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79 05월호 10-14면
  • 하나님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어떠한 분인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하나님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어떠한 분인가?
  • 깨어라!—1979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사랑과 선하심
  • 공의
  • 하나님의 특성을 알 때, 우리는 그분께 나아가야 한다
  • 수중 청소부들
    깨어라!—1982
  • 물고기
    성경 통찰, 제1권
  • 예수께서 ‘땅에 공의를 세우시다’
    여호와께 가까이 가십시오
  • “그분의 모든 길은 공의롭다”
    여호와께 가까이 가십시오
더 보기
깨어라!—1979
깨79 05월호 10-14면

하나님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어떠한 분인가?

그분의 성품은 어떠한가? 그분을 친밀하게 알게 되면 우리가 그분을 더욱 사랑하게 될 그런 분인가? 당신은 이러한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는가?

우리는 그분의 특성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성서 로마서 1:20(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그의 솜씨를 통하여, ‘뉴우버어클리’역]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읍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무슨 핑계를 대겠읍니까?”

하나님의 창조물 즉 “그의 솜씨”를 주의깊이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그의 성품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떠한 성품이 나타나 있는가?

사랑과 선하심

이러한 성품이 인체의 설계에 명백히 나타나 있다. 인체는 살아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인생을 즐기도록 창조되었다. 인간의 눈은 색깔을 구별할 수 있다. 흑백만을 분간할 수 있는 동물이 일부 있지만, 세계는 현란한 색깔로 가득차 있다. 우리는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우리에게는 미관구(味官球)가 있다. 그러므로 식사하는 일은 필요한 일일 뿐 아니라, 즐거운 일이다. 그러한 감각은 생명에 절대 필요하지는 않지만, 인자하고 관대하고 사려깊은 창조주의 증거가 된다.

사랑에 찬 염려는 또한 동물계에도 분명히 나타나 있다. “의사 고기”라는 별명을 가진 작은 “청소부 고기” 떼가 그 한 가지 예이다. 현재, 40여종의 고기가 “청소부”로 지칭되고 있다. 다른 물고기의 아가미를 막아서 병을 일으킬 수 있는 기생충과 물고기 이빨을 그러한 청소부 물고기들이 제거하는 일에 전념하는 것같다.

“그 뿐 아니라”, 청소부 물고기는 “피부에 감염시킬지도 모르는 곰팡이와 ‘박테리아’를 먹어치우며, 물고기가 상처를 입었을 때 죽은 살을 갉아먹고 상처를 청소해 준다”고 「동물 협동자와 기생충」이라는 책은 설명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물고기들은 작은 “의사들”과 흡사하며, 심지어 “사무실” 혹은 “청소 ‘센터’”를 두기도 한다. 한 “사무실”은 6시간 동안에 300여 마리의 물고기를 처리하는 것이 관찰되었다. 물고기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며, 청소부들이 청소해 줄 때 머리를 아래로 하고 “서”기도 하고 뒤로 눕기도 한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이 “의사들”은 “전문적” 치료를 베풀지만 “치료비”는 무료이다!

그러한 청소 활동은 얼마나 중요한가?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에 속하는 ‘콘라드 림바우’는 그것을 “계속적이고 중요한 활동”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한 때 특정 지역으로부터 “청소부 고기”로 알려진 것을 모두 제거했다. 그리했더니 수일 이내에 물고기 수가 격감했으며, 마침내 거의 모두 떠났다. 그리고 남아있던 소수의 물고기는 “솜털이 있는 흰 부스럼이 생기고, 부어올랐으며, 궤양성 종기가 생겼고, 비늘이 투박해졌다.” 이 모든 것이 꼬마 “의사들”이 없어진 데 원인이 있었다!

“청소부들”이 단순히 식사를 하기 위해서 그 일을 하는가?

“이 습관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여 식품을 구하는 [청소부] 물고기는 없는 것같다.”

“이 두 가지 물고기[가장 열성스런 청소부 물고기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청소에 의존하여 식품을 구하지 않으며, 작은 갑각류를 먹고 살아간다. 두 가지가 다 식물에서 그러한 식품을 얻고 있고 ‘시뇨리타’[청소부 물고기의 일종]도 또한 바닥에서 그리고 물에서 직접 그 식품을 얻는다.”

그러므로 청소부 물고기들은 다른 고기들을 돌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일을 한다. 눈에 쉽게 띄는 밝은 색깔, 뾰죽한 코 및 족집게 같은 이를 가진 그러한 효율적인 작은 청소부 물고기를 누가 설계할 수 있었겠는가? 이 작은 피조물 속에 누가 그러한 활기찬 본능을 넣어 주었겠는가? 오로지 인자하시고 사려깊은 창조주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었다.

