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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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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6
깨76 12/8 22-23면

성서의 견해는 무엇인가?

교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은 성경적인가?

교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은 여러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제도에 존재하여 왔다. 신자들을 통할하는 직업적인 교직자 계급을 두는 것이 성경적인가를 생각해 보는 사람들은 극히 적다. 그러나 신자들을 교직자와 평신도로 구분하는 것이 영감받은 성경과 일치하는가?

제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는 교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 구분은 나중에 생겼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 교회의 제2세기의 교직자와 평신도[희랍어, ‘라오스’, “사람들”]의 구분이 생겼다. 이 구분은 ‘콘스탄틴’ 1세(제4세기)가 교직자들에게 특권과 특혜를 부여함으로 구체화되고 인정을 받게 되었다.”

직업적인 교직자 계급의 도입은 교회 성원들에게 최선의 이익을 주었던가? 예수회 월간지 「에이튜우드」지는 그것이 “‘신자들’을 무지와 무책임한 상태에 머물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평신도 계급을 이루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성서의 내용을 알기 위하여 그리고 영적 이해에 있어서 자라기 위하여 스스로 솔선하지 않는다. 그들은 건강 문제를 의사에게 맡기듯이 이 문제를 그들의 교직자에게 맡길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 시대의 마련이 아니었다. 회중 내의 모든 사람은 영적으로 진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능숙하게 가르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도록 격려를 받았다. ‘가톨릭’ 「예루살렘 성서」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하였다. “주임 장로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고상한 일을 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공동번역」은 이러하다. “교회의 감독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훌륭한 직분을 바라는 사람이다.”—디모데 전 3:1.

“주임 장로” 혹은 “감독”의 직분은 일반 그리스도인들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직분은 오늘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식과는 달랐다. 그것은 단지 한 사람이 아니라 한 집단의 사람들이 가지는 감독의 직분이었다. 그 직책에 임명된 사람들은 “감독자들” 혹은 “장로들”이라고 불리웠다. 일단의 사람들이 회중을 통할하였다는 것을 인정하여 「예루살렘 성서」 디도서 1:5의 각주는 이렇게 알려 준다. “초기에는 각 그리스도인 사회가 일단의 장로들의 지배를 받았다.”

“장로” 혹은 “감독자”로서 자격을 구비하는 것은 가장 낮은 위치에서 시작하여 계급 조직의 사닥다리를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가톨릭’ 신학자 ‘레그런드’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성직 임명은 계급 조직의 사닥다리를 올라가는 것과 같은 경주가 아니다. 사실 교직 계급이라는 단어는 성서에 나오지 않는다. 그것이 가장 먼저 사용된 것은 6세기 초로 소급하는데, 그 때 ‘슈우도-디오니시우스’가 그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 단어를 임명된 성직자에게만 제한시킨 중세와는 의미가 매우 달랐다. ‘디오니시우스’는 그 단어 [교직 계급]에 평신도와 심지어 배우는 사람들까지도 포함하였기 때문이다.”

감독자 혹은 장로가 되는 데 수적 제한이 없고 어떤 신학 교육을 요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일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약술된 자격에 도달하기 위하여 노력하도록 격려가 된다. 이것은 모두에게 지식에 있어서 자라고 동료 신자들을 섬기고자하는 욕망을 갖도록 자극을 준다. 사람들을 성서에 무식하게 하고 그리스도인 책임을 지지 않게 하는 교직자와 평신도 마련과 달리, 성경의 마련은 그들이 그리스도인 지식에서 자라고 동료 신자들을 섬기는 일에 적극적이 되도록 격려한다. 성서의 지침에 따라 그들의 회중을 본받고자 노력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경험이 그러하였다.

더우기, 제1세기 회중 내에서 장로로 섬기던 사람들은 회중 성원들에 대하여 우월한 지위를 가지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아무도 회중의 공적인 인도자 혹은 머리로 간주되지 않았다. 사람을 높이는 칭호가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종]가 되어야 하리라.”—마태 23:8-11.

그리스도인 회중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가족과 같아야 한다. 따라서, 장로들은 회중 성원들을 그 사실과 일치하게 대해야 하고 그들을 겸손히 섬겨야 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썼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하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하라.”—디모데 전 5:1, 2.

그리스도인 장로에게 준 성서의 충고의 전체 정신은 교직자-평신도 구분의 형성과 반대된다. 언제나 비이기적인 봉사가 강조되었고 동료 신자들보다 높은 지위를 암시하는 어떠한 것도 피하는 것이 강조되었다. 예를 들면, 사도 ‘베드로’는 동료 장로들에게 이렇게 훈계하였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베드로 전 5:2, 3.

영감받은 사도들이 아니었던 그리스도인 장로들의 목표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지배하거나 억누르는 행동을 피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의무는, 이 “양 무리” 성원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믿음에 고착하고 그것을 순수하게 간직하고 그리하여 모두가 그리스도인 기쁨을 누리도록 돕는 것이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회중을 돕는 충고의 편지를 쓸 때에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내가 아직 ‘고린도’에 가지 않은 것은 여러분을 아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믿음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미 믿음에 서 있읍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여러분과 함께 일하는 사람일 따름입니다.”—고린도 후 1:23, 24, 새번역; 또한 공동번역 참조.

참으로 모든 사실은 오늘날의 교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성경에 기초해 있지 않음을 확증한다. 그 구분은 실제로 영적 솔선력을 막음으로 그리스도인 성장을 방해하였다. 그리스도교국의 여러 종교 단체에 존재하는 그러한 구분은 참 신앙과 행실에서 돌아설 것을 지적한 예언과 일치한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은 ‘에베소’ 회중의 장로의 회 즉 감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리라.]” (사도 20:30) 이것은 교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을 승인하는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 심각히 고려할 문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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