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 감사절”—그 꿈과 현실
‘사라 J. 헤일’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었다. 그 꿈은 36년 후에야 성취되었다. 그 부인의 꿈은 무엇이었는가? 1863년 9월에 그 자신이 기술한 것처럼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매년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 감사절로 지키도록” 마련하는 것이었다.
여성 잡지(「고디스 레이디스 북」)의 편집자였기 때문에 “미국에서 정기 간행물을 구독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의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사라’ 부인은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정부 관리들과 지도적인 사람들에게 수백통의 편지를 써 보냈다.
일반적으로 이 ‘헤일’ 부인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1863년 10월 3일에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추수 감사절 선언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링컨’은 남북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풍성한 수확과 맑은 하늘”을 즐기고 있다고 말하였다. 또한 “육해군의 발전”과 산업의 성장 및 인구 증가에 대해 지적한 후 그러한 “훌륭한 것들은 ··· 지존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처럼 ‘링컨’은 전국적으로 “추수 감사절”을 선포하였다.
그러면 ‘링컨’ 대통령은 어떤 형태의 국경일을 제정하였는가? 왜 일부 사람들은 그에 반대하였는가? 그 꿈은 실현되었는가? 그러한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유익하다.
그것의 시작은?
미국 학생들에게 추수 감사절의 유래를 물어 보면 순례자, ‘인디언’ 혹은 그들이 함께 즐겼다는 칠면조 요리에 관해 이야기한다. 대부분이 전설적인 내용이지만 그 중 몇가지는 실제 있었던 일로 보인다.
1620년에 하나의 작은 영국인 거류지가 미국의 광대한 황야의 한쪽 끝에 생겨났다. 첫 겨울에 그들 중 거의 절반이 질병과 좋지 않은 기후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1621년 가을에는 풍작을 이루어 많은 곡식을 거둬 들였다. 그리하여 축일—삼일간의 축제—이 선포되었다.
그 거류지는 ‘성도’로 알려진 종교적 집단과 그들이 ‘이방인’이라고 부르는 다른 거주자들로 형성되어 있었다. 후자가 대다수를 차지하였으며 그 대부분은 미국에서 돈을 벌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 집단이 종교적인 축일을 갖는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 이유는? ‘이방인’들과는 달리 ‘성도’들은 근본적으로 축하식에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배경을 고려해 보면 그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역사에서 순례자(‘경건한 여행자’)로 불리우는 그 ‘성도’들은 교리상으로 ‘청교도’의 분파였다. ‘청교도’란 ‘프로테스탄트’ 교인들로서 그들이 ‘천주교의 분신’이라고 생각한 영국 국교를 ‘정화’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일부는 포기하고 분리주의자가 되었다. ‘성도’를 포함해서 많은 분리주의자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다른 곳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실질적으로는 ‘청교도’들이었다. ‘청교도’의 가르침은 ‘가톨릭’교나 영국 국교에 “살며시 침투한” 이교 전통에 강력히 반대하였다. 그들은 그 당시 ‘유럽’에서 널리 시행되던 대부분의 축하 의식을 반대하였다. 초기 추수 감사절에 대해 한 역사가는 사실상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한 거류지들에서 그 축일을 전반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크게 영향을 준 한 가지 점은 ‘청교도’들이 ‘크리스마스’를 천주교의 허례허식적인 유물로 반대한 점이다.”
그러면 순례자들은 그 삼일 동안 어떤 종류의 축제를 즐겼는가? 신화적인 내용도 많지만 초기 기록에 나오는 점들을 몇 가지 종합해 보면 행진이 있었으며 그 정착자들은 총을 사용하여 그들의 능력을 “발휘” 혹은 과시하였다. 그 다음 90명 정도의 ‘인디언’ “손님”(아마도 초대 받지 않은)이 활과 화살로 그들의 무용을 자랑하였다. 물론 큰 잔치가 베풀어졌다.
그 때 즐긴 요리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쨌든 그 요리 외에도 ‘인디언’들이 사슴 다섯 마리를 가져 와서 사슴 고기가 곁들여졌다는 점에는 대체적으로 의견이 일치된다. 그러나 현대의 추수 감사절 식탁에 오르는 칠면조 요리도 있었느냐 하는 점은 분명치 않다. “가금”(家禽)이란 말에는 오리나 거위 뿐만 아니라 야생 칠면조도 포함되는데 전설에서는 “가금”을 먹었다고 하였다.
