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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77 9/22 12-16면
  • 나의 생애 중 두 가지 사랑 가운데서 택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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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생애 중 두 가지 사랑 가운데서 택하는 일
  • 깨어라!—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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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7
깨77 9/22 12-16면

나의 생애 중 두 가지 사랑 가운데서 택하는 일

감독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터져 나왔다: “중지! 이봐, 그 장면 다시. 이번엔 좀 더 실감나게. 보는 사람이 마치 ‘드라큘라’의 다음 희생자가 될 것처럼 좀 불안을 느끼게 말야!”

1973년 7월, 우리는 영국 ‘런던’에서 ‘밤피라’(흡혈귀)라는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다. 나는 유명한 영화 배우 ‘데이빗 니벤’의 상대역인 여주인공역을 맡고 있었다. 내게 있어서 그 영화는 일생의 야망을 달성시킨 작품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나의 목표는 연예인으로 성공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1966년 졸업을 하고 나서 나는 ‘두들타운 파이퍼’라는 가수단의 일원이 되었다. 우리는 미국, ‘캐나다’, 및 ‘포르토리코’ 전역을 순방하며 일류 ‘나이트 클럽’과 극장들에서 공연을 하였다. 그러나 1968년에 나는 좀더 큰 일을 찾아 ‘파이퍼’ ‘그룹’을 떠났다.

그 당시 가장 인기있던 ‘텔레비젼 프로그램’인 ‘라프-인’ ‘프로’의 ‘프로듀서’였던 ‘조오지 쉴래터’는 내게 “크레이지웨이커스”라는 자기 단의 배역을 친절히 설명해 주면서 그 일원이 되라고 강력히 권하였다. 나는 자동차 사고를 당하여 회복중에 있었고, 그 사고로 친구 하나가 죽었기 때문에 몹시 마음이 상해 있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은 바로 내게 필요한 자극제였다. 그리하여 한번의 ‘텔레비젼 시이즌’을 통하여 일약 나는 수백만의 미국인들에게 “비키니 걸”로 잘 알려지게 되었다.

출연 교섭은 홍수처럼 쇄도하였다. 1969년에 ‘봅 호프’는 자기의 연례 월남 공연에 나를 동반하였으며, 거기서 우리는 위문 공연을 하였다. 후에 나는 ‘에디 피셔’, ‘앨런 킹’ 및 ‘부디 해킷’ 등 유명한 연예인들과 함께 ‘라스베가스’에 등장하였다. 내 ‘프로’는 노래, 춤 및 ‘코메디’로 엮어진 30분간의 ‘프로’였다.

1973년 어느날 나의 ‘매니저’는 영국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았다. ‘라프-인’이란 ‘프로’를 쓰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제레미 로이드’가 공포물인 영화 희곡을 썼는데 내가 주연이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드라큘라’ 아내 역인 ‘밤피라’ 역을 해낼 수 있는 사람도 나뿐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기꺼이 수락하였다. 이것은 내게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이전에 소소한 영화 두 편에 출연한 일이 있었지만 그 중 아무 것도 빛을 보지 못하였다.

그 영화 촬영은 영국에서 하게 되어 있었으며 두 달 가량 걸릴 예정이었다. 그리하여 7월초 나는 짐을 꾸리고 떠났다. 이것이 내 생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것이며 그 결과 매우 힘든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새로운 사랑의 시작

얼마 안있어 나에게는 가족보다 더 가깝고 따뜻하고 친밀한 관계가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오해하지 말라. 내게는 아주 훌륭하고 친밀한 가족이 있었다. 나와 내 형제들을 부양하고 인도해 주신 아버지와 우리를 돌봐 주신 어머니가 계셨다. 그러나 나의 새로운 우정 관계에는 차원이 다른 영적인 면이 있었다. 나의 사촌 ‘페기’로 말미암아 이런 일이 있게 되었다.

‘페기’도 한때는 연예계에서 활동하였으며, 많은 연예인들이 그렇듯이 자유 분방하게 생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1972년 갑자기 그에게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그가 성서 연구생이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변화가 얼마나 가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한동안 의구심을 품고 관망하였다. 그러나 그의 변화는 진실한 것이었으며, 그리하여 나도 결국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성서 연구를 하기로 동의하였다.

