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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들은 알고 싶어한다
  • 깨어라!—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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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6
깨76 12/22 5-8면

청소년들은 알고 싶어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종교 의식이 쇠퇴해 가고 있다. 교회 참석수는 줄어들고 있다. 나이 든 사람이나 젊은이나간에 전통적인 숭배 방식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와 함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리는 사람들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물론 수십년간에 걸쳐 공산주의 국가들이 종교를 공격해 왔고,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나라에는 무신론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국의 한 복판에서도 역시 무신론적 혹은 불가지론적인 사상이 세력을 얻고 있다.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불합리한 가르침과 악한 행위로 인하여 이 세상 종교들이 조롱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생각있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들 및 비그리스도교 종교들의 의식이나 형식을 무익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한 한 가지 예를 서독 ‘함부르크’에서 발행되는 잡지 「스테른」지에서 볼 수 있었다. 그 잡지에는 “처녀 ‘마리아’를 판매함”이라는 제목이 붙은 부정적인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 기사는 ‘바이에른’의 순례지인 ‘알퇴팅’에 관한 것이었다. 그 호의 판매 부수는 백만부에 달하였다.

‘바이에른’의 교육 문화상은 종교 의식을 그처럼 반대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그들은 종교를 악평하고, 예배, 기도, 숭배의 허울을 벗기고 신자들을 어릿광대로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그 ‘바이에른’의 교육 문화상은 1975년 12월에 발행된 「학교와 우리」라는 출판물에서도 이렇게 말하였다. “매일 우리는 경건이 어리석은 것으로 조롱당하고, 십계명이 뒤로 밀려나는 사실을 읽고 듣고 보고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그리스도교가 무의미한 낱말, 알맹이 없는 음절, 생활상 무가치한 것이 되어버렸다는 점이 조금이라도 이상한가? 많은 가정에서 종교 토론을 애써 피하려고 하는데 교과목으로서 종교가 곤경에 처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어른들이 종교를 버리거나 명목상으로만 종교를 가지고 있을 때 자녀들이 그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지금은 청소년들이 부모에 지지않게 형식에 치우치는 종교와 종교 의식을 불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하나님의 존재나 인생의 의미 혹은 죽은 후의 상태 등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가? 아니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어른들보다 그러한 문제들을 더 기꺼이 토론하려고 한다.

점점 더 많은 청소년들이 배척하고 있는 것은 바로 형식적인 종교이며, 그들은 그러한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않는다. 그들은 이 세상 종교들의 좋지 않은 행위를 관찰해 왔다. 그러한 점들에는 교회들의 정치 개입, 교회의 전쟁 지지, 그들의 위선, 비이치적인 교리 그리고 많은 교직자들과 신도들의 부도덕과 고답적인 생활이 포함된다. 그러한 모든 것들이 청소년들을 형식주의적인 종교들로부터 “등지게” 하였다.

사실을 밝힌 조사

‘뮤니히’의 ‘베르너 프라브드지크’라는 젊은 과학자는 청소년들이 하나님과 관련된 것들에 관심이 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였다. 그는 ‘뮤니히’ 학교의 9학년에 재학 중인 2,000명의 남여 학생들 중 800명에게 질문을 제시하였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를 변경시켜야 하였다. 그 이유는? 어른들이 하나님과 관련된 문제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청소년들도 관심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였었으나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 조사에 의하면, ‘뮤니히’의 많은 청소년들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그 학생들의 16‘퍼센트’만이 자기 아버지가 종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 학생들의 24‘퍼센트’만이 자기 어머니가 종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하였다. 학생들의 3분의 2는 말하기를, 자기 부모들은 자녀가 종교 교육을 받건 안 받건 전혀 개의치 않을 정도로 관심이 없다고 하였다.

아버지들의 83‘퍼센트’, 어머니들의 74‘퍼센트’는 교회에 가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그리고 그 지방의 아이들도 그 부모들의 습관을 반영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예상하던 바였다. 일반적으로 자녀들은 외적인 숭배 방식에 있어서 부모들을 따르게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은 점은 그 과학자가 조사한 다른 부면이었다. 「학교와 우리」라는 출판물은 그 점을 이렇게 말하였다:

“예상을 못했던 결과는 바로 이것이다: 가족적인 숭배가 무시되어 있고, 종교적으로 그처럼 냉담한 환경하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이 이점에서는 성인들을 닮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시의 청소년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하나님의 존재에 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59‘퍼센트’)

“‘나는 인생의 의미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보았다.’(64‘퍼센트’).