그 다음해에 그러한 축일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은 흥미있는 일이다. 농사도 잘 되지 않았고,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순례자들은 축하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였다. 사실상 순례자들이 매년의 축하식을 제정하였는가 하는 점은 의심스럽다. 그들은 행복하다고 느낄 때 감사드리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 기원은 더 소급되는가?
이상에 말한 내용이 지금 수백만이 지키는 추수 감사절의 기원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그러한가?
현재의 축하 의식이 순례자들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음은 분명하지만 순례자들은 어떻게 추수 감사절을 생각하게 되었는가? 역사가들에 의하면 ‘추수 감사제’는 가장 오랜 축일 중에 들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순례자들의 시대에는 몇개의 다른 추수 기념식이 존재하였다.
그 순례자들이 영국에서 직접 북미로 간 것이 아님에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그들이 ‘네델란드’로 피하였다. 종교적으로는 자유가 있었지만 산업적인 생활 방식, “새로운” 언어, 경제적인 상태 때문에 그들은 실망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들은 ‘네델란드’에서 ‘메이 플라우어’호를 타고 “신세계”로 가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네델란드’에 있을 때 ‘유럽’의 추수 감사제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초기의 미국 식민지들에서 풍작이 들면 특별한 축하식이 거행되었다. 그러므로 1621년의 축하식에 그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결국 그 축일은 ‘뉴우잉글랜드’ 지방에서 매년 지켜지게 되었다. 그러나 전국적인 추수 감사절이 처음으로 선포된 것은 1789년 ‘조오지 워싱턴’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그 후의 대통령들은 그 전통을 계속 지키지 않았다. ‘토마스 제퍼슨’은 두번의 임기중에 그러한 습관을 비난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결국 1863년에, ‘에이브러햄 링컨’이 추수 감사절을 매년 지키는 국경일로 정하였고 그 후의 대통령들도 그 전통을 받아들였다.
반대와 변화
왜 일부 사람들은 그에 반대하였는가? 한 가지를 들자면 많은 지사들이 그것을 종교에 대한 국가의 간섭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 축하식은 더욱 정치성을 띠게 되었다.
예를 들어 ‘헤일’ 부인과 그의 지지자들은 그 축일을 애국심과 종교를 강조하는 날이 되게 할 생각이었다. 그 부인은 이렇게 기술하였다. “세계 방방곡곡에서 우리 나라의 권위가 알려질 것이고 ··· 모든 미국인은 ··· 가장 순수한 애국심과 그가 누리는 종교적인 특권에 깊은 감사를 느끼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가졌음은 「미국 역사서」라는 책의 이러한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교직자들이 추수 감사절에 정치적인 설교를 하는 것은 일종의 습관이 되어 버렸다. 19세기 초의 여러 해 동안 그들의 설교는 특히 당파적이었다.”
시간이 흘러 가면서 여러 가지 내용이 그 축하식에 부가되었고 전설도 많이 생겨났다. 그러나 아마 가장 급격한 변화는 근래에 있게 된 변화일 것이다.
현대적인 양상
오늘날 추수 감사절의 습관에 대하여 반대하는 소리가 점점 높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현대적인 추세와 습관을 고려할 때 그 날을 “감사절”이라고 부르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여러 지방에서 추수 감사절은 ‘크리스마스 시즌’—1월 1일 정초까지 계속되는 ‘축제 기간’—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추수 감사절(지금은 11월의 네째 목요일)은 상인들이 ‘대매출’을 개시할 때인 것이다.
또한 그 날은 많은 사람들이 ‘스포오츠’에 ‘전념하’는 날이 되어 가고 있다. 「내셔널 옵저어버」지는 한 남자가 미식 축구 시합의 “하프 타임” 중 재빨리 식사를 끝내려고 아내를 재촉한 일에 관하여 보도하였다. “그 가엾은 아내는 많은 시간을 들여 칠면조 요리와 그에 곁들이는 음식을 준비해 놓았는데 그 남편은 기도를 드리고 식사를 마친 후 다시 ‘텔레비젼’ 앞에 가서 앉았다. 그러는 데 단지 9분 밖에 안걸렸다.”
