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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제 해결의 올바른 방법은 무엇인가?
  • 깨어라!—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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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5
깨75 7/8 14-17면

문제 해결의 올바른 방법은 무엇인가?

“국민에 의한” 정부들은 정치적 장래가 확실치 않은 것 같다. 그들은 벅찬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가 힘겹다는 것을 점점 더 실감하고 있다.

많은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우에 있어서 경제 성장과 물질적 번영은 거의 동일한 의미를 지녔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을 비교적 만족시켜 왔다. 그러나 이제 자본주의 세계의 재정 상태는 최대의 도전에 직면했다. 경제 성장은 거의 정지되었고, 어떤 경우엔 뒷걸음질 치고 있다. 따라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인가?

급등하는 연료비가 경제 성장의 불을 꺼버렸다. 이것은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습관화된 생활 수준을 뒤엎으려고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발생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하여는 정부의 더 강력한 통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유명한 영국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점점 더 냉혹해지는” 생활 수준을 많은 공업국들이 할 수 없이 받아들일 것이며, 그것은 여유있게 생활하던 사람들에게 사회 불안을 고조시킬 것이라는 의견을 말했다. 결과적으로 “무자비한 독재 정부에 의해 새로운 생활 방식—엄격히 통제된 생활 방식—이 시행되어” 사람들에게 하락해가는 생활 수준을 억지로 받아들이게 할 것이라고 그는 예언했다.

심지어 미국 국무장관 ‘키신저’도 국제적 경쟁이 경제 위기를 조성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서구 문명은 와해’되고 민주 정부들은 ‘점점 더 독재적 형태로 변모’하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독재라는 사상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과거보다는 덜 못마땅한 것이 되어가는 것같다. ‘런던’의 기고가 ‘버나드 레빈’은 영국에서 “우익 혹은 좌익의 독재에 관한 화제는 오늘날 일상의 화제”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몇년 전만 해도 “생각지 못할” 일이었다.

왜 독재 정치?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원한다. ‘일플레’와 실직, 치솟는 범죄는 정말 어려움을 야기한다. 이 모든 것은 좌절감과 “왜 누군가가 이 일에 관해 무슨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일으킨다. 이미 실직했거나 기울어진 생활 수준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민주주의식 처리 방법이 느리고 거치장스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신속한 조치를 원한다.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같은 것은 그들에게 점점 덜 중요하게 된다. “법과 질서를 회복”시키며 결정적인 경제 조치를 취하는 강력한 정부들의 수완이 더 사람들의 마음을 끌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에 독일에서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민주주의 정체가 불황의 탈출구를 찾아낼 수 없음이 판명되자 더 강력한 정부의 지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욱 더 많은 지지를 얻게 되었다.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의 철권 통치 아래, 경제적 사회적 회복은 급속하였고 사업은 번창했다. 실업자도 없어졌다. 겸하여 개인의 자유도 없어졌다.

많은 관측자들은 생각하기를, 식량, 인구, 오염, ‘에너지’와 기타 자원 문제 등이 앞으로 계속 야기될 것인데, 그에 대해 자본주의 세계가 훨씬 위험한 입장을 당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권위있는 경제 학자 ‘로버트 헤일브르너’ 교수는 그의 저서 「인간 장래의 탐구」에서 다음과 같이 예측하였다.

“솔직히 말하면 앞날의 위기를 통과하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보다도 훨씬 더 효과적으로 국민을 복종시킬 수 있는 정부하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인류의 문제가 생존 문제라면 그러한 정부는 불가피하며, 심지어 필요하기까지 하다.”

간단히 말하면, 여러 지역에서 민주주의 대신 독재 정치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재 정부가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인가? 달리 취할 길은 없는가?

“정치 신화를 추구”

인간들은 수천년간 정부를 시험을 해 보았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정부가 다 시도되었다. 즉 군주정치,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나치통치’, ‘파쇼’ 통치, 교회 통치, 군사 통치, 봉건제도 등등이다.

그러나 시험의 시기는 지나갔다. 「브리타니카 백과 사전」(1974년판)에서는 정치 세력에 관한 문제가 “그전 어떤 역사 기간보다 오늘날 더욱 절박하다”고 했다. 왜냐 하면 인류는 이제 “정치 신화를 추구하다가 자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기록하였다.—제14권 685면(‘고딕’체는 본 잡지에서 바꾼 것임).

