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77 10/22 8-12면
  • 당신의 자녀들은 관대한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당신의 자녀들은 관대한가?
  • 깨어라!—1977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관대함은 배워야 한다
  • 부모들이 할 수 있는 일
  • 외동 아이
  • 올바른 태도가 중요함
  • 어려서부터 자녀를 훈련시키는 일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길
  • 자녀를 유아기부터 훈련시키라
    가정의 행복—그 비결
  • 당신은 자녀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깨어라!—1980
  • 부모 여러분—자녀를 사랑으로 훈련시키십시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07
더 보기
깨어라!—1977
깨77 10/22 8-12면

당신의 자녀들은 관대한가?

“싫어 그건 내거란 말이야!” 귀에 익은 말인가?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가지라고 하면 자녀들이 그러한 반응을 나타내는가? 어린 아이에게 이기심이나 욕심이 자라면 그 징조로서 이런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자녀들이 이러한 좋지 않은 경향을 발전시키고 나타낼 때 부모가 염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러한 특성을 저지시키기 위해 부모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어떻게 자녀들이 관대하고 마음이 후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칠 수 있는가?

관대함은 배워야 한다

새로 태어난 아기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나 필요로 하는 것을 얻는 것이 급선무이다. 아기는 자기에게 젖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 채우고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을 마련해 주기 위해 부모들이 얼마나 밤잠을 자지 못하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물론 시간이 흘러가면 그 아이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른 훌륭한 특성들과 함께 관대함도 배워야 한다.

그러한 교훈을 받아들일 만한 나이는 아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학령기에 이를 때에 이미 친구를 사귈 수 있고 우정과 그에 수반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들도 있다. 같은 나이라도 어떤 아이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아이들은 유년 시절의 특성을 계속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더 어렵다. 아이가 외동 아들이나 외동 딸일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가족이 많을 경우에는 아이들이 자기들 각자가 필요로 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님을 자연히 알게 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자기의 생각을 나누는 것까지는 몰라도 어렸을 때 이미 음식, 옷 혹은 다른 물질적인 것을 자기 형이나 누이 혹은 다른 가족들과 함께 사용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아이들은 자라서 적응을 잘하고 균형잡히고 성숙한 사람이 된다.

당신의 자녀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관대한가 아니면 이기적인가? 마음이 후한가 욕심꾸러기인가? 너그러운가 아니면 인색한가? 자, 당신이 목적 의식을 가지고 아이들을 관찰한 것이 언제인가? 당신은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유동적인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간단한 한 가지 방법은 자녀들이 다른 아이들과 노는 것을 살펴보는 것이다. 종종 이기적인 경향을 가진 아이는 자기의 장난감을 혼자서만 가지고 놀려고 하며 다른 아이들은 그것에 손도 못대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자신은 다른 아이들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려고 하며 자기 마음대로 안 해 주면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관대한 아이는 보통 자기 물건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사용하려고 한다. 어떤 아이들은 심지어 아주 적극적으로 그렇게 하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물건을 가지지 못한 아이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알아차리고 부모들이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기꺼이 다른 아이들과 함께 물건을 사용하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많은 경우에 그러한 아이들은 부모들이 주는 것과 관련해서 훌륭한 본을 보이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라는 점은 흥미있는 일이다. 또한 그러한 아이는 가정에서도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느끼는 안전은 물질적인 소유에 의존해 있지 않다. 그는 자기 부모들의 사랑 가운데서 안전을 느끼며 사랑이 넘치는 가족 마련 가운데 있으면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신의 자녀들도 그러한가?

