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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요법사들”—하나님의 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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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요법사들”—하나님의 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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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5
깨75 9/22 5-8면

현대 “요법사들”—하나님의 도구인가?

서부 ‘아프리카’의 한 사람은 여러 해 동안 절름발이였다. 마침내 그는 자기의 발을 고치려고 격리된 마을의 유명한 “예언자”를 찾아갔다. 그는 지시에 따라 “제물”을 바치고 며칠 동안 금식과 묵상과 기도를 하였다. 감정에 충만한 의식의 절정에서 예언자와 그가 이끄는 여예언자들이 그를 둘러 싸고 그칠새 없는 북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큰 소리로 예수를 불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치유 효과는 없었다!

“당신에게는 믿음이 없소!” 하고 예언자는 말하였다.

“분명히 나에게는 믿음이 있었읍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고치실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읍니다.” 하고 실망한 그 사람은 말하였다.

무엇이 잘못이었는가? 참으로 믿음이 부족하였는가? 고침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왜 고침을 받지 못하였는가?

최근의 자극적인 보도를 읽고 성실한, 흔히 절망적인 많은 사람들이 여러 종류의 현대 “요법사”를 찾아간다. 그들이 어느 정도의 과학적, 의학적 관심을 모으고 있기 때문에 회의적이었던 사람들까지도 재고하고 있다.

“지위”가 향상되고 있음

한 때 “신앙 요법사들”은 단지 그리스도교국 내의 급진적인 근본주의 집단들과만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매우 보수적인 교회들에도 요법사들이 있으며, “치유 예배”를 행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신앙 요법사 ‘오럴 로버어트’는 최근에 ‘애틀란타’의 기념 감리교회에서 연설을 행하였는데, 교회가 “중추적인 목사들과 신학자들과 평신도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고 ‘조오지아’ 주 ‘애틀란타’ 「저어널」지는 보도하였다. 동지는 “그는 아마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그처럼 열렬한 환영을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고 지적하였다.

열 두명의 주교와 700명의 사제가 지난 여름 ‘노트르담’ 대학교에서 열린 ‘가톨릭’ ‘카리스마’ 부흥회에 참석하였다. 대규모 치유 예배가 그 집회 중 한번 있었다. 또한 유명한 ‘볼리비아’ 인 복음주의자이며 요법사인 ‘줄리오 루이발’은 ‘가톨릭’ 교인이다.

“수년 전에 신앙 요법사의 업적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면 의학계에서는 냉소하는 데 그쳤을 것이다” 하고 「메디칼 에코노믹스」지 편집 위원 ‘존 카알로바’는 말하였다. 그러나 일부 의사는 달라지고 있다. ‘카알로바’는 “의사들도 이 신앙 요법사를 믿는다”는 기사에서 요법사이며 ‘감리교’인인 ‘올가 워럴’의 활약상을 언급하고 그에게 “수십명의 의사들이 자신들의 병을 고침받기 위하여 ·⁠·⁠· 찾아”갔으며 그들에 대해 “다른 수십명이 비공식으로 ‘절망적인’ 환자들이라고 불렀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세계 보건 기구 부총재 ‘티이. 아데오이램보’ 박사는 “내가 전통적인 요법사들이라고 부르기를 더 좋아하던 이들 소위 마법사들 중 일부에게 ·⁠·⁠· 지역 사회에서의 공식적인 지위를 부여하여 ·⁠·⁠· 그들의 봉사도 그 국민의 전반적인 건강 증진사업에 흡수될 수 있게 하라”고 촉구하였다.—「세계 보건」지 1974년 4월호.

그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미국 정신 건강 연구소 소장이 미국 정신병 협회의 최근 회의에서 “현재 어느 구석에나 신비 요법사가 있으며 그들이 일부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그 이유이다” 하고 말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현대 “치유”의 특징 몇가지를 간단히 살펴보면 그 대답을 짐작할 수 있다.

시종 일관성이 없음

요법사는 실로 다양하다. 방법들이 다르며, 흔히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그들은 자기들의 능력의 출처를 여러 가지로 달리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많은 저명한 요법사들은 지기들의 능력이 예수로부터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성공적이라는 다른 요법사들은 그리스도교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일부 사람들은 마술 혹은 마법을 사용한다. 다른 사람들, 특히 ‘라틴 아메리카’ 인들 중에는 ‘가톨릭’ 교와 관련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또 다른 저명한 요법사는 자기가 불교인 ‘라마’로부터 능력을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많은 의사들과 정신병 학자들은 요법사 자신의 속에 있는 어떤 “정신적 에너지”가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다른 사람들은 환자 자신의 치유 능력이 요법사에 의한 정신 감응으로 발휘된다고 주장한다.

