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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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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9
깨79 09월호 27-31면

생명을 구해 준 새로운 치료법

잠간 남편의 병실을 나와 보니 회중에서 온 그리스도인 형제 두 사람이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다가왔는데 한 사람은 「파수대」 잡지 한 ‘페이지’를 복사한 것을 들고 있었다. 간단히 인사한 후 그는 그것을 나에게 건네 주었다. 그것은 1974년 9월 1일호(국문은 1974년 12월 15일호) “‘뉴우스’의 진상”이란 기사였다.

그것을 읽으면서 나의 가슴은 희망으로 심하게 고동쳤다. 거기 인용된 ‘뉴우스’에서는 다량의 피를 상실한 환자를 돕는 새로운 기술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그 치료법은 “고압 산소 요법”이라 칭한다.

마지막 대결

병원 외과 과장이 ‘홀’로 내려온 것은 오전 11시 30분 경이었다. 그는 “이제 이 문제를 결판내야겠읍니다.”라고 말하며 우리를 자기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세명의 의사, 나, 나의 친구 두명으로 꽉차는 조그마한 사무실이었다. 의사들이 지쳐 보였는데 나는 그들이 너무 자주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데다 어려운 문제들을 많이 당면하고 있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했다. 남편의 치료에 수혈 거부의 제한이 붙어 있다는 것은 그들의 짐을 더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동료 의사들과 상의를 해왔는데 다들 난처해 하고 있읍니다.” 하고 외과 과장이 말문을 열었다. “난처한 정도가 아니라 화가 나 있읍니다! 우리가 구해 줄 수 있는 젊은이가 있는데 당신네들이 지키며 그에게도 지키도록 격려하는 그 원칙 때문에 그를 돕는 것이 불가능한 거나 다름없게 되었단 말입니다.”

남편의 부러진 다리를 찍은 ‘X 레이’ 사진 몇장을 벽 한쪽에 부착된 영사막의 집계 아래에다 세차게 던져 놓고서 그는 남편의 다리 골절 여러 곳을 가리켰다. 마치 연필이 부러진 것처럼 들쭉날쭉한 톱니 모양이었다. 한 사진은 뼈가 살을 뚫고 튀어나온 것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X 레이’에 보이는 골절상 하나하나를 신속히 가리키면서 그는 “이것이 우리가 싸워야 할 곳입니다. ‘개리’에게는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에 버팀봉이 필요한데 하나하나가 수술하는 데 피가 요구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화가 나서 미칠 지경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주로 나 때문에 그가 이렇게 분개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나는 겁에 질려 머리를 숙이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그리스도인인데 수혈은 하등 나쁠게 없다고 봅니다. 나쁘다 해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하고 외과 과장은 말했다. 어조를 바꾸어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개리’가 수혈하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살인하는 것이나 다름 없읍니다. 진정으로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그의 눈이 아마 나에게 고정되어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개리’가 수혈을 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입니다.” 다시 태도를 돌변하여 그는 기술적으로 나의 욕망에 호소하였다. “수혈만 한다면 그는 여기서 퇴원하여 당신과 그리고 애들과 함께 집에서 지낼 수 있을 것이며 또 마침내는 직장에도 다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수혈만이 유일한 해답입니다.”

“이 사람은 죽어가고 있읍니다. 우린 그를 구해 줄 수 있는데 당신이 우리의 손을 묶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당신의 품안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어간 경험이 있읍니까?” 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막고 부드럽게 “예, 제 딸이 그랬지요.”라고 말했다. 그가 이야기를 중단한 것으로 볼 때 나의 이 말에 방심하게 됐음에 틀림없다. 어색한 침묵을 깨뜨리며 그는 “좋아요. 다들 나갑시다. 그리고 가서 그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시요.” 하고 말했다.

태도의 변화

나는 떠나려고 일어나며 그에게로 몸을 돌려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모두가 멈춰서 나에게로 돌아섰다. “혼자만요.” 하고 나는 말을 끝냈다. “좋아요. 모두들 나가시오.” 하고 그는 외쳤다.

다들 나갔을 때 나는 그의 태도가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종 조그마한 소리로 이야기하며 그는 내가 어떻게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는지를 물었으며 나의 딸에 대해서도 물어 보았다. 그러더니 나의 나이를 물어 보았다. “26세”라고 말하자 놀랍게도 그는 “아니,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 모든 일을 겪다니.” 하고 말하였다.

나는 변화에 놀랐다. 나는 그에게 편견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나는 그에게 고압 산소 치료법에 관한 「파수대」 기사를 주기 전에 그가 스스로 발뺌할 수 없는 말을 하게 되기를 원했다. 그가 잡지를 돌려줄 때 나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글쎄, 알 수 없지만 이 시점에서는 무엇이든 해 볼 가치가 있읍니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남편을 어디론가 보내 주실 수 없을까요?” 내가 간청했다.

“아, 못해요. 난 보내지 않겠읍니다. 당신이 혼자서 이 모든 일을 해야 됩니다. 해군기지에 전화를 해 보시지요.” 하고 그가 말했다.

