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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주 수천명이 침례를 받다
  • 깨어라!—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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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74 6/22 20-22면

매주 수천명이 침례를 받다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 28:19, 20.

1973년 봉사 연도 중(1972년 9월 1일부터 1973년 8월 31일까지) 그들은 208개 나라에서 그 일을 하였다. 매주 여호와의 증인들은 관심 가진 사람들을 위하여 120만건의 성서 연구를 사회하였으며,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이 매월 2,500만 시간 이상을 바친 결과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아 침례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으며, 그들도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1973년 봉사 연도에 그러한 새로운 제자들이 매일 평균 530명 이상 침례를 받았다. 매주 약 3,700명이 침례받은 셈이다. 전체 봉사 연도에 침례받은 총수는 193,990명이다.

담대한 노력이 축복을 받다

제자를 삼는 이 사업에는 종종 담대함이 필요하다. 예로서 ‘아프리카’의 ‘나이제리아’ 남동부에 위치한 어느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고려해 보자.

여호와의 증인들의 사업에 반대가 일어났다. 성서를 이해하도록 사람들을 돕는 일에 매달 약 150시간을 바치는 “특별 파이오니아” 봉사자가 광기어린 자들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이 “특별 파이오니아” 봉사자와 함께 살고 있던 가족 세사람도 살해되었다. 결국 그 범죄자들은 재판을 받게 되었고, 12명이 처형을 받았다.

증인들의 사업 때문에 이러한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 마을을 포기해 버릴 것이라고 어떤 사람들은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한 젊은 증인 부부가 그곳으로 이사하여 봉사를 시작하였다. 그들은 그 지방 사람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쏟았다. 곧 성서 연구를 사회하고, 시간을 내어 문맹자들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다. 그 마을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태도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성서 연구 집회에 참석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수용할 장소를 구할 필요가 생겼다.

그후, 1973년 봉사 연도 중 한 대회에서 이 지역 사람 20명이 침례를 받았다. 지금은, 여호와의 증인의 집회에 참석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성서 진리를 전해 주는 사람이 70명이 넘는다. 그들 모두는 살해된 네명의 증인이 부활되어 돌아올 때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생활 방식이 변화함

이들 새로 침례받은 증인들과 그들의 동료들은 성서의 높은 요구 조건을 따르기 위하여, 그들의 생활을 변화시켜야 하였다. 생활 전체에 변화를 받아야 한 경우도 흔히 있었다.

‘아프리카·다호메이’의 전직 경찰국장의 경우를 들어보자. 그는 감리교인이었지만, 부친으로부터, 하나님의 이름으로 찾아오는 사람이면 누구이든 그의 말을 잘 들으라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종교도 존중하였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들이 찾아왔을 때, 그는 그들의 말을 잘 듣고 성서 책자를 받았다. 후에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집회에 몇 번 참석한 후, 이 사람은 자기도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는 일에 참여하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한명의 결혼 배우자만 가져야 한다는 그리스도인의 요구 조건을 듣게 되자, 그는 슬픔에 빠졌다. 한 때 그는 7명의 아내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다섯명이 아직도 그의 집에 살고 있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의 아내만을 갖기 위한 법적 수속을 밟기 시작하였다. 그는 법적으로 세명의 아내와 결혼하여 있었기 때문에, 그중 둘과는 이혼해야 하였다. ‘다호메이’에서는 간음, 독살 기도 또는 성격불일치의 경우가 아니고는 이혼이 쉽사리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가 그의 두 후처들과 법정에서 합법적 이혼을 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았다. 그의 사건을 심리한 판사는 성서적 이유로는 이혼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배심원은 이 사람의 성실성과 그가 성서를 근거로 진술한 사실들을 듣고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이혼을 허락받았다. 그 후, 비록 이전의 후첩들이 떨어져 나갔지만, 그는 그들과 자녀들을 계속 부양해 오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침례를 받은 후, 그는 계속 친척들로부터 많은 반대를 받았다. 왜냐 하면, 그가 조상 숭배와 물신(物神) 숭배 등 그의 부족과 가족의 관습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집안의 종손이라 모든 종교적 및 가족적 의식을 주재해야 할 입장이었다. 그가 없이는 종교 의식이 진행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친척들이 그와 사귀기를 꺼리고 그를 혐오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굳굳하였다.

그는 자기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여, 32명의 자녀들에게 성서를 가르쳤다. 그중에 7명은 지금 침례받은 증인이 되었으며, 23명이 회중과 연합하고 있다. 그의 법적인 유일한 아내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집회에 참석하고 있으며, 남편을 따라서 성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일부다처제와 물신 숭배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싫어하는 기타 모든 습관을 자진적으로 포기하였다.

