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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76 12/8 11-14면

지진이 ‘프리울리’를 강타하다

‘이탈리아’ 주재 「깨어라!」 통신원 기

“‘시멘트’ 바닥이 몹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서 있으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루에 넘어졌다. 요란한 굉음에 귀가 멍멍하였고 건물이 부서져 우리 위에 쏟아지는 것 같았다. 갑자기 불이 꺼지고 공포감이 우리를 엄습하기 시작하였다. 꼬마들은 ‘아빠! 아빠!’ 하고 울부짖었다.”

이것은 ‘이탈리아’의 ‘제모나’에 사는 ‘아나클레토 마르틴’이 1976년 5월 6일 저녁 ‘프리울리’ 지방을 맹타한 지진을 묘사한 말이다. ‘프리울리’는 면적이 약 7,166평방 ‘킬로미터’로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해 있다. 그곳은 ‘우디네’ 도에 속해 있다.

그 지진은 117개 마을을 휩쓸었다. 수백명이 사망하였고 재산 피해는 막심하였다. 약 100,000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어떤 집은 무너졌고 어떤 집은 피해가 커서 헐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남자는 반파된 자기 집앞에서 흐느끼면서 “25년간을! 25년간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만큼 오랜 기간을 외국에서 일하여 그 집을 장만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파괴되고 말았다.

만일 당신이 지진에서 살아남았다면, 요란한 굉음이 그친 후에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살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후 아마 사랑하는 사람들과 벗들을 생각할 것이다. 그들도 살아남았는가? 지진 후에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러한 것을 생각하였다. ‘프리울리’ 지역의 몇 회중을 여행하면서 섬기는 봉사자 한 사람은 이렇게 보고한다:

“그 다음날 아침 6시 ‘뉴우스’ 보도에 의하면 그 지진은 상당히 심한 것이었다. 나는 차를 타고 우리의 형제들이 살고 있는 도시로 향하였다. 오전 8시에 나는 ‘우디네’ 도의 도청 소재지에 도착하였다. 그 도시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피신하였다. ‘우디네’는 심한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그 곳의 여호와의 증인들이 모두 무사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나는 ‘산 다니엘레’로 향하였다.

“거기서 나는 그 곳 회중의 장로인 ‘리노 쿨로타’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일부 증인들은 집을 잃게 되어 밖에서 지내야 하지만 그 도시의 증인들은 모두 살아 있다고 알려 주었다. 더 북쪽에 있는 ‘제모나’로 가는 도중에 ‘오소포’를 통과하게 되었다. 그 곳에는 증인들이 네 가족 살고 있었다. 당국자들은 그 도시를 차단시켰다. 그렇지만 나는 ‘아마빌레 탄도이’의 집에 가 볼 수 있었다. 집이 손상되었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탄도이’는 그 곳에 없었으며 그것은 그가 생존하였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도처에서 나는 가슴 아픈 장면들을 보았다. 반쯤 죽은 사람들을 폐허 속에서 파내고 있는 것은 소름이 끼치는 참상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정도의 행운도 맛보지 못하였다.

“나는 급히 지진 피해가 가장 심한 ‘제모나’ 시로 갔다. 그 지역에 있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건물 부스러기로 도로가 다 막혀 자동차를 타고 그 도시에 갈 수가 없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였다. 왕국회관을 찾기 위한 목표물은 근처의 ‘가톨릭’ 교회였다. 그러나 그 교회는 폐허로 화해 있었다. 교회 곁의 한 집은 반파되었고 그 다음 집은 박살이 나 있었다.

“왕국회관이 그 다음 골목에 있었다. 지진이 나던 때 여호와의 증인들은 거기에서 집회를 보고 있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았을 것 같지가 않았다. 마음을 조아리며 나는 계속 걸어갔다. 그런데 왕국회관이 보였다! 왕국회관이 들어 있는 건물은 그대로 서 있었으나 그 주위의 건물은 모두 파괴되었다. 창문 안에 진열된 책들도 그대로 있었다. 증인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곳에서도 증인들이 살아남았음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지진이 나던 순간

진원지는 ‘톨메조’였다. 그 도시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 회중의 주임 감독자인 ‘르나토 아브라모’는 이렇게 보고하였다. “우리의 왕국회관은 새로운 3층 공동 주택의 1층에 위치해 있읍니다. 지진이 나던 당시 우리는 평상시와 같이 목요일 저녁 집회를 개최하고 있었으며 참석수는 24명이었읍니다.

“우리가 처음 진동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는 집회가 이미 시작된 후였읍니다. 그것은 약한 진동이었읍니다. 처음 진동이 멈추자 ‘마우리지오 로시’는 철근 ‘콘크리이트’ 기둥이 받치고 있는 들보를 가리키면서 ‘이리 오십시오!’ 하고 외쳤읍니다.

“두번째 진동은 훨씬 더 심하였읍니다. 갑자기 불이 나갔읍니다. 죽는다는 생각, 적어도 폐허 속에 생매장되어 고생할 것이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 속에 떠올랐읍니다. 나는 다음과 같이 자문하였읍니다. ‘물건이 맨 먼저 내 몸의 어디를 내리칠까? 머리? 왼편 어깨 혹은 오른편 어깨? 옆구리?’ 나는 눈을 감고 여호와께 기도하였읍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하였읍니다. 큰 소리로 한 기도는 상호 위안이 되었읍니다. 분명히 죽음의 위험에 직면해 있었지만 우리는 부활에 관한 성서의 약속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읍니다.—요한 5:28, 29; 사도 24:15.

