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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영 박물관에 전람된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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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영 박물관에 전람된 보물
  • 깨어라!—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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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8
깨78 10월호 26-29면

대영 박물관에 전람된 보물

「깨어라!」 영국 통신원 기

“박물관”이라는 말을 들을 때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게 되는가? 박제한 새와 낡은 그림 그리고 돌조각이 즐비한 곳으로 생각하는가? 그러한 생각을 지우는 것이 좋다. 왜냐 하면 ‘런던’에 소재하는 대형 박물관을 구경해 보면 지루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카메라’가 있는가? 좋다! ‘카메라’를 사용하여 ‘슬라이드’나 인화를 만들어 ‘사진 논문’을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뮤우즈’ 여신이 있는 건물

구경은 박물관의 앞마당에서 시작된다. 우선, 박물관이 인상적으로 높고 길다는 데 유의할 수 있다. 이 건물의 꼭대기의 신상들은 춤과 문학과 음악 등의 예술을 관장한다는 희랍 여신들의 신상이다. 이들 여신들은 “뮤우즈”라고 불리우며 그들의 신전이 “뮤지엄(museum)” 즉 박물관이라고 불리웠다.

‘우르’ 시의 관습

예리한 관심을 가지고 박물관으로 들어가 ‘바빌로니아’실로 올라가 보자. 여기에는 ‘히브리’ 족장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 시에서 발굴한 진열품이 있다. 금빛 너도밤나무 잎을 섞어 짠 이 웅장한 머리 장식을 보라. 초승달 모양의 저 큰 금귀고리는 구멍뚫은 ‘갈대아’인의 귀에 걸려 있던 것이다. 유리로 만든 이러한 아름다운 목걸이와 심지어 ‘아이 섀도우’가 있는 조가비까지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러한 물품들은 왕비의 분묘에서 발견되었다. 왕비와 함께 수많은 시종들이 묻혀 있었다. 그렇다. 그들은 죽은 왕비와 함께 산 채로 매장되었다! 왕비와 함께 매장되어 “내세”에서 왕비를 모시는 것을 그들은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진열품의 증거에 의하면, 인간 영혼의 불멸에 대한 신앙과 모자(母子) 숭배는 4,000년 전에 ‘우르’에서 성행하였다. 진열장 14호 안에 이러한 글이 있었다. “‘수메리아’ 종교는 그 신들과 종교, 신앙 및 관습 중 다수를 그들을 계승한 ‘바빌로니아 셈’족에게 물려 주었다.”

‘이집트’ 전람품

‘야곱’의 아들이며 ‘아브라함’의 증손인 ‘요셉’은 성서 역사상 첫째 세계 강국인 ‘이집트’로 끌려 갔었다. ‘바로’의 꿈을 해석하도록 호출된 ‘요셉’은 먼저 수염을 깎았다. (창세 41:14) 면도할 때 그는 작은 도끼와 비슷한 구리 면도날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요셉’은 아마 구리로 만든 이것과 같은 광채나는 금속 거울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요셉’은 ‘바로’에게 ‘이집트’에 7년 풍년에 이어 7년 흉년이 있을 것임을 말하였다. ‘바로’는 그 ‘히브리’인을 그 나라의 둘째 통치자로 임명하면서 ‘‘요셉’에게 옥새 반지를 빼어 주고, 고운 모시옷을 입혀 준 다음 목에다 금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창세 41:41, 42) 적절하게도, 우리는 이 박물관에서 ‘이집트’의 옥새 반지와 아름다운 금목걸이 몇개를 보고 감탄하게 된다.

방부 처리

‘이스라엘’이라고도 하는 ‘야곱’이 ‘이집트’에서 사망한 후, ‘요셉’이 “그 수종 의사에게 명하여 향재료로 아비의 몸에 넣게 하”였다. (창세 50:2, 3) 방부 처리된 꽤많은 사람들이 이 박물관에 전람되어 있다. 이러한 ‘미이라’는 참으로 볼 만하다.

