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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80 05월호 23-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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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을 내거는 경주에서 생명의 상을 받는 경주로
  • 깨어라!—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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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0
깨80 05월호 23-25면

생명을 내거는 경주에서 생명의 상을 받는 경주로

얼마나 멋있는 광경이었던가! ‘크롬’을 입히고 다채로운 색깔로 아름답게 칠한 각종 경주용 자동차들이 조명등 아래 번쩍번쩍 빛나고 있는 광경. 극한 속력을 내어 경기장을 질주하는 자동차들. 함성을 외치며 열광하는 2만의 ‘팬’들. 경주 중 공기 속에 풍기는 연료 냄새. 종종 몇 ‘인치’의 간격으로 위험스러운 속도로 마구 달리는 조그만 경주용 자동차들.

이것이 자동차 경주에 대한 나의 첫 추억이다. 그날 밤 나의 아버지가 일광(溢光) 조명들이 밝게 비추는 ‘시드니’ 경기장에 나를 데리고 갔을 때, 나는 단지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경주를 보고 내가 받은 인상은 수십년간 잊혀지질 않았으며 나의 인생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날 밤 내가 지켜보던 생명을 내거는 그 동일한 경주에 나도 뛰어들었다.

결혼 생활을 뒤로 밀쳐 버린 자동차들

나는 1940년에 한 중류 가정에서 출생했다. 나의 아버지는 건축 사업에 종사하였고, 지역 사회에서 매우 존경을 받는 분이었다. 당시의 절대 다수의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아버지에게는 매일의 생활에 규율과 존경이 첫째 갔다. 그리고 절대 다수의 아들들과 마찬가지로 십대 소년으로서 나는 부모들보다 아는 것이 더 많다고 느꼈다. 나는 16세가 되기 전부터 부모의 충고를 거역하면서까지 이성과의 ‘데이트’를 시작했다. 결국 나는 18세의 어린 나이로 결혼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나는 내가 결혼 생활을 위해 얼마나 준비가 부족했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 안가서 내 환경에 대해 완전히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결혼에 수반되는 책임은 나에게 정말 거치장스러운 짐이 되었다. 그리고 또 내 주위에 있는 기혼자들의 생활을 살펴보고는 그들이 하는 대로 즉 결혼에 수반되는 책임들을 무시하기로 했다.

나는 자동차 한 대를 사서 나의 모든 시간과 돈을 자동차에 바쳤다. 그 당시 나는 술도 마시지 않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그리고 음행이란 말 자체도 더럽게 생각되었다. 나는 주유소에서 여러 날 밤을 보내곤 했다. 거기서 자동차와 발동기에 대해서 기계공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아내는 불평하기 시작했고 만족이 없을 때에는 귀찮게 대들었다. 나는 잠시 안착하여 집 한채를 지었고 나의 자녀들에게 얼마간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곧 다시 생활이 따분해졌다.

첫눈에 매혹됨

그래서 나는 다시 주유소로 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들어서자 바닥 한 가운데에 조그만 경주용 자동차가 한대 있었다. 나는 첫눈에 매혹되었다. 언제 그것이 경기장에서 질주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일요일에 ‘시드니’ 외곽에 있는 ‘웨스트미이드’ 경기장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마침 수리공 좌석이 하나 비어있었다.

결혼에 수반되는 책임, 걱정, 따분함, 이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의 어깨 위에 앉아서 ‘시드니’ 경기장에서 자동차 경주를 구경하던 옛 추억들이 물밀 듯이 되살아났다. 나는 그날 일요일에 있었던 경주에 완전히 매혹되었다. 그래서 수리공의 영구 성원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나는 얼마 안가서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동차 경주에 참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 주일 후의 소위 기계공들 경주에서 그 기회가 왔다. 나는 세번째로 들어왔고 자동차 주인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이 경주에서 단 한번 울타리를 들이받았을 뿐이다. 정말로 경쾌한 경험이었다. 과속으로 질주하는 것은 정말로 멋있었다. 소음과 위험에 대한 생각 때문에 나의 심장이 여러 시간 뛰었다. 나는 여러 주일 그 경주를 잊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내가 경기장에서 마치 ‘술취한 고양이가 스케이트를 타는 것’같이 보였다고 논평했음에도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가끔 경주에 한번씩 참가하는 것으로 나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 후에 자랑스럽게도 내 차를 한대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차를 재조립하여 여러 번 경주에서 우승하였다. 이 무렵에 나는 흡연 습관에 젖어 있었고, 간음은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결혼 생활은 멀리 밀쳐 버렸다.

생명을 내거는 경주

승리하는 데는 상당히 많은 우연이 관련되기 때문에 횡사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항상 나를 괴롭혔다. 자동차에는 안전 ‘벨트’와 ‘로울 바아’가 구비되어 있었다. 경주에 참가하기 전에 반드시 매번 자동차를 점검하고 ‘헬멧’을 점검했다. 경주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경주가 있기 전 24시간 동안은 ‘알코올’을 마시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도 사망자는 여전히 많았다.

나는 항상 죽은 나의 친구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곤 했다. 그들은 장례식에서 말한 대로 하늘로 갔을까?

1964년에 들어와서 나의 인생 행로를 바꾸어 놓은 일이 두 가지 발생했다. 나는 이전에 교제하던 여자 친구들과는 아주 다른 한 여성을 만났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거의 같은 무렵에 나는 최신형 자동차를 타라는 제의를 받게 되었다. 이것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새 ‘클럽’에 가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자동차들을 모는 가장 훌륭한 선수들을 상대로 경주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나의 생활은 자동차 경주에 미쳐 있었다. 우리는 토요일 밤과 일요일 오후 양일간에 경주를 하곤 했다. 그리고 때때로 이 두 차례의 경주가 있는 사이에 망가진 자동차를 재조립하곤 했다. 이러한 생활로 나는 곧 신경이 쇠약해지게 되었다. 나는 흡연도 심하게 하게 되었고 술도 지나치게 마시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부도덕이 나의 생활 방식이 되어 버렸다.