생명에 대한 건전한 인식을 가진 공장주는 자기의 공장에, 종업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많은 안전판을 설치할 것이다.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는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보일러’를 비롯한 기재에 설치하는 안전판은 사람들에 대한 공장주의 진정한 염려의 증거이다.

우리 주위 세계에는 창조물의 설계자께서 두신 그러한 많은 “안전판”이 있다. 창조주께서는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신다. (마태 5:45) 비가 내리는 방식은 “안전판”의 사용의 한 가지 탁월한 예이다.

수십억 ‘갈론’의 물이 상공의 구름 속에 수증기로 저장되어 있다. 물은 무겁다. 0.03입방 ‘미터’의 물의 무게는 28‘킬로그램’을 넘는다. 거대한 구름의 무게는 무려 100,000‘톤’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당신은 만일 수증기가 하나의 거대한 “방울”이 되어 지상에 떨어진다면 얼마나 무서운 참사가 일어날 것인지 상상할 수 있는가? 대황폐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먼지 입자 주위에 미소한 물방울이 모여—단, 그 크기는 일정한 한계가 있으며, 그 크기를 초과하지 않음—땅에 떨어진다. 부드럽게 내리는 빗방울은 아주 연약한 꽃도 해치는 일이 거의 없다. 확실히 우리는 이 “안전판”으로부터 유익을 얻고 있다.

또 겨울에 물이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되어 떨어진다면 얼마나 가공할 장면이 연출되겠는가 생각해 보라. 이 경우에도, 떨어지는 순간에 “안전판”이 작용하여 전혀 위험하지 않게 흩날리며 내리는 작은 조각들로 만들어지며 포근한 담요와도 같이 지면의 온도를 보존하여 식물을 보호해 준다.

기온이 급변할 수 있는 지역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어렸을 때에 기온이 급강하하는 밤이면 부모가 일어나 담요를 더 덮어 주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포근한 침대에서 자고난 이튿날 아침 엄마나 아빠가 당신을 그토록 염려하여 준 사실을 알고 마음 속으로 “포근함”을 느꼈던 일을 기억하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식물을 보존하기 위해 이 은빛 눈 담요를 덮어 주시는 우리의 천적 아버지께 대해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 그분의 “솜씨”는 그분이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부드럽고 사랑이 많은 창조주이심을 증거해 준다.

공의

공의의 특성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창조주께서 이 특성을 가지고 계시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께 공의가 있으시다면 그분은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범람하는 불공평, 불법, 악한 분위기를 영원히 관용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속에 있는 무엇인가에 그러한 특성의 증거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성서에 있는 이러한 진리의 진술에 설명되어 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 「확충된 성서」; 희랍어로는 “도덕적으로 선하고 악한 것을 구별하는 것 ··· 한 쪽을 추천하고 다른 쪽을 단죄하는 것”을 의미함, ‘데이어’ 저 희-영 사전]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로마 2:14, 15)

우리가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양심, 우리의 “마음에 새긴” 율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의 창조주 자신이 도덕감이 있는 하나님이며 공의의 특성을 가지고 계시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23세기 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한 내적법의 실재를 언급, “모든 사람에게 실효성있는 자연의 공의와 불공평을 가리는” 법이라고 불렀다. 그것을 “자연법”, “최고의 법”, “만국의 법” 혹은 인간성의 법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 공평과 불공평에 대한 자연적인 감각은 “모든 사람들에게 실효성이” 있는 것같다.

저명한 인류 학자 ‘M. F. 애쉴리 몬타규’는 많은 과학자들과 동일한 견해를 피력하였다. “살인은 세계 어디에서나 범죄로 간주되며, 만일 살인범이 잡혀 재판에 회부되면 보통 사형의 형벌을 받는다. 근친 상간의 규정은 세계 공통이며, ··· 사유 재산은 세계 어디에서나 존중시되고 있다.” 살인 혹은 자기 방위 혹은 “사유 재산”에 관한 규정이 상당히 다양하기는 하지만, 그 근본 행위는 한결같이 단죄되고 있다. 그러한 “자연법”의 내용에 대해 의견이 구구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러한 법의 존재를 시인하고 있다. ··· 옳고 그름의 궁극적인 기준으로 간주되고 있다.” (‘고딕’체는 부가됨)—「아메리카나 백과사전」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인간이 선천적으로 공격적이며 심지어 살인적이고, 정의감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양심의 존재를 불신하려 한다. 사실은 그와 반대라는 증거가 최근에 밝혀졌다.