부모들이 할 수 있는 일

자녀들이 관대하고 사교성을 갖도록 돕는 데 있어서 중요한 한 가지 요소는 부모들의 꾸준한 격려이다. 자, 네 자녀를 가진 어머니로서 이러한 면에서 성공한 예를 들어 보자. 그 어머니는 자녀들이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곧 함께 앉아서 자녀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 어머니는 형제와 누이로서 이루어진 가족 마련이 하나님께서 주신 귀중한 선물이며 자라감에 따라 서로 돌보아야 한다는 점을 각자가 인식하도록 친절하게 돕는다. 그러면 함께 있을 때 더 나이든 아이들은 동생들을 도와준다. 어머니는 그들 주위에 있는 아이들의 사랑이 없고 거치른 태도를 지적하면서 자녀들에게 어떻게 그런 아이들과 다를 수 있는지를 알려 준다. 자녀들이 합당한 행로에서 벗어나면 그 어머니는 참을성있게 그 아이들을 타이른다. 이 젊은 어머니는 가능한 경우라면 언제나 그들의 문제를 서로간에 해결하도록 한다. 그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형제간의 질투를 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형제와 누이들이 서로 끊임없이 싸우고 다투어야 하는 이유를 인정할 수가 없다. 나는 자녀들이 요구하는 모든 사랑과 관심을 각자에게 베풀므로써 우리의 가정에서 그러한 행동을 뿌리 뽑으려고 노력하였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상당한 결실이 있었다.” 이러한 방식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 어떤 형제들과 누이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싸우는 일을 이 가정에서는 일반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발육이 늦은 한 아이를 포함하여 대가족을 거느린 어떤 부부도 역시 사랑과 관대한 분위기 가운데서 자녀를 양육하는 데 성공하였다. 비슷한 가정 환경에서 볼 수 있는 경우들과는 달리 발육이 늦은 그 아이도 자기 형이나 동생, 누이들과 더불어 관대해야 한다는 격려를 받고 그렇게 할 것이 기대되었다. 그러나 그가 관심의 중심이 되지는 않는다. 또한 다른 사람에 의해 소홀히 취급되거나 열등감을 느끼게 하지도 않는다. 이 아이의 사랑에 찬 특성과 특히 그가 이전에 만나 본 일이 없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보고 그를 만나는 사람들 각자는 감동을 받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자신과 자기 남편이 당연히 기대하였다고 말한다. 자녀들이 그러한 사랑을 나타낼 때 놀라움을 표시하거나 그들에게 상을 주거나 더 나아가서 뇌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서로 사랑스럽게 대하지 않을 때 이 부모들은 놀라움을 나타내거나 낙담하고 있음을 조용히 나타냈다. 장황한 설교를 하거나 말로 야단치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서 이러한 태도가 사라지게 되었다.

당신도 자녀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다루는가, 아니면 그들에게서 관찰할 수 있는 어떠한 이기적인 특성을 단순히 과도기적인 현상이나 나중에 사라질 특성이라고 생각해 버리는가? 부모들이 그렇게 생각하다가 아이의 이기적인 점에 대해 어떻게 손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을 때는 그러한 특성이 너무 깊이 뿌리박혀 변화시킬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들이 그러한 좋지 않은 경향을 처음 발견하게 되면 그들은 그런 경향을 뿌리 뽑기 위해서 즉각적으로 노력할 수 있다. 특히 어머니들이 그러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왜냐 하면 일반적으로 어머니들이 아버지보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녀들이 안전감을 느끼도록 남편과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부모 상호간의 사랑에 대하여 불안을 느끼는 것보다 아이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소유욕을 더 강화시키는 것은 없다. 부모들이 일치하지 않음을 알게 되면 아이는 물질적인 것 즉 소유함으로써 안전함을 느끼고 그가 애착심을 가질 수 있는 것에 더 의뢰하게 될 수 있다. 또한 그 아이는 성품과 다른 사람을 대하는 데 상당히 내향적이 될 수 있다.

때때로 부모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해도 별로 신통한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낙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부모들이 행하는 일은 아이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남자는 어린 시절 즉 자기가 여덟살 정도 되었을 때 있었던 일을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나는 푼돈을 모아서 아주 좋아하는 과자를 몇개 샀다. 나무 아래 앉아 혼자서 그 과자를 다 먹을 심산이었다. 그런데 과자를 막 샀을 때 뜻하지 않게 어머니와 마주쳤다. 물론 어머니는 얼마의 과자를 형과 누이들에게 주라고 하셨다. 형들과 누이들이 과자 수보다 많기 때문에 과자를 나누어 주기가 몹시도 싫었다. 형과 누이들이 과자를 다 먹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면서 얼마의 순간이 흐른 후 형과 누이들은 대부분을 나에게 도로 주었고 나는 재빨리 그것을 가지고 가버렸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내가 무엇을 사면 형과 누이들을 더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동생과 자기가 서로 더 큰 ‘파이’를 먹으려고 서로 다투던 일도 기억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한 가지 규칙을 정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 후부터는 ‘파이’를 자르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먼저 선택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각자가 똑같이 자르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가면서 서로간에 덜 엄격해지게 되었고 더 관대한 태도를 나타내게 되었다.