그러한 일은 극단적인 경우이겠지만 점차 ‘스포오츠’가 더 강조되고 상업주의적인 경향이 점증함에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이 감사하는 태도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그 날이 좋은 말로 “세속화”가 되었는가?
그것은 전반적인 ‘종교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교회와 교직자들에 대하여 사람들은 종종 일종의 혐오감과 경멸감을 나타낸다. 심지어 어떤 글은 “텅빈 그리스도 교회는 채워질 줄 모른다”고 하면서 “굶주린 양들의 배를 가장 편리한 일종의 정치적 ‘인스탄트’ 식품으로 채우”려는 교회 지도자들을 비난하였다.
대부분의 미국 교회들에 대하여 환멸감을 느끼는 것과 더불어 농업 인구의 감소를 들 수 있다. 현재는 6‘퍼센트’ 이하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확실히 식품이 ‘슈우퍼 마아켓’에서 자라나는 것이 아니며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 있는 것을 꺼내 먹으면 되기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은 특히 추수와 관련된 축일에 별로 관심이 없게 된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축일은 가족이 함께 모이는 때이다. 그리고 그 날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날로 생각하는 성실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스포오츠’가 강조되고 폭식, 폭음의 경향이 늘어나면서 경건한 경향은 눈에 띄게 감소되었다. 특별한 식사를 하는 것이 추수 감사절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 날과 관련된 사항이나 현재의 양상을 고려할 때 하나님의 승인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그 축일에 대해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보아야 한다. 과음과 과식에 대한 성서적인 입장은 잘 알려져 있다. (베드로 전 4:3; 잠언 23:20, 21) 그러나 그러한 국가적인 감사절에 관한 성서의 견해는 어떠한가?
성서적인 축일인가?
‘사라 헤일’ 부인은 국경일로 정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여호와께서 수장절을 마련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매년 추수 감사절을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그 부인은 무엇을 이야기한 것인가? 오늘날도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유대’인들에게 수여하신 ‘모세’의 율법에서 추수와 관련된 축일을 여호와 하나님이 제정하셨기 때문에 ‘추수 감사절’을 지키는 것이 성서적이라는 것이다. (레위 23:15-17) 사실 ‘이스라엘’의 주요 절기 세개가 다 추수와 직접 관련이 있었다.—출애굽 23:14-17.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해 그러한 ‘유대’ 절기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갖게 되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그분은 단 한 가지 축하식을 제정하셨다. 그분은 추종자들에게 그의 죽음을 기념하라고 하셨다. 그 날을 지키는 것은 그것이 유일한 기념일이란 점에서도 독특한 것이었다.—누가 22:19, 20.
사실상 사도 ‘바울’은 아직도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 관하여 염려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갈라디아 4:10, 11) ‘바울’이 그렇게 염려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자기가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이전의 그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종교적 의식에 고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교 정신에서 빗나가고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에베소 5:20에 나오는 원칙을 적용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은 ‘범사에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하였다. 그렇다. 하나님의 마련과 보호에 대하여 계속 감사하는 태도를 나타내도록 여러 번 강조되었다. “감사”와 “감사함”이란 낱말이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에 40회 이상이나 사용되었다.
그와는 달리 단 하루의 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매년 감사절을 12월에 지켰던 이교 ‘로마’인들을 생각하게 하였을 것이다. 2세기의 한 필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그리스도인]는 신성 모독죄를 범하는 자들이란 비난을 받고 있읍니다. 왜냐 하면 여러분과 함께 도에 지나치고 단정하지 못하고 부정한 태도로 ‘가이사’의 축제를 기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현대의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축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현재의 여러 가지 습관을 보고 고린도 후서 6:14의 이러한 말을 생각하게 될지 모른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리요?]”
많은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이 그 날에 세속적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될게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 기회를 가족과 친지들과 교제를 즐기는 기회로 삼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정신을 나타내야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칠면조나 다른 식품을 마련하셨기 때문에 그 음식 자체가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참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고린도 전서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말을 고려해 보자. 심지어 정당한 음식을 먹는 일이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일까지도 삼가는 것이 지혜롭다고 말하였다. ‘당신의 형제의 양심을 존중하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금년 “추수 감사절”과 관련하여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일년에 하루의 감사절을 지킨다는 인상을 주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으로부터 연중 감사하는 정신 태도를 갖도록 격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