승리의 길

1965년에 나는 ‘주니어 챔피온’이 되고자 전력을 다했으나, 나는 보호 안경을 모조리 한꺼번에 벗어버린 바람에 그날 밤 경주에서 지고 말았다. (보호 안경을 4개에서 8개까지 겹쳐 끼었다가 제일 바깥 것이 더러워지면 하나씩 벗어버린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 해에 나는 승리자가 되어 영구적으로 일류 선수가 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경주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죽음이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았지만, 나는 내 자신이 상당히 능숙한 선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상을 당하게 될 실수는 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되던 선수가 내가 서 있는 불과 20‘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서 죽고 말았다. 그는 나에게 범하지 말라고 이전에 경고해 주던 바로 그 실수를 범하여 죽게 되었다.

경주장 경기에서는 승리하는 데 불리한 점이 있다. 왜냐 하면 가장 빠른 자동차가 경기장의 맨 뒤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출발하여 우승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위험을 무릅써야 하고 때로는 10여대와 끔찍한 충돌을 할 수도 있다. 나는 경주를 잘 하였지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들 했다. 내가 진정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조심성을 버려야하고, 다른 사람에게 위험을 줄까봐 염려하는 일이 있었어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1967-1968년 ‘시이즌’에는 새 차를 한대 구입하게 되었고 우리의 초점은 모두 ‘오스트레일리아’ 및 세계 ‘타이틀’에 집중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타이틀’을 위한 경주에서 내 차가 선두에서 달리다가 폭발하는 바람에 우승의 문턱에서 아깝게 놓치고 말았다.

그 다음 세계 ‘타이틀’ 밤이 되었다. 나는 맨 앞 줄에 설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이제 내가 우승하기 위해서는 다만 35바퀴를 도는 동안 무서운 속력으로 계속 선두자리만 지키면 되었다. 사고로 인하여 출발이 세번이나 다시 시작되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계속 선두를 지켰다. 드디어 나는 승리자가 되었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는 드디어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하찮은 승리였다. 나는 곧 세계 ‘타이틀’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은 이 ‘타이틀’ 때문에 나는 많은 친구들을 잃었다. 그리고 나는 28세의 나이에 담배와 ‘알코올’에 중독이 되어 있었고, 경주용 자동차와 여자에게 빠져 있었고, ‘스포오츠’의 온갖 병폐에 더하여 끊임없는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었다.

인생 행로를 바꾸어 놓은 아버지의 죽음

그래서 나는 그 이듬 해에 경주용 자동차를 팔아 처분하고 나의 애인을 데리고 ‘퀴인즈랜드’ 주로 이사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다시 건축업에 종사하게 되어 난생 처음으로 자족하게 되었다. 또 아버지와 나는 다시 의좋은 부자가 되었다. 우리는 함께 일하기 시작했고 정말로 서로 즐거운 교제를 즐겼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은 오래 가지 않았다. 1971년에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실제로 사망하시고 안계신다는 것을 내가 실감하는 데는 수개월이 걸렸다. 나는 다시 당황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어디로 갔는가? 하늘에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가? 지옥불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버지는 어떠한 사람이었는가? 다시 아버지를 볼 수 있을 것인가?

그 후 얼마 안가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얻게 되었다. 나의 처제가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과 성서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그가 나의 남 동생에게 그리고 남 동생이 나에게 성서적인 대답을 전해 주었다. 죽음에 대한 진리를 안 것은 나에게 보다 큰 즐거움의 원천이 되었다. 죽은 나의 아버지와 친구들이 지옥 불에서 고초를 당하고 있지 않다는 것과 하나님의 뜻이라면 장차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나는 위안을 받았고 감격하였다.—전도 9:5, 10; 시 146:3, 4; 요한 5:28, 29; 사도 24:15.

나는 내가 묵고 있던 ‘호텔’에서 친구들과 아는 여자들에게 내가 배우고 있는 것을 말해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이상해진 것처럼 대했다!

새로운 경주에 참가함

성서를 열심히 연구한 끝에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내 인생을 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생명의 상을 받는 경주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경주를 하기 위해 나는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 버려야 했다. (히브리 12:1) 이것은 나에게 중대한 변화를 의미했다. 과음, 부도덕 및 흡연 습관 등을 깨끗이 버려야 했다.

그 다음 문제는 호별 방문 증거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만은 절대 못합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나는 또 한번 하나님의 영을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마치 고대 ‘예레미야’의 경우에서와 같이 내 속에서 불붙는 것 같았다. 나는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973년에 나는 재혼한 아내와 함께 여호와께 헌신하고 침례받은 참된 종이 되었다. 다행히도, 나의 이전 아내도 이제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이 되었고 그와 자녀들 역시 모두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 안전하게 보호를 받고 있다.

그래서 1978년 12월에 나는 내가 10년 전에 세계 ‘챔피온’이 되었던 바로 그 경기장에 서게 되었다. 관람석은 역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이번에는 단 한 사람이 아니라 참가하는 선수라면 누구든지 우승할 수 있는 생명의 상을 받는 경주에 참가하고 있었다. 나는 ‘여호와의 증인’의 “승리의 믿음” 국제 대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렇다, 정말로 여호와의 뜻인 생명의 상을 받는 이 경주는 내가 진정으로 우승하고자 하는 경주이다.—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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