내가 서너번 연구를 했을 때 ‘런던’으로부터 출연 요청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떠났으며, ‘페기’는 “계속 연구하라”는 격려를 줄곳 보냈다. 내가 도착한 다음날 즉 월요일에 나는 ‘여호와의 증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남자는 매우 점잖은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듣고 만날 약속을 하였다.

바로 그날 ‘유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오늘 저녁 꼭 와야 해요. 「파수대」 연구를 예습할 거예요” 하고 알려 왔다. “파수대” 연구라니? 나는 실제로는 그가 뭘 하겠다는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어떻든 가겠다고 동의하였다.

거기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었다. ‘로빈’과 ‘유나’에게는 네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 중 세명은 내 나이 또래였다. 그들은 실제로 나를 양녀로 삼았지만, 나는 계속 ‘호텔’에 묵고 있었다. 나는 이따금 그들과 저녁 식사를 같이 했으며, 설겆이도 같이 하였다. 나는 그 가족의 식구처럼 환영을 받았으며, 그것은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유나’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 책을 사용하여 나와 함께 성서를 연구하였다. 내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실제로 목적을 가지고 계시며 그의 왕국의 유익이 전세계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배우는 일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라는 고유한 이름을 가지신 실제로 존재하는 인격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시 83:18) 나는 이러한 일들이 너무나 놀라운 것들이어서 촬영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유나’는 ‘튀킨햄’ 운동장에서 8월 1-5일에 ‘여호와의 증인’의 대회가 열린다고 알려 주면서 나도 오라고 격려하였다. 이상하게도, 그 때는 한달 중 꼭 내가 일을 하지 않는 기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회에 참석하였다.

70여개국에서 참석하였으며, 그들은 마치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인 것처럼 서로 껴안고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주위에는 경찰관들도 없었다. 바닥에는 휴지 조각도 떨어져 있지 않았으며 밀거나 욕하는 일도 없었다. 50,000명 이상이 참석하였는데도 말이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같은 분위기를 전에는 본 일이 없었다. 그리고 연설들은 흥미있었으며, 특히 성서 ‘드라마’가 그러하였다.

일터로 돌아왔을 때, 나는 내가 보고 들은 일들을 계속 이야기하면서 분장실로 흥분하여 뛰어들어갔다. 분장실은 비어 있었다. 나는 거리낌없이 들을 만한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계속 이야기하였다. 만일 진정으로 참 종교가 있다면 ‘여호와의 증인’들과 같은 사람들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이 사람들뿐 아니라 그들이 대표하는 하나님도 사랑하기 시작하였다.

다른 사랑

“조금만 더 왼쪽으로 움직여 주실 수 있읍니까? 당신의 아름다운 얼굴 바른쪽 윤곽을 잡고 싶습니다.” 촬영 기사 ‘디————’의 말이었다. 당신이 영화 화면에서 보는 모든 것은 그가 잡은 것이다.

그날 저녁 이전에는 나는 ‘디————’에게 별로 관심을 가져 본 일이 없었다. 그는 육중한 ‘카메라’ 뒤에서 내게 별로 말을 거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가 ‘카메라’ 뒤에서 머리를 내밀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를 “유의”해 보기 시작하였는데, 그는 아주 매력이 있었고, 큰 키에 검은 머리하며 멋있게 생긴 사람이었다.

나는 언제나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에게 즉 조용하고 고독해 보이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껴 왔었다. 그 점을 생각하니, ‘디————’는 전체 ‘세트’ 위에서 내게 환심을 사려고 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자연히 그는 이상한 매력을 지닌 사람처럼 보이게 되었다. 더구나 그는 ‘유럽’에서 제일 가는 ‘카메라 맨’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날 저녁, ‘디————’는 인근에 있는 술집에서 ‘칵테일’을 들자고 나를 초대하였다. 사실상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자신이 따라 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는 매우 자만심에 차 있었다. 그 사람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수줍어하였다. 그 점이 내게는 또 하나의 매력으로 보였다. 매일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고, 별것도 아닌 것들을 이야기하고 웃곤 하였다.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가 함께 있기만 하면 좋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밤에 성서 연구를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나의 이야기 속에는 성서 연구에 관한 화제도 들어 있었다. 매일 나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섬기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놀라운 점들과 그분께서 지상을 낙원으로 회복시키실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는 점에 관하여 열심히 이야기해 주었다. ‘디————’는 언제나 열심히 들었으며 이런 일들을 좋아하느냐고 내가 물을 때마다 긍정적인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하였다.