오늘날 인간 정부로서 약속을 못지키고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는 단순한 ‘정치 신화’가 아닌 정부가 어느 것인가? 인간 정부마다 어떤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여러 가지 중요한 점에 있어서는 심히 부족하지 않은 정부가 어디 있는가?

예를 들면, 민주주의 제도가 집단 의견과 자유를 강조하는 것은 분명히 좋은 점이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민주주의는 정치적 부패, 치솟는 범죄와 폭력, 파업과 계급 차별이 발생할 수 있는 옥토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독재 정부가 “일을 처리하는” 면에 능률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정부들은 민주 국가에 괴로움을 주고 있는 몇몇 문제들을 억제하는 데 부분적으로 성공을 했을지 모르나 그 댓가가 얼마나 큰가를 생각해보라!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때때로 국민에게서 자유를 박탈하여, 심지어 그들의 진정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조차 금한다.

최근에는 ‘키신저’가 촉구한 바와 같이 나라들의 정치 시험이 ‘그들의 상호 의존성을 인식’할 것이라는 간절한 희망에 집중되고 있다. 그들은 전세계가 정치적 해결에 도달하기를 바라며, 그리하여 민주주의에 대한 독재 정치의 위협을 막아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또 하나의 신화인가? 아니면 실현 가능성이 있는 일인가?

「브리타니카 백과 사전」(1974년판)은 그 문제에 관해 솔직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제적 협조에 달하려는 시도는 “거의 어디서나 국가주의 장벽에 부딪혀 무너지고 말았다.” (제14권, 719면) 그리고 경제학자 ‘헤일브르너’는, “인간 성향”의 국가주의적 측면 때문에 “미래의 세계적 도전을 국제적 우애로 대처하려는 희망이 하나의 공상으로 되고 있다”고 관측했다.

이 역사의 사실들은 생각있는 사람에게 인간이 만든 정부에 관해 무엇인가 말해 주지 않는가? 그것은 오래 전에 성서에 기록된 바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한[다]”a는 것을 사실로 입증하지 않았는가? 또한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나이다”b라는 말도 증명하지 않았는가?

당신은 아마 “그러나 그것은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다른 방도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계속 노력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6,000년간의 “시도”를 하고 나서 그러한 단안을 내리는 것이 소극적 생각인가? 혹은 현실적 생각인가? 진실을 직면하는 것은 쓴 약일지 모르나 그것이 제일 좋은 약이다. 왜냐 하면, 그것은 막힌 생각을 진정한 해결책으로 인도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부의 문제라면 대응책이 하나 있다. 그것은 결과야 어떻든 자기 마음대로 무엇이든 하겠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는 쓰디 쓴 약일 것이다. 그러나 정직한 자에겐 그들이 진정으로 찾고자 했던 해답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인간을 만드신 분에 의한 정부

인류의 창조주는 너무나 오랫 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였다. 그러나 이런 것을 생각해보라. 만약 당신이 자신의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었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면, 당신은 그것이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를 결정할 권리를 갖지 않겠는가? 심지어 판권이나 특허법도 이러한 권리가 법률의 원리임을 나타내 주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창조주는 어떠한가? 창조물의 놀라운 복잡성은 그의 작품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제작자가 있음을 반영한다. 무한히 다양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기분좋은 색깔, 우리의 감각을 만족시키는 향취와 맛, 음향 등등 우리의 생활을 고양시키는 “여분의 것들”을 설계한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실로 관심깊고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확실히 그러한 것들을 감상할 능력까지 주어서 창조물을 설계하신 분은 인류를 위하여 최상의 것을 염두에 두셨음이 분명하다.

삼라만상이 그에게 속해 있으므로, 세계를 만드신 분에 의한 세계 정부는 확실히 정당하고 적절할 것이다. 그러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그분의 주장이 합리적이고 합법적임이 성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우리의 설계자이시며 제작자이신 그분이 인간을 가장 잘 아시며 따라서 인간사를 가장 성공적으로 다스릴 자격을 갖추신 분이 아니겠는가?—계시 4:11.