외동 아이

외동 아이는 함께 놀거나 물건을 나누어 쓸 형제나 누이가 없기 때문에 아주 욕심이 많거나 자기 중심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기적인 경향을 그대로 두면 어른이 되어서도 그러한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한 아이들은 항상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가장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특성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런 외동 아이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6세된 자기 아들이 점차 이기적인 경향을 보이자 그것을 염려한 그의 어머니는 어떤 사람들이 과감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말로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 그 어머니는 다른 계획을 세웠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자기 친정 어머니(그 세 사람이 함께 살고 있었다)와 함께 그 아이가 자기 음식, 거처, 옷 등과 관련하여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얼만큼 의존하고 있는지 깨닫게 해 주기로 하였다. 그 아이가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소유인 어떤 물건을 사용하면 어머니와 할머니는 그 물건이 그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곤 하였다. 얼마 있지 않아 그 아이는 “자기의 것”이 사실상은 어머니와 할머니로부터 받은 선물에 불과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소유물인데 그가 단순히 그것을 사용하라는 허락을 받은 것에 불과하였다. 얼마 후에 그 아이는 요점을 깨달은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 아이는 점차 “자기의 것”을 어머니나 할머니와 함께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점은 점차 많아지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났다. 그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친구들과 놀면서 물건을 같이 사용하려고 하는 새로운—처음에는 소극적이었지만—태도가 나타나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 있지 않아 관대함이 점차 그의 개성의 일부가 되었으며, 특히 자기 어머니, 할머니 혹은 다른 사람들이 아주 그러한 태도를 기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특히 그러한 점이 뚜렷이 나타났다. 모든 어린 아이들이 사랑과 승인받기를 열렬히 바라지 않는가? 분명히 그렇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 외동 아이의 경우도 예외일 수 없다.

올바른 태도가 중요함

자녀가 이기적이 되기를 원하는 부모는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부모가 자녀들로 하여금 이기적이 되도록 부채질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부모들의 태도 때문에 자녀들에게 탐욕이 생길 수 있다. 어떤 부모들은 자기들이 자라면서 가져보지 못한 것은 무엇이나 자기 자녀들에게 마련해 주려고 한다. 자신들은 어려서 열심히 일해야 하였을지라도 자녀들은 편안한 생활을 하게 하기를 원한다. 당신도 그러한 말을 들어 본 일이 있는가? 자, 표면상으로는 이러한 생각이 별로 해로울 것은 없다고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러한 논법에는 몇 가지 중대한 결점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태도를 가진 부모들은 일반적으로 인생의 초기에 자신들이 열심히 일하고, 희생하고, 어려움을 겪은 것이 자신들로 하여금 자신감을 가지며, 성숙하게 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자기 자녀들이 조금도 이러한 경험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자신들이 얻은 것과 같은 훌륭한 특성들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자녀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원하는 대로 부모들이 마련해 준다면 그러한 아이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그렇게 대해 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자라게 될 것이다. 자녀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 용돈을 주면 그들이 스스로 어떤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지 못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하지 않는 성품을 발전시킬 수 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대신해서 모든 것을 다 해 주면 자녀들이 솔선적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 오히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 대신 책임을 져 줄 것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부모들이 어떻게 훈련시키고 가르치느냐에 많은 것이 달려 있다. 당신도 그 점에 동의할 것이다.

물질을 행복과 동일시하는 부모들은 자녀들이 정반대의 것 즉 불행과 좌절감을 느끼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자기 자녀들에게 그러한 유산을 물려 주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반면에 인자한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자라서 자신의 생활을 꾸려 나아가고, 신뢰를 받을 수 있고, 인자하고, 관대한 남녀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한 목표에 달하는 데 부모로서의 그들의 역할은 중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그들이 배우거나 그들이 하도록 허용된 것을 행하게 된다. 아이들이 사랑과 애정을 받고 사려깊은 훈련을 받으면 이기적이 되거나 나쁘게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자녀들이 자기 중심적이나 이기주의적이 되는 것은 그러한 사랑이나 훈련을 너무 적게 받거나 전혀 받지 않은 경우이다.

성장한 자녀는 일반적으로 그들의 부모로부터 받은 훈련, 징계와 사랑(혹은 그것의 부족)의 결실이다. 자녀들이 잘하면 그 부모들은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많은 고통스러운 비난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노력을 하면 일반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성서에서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한 바와 같다. (잠언 22:6) 물론 그러한 원칙은 남아나 여아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관심이 있는 부모들이라면 그 자녀들이 올바로 자라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로서 필요한 노력을 하라. 그러면 당신의 자녀가 관대해질 가능성이 더 많다. 자녀들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음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사도 20:35.

[11면 삽화]

‘아버지는 우리가 똑 같이 나누어 갖도록 가르치셨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