방부 처리중에, 코를 통해 뇌의 일부를 제거하는 데 긴 쇠갈고리가 사용되었고, 나머지는 약으로 처분되었다. 신장, 간장, 장 및 폐는 제거되고, 종려주로 씻은 다음, 내장 단지에 넣었다. 이 종려주는 또한 향기로운 약초 및 향료와 함께 사용되었다. 다음에, 시체는 천연 탄산 ‘소오다’에 담근다. 탄산 ‘소오다’는 물을 흡수하므로, 여러 날에 걸쳐 그것은 시체를 탈수시킬 것이다. 궁극에 가서, 전체 시체는 깨끗한 ‘린네르’ 붕대로 쌌다. 붕대의 몇개 층 사이에는 뜨거운 ‘피치’를 발랐다. 첨언하면, 완성된 것을 영어로 ‘머미’(mummy)라고 부르는데, “피치”에 대한 ‘이집트’어가 ‘머미야’이기 때문이다. ‘미이라’를 준비하는 데는 해부학과 화학의 지식이 필요했으며, 이것은 “의사”들이 ‘이스라엘’ 즉 ‘야곱’을 방부 처리했다는 성서의 진술을 입증한다.

‘이집트’인의 신앙

‘야곱’의 시체가 방부 처리된 목적은 분명히 그의 유해를 약속의 땅에 묻힐 수 있게 될 때까지 방부 보존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창세 50:4-14) 그러나, ‘이스라엘’인들과 달리, ‘이집트’인들은 인간 영혼이 불멸이라고 믿었으며, 그들의 방부 처리 습관은 그 거짓 사상과 관련되어 있었다. (에스겔 18:4) 우리가 방문하는 다음 방의 벽에 있는 그림의 영혼은 머리맡과 발치에 하나씩 있는 두 개의 촛대 사이의 침상에 놓인 시체 위에 나르는 새와 같이 보인다. 또한 사망시에 생명이 끊어진다고 고대 ‘이집트’인들이 말했기 때문에 “영혼”이 두개로 잘라진 십자가의 윗부분을 잡고 있는 것에 유의할 수 있다.

관 속에는 12궁이 있다. 또 다른 관 속에 그려진 지도는 “영혼”이 따라야 하는 길을 표시하고 있다. 영혼을 기쁘게 하고 영혼이 꿈속에서 돌아와 산 사람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제사상에 제물을 차렸다. ‘이집트’ 종교는 또한 삼위일체 신들 및 모자(母子)신 숭배를 채택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습은 참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또한 면죄부를 구입하면 사후의 고통을 면하게 될 것이며, 죄를 용서받게 되고, “내세”에 안전한 장소가 확보될 것이라고 믿었다. 왕의 서재에 ‘라틴’어로 기록된 면죄부가 있다. 비슷한 면죄부의 판매가 16세기 종교 개혁의 일부 요인이 되었음을 독자는 기억할 것이다.

성숭배는 ‘이집트’인의 십자가 즉 ‘크룩스 아나스타’에 암시되어 있다. 이 상징물은 결합되어 생명의 열쇠를 구성하는 남녀 생식기를 포함하고 있다. 한쪽 벽에 십자가를 들고 있는 신의 그림이 있는데, 이것은 그가 ‘바로’에게 생명을 수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그림이다. 흥미롭게도, 통용 기원전 근 2,000년에 ‘이집트’를 방문하는 ‘시리아’인들은 오늘날의 십자가와 비슷한 십자가를 지니고 있었다. 십자가가 배교한 ‘이집트’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은 통용 기원 5세기에서 9세기에 이르는 그들의 묘비로 볼 때 분명하다.

열 가지 재앙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셔서 ‘이집트’의 신들이 무력함을 증명하셨을 때 거짓 종교는 확실히 굴욕을 당하였다. ‘나일’ 강과 ‘이집트’의 모든 강물을 피로 변하게 한 첫째 재앙은 ‘나일’ 신 ‘하피’에게 수치를 가져왔다. (출애굽 7:19-21) 이 ‘하피’ 신상 앞에서 기도하는 ‘이집트’인들을 상상해 보라. 그러나 ‘하피’는 자기 자신의 팔도 보호할 수 없었다. 보다시피, 지금 ‘하피’ 신은 두 팔이 없다!