그러나 인간은 전반적으로 이 원칙을 비현실적이라고 하여 배척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창조주의 인도를 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인간을 만드신 분은 자신의 통치권을 행사하지 않으셨는가? 그것은 그분이 선택하기를, 인간이 그분의 인도를 받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허무함을 영원히 나타내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통제를 받지 않으니까 “자유”를 얻기는 커녕, 현재 자유가 없이 압제적이고 흔히 부패하고 독재적인 다스림을 받을 가능성에 직면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인간은 반역적인 사람들과 정부들이 당하고 있는 허무한 상태가 끝나는 것을 볼 때가 있을 것인가? 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살펴보라.

“피조물[인간]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로마 8:20, 21.

어떻게 인류가 ‘하나님의 자녀들의 자유’를 얻을 것인가? 성서 예언은 우리 세대 안에 다음과 같이 되리라고 밝히고 있다.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정부]를 세우시리니 ·⁠·⁠·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라].” 그리하여 다시는 “백성” 즉 인간이 창조주의 합법적인 통치권을 찬탈하도록 허용되거나 독재적으로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도록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다니엘 2:44; 전도 8:9.

그러나 세계적 협조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는 국경, 정치 및 관세의 장벽을 가진 현재의 이 국가 조직은 어떠한가? 단지 하나의 해결책이 있다. “[하나님의 왕국]은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고 예언은 알려 준다.—다니엘 2:44.

참다운 자유의 정부

분열되고 부패한 인간 정치 제도가 제거되면 ‘하나님의 자녀들의 자유’가 온 땅에 가득찰 것이다. 그 “자유”란 하나님께서 그의 인간 자녀들에 대하여 거의 혹은 전혀 권위를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인가?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어느 정도는 통제한다. 그렇지 않은가? 왜? 왜냐하면, 어린 아이의 이해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가 행하는 일에 영향을 끼치는 그 모든 요인들을 다 알지 못한다. 부모의 지시는 사랑이 그 동기이며,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전제자의 차가운 능률 때문이 아니다. 그러나 현명한 부모들은 자녀들이 그들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한 자유를 많이 허락한다.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수중에 있는 왕국을 통하여 인류의 지속적인 복지를 보장하기 위하여 단지 필요한 때에만 그러한 통제를 행사할 것이다. 그 왕국은 결코 독재 정치가 아닐 것이다. 그의 모든 충성스러운 백성은 그 지시에 따르는 데서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이것은 그들에게 마치 먹고 마시고 숨쉬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들은 어느 모로도 속박되었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전적인 독립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들의 사랑스러운 창조주 여호와께 복종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시편 97:10; 119:104, 128, 163; 예레미야 9:24과 비교.

그의 사랑의 통치 아래서 하나님의 자유로운 자녀들에게 올 유익을 생각해 보라. 오늘날 인간들은 환경에 대한 이해가 불완전하다. 그래서 오염의 위기도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 기후에 관해서까지도 지식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인류를 위하여 충분한 식품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땅과 그 위의 생명을 지으신 분께서는 관련된 모든 물리적 원리를 온전히 이해하고 계신다. 창조시에는 “우두머리 일군”으로서 도왔고 지금은 하나님의 왕국의 왕으로서 일하시는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도 그러하다. 그분들은 오염과 식량 부족과 다른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을 근절하는 방향으로 인류를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동안에도 폭풍을 잠잠케 했을 때 그가 자연 현상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음을 입증하셨다. “바람과 바다라도 저에게 순종”한다고 목격자들은 놀랐다.—잠언 8:22-31; 마가 4:37-41; 이사야 9:6, 7.

또한 예수께서는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가 이러한 능력을 종족 및 국가적 편견, 또 이기심과 탐욕의 근본적 원인들을 제거하는 데 사용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런 것들 대신 그는 동료에 대한 사랑과 진정한 관심을 고취시킬 것이다.—요한 2:25; 13:35.

심지어 지금 ‘마지막 날’에도 “각 나라”에서 2,000,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 때에 편만될 하나님의 “법”과 “방식들”을 배우고 있으며, 실천하고 있다. 분열된 세상에서 살고 있음에도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훌륭한 연합을 즐기고 있다. 그들은 종족과 국가적 장벽을 초월할 수 있었고 더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한다. 이 세상이 실패하는 정부들 한가운데서의 그들의 성공은 인간에 의한 더 많은 정부의 통제가 아니라, 우리의 사랑에 찬 아버지이며 창조주이신 분에 의한 정부만이 앞에 놓인 도전을 감당해 낼 수 있음을 증명한다.—이사야 2:2-4; 미가 4:1-3.

[각주]

a 전도서 8:9.

b 예레미야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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