 부러진 정도로 다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7개의 왕국회관이 전파되고 4개가 반파되었다. 최소 80‘퍼센트’의 증인들이 가옥을 잃었다.
이들 증인들과 그 가족들을 돌보는 작업이 즉시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순수한 사랑이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토요일 오후에 한 증인이 ‘트럭’에 300‘갈론’의 음료수를 싣고 16‘마일’ 떨어진 회중으로부터 도착하였다. 지부에 있는 사람들과 이웃 사람들은 이 물로부터 크게 생기를 얻었다.
그 다음 오후 10시에 ‘코스타리카 리비아’의 여호와의 증인들로부터 ‘트럭’ 두 대분의 구호품이 처음 도착하였다. 조금 후에 ‘온두라스’의 ‘테구시갈파’ 증인들로부터 ‘트럭’ 2대가 또 도착하였다. 이렇게 하여 재난을 당한지 24시간 정도 되자 식품, 의류, 약품, 음료수, 휘발유 등이 도착되었다. 국경은 주야를 막론하고 개방되어 있었다. 이 국가적인 비상시에 사증도 필요 없었다.
일요일 오전 7시가 조금 지나서 ‘코스타리카’의 왙취 타워 협회 지부 감독자가 구호품을 또 가지고 도착하였다. 일요일 정오가 조금 지나서 ‘엘살바도르’ 지부 대표자가 또 구호품을 가져왔다. ‘니카라구아’ 여러 회중으로부터 자진 봉사자들이 몰려 들어왔다. 그들은 즉시 의류 분류, 식품 포장, 물품 발송 등의 임무를 맡았다. 다른 사람들은 전 시간 구호 활동을 하는 일군들에게 간단한 식사를 자진적으로 요리해 주기도 하였다.
구호 활동이 강화되다
일요일, 구호 활동의 첫날, 578명이 2일 동안 사용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배급받았다. 그 일요일 오후에 지부 감독자는 ‘코스타리카’, ‘온두라스’ 및 ‘엘살바도르’에서 온 증인들과 회합을 가졌다. 그들은 “우리 ‘니카라구아’ 형제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그들을 돕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어떤 물품들을 사와야 하는가?” 등을 알고자 하였다.
‘마나구아’에서는 물품을 산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였다. 그러므로 필요한 물품 명단을 작성하여 지시를 하였다. 월요일 오전에 다른 지방에서도 물품을 실은 ‘트럭’들이 속속 도착하였으며, ‘트럭’들은 밤낮 없이 도착하였다. 2주일쯤 되어서는 앞으로 모든 물품을 ‘코스타리카’에서 가져오기로 결정하였다. 거리도 가깝고 시장 조건도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3주일 동안에 증인들의 구호 활동을 통해 120,000끼니의 식사에 충분할 만큼 20‘톤’ 이상의 식품을 포장, 발송하였다. ‘마나구아’ 밖의 증인들은 갈 곳이 없는 자기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에게 자기 가정을 개방하였다.
세계 각처로부터 여호와의 증인들은 ‘니카라구아’에 사는 동료 증인들을 돕기 위해 선물들을 보내왔다. 그리고 물품이 필요하면 왙취 타워 협회는 ‘코스타리카’에 송금하여 물품을 사오게 하였다. 그 외에도 적십자사와 ‘니카라구아’를 위한 미국 ‘에이 아이 디’ 계획의 친절한 협조 혜택으로 천막 70개, 간이 침대 100개, 담요 100장을 필요한 증인들을 위해 구하게 되었다. 또한 100개의 담요를 ‘코스타리카’에서 더 사들였다.
우리의 구호 활동이 얼마나 더 계속되어야 할른지는 모르지만, 정부에서는 ‘니카라구아’ 국민 25만명을 거의 1년 동안 먹여 살릴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현대판 출애굽
토요일, 즉 지진 발생 당일에, 구조 활동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 생존자들은 파괴되지 않거나 너무 깊이 묻히지 않은 개인 물건들을 챙기는 데 주의를 돌렸다. 그날 밤에도 ‘마나구아’ 사람들은 거리에서 지새었다. 험악한 그날 밤은 춥고 무섭기도 하였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미약하고 처량한 노력으로 즉석에서 만들어 낸 ‘카바이트’ 등불과 조그마한 석유불이 깜박이기 시작하였다.