“뭐라고 말하지요? 누구를 찾아야 하지요?” 내가 물었다.

“단지 전화만 하면 됩니다. 누가 고압 치료법을 알고 있는지 묻고 그들에게 설명만 하면 됩니다.” 그러더니 그는 급히 몸을 앞으로 숙여 책상 위의 전화기를 잡더니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친밀하게 아는 누군가에게. 내가 겪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할 때의 그의 행동은 진정 나를 돕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수화기를 놓으면서 그는 “이제 다 됐읍니다.”라고 말했다. 남편은 ‘롱비치 메모리얼’ 병원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아마 외과 과장의 단호함 때문인지 남편의 이송 준비는 놀랍게 빨리 진행되었다. 그런데 남편의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을 때 의사 한 사람이 고압 치료법에 대해 말하기를 “그건 아무 도움도 안될 겁니다.”라고 하였다. 비록 말은 부드러웠으나 “상처를 치료하려면 피가 필요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목소리는 격노에 차 있었다. 나는 이 말에 낙담하였으나 남편은 곧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로 실려 갔으며 의사 한 사람이 우리를 동반하였다.

희망이 되살아나다

마침내 거대한 초현대식 건물이 눈에 들어 왔다. 대기하던 간호원들이 남편을 7층 특별 간호 병동의 조그마한 전용 병실로 실어갔다. 간호원이 다가와 의사들이 검진을 마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그곳을 떠나 기운을 돋우기 위해 아래층 휴게실로 내려갔다. 거기서 쉬면서 나는 용기와 힘을 주실 것을 기도드렸다. 전날밤 그 무서운 전화 소리에 잠을 깬지 약 18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몸을 끌며 남편의 병실로 올라갔다. 방에는 아직 의사 두명이 있었다. 잠시 동안 나는 고압 치료법에 관한 기사를 가지고 왔다는 것도 잊어 버렸다. 나는 가까이 있는 의사에게로 걸어가 그것을 건네 주었다. 그 의사는 키가 크고 약간 살이 찐 편이었으며 어깨가 벌어지고 검은 곱슬머리는 뒤로 빗어 넘기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읽기를 마치고는 의사들이 흔히 하듯이 “으흠” 하고 낮은 소리를 발했다. 그의 의견이 어떤지 안달이 난 나는 “이 치료법에 대해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아, 예, 내가 그 기사를 썼지요.” 하고 그는 좀 무관심한 듯이 대답했다. (이것은 1974년 5월 20일자 미국 의료 연합 ‘저어널’지에 실린 기사였으며 「파수대」지에 인용되었다.) 나는 온몸을 휩쓰는 당황과 극도의 환희가 뒤얽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가 계속 치료법에 대해 설명할 때 침울했던 기분이 날아 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낙관적이 되려고 하였으나 아직도 의심이 가시지 않았다. 나는 대학 병원을 떠나기 직전에 의사가 한 말을 반복했다. “그의 견해로는 이 치료법이 도움이 안될 것이며, 된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완전 혈액이 필요하기 때문에 제대로 나올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라고 나는 설명했다. 그는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해심있는 태도로 머리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자신의 무지 가운데서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이 말에 마음이 흡족하고 안심이 되어 나는 이제 남편에게 승산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고압 산소 치료법

고압 산소 요법은 온몸을 우리의 대기 압력(해면에서 1평방 ‘인치’당 14.7‘파운드’)보다 더 높은 압력을 가한 순수 산소 속에 두는 것이다. 높은 압력으로 인하여 산소가 평상시보다 훨씬 더 진한 농도로 신체 조직과 체액 속으로 녹아 들어가게 된다. 사용되는 기구는 중금속으로 만들어진 원통형의 ‘탱크’인데 반구형의 두꺼운 유리 덮개로 인하여 환자가 밖을 내다 볼 수 있으며 밖에 있는 사람도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기구에 달려 있는 대단히 두껍고 둥근 문은 은행 금고문과 흡사하다. 대화는 ‘인터콤’ 장치를 이용해서 할 수 있다.

압력은 서서히 가해지기 시작하여 규정된 수준에 달할 때까지 점차적으로 증가된다. 고막에 울리는 소리는 차를 몰고 산을 오르내릴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 며칠 동안 남편은 24시간 내내 6시간마다 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마칠 때면 남편은 힘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곤 했다.

나흘째 되는 날 오후 8시 남편이 고압치료를 마치고 돌아올 때 간호원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남편의 혈액 수치를 재었다. 나온 수치는 흥분을 일으켰다. 혈구 측정치가 10에서 11로 꼭 한 단위가 올라갔던 것이다. 아직 위험할 정도로 낮기는 했지만 우리 둘은 이 소식에 붕뜨는 기분이 되었다. 치료 8일째에는 수치가 19로 올라가 특별 간호실에서 격리 병동으로 옮겨도 좋을 정도가 되었다.