‘이집트’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은 ‘이집트’ 신들에 대한 심판이었지만 마지막 재앙, 초태생의 죽음의 경우에 특히 그 점이 분명하였다. (출애굽 12:12) 수양은 ‘아몬라’ 신, “신들 중의 왕”에게 거룩하였으며, ‘이스라엘’인의 집의 문설주와 인방에 유월절 양의 피를 뿌리는 것은 ‘이집트’인들에계 모독적인 행동이었을 것이다.—출애굽 12:6, 7.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중에, ‘이스라엘’인들은 짚을 섞어 벽돌을 만드는 강제 노동을 당했다. (출애굽 5:7, 8) 그러므로, 그들이 만든 벽돌을 구경하는 것은 매우 흥미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 속박의 땅에서 떠나려 할 때 아마도 여기에 전람된 것과 비슷했을 “은금 패물”을 ‘이집트’인들에게 요구했을 것이다.—출애굽 12:33-38.

대영 박물관에 소장된 ‘이집트’ 전람품 가운데서, 1802년 이래 가장 탁월한 것은 유명한 ‘로제타’ 비석이다. 이 비석에는 기원전 196년에 ‘이집트’ 제사장들이 ‘프톨레미’ 5세 ‘에피파네스’ “신”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교령이 들어 있다. 그 교령은 (1) ‘이집트’의 상형 문자로, (2) ‘이집트’의 민용 문자(단순화한 대중 문자체)로 그리고 (3) 희랍어로 기록되었는데, 희랍어는 상형 문자의 신비를 푸는 데 열쇠가 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영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마른 모래의 작용으로 피부가 보존된 이 탈수된 노예와 같이 ‘이집트’의 왕들은 죽고 없다. 그러나 ‘바로’와 ‘이집트’ 군인들의 복제품들을 보라. 그들은 모두 왼발을 앞으로 내놓고 있다. ‘이집트’ 군대는 행진할 때 왼발로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습관은 세계의 거의 모든 군대에게 전달되었다!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페니키아’의 영향

아름다운 ‘페니키아’ 상아 제품은 ‘이집트’의 영향의 틀림없는 자취를 지니고 있다. ‘이집트’의 의류, ‘터어번’, 신들 및 십자가가 ‘페니키아’인들에게 전달되었다. 또한, 그들은 남자의 성기의 종교적 상징물인 거룩한 기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뿐 아니라, ‘페니키아’인들은 다산의 신 ‘바알’을 중심으로 한 타락 종교를 실천하였다. 그 종교는 자녀를 희생하여 아기의 재를 뼈단지에 두는 가증한 의식이 있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페니키아’의 수도 ‘시돈’의 ‘엣바알’ 왕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고 ‘바알’을 숭배하기 시작하였다. ‘아합’은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았다.—열왕 상 16:31-33.

‘페니키아’식 상아 제품은 고대 ‘팔레스타인’ 전람실에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것은 어디에서 발견되었는가? ‘아합’이 값비싼 상아를 사용하여 궁전을 짓고 진정한 “상아궁”으로 만든 고대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서 발견되었다.—열왕 상 22:39.

‘앗시리아’인들

‘앗시리아’ 침략자들이 잔인성과 무자비한 군사적 행동으로 유명한 사람인 ‘아수르나시르팔’ 2세 치세중에 ‘이스라엘’을 향해 위협적으로 접근하였다. 흥미롭게도, 그의 석비(石碑)는 그가 십자가로 단장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의 후계자인 ‘살마네셀’ 3세는 ‘이스라엘’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기록한 ‘앗시리아’의 초대 왕인데, 그는 유명한 ‘블랙 오벨리스크’에 기록하였다. 그 방첨탑에 그는 ‘이스라엘’의 ‘예후’ 왕으로부터 사신으로 보이는 사람을 통해 공물을 받기 위해 서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 방첨탑은 또한 13명의 ‘이스라엘’인이 공물을 들고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13명은 ‘레위’ 지파를 포함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대표하고 있다.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이 9변형 각주이다. 그 각주에는 ‘사르곤’ 왕의 원정이 기록되어 있고 열왕기 하 18:9-12에 기록되어 있는 ‘사마리아’의 정복을 언급하고 있다.