우리는 ‘유럽’에서 가장 비싼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였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아름답고 멋진 선물들을 받았다. 그 사람은 정말로 보석과 같이 매력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친절하고 너그럽고 사랑스럽고 사려깊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의 ‘유모어’ 감각은, 전형적인 영국풍이었으며, 매력적이었다. 나는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일생에 처음으로 나는 결혼을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그와 함께 있을 때면 언제나 행복한 느낌을 가졌다.

8월 어느 토요일 저녁, 우리가 ‘템즈’ 강을 천천히 유람하고 있을 때, ‘디————’가 결혼 신청을 해 왔다. 내가 처음 느낀 기분은 “낙원에서 영원히 함께 산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성서에서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고 한 말이 귀에 쟁쟁하였다.—시 37:29.

둘 사이의 사랑이 자라가다

촬영은 9월에 마쳤고, 그리하여 나는 개인 일을 정리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매주 적어도 세번씩 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가 없고 보니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성서 연구를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었고, 지방 회중의 ‘여호와의 증인’들과 더 자주 교제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나와 함께 성서 연구를 하던 ‘프랭크’와 ‘아네트’ 부부는 전 시간 전파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나도 이러한 활동에 그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그 일을 정말로 즐거워하였다. 그리하여 내가 ‘디————’에게 보내는 편지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일에 관하여 주로 쓰게 되었다.

내가 그에게 편지할 때면 언제나 예수께서 그의 추종자들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바와 같이 하나님의 왕국이 임해서 하나님의 뜻이 정말로 지상에 이루어지게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하였다. (마태 6:9, 10) 하나님의 왕국의 임하심은 현재의 모든 통치 제도들의 종말을 의미할 것이며, 성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바와 같다고 설명하였다.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다니엘 2:44) 하나님의 다스림이 확립되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계시 21:4.

이러한 약속들은 내게 너무나도 절박한 것들이었으며, 나는 ‘디————’가 성서 연구를 시작하고, 또 그들을 배워 믿게 되기를 몹시 원하였다. 나는 ‘로빈’의 주소와 전화 번호를 그에게 적어 보냈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로빈’에게 알아 보면 ‘디————’가 그를 한번도 만나 보려고 하지 않았음이 나타났고, 이 일은 나를 슬프게 하였다.

1974년 1월 5일, 나는 침례를 받음으로써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나의 헌신을 나타냈다. 약 3개월 후, ‘디————’가 미국에 건너 왔다. 그는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으며, 그 일을 마치면 영국에서 살기 위해 나를 데리고 갈 작정이었다. 그는 저택을 사놓았으며, 그 밖에도 신혼 살림살이도 장만해 놓고 있었다.

나는 그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을 생각하니 몹시 동요를 느끼게 되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나는 ‘프랭크’에게 같이 가 달라고 졸랐다. ‘디————’가 영적인 문제에 전혀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내게 실제로 불안을 느끼게 하였기 때문이다. ‘프랭크’는 내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과 원칙에 대한 지식과 사랑을 근거로 내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슬기롭게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그는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리라는 점을 확신시켜 주었다.—고린도 전 10:13.

일은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내가 ‘디————’를 쳐다 보는 순간 나의 심장은 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아가 4:9) 그러한 기분은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내게 다가와서 나를 따뜻하게 포옹하려는 자세를 취하였다. 나는 재빨리 오른 손을 내밀었으며 ··· 그리하여 우리는 악수를 하였다. 그의 점잖은 얼굴에는 몹시 당황한 빛이 나타났다!