방법 또한 다양하다. 많은 요법사들은 흔히 감정에 충만한 설교 후에 단순히 어떤 공식에 따라 예수의 이름을 사용함으로 “고친다.” 또 어떤 요법사들은 어떤 관찰자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상징을 포함하는 장황한 의식을 행한다.

또한 주로 ‘필리핀’에서 행하여지는 말썽 많은 “심령 수술”이 있다. 이들 요법사들은 단지 요법사의 손을 도구로 사용하여, 몸을 찌르는 “수술”에서 병든 조직을 제거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신앙의 문제에도 일관성이 없다. 대부분의 요법사들은 고침을 받고자 하는 사람으로부터 완전한 믿음을 요구한다. 그들은 보통 실패할 경우 그 이유를 “믿음의 부족”으로 돌린다. 그러나 한 저명한 요법사는 ‘믿음과는 무관하다’고 선언하였다.

일부 환자들은 자기들이 완전히 고침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어떤 환자들은 “차도”가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일부 요법사들은 여러 번 찾아와야 점차적으로 치료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즉석에서 고침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요법사들도 있다. 요법사 중 아무도 자기들에게 오는 모든 사람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한번은 영웅처럼 보일 수 있고 다음에는 낙오자같이 보일 수 있다”고 ‘오럴 로버어트’는 말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 분명한 한가지 일관성은 요법사 중 아무도 죽은 자를 일으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나’의 한 관찰자는 ‘‘가나’와 기타 지역에서 왜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지 못하는가?’ 하고 질문하였다.

돈에 대한 태도도 다양하다. “병 고침”에 앞서 연보채를 돌리는 것이 보통이다. 침례교 요법사 ‘데이비드 에플리’는 흔히 일요일 연보액이 매우 많아 장갑 ‘트럭’으로 운반한다. 그러나 ‘필리핀’의 “심령 의사들”은 단지 “기부금”만 받는다고 하며, ‘올가 워럴’은 아무 것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현대 요법사들 간의 주요한 일관성은 그들 사이에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한 하나님의 도구라면 그와 같이 방법과 성공의 정도가 다양할 것이라는 것이 이치적이겠는가? 성서의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다.—고린도 전 14:33.

그러므로 만일 그들 모두가 한 하나님의 도구가 아니라면, 어느 한 요법사 혹은 한 집단의 요법사가 하나님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누가 혹은 무엇이 다른 모든 요법사들을 지지하고 있는가? 성서에 보고된 병 고침의 경우들을 많은 현대 요법사들이 자기들의 병 고침의 선례로 인용하는데, 그러한 기록은 현대 요법사 중 하나님의 도구가 있는지의 여부를 증명한다.

“병 고침”의 비교

성서에 있는 병 고침의 경우는 놀랍게도 격식이 없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아무런 “치유 예배”를 계획하지 않았다. 그들이 전파 활동을 수행할 때에 사람들이 언제나 병 고침을 받으러 찾아왔다. 병 고침은 그들의 전파에 부수적인 것이었고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한 앉은뱅이 거지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계단에 있는 자기 옆으로 지나가자 구걸하였다. 이 때보다 더 즉각적인 병 고침의 경우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 거지는 돈 대신에 온전한 몸으로 고침을 받았다.—마태 14:13, 14; 15:29-31; 사도 3:1-7.

그들은 어떤 감정적인 의식을 요구하지 않았다. 보통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와 같은 간단한 말로 충분하였다. (요한 5:8; 사도 3:6) 때로는 말없이 한번 만지는 것으로도 충분하였다. (마태 8:14, 15; 14:36) 손이나 기타 기구를 사용하는 “수술”이 행하여지지 않았다.

기록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에게 병 고침을 받기 위하여 온 사람들이 “다 나음을 얻”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든 병”을 고치실 수 있었으며, 심지어 죽은 자들도 일으키셨다. (사도 5:15, 16; 마태 4:23; 8:16; 10:1) 환자가 단순히 “차도”를 느낄 정도로 반쯤 고친 일이 없었다. 또한 병 고침을 받고자 “심령수술” 혹은 기타 의식을 위하여 여러 번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 당시의 병 고침은 완전하고 즉각적이었다.—사도 3:7, 16; 요한 5:5-9; 마태 8:3, 13; 12:10, 13.

고침을 받은 사람들 중 다수가 강한 믿음을 나타낸 것은 사실이지만, 환자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하여 병 고침에 실패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병을 고쳐 주고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맹인 한 사람은 고침을 받은 후에 예수에 관하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하고 말하였다. (요한 9:36; 5:13) 부활받은 사람들이 죽어있을 때 믿음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누가 7:12-15) 그러므로, 어떤 제자들이 어떤 소년을 즉석에서 고치지 못하였을 때에 예수께서는 그 책임을 제자들 자신의 믿음의 부족에 정직하게 돌리고 그 소년을 고쳐 주셨다.—마태 17:14-20.