궁전(‘라기스’의 방으로 알려진)에서 ‘사르곤’의 상속자 ‘산헤립’이 ‘라기스’ 시의 함락중에 보좌에 앉아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앗시리아’의 관리들은 칭찬을 듣기 위해 왕 앞에 나왔고, 엎드린 ‘이스라엘’인 포로들은 다른 사람들이 옷을 벗기우고 형주에 달리는 잔인한 대우를 받고 있는 동안 자비를 구했다. 실제 팔매돌과 팔매줄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서체실에는 유명한 ‘라기스’의 서한들이 전시되어 있다. “‘호사야후’로부터 ‘라기스’의 군인 총독 ‘야우스’”에게 보낸 것으로 되어 있는 한 서한에는 ‘히브리’어 ‘테트라그람마톤’으로 된 하나님의 이름 즉 여호와(YHWH)가 나온다. 분명히 이것은 초기 ‘이스라엘’인들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옛 성서와 사본

왕의 서재와 역사 사본실을 구경해 보자. 볼 것이 많지만, 몇가지 특기할 만한 것을 골라 구경해 보기로 하자.

기원 약 4세기에 기록된 희랍어 성서 사본인 ‘시내’ 산 사본을 없애려고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독일 성서 학자 ‘리센도르프’가 1859년에 ‘시내’ 산에 있는 성 ‘캐더린’ 희랍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그는 이 훌륭한 사본의 43장이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한 때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알렉산드리아’의 총주교의 서재에 있었다. 고급 피지(皮紙)에 쓴 이 사본은 1627년 영국의 ‘차알스’ 1세에게 기증되었다. 그 사본의 연대는 기원 5세기 초반으로 소급한다.

10세기의 사본인 ‘히브리’어 오경을 주의깊이 살펴보라. 여러 곳에 하나님의 이름인 ‘테트라그람마톤’ יהוה 이 보일 것이다. 이것을 아름답게 기록된 1380년 내지 1384년의 ‘위클리프’ 성서 즉 영어로 기록된 최초의 성서 전체 사본과 비교해 보라. 둘다 우아한 필법의 훌륭한 본보기들이다! 가동 인쇄 활자로 인쇄된 사실상 최초의 책으로 믿어지는 ‘구텐베르크’ 즉 42행 성서의 굵은 활자 인쇄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영어 “폴리글롯”(polyglot)이라는 말은 희랍어에서 나왔으며 “많은 언어”를 의미한다. 중요한 수개국어 대역 성서 두권이 전시되어 있다. 하나는 16세기초의 ‘콤플루텐시아’ 성서인데, 본문이 ‘히브리’어, ‘아람’어, 희랍어 그리고 ‘라틴’어로 되어 있다. 또 하나는 1571년의 ‘크리스토피 플란틴’을 완성했는데, 상기 4개국어와 ‘시리아’어로 되어 있다. 이 성서의 약 1,200권이 인쇄되었는데 그 중 13권은 여기 있는 이 사본과 같이 양피지에 인쇄되었다.

어떤 전시물에는 네개의 유명한 번역문이 곁들여 있다. 여기 1522년에 나온 유명한 독일어 번역판인 ‘마르틴 루터’의 신약이 있는데, 이 성서는 1525년에 나온 ‘윌리엄 틴달’의 신약의 기초가 되었다. ‘제네바’ 성서는 1557년에 ‘제네바’에 거주하고 있던 영국 및 ‘스코틀랜드’의 ‘프로테스탄트’ 피난민들이 개인적으로 읽고 공부하도록 마련되었다. 다음에, 1611년에 인쇄된 흠정역 성서 초판에 관심을 돌린다.

그 외에도 볼 것이 많이 있지만 우리는 이 흥미있는 구경을 마쳐야 한다. 대영 박물관 관람은 언제나 가치있는 것이며 전람품 다수는 독특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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