내 입장을 분명히 밝히다

‘디————’는 우리의 계획을 마무리 짓기 위해 점심을 함께 하자고 나를 초대하였다. 나는 그 식당에 조명이 밝고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인지 꼬치꼬치 확인하였다. 결국 우리는 길가에 있는 식당 밖에 기분이 상해 앉아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우리가 떨어져 있는 동안 큰 변화가 있었어요. 편지로 내가 최근에 발견한 종교에 관해, 그리고 우리가 여호와의 은총을 얻으려면 그분의 표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렸죠. 그래서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마칠 때까지 막지 말고 끝까지 들어 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어요.”

그리고 나서 나는 결혼이란 하나님께서 창시하신 하나님의 마련이라는 것과, 그러므로 결혼이 진정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분의 법을 꼭 지켜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창세 1:27, 28; 2:22-24; 마태 19:4-6) 또, 내가 여호와께 순종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참 하나님의 종인 사람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성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 안에서만” 결혼하도록, 그리고 또한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리요?]” 하고 교훈한다.—고린도 전 7:39; 고린도 후 6:14.

그뿐 아니라, 나는 독신자들의 행동에 관한 성서의 표준을 거듭 강조하였다. 그들은 성관계를 가질 자격이 없으며, 이것은 결혼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히브리 13:4) 또한 더러움과 방종에 관하여 성서가 어떻게 경고하는지도 설명하였다.—갈라디아 5:19-21.

나는 이러한 점들을 설명하는 데 하나님께서 도와 주실 것을 아침 내내 기도하였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점들을 기억할 수 있었던 일에 대하여 참으로 감사하였다. 그러나 ‘디————’가 일하러 갈 시간이 되었다. “오늘밤 나와 같이 저녁을 들면서 우리 좀더 이야기하기로 하죠.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매우 진지해 보였다.

나는 천천히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매우 마음이 상쾌하였다. 그러나 나는 ‘디————’에 대하여는 크게 실망하였다. 나는 그가 “언제부터 성서 연구를 시작할까요?” 하고 말하기를 기대하였었다. 그러나 나는 필요하다면 여호와께서 그 사람에 대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욕망과 사랑을 내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없애 주실 것을 기도하였다.

나의 결정에 대하여 감사함

일곱시 반경 ‘디————’는 내게 전화를 걸어,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하였다. 나는 다음 단계를 취하기 전에 그의 의도가 어떤 것인지 꼭 알아 내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가 성서 연구를 위해 ‘로빈’을 왜 한번도 만나 보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의 모든 편지 가운데서 내가 그렇게 많이 써 보낸 영적인 문제들에 관하여 일언반구의 응답도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달라고 추궁하였다. 만일 그 이유를 이야기해 줄 수 없다면 우리의 관계와 모든 것을 잊어 달라고 말하였다. 오랜 침묵이 흘렀다.

드디어 그는 “만일 내가 그 이유를 이야기한다면,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야기가 잠시 줄다리기를 하다가 내가 양보하지 않자, 그는 “나는 강신술자 교회에 나가는지가 여러 해 된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자기 죽은 아버지와 밀접히 그리고 끊임없이 접촉해 왔다고 하였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어떤 영의 형태로 살아있음을 믿으며, 자주 자기 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자기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나는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수개월 동안 그는 내가 그런 사실을 알면 분명히 결혼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자기가 진짜 믿는 것과 하나님에 관한 생각에 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마치 사기를 당한 피해자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혼 생활에서 내가 바라던 것 즉 ‘로빈’과 ‘유나’ 부부 또는 ‘프랭크’와 ‘아네트’ 부부가 가지고 있는 그런 아름다운 것을 결코 가져 올 수 없는 관계에 나는 너무나 깊이 빠져 있었다! 조용히 앉아 들으면서 나는 그에 대하여 내가 느껴왔던 모든 감정의 잔재를 씻어 버리기 시작하였다.

그 다음 나는 전도할 때 문간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하듯 그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강신술의 근원을 설명하면서 그가 영적으로 처해 있는 커다란 위험성을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그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무의식이며 그분의 일부가 아무데도 살아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성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느니라.]”—전도 9:5; 에스겔 18:20.

