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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동 인도로부터의 믿음의 이야기
  • 깨어라!—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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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7
깨77 7/22 14-16면

북동 인도로부터의 믿음의 이야기

“탕훌 나가”라는 말을 들어 본 일이 있읍니까? 그것이 나의 부족 이름입니다. 우리는 ‘방글라데시’, ‘버마’ 및 중공에 둘러싸여 있는 북동 인도 ‘마니퍼’ 주의 동쪽 구릉 지대에 살고 있읍니다.

이곳은 아름다운 녹색 언덕과 풍요한 골짜기가 있는 지역입니다. 여러 세기에 걸쳐서 우리는 약 스물 아홉 가지 족속을 형성하였는데, 각 부족이 각기 독특한 방언과 민속과 의상 ‘스타일’을 가지게 되었읍니다. 최근까지 ‘나가’인들은 나무와 돌 숭배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 곧 물활론자들, 사람의 목을 사냥하는 “야만”인이었읍니다. 우리는 나무나 돌에게 돼지와 개를 제물로 바치곤 하였읍니다.

이 지역에서의 생활은 모든 마을이 거의 같습니다. 만일 당신이 내가 사는 곳을 방문한다면, 마루가 있고 흑벽이 있는 스무채 내지 마흔채의 작은 집을 볼 것입니다. 지붕은 마른 야생초를 두껍게 덮은 초가지붕입니다. 이러한 가옥들은 먼지나는 포장되지 않은 여러 길가에 짓습니다. 촌락마다 통치 연로회가 있읍니다.

이러한 집 사이의 좁은 길로 다니면 돼지, 개 그리고 닭이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것을 봅니다. 어떤 집 앞에는 인간의 두개골이 걸려 있읍니다. 이러한 것들은 부족들이 수위 다툼을 하던 냉혹한 과거를 상기시켜 줍니다.

대부분의 우리 부족민들은 자급 자족을 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가축을 기르며 근처 층층대식 언덕의 경사지를 경작합니다. 우리는 주로 벼, 옥수수, 감자 그리고 생강을 재배합니다.

여자들이 남자들과 함께 김을 매고 농작물 재배를 위하여 토양을 돌보는 사실은 흥미있읍니다. 여자들이 대바구니에 야채와 땔나무를 넣은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읍니다. 이러한 바구니를 그들은 등에 지며 그들의 이마에 두른 넓은 대나무 띠로 지탱합니다. 여자들은 이러한 일과 집안 일 외에도, 고기잡이, 피륙을 짜는 일 및 시장에서 물건파는 일을 합니다.

근면한 이들 여자들의 옷은 단순하지만 색채는 화려합니다. 허리를 감은 ‘쇼올’ 같은 옷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스커어트’입니다. 이 지방 여자들이 손으로 짠 이 ‘스커어트’는 주로 선홍색이며 희거나 검거나 파란 혹은 노란색 가로줄무늬가 있읍니다. 비슷한 옷으로 상체를 가립니다.

새로운 종교

이제 믿음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읍니다. 그 일은 ‘마니퍼’ 주의 수도인 ‘임팔’에서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시작되었읍니다. 어느날 아침 ‘여호와의 증인’ 두 사람이 나의 기숙사로 찾아 왔읍니다. 그들은 성서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왕국이 온 땅을 아름다운 낙원으로 바꾼다는 소식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읍니다.

나는 그들이 전하는 소식을 좋아하였지만, 즉시 반대에 부딪쳤읍니다. 기숙사 감시인이 ‘여호와의 증인’들은 다른 종교와 다르다고 말하면서 증인들과 연구하지 못하게 하였읍니다. 그렇지만 나는 ‘임팔’에 있는 그들의 집회 장소를 찾았으며 증인들과 매주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러나 얼마 후 나는 이 연구를 중지하였읍니다. 증인들이 하나님 자신의 이름이 「‘히브리’어 성서」에 수천번 나온다고 지적하였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을 믿기를 거부하였읍니다.—출애굽 6:3; 시 83:18; 이사야 12:2; 26:4.

다음에 의외의 일이 발생하여 나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났읍니다. 어느날 나는 ‘데브 라지 덧’ 저 역사 교과서 「세계 문명 개관」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읍니다. 157면 “그리스도교의 발생”이라는 장에서 나는 이러한 말을 읽게 되었읍니다. “예수는 기존 질서의 교란자였으며 ‘유대’인의 하나님 여호와를 모독한 자로 단죄받았다.” 다시 한번 “여호와”라는 이름에 부딪친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말이 옳았단 말인가? 나는 성서 연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읍니다.

오래지 않아 나는 내가 믿기 어로운 또 다른 것에 부딪쳤읍니다. 증인들은 나에게 성서로부터 나의 교회의 관습 중 일부가 이교에서 기원하였다고 지적하여 주었읍니다. 그것을 받아 들이는 것은 무리인 것같이 보였읍니다. 나는 다시 역사책을 보았읍니다. 163면의 “그리스도교 문명의 이교와의 관련성”이라는 제목하에, 이러한 말이 있었읍니다.