“‘나는 사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다.’(57‘퍼센트’).”

그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부언하였다. “부모들이 그리스도교와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반종교적 분위기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도 많은 청소년들은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가 등 굵직한 종교적 질문들을 생각하고 있다.”

단지 학생들의 4분의 1만이 종교 문제가 중요하지 않거나 인기없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뒤셀도르프’ 시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다른 조사에서도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거의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청소년들의 타고난 호기심

‘바이에른’의 교육 문화상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축구, ‘텔레비젼’, ‘오오토바이’—15세 청소년의 세계에서는 그런 것들이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체적인 상황이나 깊은 내용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뮤니히’ 시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의심할 여지없이 청소년들은 경건, 은총, 죄, 소망, 슬픔, 신뢰, 감사함, 죄사함 등과 같은 굵직하고 영구적인 종교적 내용을 계속 요구하고 있으며 갈구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하나님이나 그와 관련된 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실 청소년들은 자기 부모들이나 교직자들의 그릇된 가르침, 그들의 잘못된 생활 태도 때문에 믿음을 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바이에른’의 그 교육상은 ‘부모들이 가족적으로 종교 토론을 하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소극적인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히 하나님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 청소년들의 관심은 살아 있다. 그러한 관심은 선천적인 것 같다. 그들은 자연히 인생에 관하여 호기심을 느끼게 되고 그와 관련된 심각한 질문에 대해 답을 얻고 싶어한다. 해답을 얻지 못하거나 이 세상의 상호 모순되는 종교들로부터 왜곡된 해답을 듣게 될 때 창조주를 숭배하려는 자연스러운 경향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양심이 무디어 질 수 있다.

부모들에게 그리고 종교 교육을 한다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중대한 책임이 놓여 있다. 부모들은 자기들의 책임을 교직자들에게 전적으로 일임해서는 안된다. 교직자들이 어떻게 하든지간에 하나님에 관하여 자녀들을 가르칠 주된 책임은 부모들에게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버이 된 이들이여, 자녀를 노하게 하지 말고 주의 말씀으로 훈련하고 훈계하여 기르시오.”—에베소 6:4, 새번역.

그러한 교훈에 하나님에 대한 중요한 점들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점은 성서 신명기 6:5-7에 기록되어 있는 그와 비슷한 교훈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니라].” 그렇게 하면 자녀들의 타고난 호기심이 충족될 것이다.

그러나 교회들은 부모들이 가정에서 그러한 가르침을 베풀도록 그들을 준비시켜 주었는가? 아니다. 가족적으로 종교 토론하는 것을 부모들이 “소극적”으로 생각하고 주저하는 주된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점에 관하여 토론하기를 꺼린다.

그처럼 가정에서 가르칠 수 없게 된 것은 누구의 잘못 때문인가? 그 잘못은 두 군데에 있다. 첫째로 부모들에게 책임이 있는데, 그들은 그러한 지도를 어디에서 받을 수 있는가 당연히 알아 보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나머지 책임은 부모와 성인들 그리고 젊은이들을 합당하게 훈련시키지 못한 교회 제도와 그 교직자들에게 있다.

성공적인 가르침

하나님에 관해서 자녀들을 적절하게 가르치면 그 결과는 만족할 만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그러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잠언 22:6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러한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부모들은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자녀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부모들이 경건한 원칙에 따라 생활할 필요가 있다.

제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자녀들을 그렇게 교육시켰다. 어린이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그분의 목적에 대해 배웠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라서 가정을 갖게 될 때 그들도 역시 자기 자녀들을 가르칠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젊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하였다. “내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디모데 후 3:15-17.

