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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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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3
깨73 10/22 17-19면

‘홍콩’이라는 곳

‘홍콩’ 주재 「깨어라!」 통신원 기

1972년 11월에 ‘홍콩’ 당국은 그해의 백만번째 방문객에게 빨간 융단을 깔아 환영하였다. 이 영국 식민지에 일년 동안 방문객이 일백만명을 넘은 것은 그해에 처음이었다.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매일 수십회 이착륙하는 국제 항공편을 통하여 ‘카이타크’ 공항에 도착한다. 화물선이나 여객선을 타고 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한 배들은 부표에 매달아 두거나 관광지의 관문이라고 하는 ‘코우룬’ 반도의 끝에 위치해 있는 현대적인 항구로 들어온다.

배를 타고 밤에 도착하면 항구 양편에서 비치는 형형색색의 찬란한 불빛을 보게 될 것이다. 또한 불을 켠 지네가 물위를 기어가는 듯한 모양도 볼 것이다. 이들은 실상은 여객선이다. 그러나 섬과 본토 사이를 왕래하는 여객선 창문으로 비치는 불빛은 발이 많이 달린 벌레를 연상시킨다.

가장 흥미있는 부면

많은 외국 사람들은 이곳을 방문해도 ‘홍콩’의 진면목을 보지는 못한다. 왜 그런가?

도착한 다음 관광 지역에 있는 ‘호텔’로 직행하여 그 지역에 머물면서 그 지역에서 물건을 산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은 기념품, 얼굴들 및 중국 글씨 외에는 보다 동양적인 것을 못보고 만다. 그러나 ‘홍콩’의 훨씬 더 흥미 있는 부면은 그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 방식이다.

개성이 없는 ‘홍콩’의 상업적 가면을 제치고 보면, 근면하고, 자립 정신이 강하고, 습관적으로 우정적이고, 예의바른 중국인들을 보게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언젠가 중국에서 이주해 왔거나 부모들 때에 중국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구세대는 시골 사람들로서의 온정이 있고 신뢰성있는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나왔으며, 또 대부분은 그러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그 사람들은 아마 서로 염려해 주고 친절을 베푸는 작은 촌락, 범죄라곤 거의 모르는 곳에서 살았다. 그러나 섭섭하게도 사람들이 변하였다.

도덕의 타락과 그의 영향

십년 전만 해도 거의 듣지 못하던 성범죄와 폭력이 다반사가 되어 버렸다.

범죄와 불신감이 이토록 증가되기 전에는 방문객이 으례 집안으로 초대를 받아 차를 대접받는 일이 흔히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섭섭하게도 사람들이 도난 방지용 철창 사이로, 또는 문틈으로 내다보고는 자기들이 아는 사람들에게만 문을 열어 준다. 이곳의 범죄율이 다른 몇몇 나라의 범죄율보다는 낮지만 길을 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불신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또한 지금은 젊은이들이 돈을 소유하게 되고 또 흔히 자기들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긴밀한 가족 연합이 깨어져가고 있다. 그리고 어렷을 때에 빈한하여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부모들이 교육받은 자녀들로부터 무시받는 예도 허다하다. 이처럼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가족 사회가 붕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주변의 관광

관광객은 ‘홍콩’의 풍물을 알아보기 위해서 상업적 관광 회사에 신청할 필요는 없다. 여객선이거나, ‘버스’이거나, 전차이거나 모든 교통 수단은 한쪽 끝에서 시발하여 다른 쪽 끝까지 간다. 그러므로 그러한 교통 수단을 아무 것이나 이용하여 종점까지 가면서 그 주변을 구경하고, 그 다음에 동일한 교통편을 이용하여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오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홍콩’에서는 전차 값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가는데 ‘홍콩’ 돈으로 20‘센트’(한화로 14원)이다. 이층 전차의 윗층에 타면 이곳의 생활상을 한가로이 구경할 수 있다. 주부들이 시장을 보는 모습, 화물선에서 짐을 내리는 광경, 인력거, 해산물 가게, 낡은 주택들과 새로운 주택들 등을 보게 된다. ‘코울룬’ 반도의 ‘버스’ 길은 거대한 주택단지로 구불구불 나 있는데, 그곳을 조금만 걸어가 보면 ‘홍콩’에서는 집을 지을 수 있는 여지가 오로지 위로 올라가는 방법밖에 없음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제 다른 각도에서 이 도시를 살펴보기로 하자. ‘홍콩’ 섬의 산봉우리인 ‘빅토리아’ 봉우리에 올라가 보면 웅대한 ‘파노라마’와 같은 전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 차를 타고 올라가는 것 또한 숨막히는 경험이다. 전차 노선의 최대 경사 각도는 45도로서 가파르기로 세계에서 이름이 나 있기 때문이다.

항구 그 자체도 매혹적이다. 배를 타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물 가운데 들어가 보는 것이다. 중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패류를 잡거나 매일 도착하는 화물선에서의 하역 작업을 거들어 주고 생계를 세워나간다. 그러나 물 위에서 사는 사람들의 수는 점차 감소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정부에서 사람들을 점차 육지에 정착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육지에서 좀 더 마음에 들고, 돈벌이가 좋고, 힘이 덜 드는 직장을 구하는 젊은이들은 이러한 방침을 좋아한다.