“모든 것이 우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것처럼 보이던 찰나에 진동이 멈췄읍니다. 살아 남은 것을 기뻐하면서 우리는 재빨리 거리로 달려나가 가까운 곳에 있는 ‘캠프’로 나아갔읍니다. 그 곳에서 우리는 불을 피우고 밤을 새웠읍니다.”

도움의 손길

그 다음날 재해 지역에 도움의 손길이 미치기 시작하였다. ‘이탈리아’인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인접 국가 사람들도 자진하여 봉사하였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트리에스테’에 사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식품, 의류 및 돈을 공급하였다. 구조 활동 본부가 ‘우디네’에 세워졌으며 그 곳의 한 장로는 자기 집을 구조 본부로 내놓았다.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의 ‘로마’ 지부 사무실은 그 활동을 전담할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한 자진 봉사자는 “모든 인근 회중과 심지어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증인들까지 도움을 주려고 오는 것은 감격적인 장면이었읍니다” 하고 말하였다.

지진이 극심했던 ‘제모나’의 ‘아나클레토 마르틴’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몬토리’ 형제는 왕국회관 윗층의 ‘아파트’로 돌아갔읍니다. 그는 건물 주인의 아버지인 80세 노인을 부축하여 길로 나가 안전 장소로 피신시켰읍니다. 다른 증인들은 근처 가옥들의 폐허 속에 묻힌 사람들을 열심히 구출하였읍니다. 이튿날 아침 우리 각자는 집이 어떻게 되었는가 알아 보기 위해 헤어졌읍니다. 그 다음날에는 인근 지역에 사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의 구호품이 도착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 물품 중에는 절실히 필요로 한 천막들도 들어 있었읍니다.”

‘톨메조’에 사는 ‘르나토 아브라모’는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진동이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집 밖에 있는 것이 현명할 것 같았읍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천막을 쳤는데 곧 이어 우리는 천막을 하나 더 구하게 되었읍니다. 우리들 중 얼마는 천막에서 잠을 잤고 다른 사람들은 차 속에서 잤읍니다. 다음 월요일에는 ‘‘왙취 타워’ 구호품’이라고 써 붙인 ‘트럭’이 도착하여 우리를 즐겁게 하였읍니다. 증인들이 식품, 천막, 의약품, 의복 등을 가져왔읍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들과 인근 마을의 증인들을 위해 천막을 더 많이 칠 수 있었고 어떤 이웃 사람들을 위해서도 천막을 쳐 주었읍니다. 우리는 가진 것을 이웃 사람들에게 기쁘게 나누어 주었읍니다.”

여행하는 한 대표자는 ‘우디네’에 있는 증인들의 구조 본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목록을 만들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 집에 물건이 많이 도착했읍니다. 다른 도시와 다른 나라들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정성어린 도움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읍니다. 쏟아져 들어온 물품들 중에는 갓난애들의 기저귀도 들어 있었읍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온 자진 봉사자들의 언어 문제를 극복하고자 두 자매가 통역으로 일하였읍니다. 우리는 너무나 감사하여 우리를 도우려고 그처럼 먼 거리를 온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읍니다. 한 접시의 ‘스파게티’는 어떻습니까? 보잘 것 없는 것이었지만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것이었읍니다.”

더 중요한 것

서로 음식, 의복, 거처 혹은 다른 물질적인 필요를 돌보아 주기 위해 복잡하였지만 ‘프리울리’ 지역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제모나’로부터 이러한 보고가 들어왔다.

“우리는 왕국회관의 의자와 다른 기구들을 ‘산 다니엘레’로 옮겼다. 5월 16일에는 형제들이 만든 커다란 가건물에서 성서 공개 강연과 「파수대」 연구를 가졌다. “‘르나토 아브라모’는 ‘톨메조’ 지역에 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진이 있은 다음 일요일에 우리는 천막에서 첫 집회를 볼 수 있었다.” ‘왙취 타워’ 협회의 ‘로마’ 지부는 이렇게 보고하였다. “지진의 영향을 받았던 거의 모든 회중들은 지진이 있던 다음 일요일에 정기적인 집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한 곳에서는 약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네 개의 대형 천막이 공동 침실로서 뿐만 아니라 왕국회관으로서도 사용되었다.”

‘프리울리’ 지역의 여호와의 증인들이 입은 전반적인 지진의 피해는 어떠하였는가? 주택이 한 가지 문제였다. 약 64체의 가옥이 완파 혹은 반파되어 헐어야 할 정도였다.

한 가지 다행한 점은 여호와의 증인들 중에는 아무도 죽거나 중상을 입은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발생된 사건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구제 활동에 참여하였던 한 장로의 다음과 같은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반면에 동료 인간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것은 기쁜 일이었읍니다. 우리는 고통이나 재난이나 죽음이 다시는 없을 하나님의 새 질서가 가까운 장래에 설립되기를 고대합니다.”—계시 21:3-5.

[11면 삽입]

‘이탈리아’ 동북부에 사는 목격 증인의 보고

[13면 삽입]

“반쯤 죽은 사람들을 폐허 속에서 파내고 있는 것은 소름이 끼치는 참상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정도의 행운도 맛보지 못하였다.”

[13면 삽입]

“왕국회관이 들어 있는 건물은 그대로 서 있었으나 그 주위의 건물은 모두 파괴되었다.”

[14면 삽입]

“모든 인근 회중과 심지어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증인들까지 도움을 주려고 오는 것은 감격적인 장면이었읍니다.”

[12면 지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오스트리아’

‘톨메조’

‘제모나’

‘오소포’

‘산 다니엘레’

‘우디네’

지진이 휩쓴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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