한 가지 탁월한 예는 ‘필리핀’ 우림 지대에 거주하는 원주민인 ‘타사다이’인들인데, 이들은 근년에 발견되었다. 이 사람들은 수백년간 문명 사회의 주류와 그 압력으로부터 격리되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과 함께 얼마 동안 생활한 한 과학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들은 놀라운 사람들이다. ··· 탐욕도, 이기심도 없다. ··· 그들은 살생, 살인, 전쟁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그러한 것을 들어 보지도 못하였다.” 그는 또한 이렇게 논평하였다. “모두들 인간이 선천적으로 악하다는 말을 한다. ··· 이 사람들을 만나 보면 ‘아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악하지 않다’고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온화한 ‘타사다이’인」—1975년판) 그렇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죄많은 경향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기본적인 양심의 감각을 드러내고 있다. 한 백과사전의 설명이 그러하다. “실제로 양심이 사실로서 인정되지 않는 문화는 지금까지 없었다.” 사실, 이러한 옳고 그름에 대한 내적 감각은 실제로 존재하며 우리의 행실에 선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많은 살인범들, 강간범들, 변태 성욕자들,—양심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그들의 행실은 그러한 결론을 반증하지 않는가?’ 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비행기 조종사가 공항 관제탑의 지시를 듣지 않고 추락하여 막대한 피해와 많은 사망자를 냈다면 어떠한가? 이것은 관제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가? 일반적으로 이와 대조적으로, 관제탑의 지시에 순응하여 공항을 안전한 장소로 만드는 수백명을 보라.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이 이러한 “공의의 자연법”을 무시했거나 그것의 인도를 받기를 거부함으로써 그 법을 “버렸”다고(디모데 전 1:19) 하여 그것이 그러한 법의 실재성을 부인하는 증거가 되는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나찌’ 당원들은 무죄한 사람들에 대해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세계를 경악케 한 이러한 행동에 대해 ‘나찌’ 지도자들 다수는 전쟁 후 재판을 받았다. 이들 지도자들 대부분은 단순히 ‘나찌’의 법과 그들의 정부 상관들에게 복종하여 그러한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그러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했다.

“정치적 충성, 군인으로서의 순종은 훌륭하지만 ··· 자신의 양심에 어긋날 때에는 상관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고 영국의 수석 검사는 주장하였다.

이들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더 높은 공의의 자연법”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 참고서적은 설명하였다.

그러한 “자연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피고인들은 법적으로 재판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그러한 재판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완고한 지도자들 중 일부의 진술은 그러한 양심이 과연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힘이 그들 속에서 작용했지만 무시했을 뿐이라는 것을 부가적으로 지지해 준다. 피고 ‘발터르 풍크’는 이렇게 말하였다. “‘유대’인들에 대한 이러한 공포와 폭력의 행동이 나에게 임명되었을 때 나는 신경 쇠약에 걸렸다. ··· 나는 그 순간 수치감과 죄책감을 느꼈으며 오늘날도 동일하게 느끼고 있지만, 너무 늦었다.” ‘한스 프랑크’(자기의 범죄 때문에 사형 언도를 받음)는 “나는 마음 속으로 처절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였다. (‘고딕’체는 본지에서 하였음.)

그렇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정직하다면, 우리는 우리 속에 옳고 그름에 대한 선천적인 감각, “공의의 자연법”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우리 속에 그러한 진정한 법을 누가 넣어 주셨는가? 확실히 인간 자신은 그러한 법은 만들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설계하신 분만이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창조주께서 도덕감을 가지신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결론에 이르지 않는가?

우리는 이것을 알게 된 데 대해 참으로 감사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그것은 그분께서 오늘날 존재하는 엄청난 불공평과 악을 영원히 관용하시지 않을 것임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그분의 감각 즉 공의감 때문에 그분은 의에 대한 그분의 표준에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특성을 알 때, 우리는 그분께 나아가야 한다

간단히 고찰해 본 결과 당신은 개인적으로 어떠한 판단 혹은 “평결”이 서는가? 많은 독자들은 틀림없이 이러한 결론 즉 사랑이 있고 공의로우시며 엄청난 능력을 가진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참으로, 인간에 대한 그분의 염려와 관대함의 예는 감동적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그분을 더 잘 알고 싶어할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솜씨”를 통해 그분에 관해 관찰해 본 바는,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약간의 실마리”에 불과하다. (사도 14:17, 신 영어 성서) 아직도 많은 질문이 해결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처음에 악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왜 하나님께서 악이 그렇게 오랫동안 존속하도록 허락해 오셨는가? 그분은 지상에서 악을 제거하고 공의를 나타내기 위해 그분의 능력을 언제 사용하실 것인가? 사실, 지구와 지상의 모든 생명을 만드신 그분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얻는 것은 가능하다. 왜 본 잡지의 발행자들인 여호와의 증인과 접촉해 보지 않겠는가? 그들은 확실한 대답을 발견하도록 무료로 당신을 기쁘게 도울 것이다.

[11면 삽화]

때때로 큰 물고기들은 “의사 고기”(일명 “청소부 고기”)가 자기들의 입속에까지 들어와서 기생충을 제거하는 것을 허락한다

[13면 삽화]

‘나찌’ 지도자 ‘한스 프랑크’는 “나는 마음속으로 처절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였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