오늘날에도 자녀들을 그렇게 가르치고 교육시키는 부모들이 있는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성서를 우리의 지침서로 인정하는 자녀들이 있는가? 그렇다. 그러한 사람들이 있다.—사실상 200여 나라에 살며 각종 국적을 가진 2백만 이상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에 관하여 어른들과 아이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정규적인 마련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한 교훈은 전세계 방방곡곡에 살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생활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오늘날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들로부터 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은 그들이 믿는 내용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생활에 대한 올바른 견해가 무엇인지 자기들의 성서로 증명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현재의 생명에 대한 견고한 기초와 미래의 생명에 대한 웅대한 희망이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한 소녀는, 인생의 중요 문제에 대한 진리를 안다고 말하였다. 그것은 “내가 아기 적부터 엄마가 그런 점들을 내게 읽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그 소녀는 성서나 성서 연구 보조 서적으로 그러한 교훈을 받았다. 그 소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으며 그러한 지식을 통해 인생에 대한 자격을 훌륭하게 갖추었던 ‘디모데’와도 같다.

어떤 소녀는 죽은 자는 어디에 있는가, 지옥은 어떤 것인가, 미래가 어떨 것인가 등에 대해서 급우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아이가 그런 점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고 묻자, 그 소녀는 자기 부모가 여러 해 동안 성서로 가르쳐 주었다고 설명하였다. 그 부모는 성서 교리 및 생활상의 실용적이고 유익한 성서 원칙을 설명해 주는 성서 연구 보조서도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 아이는 어린이들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위대하신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음」이라는 훌륭한 서적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하였다. 그 책은 어린이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알려 주며 매일의 생활과 관련된 실용적인 교훈을 제공해 준다.

그러한 교훈에 감사함

어린이들은 나이를 먹어 가면서 과거를 돌이켜 보고 올바른 종류의 교육에 대해 참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그들은 그러한 교육 덕택에 참으로 올바른 생각을 갖고 합당한 생활을 하였으며 그로 인해 청소년들에게 흔히 있기 쉬운 많은 함정을 피할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한 젊은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부모님께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제가 부모님을 정말 사랑하고 있으며 저를 위해서 해 주신 모든 것들에 대해 참으로 감사하고 있음을 부모님께 전하고 싶습니다. 제 생애에서 이 시점에 이르게 된 것은 오로지 부모님의 도움 때문입니다. 제가 필요로 할 때 부모님께서는 항상 친절과 사랑으로 훌륭한 충고와 격려를 주셨읍니다.”

그 졸업생은 이렇게 부언하였다: “부모님께서는 영원히 잊지 못할 또 다른 것을 저에게 주셨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성서 원칙을 가르쳐 주심으로써 저에게 인생의 목적을 알려 주셨고 저는 그로 인해 매우 행복하였읍니다. 부모님께서는 미래에 대한 놀라운 희망을 갖게 해 주셨으며 여호와 그분의 약속을 믿도록 가르쳐 주셨읍니다. 이제 저는 여호와를 더 온전히 섬기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생애에서 가장 귀중한 것들을 저에게 주신 부모님이 즐거워하시기를 빕니다. 부모님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제가 두분 부모님께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말로는 온전히 나타낼 수 없읍니다만 부모님께서는 저의 마음을 이해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아이를 위해 여러 해 동안 부모들이 성실하고 정성스럽게 노력한 데 대한 훌륭한 보상이 아닌가! 하나님의 법과 원칙과 목적을 배우고, 자녀들에게 그러한 점들을 가르친 부모들로부터 교육받은 자녀들은 공통적으로 그러한 감사를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그 부모들이 완전하고, 유식하고,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녀를 가르치는 데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모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한 노력이 효과가 있고 실용적이며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해 볼 수 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을 방문해 보거나 여호와의 증인의 큰 대회에 참석해 보라. 당신은 틀림없이 거기에 참석한 많은 청소년들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을 것이다. 그 어린이들이 완전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들은 인생이 무엇이고 미래는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한다. 그들은 그 해답을 발견하고 있다. 그러한 점들과 관련해서 그들의 호기심이 충족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어린이들이 다 호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게 한다. 그리고 당신이 부모라면 그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될 때 부모가 느끼게 될 즐거움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성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와 같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언 23:2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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