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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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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78 8/8 22-23면

성서의 견해

인간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미안해! 하지만 이건 내 인간성인걸. 고칠 수가 없어. 그냥 참아줘!” 가족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성깔을 부려 감정을 상하게 했거나 몹시 화가 나게 만들었을 때 흔히 그러한 말로 핑계를 대거나 변명을 한다. 특히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거나 동성애를 하는 자들의 정신 태도가 그런 것 같다.

정말로 인간성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인가? 성서는 인간성이 변화될 수 있다고 알려 준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이렇게 편지하였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 4:13) 이 능력을 입어 그가 할 수 있었던 한 가지 일은 모든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부에 처할 줄도 알았고 가난에 처할 줄도 알았다. 그리고 그의 생활을 살펴보면, 종종 매를 맞았고, 한번은 돌에 맞고, 세번이나 파선을 당하였으며, 하루 낮과 밤을 깊음에서 지냈으며, 별의 별 위험을 겪으면서도 “이방인의 사도”로서 충실하게 봉사하였음을 알게 된다.—고린도 후 11:22-27; 로마 11:13.

그뿐 아니라 ‘바울’은 자신의 성품을 급격히 변화시킬 수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자기를 가리켜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하고 말했다. (디모데 전 1:12-16)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에는 매우 모범적이 되었기 때문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편지할 수 있었다.—고린도 전 11:1.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울’은 내적인 갈등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때로는 자기가 하기를 원치 않는 일을 하였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약점이 결코 그를 압도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와 관련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하고 외칠 수 있었다. (로마 7:13-25) 그렇다,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그의 책임과 특권은 막중한 것이었으므로, 그는 투쟁을 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하고 편지하였다. (고린도 전 9:27)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바울’이 자기의 인간성을 고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사도 만이 아니었다. 그는 음행, 우상 숭배, 간음, 동성애, 도둑질 등등의 악행을 하던 ‘고린도’의 어떤 사람들이 인간성을 변화시킨 일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러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 하였는가? 그들이 새로 발견한 종교로 말미암아 그렇게 될 수 있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린도 전 6:9-11) 마찬가지로, 사도 ‘베드로’는 그러한 좋지 못한 습관들을 벗어 버린 사람들에 관하여 편지하였다. 이들 그리스도인들 역시 자기들의 인간성을 변화시켰다.—베드로 전 4:3, 4.

또한 일반 사람들 가운데서는 비이기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일이 매우 희귀하며, 심지어 같은 종교 또는 “교회”에 속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러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러한 특성, 진정한 사랑이 자기의 추종자들의 표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 13:34, 35) 그러기 때문에, 그분의 추종자들은 이기심을 비이기심으로 바꾸는, 자기들의 인간성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오늘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영국 ‘콜럼비아 대학교’ 정신과 부교수로 있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한 유명한 「정통파 기독교도」라는 잡지에 편지를 하였는데, 이것이 “동성애, 구제불능”이라는 제하에 실렸다. 그는 그 내용에서, 동성애와 그리스도교는 양립할 수 없다는 취지로 앞서 그 잡지에 실렸던 기사를 논박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것이 동성애에서 이성애(異性愛)로 성적인 취향을 변화시켜 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기대라는 것이다. 그는 기껏해야 25‘퍼센트’만이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 사람들의 말을 참조하였으며, 영국 저교회파의 정신 분석학자의 말을 인용하였는데, 그 학자는 50명의 동성애자들을 경험해 보고나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만일 어떤 사람이 개종의 경험이 성적인 욕망을 줄어들게 하고 이성에 대하여 정상적인 매력을 느끼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 나는 영적인 수단들을 통하여 그러한 것들로부터 자유케 된 사람을 단 한사람도 만나 보지 못하였다.”

이렇게 상반된 견해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가 잘못되었는가?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가 잘못될 수는 없다. 왜냐 하면 그들은 단순히 지적이고 정직한 사람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개종이 인간성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올바른 종류의 “영적인 수단들”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소위 신자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참되고 순수한 사도적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것이 아니었다.

천성이 어떻게 비뚤어져 있든지간에, 참다운 그리스도교가 인간성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참다운 그리스도교는 창조주에 대한 튼튼한 믿음을 심어 주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를 만드셨으며,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우리에게 지시하실 권리가 있으시다. 그뿐 아니라, 그분은 전지하시며 공의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주권자이시므로, 우리에게 무엇이 최선의 것인가를 알고 계시다. 그분께 대한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문제에 대한 그분의 견해를 갖도록 해 주며, 그분의 말씀은 그분께서 동성애를 매우 무거운 죄로 여기신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게 해 준다.—참조: 창세 19:1-29; 레위 18:22; 20:13; 디모데 전 1:8-11; 유다 7.

그러므로 시초부터, 이러한 행위는 악한 것이라는 하나님의 견해를 받아들여야 하고, “악을 미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시 97:10) 이전에 ‘알코올’ 중독자였던 사람은 자기가 그 중독 상태로부터 계속 벗어나 있기 위해 술에 취하는 일을 “미워”해야 하듯이, 한 때 동성애에 빠졌던 사람은 자기의 이전의 성적 취향을 “미워”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그는 다음과 같은 충고를 따라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 12:2) 이렇게 하기 위해서, 머리에 하나님의 말씀을 채워야 하고, 의로운 것을 생각해야 한다. (마태 4:4; 빌립보 4:8)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움으로, 사람은 자신의 낡은 인간성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본 뜬 새 인간성을 입”을 수 있다.—에베소 4:22-24, 새번역; 골로새 3:8-10.

하나님께서는 또한 기도의 길을 마련해 주셨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가 응답될 것이라고 하셨다. (마태 21:22; 누가 11:13; 스가랴 4:6)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그리스도인 회중 내의 장로들이 도움을 베풀도록 마련하신다.—갈라디아 6:1; 야고보 5:14-20.

이러한 사실들은 그러한 “영적인 수단들”이 사도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많은 남녀들을 동성애로부터 벗어나게 했음을 알려 준다. 참다운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들 자신의 축복 및 그들이 연합하여 있는 사람들 모두를 위하여 사람들이 자신들의 인간성을 변화시킬 수 있게 하는 동기와 도움을 마련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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