본토와의 관계

새로운 구역은 중국 본토에 있는 ‘코울룬’ 뒤쪽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지역은 1898년에 영국 정부가 중국으로부터 임차하여 식민지의 면적은 ‘뉴욕’ 시보다 약간 더 커지게 되었다.

농촌 생활은 어떤 면에서는 수백년 동안 변화가 없다. 농부들이 대나무로 만든 물지개로 물통에 물을 길어다가 밭에 물을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솜씨 좋게도 동시에 채소밭 두 줄에 물을 준다. 동양의 ‘트랙터’라고 할 수 있는 물소도 과거부터 있어온 존재이다.

작년에 3,000여명이 중공의 국경을 넘어와서 이 식민지에 살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 외에도 6,000여명의 피난민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불법적으로 탈출하여 영국 영지에 들어왔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거기에 정착하도록 허락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콩’과 중공은 일반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이 사실은 수천명의 ‘홍콩’ 주민들이 자주 중공 본토를 드나들도록 허락을 받고 있는 사실에서도 볼 수 있다. 또한 매년 15,000,000,000‘갈론’의 물과 다량의 식품을 중공으로부터 공급받고 있으며, ‘홍콩’ 사람들은 그것에 의존하고 있다. 상업도 자유로이 행해지고 있으며, 공산주의자들의 백화점들은 ‘홍콩’에서 상당한 돈벌이를 하고 있다.

식품과 시장

먹는 일에 취미가 있는 사람들은 ‘홍콩’에서 커다란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음식의 종류가 끝이 없는 것같이 보인다. 중국 본토의 거의 모든 지방의 특별한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있다. 흥미있는 식품을 몇 가지 든다면, 북경 오리, 거지 닭고기, 마른 버섯, 오징어와 ‘셀러리’, 돼지 고기 곁들인 두부 ‘후라이’, ‘후라이’한 우유 등등이 있다.

중국 사람들은 대단히 친절하여 손님이나 벗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자기들의 능력 이상으로 힘을 쓴다. 그들은 자기 집이나 가정의 요리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식당으로 손님을 초대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실상은 대부분의 가정 주부들이 요리를 훌륭하게 하며, 가정의 분위기는 식당 분위기보다 훨씬 아늑하다.

식사 예절에는 특별한 금기가 없다. 일반적으로 약 열명 정도 앉는 둥근 식탁에 음식을 차리고, 각자에게 쌀밥 그릇을 준다. ‘숭’이라고 하는 접시는 식탁 가운데 놓아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 원하는 대로 젓가락으로 집어다가 밥과 함께 먹는다. 서양 사람들이 젓가락을 사용하는 모양은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운 웃음거리가 된다. 음식을 입 속에 넣기 전에 굶어 죽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보람이 있어서 이 동양의 ‘포크’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종교에 대한 태도

교회와 관련을 가지고 있는 학교, 병원, 사회단체들이 많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국이 이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종교가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교회 학교가 멀지않고 또 별로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교육을 받기 위해 자기 자녀를 기꺼이 그 교회에 가입시킨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이웃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 교회에 간다.

교회들은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서 사회 활동을 도와 주거나 재정적인 도움을 준다. 교인들이 세례를 받은 다음에 교회를 떠난다면 주택, 교육의 혜택, 사회 보장, 심지어 장사지내는 일 등 물질적인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받는다. 그러니 교회들은 사실상 개종자들을 돈 주고 사는 것과 같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학교들은 사실상 학생들에게 참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대한 믿음을 심어 주는 일에 실패하였다. 오히려 그들은 믿음을 깎아 내린다. 예를 든다면, ‘프로테스탄트’ 학교에서 사용하는 종교 교과서에서는 창세기의 창조 기사가 신화이며, 과학 지식이 없고 무식하고 미신적인 ‘유대’인들이 그것을 기록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면 불교와 조상 숭배가 이곳 동양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인가? 실상 그렇지도 않다. 일반적으로 불교인들과 조상 숭배자들은 행운과 번영을 얻고자 향불을 피우고 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오로지 이기적인 목적으로 이런 일을 한다. 젊은 세대들은 이러한 전통적인 숭배 활동을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나 맡겨버리고 자기들은 그 대신 쾌락을 추구하고 돈벌이에 골몰한다.

‘홍콩’ 사람들에게 종교가 더 인기를 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홍콩’은 돈에 매혹되어 있다”고 한 만화가는 적절한 설명을 하였다. 과연 그것이 사실이다. 돈을 버는 방법이라면 그것이 증권 시장이든지 경마이든지 기타 법적 혹은 불법적 도박이든지 모든 수단이 사용된다. 사람들은 돈과 금만이 참다운 안전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돈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하는 철학은 “친 하우퉁 순” 곧 “돈은 신(神)이라도 살 수 있다”는 중국 격언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얼마의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 중에는 맹목적으로 부를 추구하는 것이 헛됨을 이해할 수 있고 좀 더 영속적이고 만족을 주는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전도 5:10; 7:12) 그러한 사람들은 ‘홍콩’에 있는 250여명의 여호와의 증인들로부터 창조주와 그의 목적을 배우도록 도움을 받고 있다. 이러한 관심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8월 8-12일에 ‘홍콩’에서 열린 여호와의 증인의 “하나님의 승리” 국제 대회에 참석하였다. ‘코우룬’에 있는 ‘그랜담 대학’에서 열린 이 대회는 또한 수백명의 외국 방문객들이 ‘홍콩’이라는 곳을 더 잘 이해하게 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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