“이 그리스도교 문명은 단번에 서양으로 파급되지 않았다. 또한 그 문명이 고대 이교 문명과 완전히 절연하지도 않았다. 그 문명은 고대 이교 세계 가운데서 성장하였다. 그것은 그것이 승인할 수 있는 이교 습관을 받아 들이기까지 하였다. 그리스도교는 이교 문화를 변화시키고 대치할 정도로 그 문화를 파괴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여호와의 증인’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확신하였읍니다. 나는 ‘임팔’에서 나의 고향으로 정기적으로 갈 때마다, 새로 배운 이러한 성서 진리를 나의 형에게 이야기하였는데, 그 때 그는 ‘나가’의 폭력주의자였읍니다. 후에 농부인 나의 사촌도 정기적인 우리의 성서 토론에 가담하였읍니다. 오래지 않아 그들도 ‘여호와의 증인’들이 진리를 가르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읍니다.

반대가 강화되다

우리가 증인들과 성서를 연구한다는 것이 마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읍니다. 지방 교회 지도자들은 불쾌하게 여겼읍니다. 방문한 교역자가 어느 교회 예배 중에 ‘여호와의 증인’들은 거짓 예언자들이고 ‘사단’의 증인들이라고 비난하였읍니다. 예배가 끝난 후에, 나의 형과 나, 그리고 나의 사촌은 그를 찾아 갔읍니다. 우리는 성서로부터 우리가 교회의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였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우리와 이치적으로 말할 수 없게 되자 화를 냈읍니다. 옆에 있던 우리 마을의 교역자는 비꼬는 투로 “어느 신학교에서 공부하였는가?” 하고 질문하였읍니다. 그 후 얼마 안있어 우리 세 사람은 교회에 탈퇴서를 제출하였읍니다.

교회측에서는 우리 아버지로 하여금 우리에게 재정적 지원을 끊게 하려 하였읍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읍니다. 다음에 마을의 원로들이 우리로부터 250‘루우피’(28‘달러’)를 빼앗을 계획을 세웠읍니다. 우리가 그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우리를 마을에서 쫓아내고 집을 빼앗고 생계 유지를 불가능하게 하겠다고 위협하였읍니다. 그러나 인도의 헌법이 숭배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우리에 대한 불평을 법정에서 해결하라고 제의하였읍니다. 그러자 그들의 위협은 위협으로 그쳤읍니다.

인내는 결실을 맺다

나를 가르친 ‘여호와의 증인’은 매우 격려적인 사람이었읍니다. 그는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일이 참 숭배를 받아 들이는 사람들에게 아주 보편적이라고 설명하였읍니다. 그는 성경 마가복음 13:13을 지적하였읍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많은 사람들이 국가적 주권을 위하여 그들의 생명을 희생하였다는 것을 생각하였읍니다. 그렇다면 온 우주의 최고 주권을 위하여 나는 죽을 각오가 더욱 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반대는 계속되었읍니다. 몇몇 사람들은 내가 성서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리며 ‘여호와의 증인’들은 나의 어리다는 사실을 이용한다고 말하였읍니다. 삼촌은 내가 먼저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물질적으로 자립한 후에 종교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물질주의적인 유혹을 물리쳤읍니다. 아직 고등 학생이었지만, 여호와께 나의 생명을 바치고 1975년 2월에 침례를 받았읍니다.

인내는 풍부한 보상을 가져다 주었읍니다. 그 후 얼마 안있어 나의 형과 사촌도 침례를 받았읍니다. 나의 사촌은 침례받고자 대회에 갈 비용을 장만하기 위해 그의 유일한 소유, 즉 농지를 가는 데 사용하는 물소를 팔았읍니다. 내가 ‘임팔’에 계속 있으면서 마침내 전 시간 복음 전도자가 되었으며, 한편 나의 형과 사촌은 우리 마을로 돌아가 거기에서 성서 진리를 전파하였읍니다.

마을의 원로들은 그들의 반대를 계속하였읍니다. 그들은 회의를 열고 우리를 반대하는 이러한 결의문을 작성하였읍니다.

우리는 우리의 종교를 바꾼 대가로 50‘루우피’(5.50‘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

벌금을 내지 않는 경우에는 그들이 우리의 가옥과 재산을 파괴한다.

다른 ‘여호와의 증인’이 우리 마을을 방문해서는 안 되며, 그들을 맞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벌금을 문다.

만일 나의 아버지가 나에게 계속 재정적 도움을 베푼다면, 응분의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반대에도 굽히지 않기로 결심하였읍니다. 다행히도, 그들간에도 의견의 불일치가 있어서, 원로들은 그들의 위협을 이행하지 못하였읍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대를 받으면서도 우리가 인내하였기 때문에 더욱 큰 보상이 있었읍니다. 어떻게?

우리 세 사람이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기 때문에, 나의 아버지는 우리의 생활이 변화된 것을 관찰하였읍니다. 아버지도 교회와 마을 원로들의 행동이 참 그리스도인들과 부합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였읍니다. 참으로 반갑게도, 아버지도 교회에 탈퇴서를 제출하였읍니다. 나의 아버지는 이제 ‘여호와의 증인’들이 참으로 성서적인 종교를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 가족 전체가 정기적으로 성서를 연구하고 성서 원칙을 우리 매일 생활에 적용시키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마음 흐뭇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외딴 지역에까지 진리가 전해지게 해 주신 데 대하여 그분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감동적인 믿음의 이야기의 시초였읍니다.—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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