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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웃사랑”은 어떻게 되었는가?
  • 깨어라!—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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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5
깨75 11/8 3-4면

“이웃사랑”은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 주위의 이웃들이 우호적이고 따뜻하고 친절하고 협조적이라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즐거울 것인가! 그것은 삶의 기쁨을 크게 더해 주며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좀더 가볍게 보이게 해 줄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라는 성서 잠언이 확실히 적용된다.—잠언 27:10.

그러나 그러한 이웃이 당신의 주위에 얼마나 있는가? 불행히도, 오늘날 그러한 이웃간의 우의가 사라져가는 것같다. 많은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변화의 추세, 타인에 대한 관심의 감소 경향을 말하고 있다. 분명히 당신은 최근에 아래와 같은 신문 표제가 실리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폭행당하는 여인에 행인들 방관.” “백주의 살인극—30명이 묵묵히 구경” “딸이 죽는 것을 못본체하고 지나간 운전자들을 원망하는 아버지” “진흙에 빠진 여인 사망, 외쳐도 돕는 사람 없어.” 이러한 표제 아래의 기사를 보면 흔히 사람들은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는 말로 돕지 않은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나 그러한 극적인 혹은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에서보다,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더욱 이웃 사랑의 부족이 느껴진다. 미소, 우정적인 인사, 예의바른 행동, 사려깊음과 친절이 오늘날 매우 희귀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것 대신에 냉정함, 냉담 및 무례함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일부 사람들은 주로 현대 공업 사회를 비난한다. 그것은 속도, 대량 생산을 강조하며 흔히 사람들을, 개인적 필요와 욕망과 개성이 있는 개인들로가 아니라 거대한 공장의 “톱니”로 간주되게 한다. 대도시는 현대 사회의 또 다른 특징이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수백만명의 동료 인간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가졌거나 관심을 나타내고자 시간을 내는 사람들이 극소수인 것 같다. 또한, 과거에 도시들은 흔히 상당히 명확한 이웃간의 우애를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너무 변화가 많기 때문에 많은 경우 이전에 있던 이웃간의 우애는 사라졌다. ‘뎀플’ 대학교 인간 개발학 교수 ‘디런 앨리그잰더’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사회 구조의 근본 체제의 얼마는 파손된 것같다. 더욱 더 도시의 주민들은 실제로 자신이 뚜렷한 지역 사회의 일원이 아님을 깨닫는다. 아마 세계 사상 처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 사회에서의 진정한 위치를 상실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에 있든지, 교외에 있든지 혹은 시골에 있든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한가지 것은 현대 사회가 조장하는 물질주의이다. ‘뉴우저지’ 주(미국) 심리학 연구소 소장 ‘제리. 에이치. 시이겔’ 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들은 분명히 더욱 더 현재를 위하여 살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일반 상태는 엄청나게 변하였다. 진정한 의미에서 가치 기준이 없다. 사람들은 더욱 더 이기적이 되고 있고 돈의 불안정성은 증대하는 이기심을 부채질한다.”

그렇다. 사람보다 물건—집, 자동차, 오락 기구—에 주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실상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 그것은 관대한 정신 혹은 “개방적인” 정신을 가지는 것을 방해한다. 그것은 사람을 냉담하게 하고 다른 사람을 희생 시켜가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게 한다.

현재, 파급되는 경제 문제와 ‘인플레이션’은 재물에서 행복이나 안전을 구하는 것이 참으로 무익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현실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자기들의 경제문제에 더욱 몰두하여 더욱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고 타인에 대한 관심을 줄이며, 타인의 행복에 기여하는 데 더 적은 관심을 보인다.

시정책은?

시정책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주된 책임이 대도시나 큰 공장 혹은 그와 비슷한 환경에 있지 않음을 알 필요가 있다. 동일한 환경 하에서도 사람들은 동일한 반응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동일한 도시, 동일한 지역, 심지어 동일한 번지 내에 살고 있거나 동일한 공장에서 일하지만 일부는 이웃에게 관심을 나타내고 있고 일부는 그렇지 않다. 무엇 때문에 다른가?

대답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은 생명 자체, 즉 영원한 생명의 희망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일찌기 제 1세기에, ‘모세’의 율법에 정통한 어떤 사람이 ‘나사렛’ 예수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질문하였을 때에 예수께서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율법 가운데서 이러한 말을 인용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예수께서는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덧붙이셨다. 그는 이어서 진정한 이웃 사랑을 나타낸 ‘사마리아’인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다.—누가 10:25-37.

참으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병행하며, 분리할 수 없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술하였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요한 1서 4:20) 이것은 또한 우리가 이웃 사랑이 오늘날 그렇게도 희귀한 이유를 이해하도록 도와 준다. 어떻게 그러한가?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마찬가지로 희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현 불의한 제도의 “마지막 날”로 예언 가운데 묘사된 우리 시대에 동시에 발생하는 전쟁, 식량 부족, 기타 심각한 문제들로부터 인류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또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말씀하셨다. (마태 24:3-12; 디모데 후 3:1-4) 하나님께 대한 사랑, 그분을 아는 데 대한 관심, 그의 말씀인 성서를 읽고 그의 표준과 목적을 배우는 일에 대한 관심이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서 확실히 ‘식었다.’ 따라서 이웃에 대한 사랑이 식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에 관하여 배우고 이 땅과 인간 사회를 깨끗하고 건전하고 의로운 상태로 회복하실 하나님의 목적을 알 때 우리의 견해와, 타인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커다란 변화가 가능하다. 그것은 우리의 가치관을 변경시킬 수 있으며 우리에게 현재의 물질주의적 제도가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웅대하고 만족스러운 희망을 준다. 그렇다, 그것은 우리의 사랑을 ‘넓히고’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온 인류 세상에 관하여 비이기적인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당신이 원한다면 무료 가정 성서 연구를 통하여 하나님의 목적에 관하여 당신이 배우도록 도움으로써 이웃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것을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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