그러므로 그가 통신하고 있는 것은 그의 아버지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체 가장하는 악귀라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고린도 후 11:14, 15; 에베소 6:11, 12) 그리고 특히 실제로 참 하나님이 계시며, 과거에 그가 어떤 일을 했다 해도 여호와를 섬기려는 마음으로 그분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그를 받아 들이실 것임을 강조하였다.—이사야 55:7.

내가 작별을 고하고 수화기를 놓자마자, 나는 남은 일생 동안 후회를 할지도 모를 심각한 잘못으로부터 나를 지켜 준 여호와의 원칙에 나타난 지혜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하였다. ‘디————’는 우리의 관계를 계속해 보려고 시도했지만,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주 안에서만” 결혼하라는 성서 원칙에 순종하고자 하는 나의 결정에 고착한 것에 대하여 크게 감사하였다.—고린도 전 7:39.

예기치 않았던 사태 발전

미국 방송 회사 즉 ABC ‘텔레비젼’으로부터 출연 교섭을 받은 것이 이 때쯤이었다. 내가 침례받기 몇달 전에 나는 시험 ‘쇼우’ 공연을 했는데, 이제 그들은 그 ‘쇼우’를 정규 ‘프로’로 넣고 싶어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크리스티 러브’라는 역을 맡아야 할 계약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법적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그대로 이행해야 하였지만 성서 원칙에 위배되는 장면은 무엇이든지 거절하였다. ‘뉴우요오크’ 「선데이 뉴우스」지는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그 연속물이 제작에 들어갔을 때, 그는 방정치 못한 ‘크리스티 러브’ 역이 갖는 개념을 나타내기를 거절하였다. 그는 대사를 변경시켜 줄 것을 요구하였다. 비밀 경찰역의 ‘크리스티 러브’가 수사 효과를 위해 속임수를 써야 하는 경우에도, 그는 ‘쇼우’에서 거짓말하는 역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목소리도 높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정숙한 입장이 되기를 고집하였으며, 자기의 성정을 억제하였다.”

그 ‘쇼우’는 국영 ‘텔레비젼’ 방송국에서 26주 동안 방영되었다. 어떤 때는 매주 한 시간짜리 ‘쇼우’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계획표가 부담이 되었으나 저녁에는 내가 그리스도인 집회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오후 5시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끝내야 한다는 점을 모두가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 계약 속에 들어 있었다. 나는 집회에 빠져 본 일이 없으며, 아무리 바쁜 계획이 있어도 전파 사업에 참여할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알차고 행복한 생활

솔직하게 말하여 나는 지금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 나는 사랑스러운 많은 친구들이 있으며, 놀라운 경험들을 해 왔다. 그 중 한 가지는 동부 ‘아프리카’의 ‘말라위’에서와 ‘베닌’에서 자행된 무시무시한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한 박해 사실을 폭로하는 데 참여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작년부터 나는 ‘여호와의 증인’의 전 시간 전파자인 정규 파이오니아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나와 함께 연구한 세 사람이 여호와께 헌신하고 침례받는 것을 보게 된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충고를 청종하는 것이 살아가는 데 최선의 길임을 확신하고 있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결과 즉 하나님 앞에 선하고 깨끗한 양심을 갖게 해 주었다. 실로 여호와는 충실하시며 그분의 사랑스러운 인도를 따를 때 우리는 유익을 얻을 뿐이다.—기고

[13면 삽입]

“우리는 ‘유럽’에서 가장 비싼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였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14면 삽입]

“그는 저택을 사놓았으며, 그 밖에도 신혼 살림살이도 장만해 놓고 있었다.”

[15면 삽입]

“우리는 길가에 있는 식당 밖에 기분이 상해 앉아 있었다.”

[15면 삽입]

“나는 다음 단계를 취하기 전에 그의 의도가 어떤 것인지 꼭 알아내기로 하였다.”

[16면 삽화]

나는 여러 차례 ‘라디오’와 ‘텔레비젼’에 나가서 ‘아프리카’에서 자행된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박해를 폭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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