현대 예배에서 병을 고치기에 앞서 흔히 돈을 걷는 것과는 정반대로, 예수의 제자들은 돈을 걷지 않았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병을 고친 후에 그들은 모두에게 무료로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마태 14:14-21; 15:30-38.

상술한 것이 성서에 나타난 병 고침과 현대 요법사들의 병 고침의 몇가지 커다란 차이점이다. 현대 요법사들이, 과거에 매우 다르게 행동하신 동일한 하나님의 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적이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방법을 변경시키셨는가? 그분의 능력은 제약을 받게 되었는가? 그분은 현재 사람을 차별하시어 일부 사람은 고치시고 일부 사람은 그대로 두시는가? 그것은 혼란을 일으키는 사태가 아닌가?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성서의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다.—고린도 전 14:33.

그러나 현대 요법사들에게는, 상술한 ‘딜렘마’를 능가하는 또 다른 결함이 있다.

왕국이 빠져있다

예수의 봉사는 무엇에 역점을 두었는가? 병 고침이었는가? 아니다. 성서는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 [이차적으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고 말한다. (마태 4:23) 그분은 자기들과 함께 그분이 머물며 자기들을 고쳐 주기를 원한 일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그분은 이 동일한 일차적 목적으로 제자들을 보내셨다.—누가 4:43; 마가 1:38; 마태 10:7, 8; 누가 9:2, 60.

이와 일치하게, 예수께서는 “세상 끝”에 있을 참 그리스도인들의 활동을 예언하시면서 병 고침에 대하여는 언급도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들이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천국 복음을 전파’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마태 24:3, 9-14; 마가 13:9-13.

몇명이나 되는 현대 요법사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그들의 봉사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가?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왕국을 실존 정부이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원한 정부이며, “[현재의]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할 정부라고 가르치는가?—다니엘 2:44; 7:13, 14; 이사야 9:6, 7.

대부분의 현대 “요법사들”은 예수의 예언과 일치하게 인간의 병에 대한 치료 수단으로 하나님의 왕국에 직접 주의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병 고침에 역점을 두지 않는가? 그리고 흔히 그들은 보수적이고 애국적인 태도로 식별되지 않는가? 그러나 성서는 현존하는 모든 인간의 왕국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의하여 ‘부수어’질 것이라고 말한다.—요한 17:14, 16; 18:36.

성서에 보고된 병 고침은 결코 그리스도교의 진수를 가로막지 않았다. 그러한 것은 단지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보충적인 것이었다. 그러한 것은 하나님 자신이 초창기의 그리스도인 회중의 전파 사업을 지지하고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는 역할을 하였다. (히브리 2:3, 4) 그들은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왕국 하에서 영구적으로 신체의 병을 고치는 일을 하실 때에 전세계적으로 있을 일을 소규모로 예시하였다. (누가 10:9; 계시 21:1-4; 또한 베드로 후 3:13 비교.) 그러므로 일단 그리스도인 회중이 확립되었을 때에 다른 기적에 의한 영의 선물과 같이 병고치는 일은 소용이 없게 되었다.—고린도 전 13:8-12.

현대 “병 고침”의 근원

그러므로, 현재 그리스도의 이름을 빙자하지만 하나님의 왕국으로부터 주의를 이탈시키는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논리적인 결론이다. 이것을 예견하시고, 예수께서는 우리 시대에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부르짖을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의 이름으로 많은 기사를 행하지 않았읍니까?” 그의 대답은 그분이 그들을 지지하고 계시는지의 여부를 알려 준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이것은 그분이 왕국의 소식을 배척하고 “기사” 혹은 기적을 지지하는 자들과는 아무런 관련을 맺지 않으실 것을 지적하신 말씀이다.—마태 7:21-23, 새번역.

이 사실은 그러한 활동을 지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천국을 반대하고 현존하는 보이지 않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을 지지하는 자임을 밝혀 준다. (에베소 6:11, 12) 성서는 그 자를 “사단”으로 밝혀 준다. 그는 교활하게도, 사람들을 속이기 위하여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 성서는 계속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고 알려 준다.—고린도 후 11:13-15; 또한 데살로니가 후 2:9, 10 비교.

왕국 정부를 통하여 영구적으로 신체의 병을 고쳐 주시려는 하나님의 진정한 목적에서 당신 자신이 제외되지 않도록 하라. 현재 하나님의 말씀의 영적 치유력을 통하여 “지식을 새롭게 함으로” 우리의 성품이 고침을 받는 훨씬 더 중요한 일을 경험하는 것이 더욱 현명하지 않은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그 웅대한 왕국의 합당한 신민이 될 것이다.—골로새 3:9, 10; 에베소 4:2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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