땅이 계속해서 자주 진동할 때면, 아기들은 칭얼거리며 소리를 죽여 울고 강아지들은 주인 곁에서 무서워 부들부들 떨었다. 이윽고 참으로 지루하고 잠도 못붇친 밤이 지나고 반가운 일요일 해가 밤의 공포속으로 얼굴을 내밀자, 그 많은 사람들은 오직 한가지 결심, 공포에 찬 도시를 떠나야겠다는 결심 뿐이었다.
정부에서는 즉각 피난하라는 방송을 하였다. 그러나 어느 부분으로부터 철수를 해야하며, 어떻게 할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3일 동안에 매일 100,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거의 ‘히스테리’가 되어 역사상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 도시를 빠져 나왔다. 교통비는 훨씬 더 비싸졌다. 개인 ‘트럭’들은 보통 가격의 4, 5배를 요구하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짐을 꾸리고 떠나고 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교통 수단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극도의 이기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였다. 소형 ‘트럭’을 운전하던 어떤 사람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우회전을 하기 위해 잠간 멈추었읍니다. 앞차들을 보고 있노라니 어떤 남자가 손에 권총을 들고 길 가운데로 걸어 들어와 앞차의 창문에 총을 대고 다른 손으로는 그 사람의 목덜미를 잡더군요.”
약탈
이 국가적인 비극의 슬픈 한가지 측면은 그 때의 약탈 행위였다. 지진 발생 며칠 후 많은 사람들이 ‘수퍼 마아켓’ 앞에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수퍼 마케트’에는 ‘크리스머스’ 대목을 보려고 물건이 가득하였다. 약탈을 방지하려고 상점 주위에 무장 군인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폭도들은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버렸다. 경비원 중에는 도망한 사람도 있고 약탈에 가담한 자들도 있었다고 많은 목격자들은 말하였다. 다섯 개의 ‘수퍼 마아켓’가 빈털털이가 되어 버렸다. 심지어 난방 ‘파이프’까지 부숴서 가져갔다. 그 후 두 개의 ‘수퍼 마아켓’는 불에 탔다.
개인 가정이 약탈당한 사례도 많이 보고 되었다. 군인들은 도둑질하는 자는 누구에게나 발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지진 후 4, 5일 동안은 밤 컴컴한 어둠속에 총성이 도시를 흔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살림을 옮기려고 차를 구하러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주인없는 사이에 살림이 없어져 버린 예가 많았다.
교수 한 사람은 부스러기를 헤쳐서 자기 가족을 파내서 보니 자기 어린 딸이 위험한 상태였었다. 차고에 들어 있는 차 위로 지붕이 내려앉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자기 딸을 병원에 옮겼다. 그 딸이 죽은 다음 이튿날 돌아와 보니 도둑들이 자기 집 물건을 약탈하고 있었다. 도둑들은 차고에 들어가서 ‘자키’로 지붕을 들어 올리고 침착하게 자동차 부속품을, 심지어 바퀴까지도 빼가고 있었다!
재난을 직면했을 때 나타난 용기
‘니카라구아’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인정이 있고 너그럽다. 그들은 감탄할 만한 용기를 길렀다. 그들의 생애에 있어서의 난관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최근의 난관도 그들은 그 특이한 용기로 받아 들였다.
‘마나구아’를 빠저 나가 ‘마나구아’ 남쪽 15‘마일’ 떨어진 ‘마사야’ 기차 역 구내 임시 막사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 여인의 예가 이 점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 부인은 자기가 꺼낼 수 있었던 유일한 옷 한벌이 햇볕에 마르기를 기다리면서 안으로 초대해들인 여호와의 증인 선교인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27가족이 근처의 주유소에서 목욕을 하기 위해 매일 자기 차례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그 부인은 설명하였다. 묵묵한 용기를 가지고 그 부인은 자기의 처지를 감수하였다.