‘엘살바도르’에 사는 한 사람의 경험담을 들어 보자.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평생 동안, 나 자신만 생각해 왔읍니다. 어려서부터 인생을 즐기는 일과 음악에 몰두하였읍니다. 1920년, 나는 ‘마림바 아틀라카틀’이라는 ‘엘살바도르’의 ‘마림바’ 악단 가수가 되었읍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던 당시, 우리는 ‘유럽’에 여행 중이었읍니다. ‘라틴 아메리카’ 제국들이 연합국을 지지하였으므로, 우리는 얼마 후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의 수용소에 근 2년간 수용되게 되었읍니다.

“전쟁이 끝나기 직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뉴욕’ 시로 돌아올 수 있었읍니다. 결국 나는 ‘엘살바도르’에 돌아왔으며, 악단 생활과 과음을 계속하였읍니다.

“1960년대에 나는 술 때문에 건강 뿐 아니라 아내까지 잃어버렸읍니다. 사태가 매우 암담하게 보였읍니다. 그러나 그 즈음 참다운 빛이 비치기 시작하였읍니다. 동생이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자기가 배운 내용을 내게 이야기해 주곤 한 것입니다.

“나는 고집이 세었기 때문에 그의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하루는 어린 두 딸이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하는 어느 여인과 공부하는 것을 보게 되었읍니다.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성서를 공부하는 것이 더 좋으리라고 생각하였읍니다. 나는 딸들을 따라 몇번인가 왕국회관에도 가 보았으나 관심이 없었읍니다. 나를 참으로 괴롭힌 것은 내가 나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하는 생각이었읍니다. 결국, 나는 온갖 나쁜 짖을 다 하면서 평생을 보내 버렸읍니다. 세계 여러 곳에 자식들을 낳아 놓고는, 자식들과 어미들을 모두 팽개쳤읍니다. ‘엘살바도르’에 있는 법적 가족들에게까지도 사랑과 도움과 관심을 베풀지 않았읍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용서해 주실 수 있겠읍니까?

“딸들과 함께 연구하는 그 젊은 여인은, 여호와는 사랑과 용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늘 말하였읍니다. 그래서 나는 그 문제를 좀 더 연구해 보기로 결심하였읍니다. 아내가 그때 딸들을 데려갔읍니다. 그들은 연구가 중단되었지만, 나는 계속 탐구하기로 결심하였읍니다. 나는 왕국회관에 나갔으며, 어떤 사람이 나를 계속 도와 주도록 마련을 하였읍니다. 근 2년간 연구한 후, 이제 나는 ‘새로운 노인’이 되었읍니다. 나이는 70이 넘었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새로운 사람입니다. 1973년 6월에 여호와의 증인으로 침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노령도 개종에 방해가 되지 않음

어떤 사람들은 타락한 생활은 않했어도, 그들이 오랫 동안 고수해 오던 종교적 신앙의 오류에 눈을 뜨게 해 줄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노령의 남녀들이 있다.

‘덴마크’의 어느 은퇴한 목수의 경우가 있다. 그는 80이 넘었으며, 자기 종교에 만족하고 있었다.

약 1년 반 전에, 두 명의 여호와의 증인이 그를 방문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자기도 믿고 있다’고 하며 나가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문을 닫고 응접실로 돌아온 후, 그는 그 두 젊은 여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놀랍게도, 그는 밖으로 나와서 그들에게 들어오라고 하였다. 그들은 들어가 성서를 꺼내어 여러 가지 질문들에 대답해 주었다.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 책을 보여 주고,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다. 얼마 후 그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3개월 후, 그는 그 교구 목사를 찾아가, 교회로부터 탈퇴할 것을 알렸다. 그 교직자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당신 잘못이요!” 하고 이 노인은 외쳤다. 그리고 그 교직자에게, 교회 성원들이 성서를 알 수 있도록 성서 연구 마련을 하자고 여러 차례 요청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 교직자는 “아무도 그런 일에는 오지 않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 노인은 “내가 왔었을 거요”라고 말하였다. 그에 대하여 그 교직자는, 단 한 사람을 위하여 성서 연구 마련을 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그 노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천만에요, 교회는 않지만,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렇게 마련합니다. 그리고 내가 교회에 다닌 그 오랜 기간에 배운 것보다도 3개월 동안에 성서를 배운 것이 더 많다오. 그래서 내가 탈퇴하는거요.”

83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호와의 증인의 모든 집회에 참석하며, 호별 방문 전도를 지지하고 있다. 1973년 여름 이래, 그는 침례받은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충성스럽게 봉사하고 있다.

나이가 많건 적건 간에, 전세계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일에 매우 분주하게 일하고 있다. 그들의 부지런한 노력은 예수의 다음과 같은 예언이 성취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 24:14) 당신은 경건치 못한 현 제도의 종말을 살아남아 하나님을 간절히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축복을 얻을 수 있도록 그 소식에 호응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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