어느날 아침 남편이 깨어났을 때 남편의 건강이 호전되고 있다는 틀림없는 증거가 나타났다. “여보, 오늘 아침에는 조반을 들고 싶지 않으세요?” 하고 나는 명랑하게 물어 보았다. 남편은 사고가 난 이래로 음식이라고는 아무 것도 들 수 없었다. 그런데 남편이 “음, 좀 먹고 싶은데.”라고 말하자 나는 내가 침대로 이용하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됐어요, 됐어요.” 나는 흥분하여 깔깔대며 떠들어댔다. 식욕이 되살아났다는 것은 남편이 살게 될 것이라는 부가적인 증거가 되었다. 일반적인 의학적 견해와는 반대로 남편은 수혈을 하지 않고 살아났으며 동시에 종종 수혈로 야기되곤 하는, 때로는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는 합병증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수혈을 거절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피[를] ··· 멀리 할찌니라.”는 하나님의 법 때문이다.—사도 15:28, 29.

또 다른 위기

남편이 특별 간호실에서 옮겨지기 전에 ‘브라얀’의 열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이의 머리 정수리의 부드러운 부분 즉 숫구멍이 부어올라 뇌에 압력이 가해지고 있음이 나타났다. 이것은 척수막염의 초기 증세이다. 담당 여의사가 아이에게 혈소판 수혈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정신이 아득해지는 공포감이 전신을 휩쓸었다. 그 여자는 설명하기를 아이의 혈소판 수치가 너무 적기 때문에 척수액 채취를 할 때 출혈로 인하여 마비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브라얀’을 이 병원에 데려온 그 즉시 아이에 대한 우리의 보호권을 박탈한다는 법정 명령이 내려져 있었으나 수혈은 하지 않았는데 이는 피가 아무 도움도 안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브라얀’은 자신의 혈소판을 제대로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브라얀’을 치료하는 의사와 수혈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었다.

마침내 우리가 합의했던 의사가 도착했다. 나는 그에게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그는 수혈하지 않고 척수액 채취를 하겠노라고 말했다. 수혈을 하지 않는다—말은 간단했지만 출혈로 인한 사망 및 마비의 가능성이 있었다. 척수액이 실험실로 보내졌으며 ‘브라얀’이 ‘바이러스’성 척수염에 걸렸다는 것이 밝혀졌다. 나오느니 한숨뿐이었다.

극적인 역전

우리가 아이의 병을 발견하던 날 처음 혈소판 측정을 한 때부터 ‘브라얀’은 계속 1입방 ‘밀리’당 4,000이라는 고정된 수치를 유지해 왔었다. 그런데 척수염에 걸린 며칠 후에 행해진 피검사에서 극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의사가 얼굴을 빛내며 이렇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브라얀’의 수치가 조금 올라갔읍니다.”

“그래요?” 하고 내가 끼어들었다.

“그렇습니다. 25,000으로 올라갔읍니다.” 하고 그가 말을 이었다.

가슴이 터질 듯이 흥분한 나는 ‘브라얀’이 살게 되리라고 믿고 싶었다. 우리는 이 병에 걸려서 살아난 사람이, 적어도 의사가 아는 바로는, 거의 없다는 말을 듣고 이제까지 희망을 포기했었던 것이다. 남편에게 ‘브라얀’의 혈소판 수치가 올라갔다는 기쁜 소식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나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아직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요, ‘잰.’” 하고 남편은 나의 열심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딱 잘라서 말했다. 남편은 나를 보호하려 했던 것이다. 의사들 중 한 사람은 ‘브라얀’이 살아날 확률은 10억분의 1이라고 단언했다.

한주일이 지나갔다. 우리는 ‘브라얀’의 혈액 검사를 또 한번 받기 위해 데리고 갔다. 이번에 혈소판 수치가 50,000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매주 검사를 할 때마다 수자가 늘어났다. 다음 검사 때는 무려 193,000: 다음 주에는 309,000: 결국 318,000에까지 이르렀는데, 이는 정상으로 간주되는 수치이다. 의사들은 경탄해마지 않았는데 ‘특수 꼬마 출현’이라느니 ‘이 애가 우릴 모두 여호와의 증인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등의 말을 할 정도였다. 그들은 심지어 ‘브라얀’의 상태의 변화를 기적으로 돌리기도 했다.

남편과 ‘브라얀’은 둘다 완전히 회복되었으며 나는 훌륭한 결과에 대해 감사함을 금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거나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들은, 동시에 현재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나에게 강조해 주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준수하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시어 완전한 건강과 행복을 누리며 영원한 생명을 즐길 수 있는 의로운 새 제도로 들어가게 하실 것이라는 확실한 약속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계시 21:3, 4) 예수께서 죽기까지 충성을 지키셨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부활시키신 사실은 하나님의 요구 조건에 순종하는 이러한 행로가 가장 지혜로운 행로임을 증명하지 않는가?

나는 시련의 때,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동안 나에게 충실하게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신 하나님 여호와께 감사드린다. 나는 사도 ‘바울’의 이러한 영감받은 말씀이 나의 경우에 그대로 적용되었다고 느낀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 후 4:7)—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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