피난민들이 살고 있는 한 지방에서는 이슬이 어찌나 많이 내리든지 아침이면 담요가 촉촉이 젖기 때문에 물을 짜서 말려야 저녁이면 또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런 불평이 없다.
‘만나구아’에서도 갈 곳이 없고 가난하여 이사할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은 그 폐허가 된 도시에 그대로 남아 있다. 사람들이 함께 집단을 형성하여 우정과 위안을 나누고 밤이면 서로를 보호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밤에 몸을 따뜻하게도 할 수 없는 간이 침대에서 잠을 잔다. 증인들의 상태는 그래도 나은 편이나 어려움도 있다.
지진 발생 3주일 후 어느 70세 노인이 길가 울타리 곁에서 간이 침대에 의지하여 잠을 자고 있었다. 차가운 밤바람을 조금이라도 막으려고 자기 둘레에 널빤지 조각으로 가렸었다. 구호 활동을 하고 있던 증인들이 그 노파를 위하여 거기에 천막을 세워 주었다. 그 노파는 천막을 세워 주는 것을 보고는 감격하여 울음을 터트렸다. 다른 증인들도 천막을 받았을 때에 동일한 느낌을 가졌었다. 많은 사람들은 땅 바닥에서 잠을 잤고 어떤 사람들은 노천 간이 침대에서 잠을 잤다. 발생된 이러한 참극을 생각할 때에 여호와의 증인들이 죽었다는 보고가 한건도 없는 것은 거의 기적 같이 보인다.
영적 도움
지진 발생 5일 후 왙취 타워 협회 지부 사무실과 선교부를 철수하기로 결정하였다. ‘마나구아’에서 동남쪽으로 12.5‘마일’ 떨어진 시골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 어느 가족이 친절하게도 자기들의 집 한쪽을 지부 사무실과 구조 활동 본부로 사용하도록 해 준 것이다. 그리하여 중앙에서 행하던 일을 중단없이 계속할 수 있었다. ‘마나구아’ 주민 404,700명 중에서 약 100,000명은 그 도시에 그대로 머물렀다. 그렇게 남은 사람들 가운데 증인들도 많이 있었다.
지부 사무실과 ‘마나구아’ 지방 순회 감독자는 즉시 증인들을 방문하여 집단으로 연합시킬 계획에 착수하였다. 회중 집회가 형성되었으며 야외 봉사가 재조직 되었다. 각 집단을 순회 감독자가 하루 반씩 방문하도록 계획하였다. 이렇게 하여 10일만에 모든 집단이 순조롭게 운영되게 되었다.
이처럼 순회 감독자가 일차 방문한 다음 두번째에는 2일간 방문하였다. 하루는 야외 봉사에 바쳤고 나머지 하루는 특별 모임을 가졌다. 계엄령이 발효중이므로 밤에는 집회를 가질 수가 없다. 순회 감독자는 방문할 때에 식품과 의복을 배달하며 위생과 질병 감염에 관한 특별 교훈도 주고 있다. 그는 또한 형제들의 신체적인 건강 상태도 살펴서 입원이나 약품이 필요하지 않은가를 알아본다. 이러한 전체적인 마련은 모든 사람에게 진정으로 축복이 되었다.
“징조”의 일부
이 사건은 수십만 ‘마나구아’ 주민들에게 실로 비극적인 악몽이었다. 두려움, 고민, 공포 등으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는 그 행동을 계속할 것인가? 그들은 성서를, 그리고 이 마지막 때에 ‘처처에 지진이 있으리라’는 말씀을 믿을 것인가? 시간이 알려 줄 것이다.—누가 21:7, 11.
건물을 재건하려는 작업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죽은 가족을 살려줄 수는 없다. 오직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확고한 약속을 성경에서 보게 된다.—요한 5:2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