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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2
깨82 9/1 15면

가장 어려운 말

“아내가 딱해 보였읍니다,”라고 동정적인 남편이 말했다. “아내는 자신의 젊은 친구들을 위해 오찬을 아주 열심히 만들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할 시간이 되었을 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읍니다. 처음에 아내는 약간 초조해 했지만, 그 다음엔 화가 나고 말았읍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너무나 화가 나서 눈물이 글썽글썽 했읍니다. 그의 ‘맛 좋은’ 오찬은 지나치게 익기 시작했읍니다. 그러나 아무도 늦는다는 전화조차 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이렇게 계속 말한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최악의 경우를 염려하게 됩니다. (어떻게 된 걸까? 사고난게 아닐까?) 결국, 그들 중 두명이 마침내 나타났읍니다. 나머지는 전화도 없었읍니다.”

이것은 어떤 우정의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그리스도인 행실은 다행히도 이겨냈다.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다음 날 나의 아내는 세명의 부주의한 친구들을 보았을 때 눈물어린 사과를 기대했읍니다. 그러나, 아내는 겸연쩍은 미소와 빠르게 지나치는 인사를 받았을 뿐입니다. 며칠이 지났읍니다. 나는 나의 아내가 솔선하여 자신의 친구들에게 접근하기로 결정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읍니다. 몇명은 눈물을 글썽거렸고, 몇명은 꼭 껴안았으며 문제는 바로 잡혔읍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그들이 단지 “미안해” 하고 말할 수는 없었을까?’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읍니다.”

“미안하다는 말은 가장 어려운 말 같아요.”라는 ‘팝송’의 후렴은 진리이다. 왜 그런가? 아마 “미안합니다”는 죄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불완전합니다!”라고 말하면 그는 “우리 모두가 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고 대답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그는 자기 중심적이며, 교만하며, 건방지고, 무감각하며, 어리석거나 화를 잘 낸다고 말하면 예민한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다. 성서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너그럽게 보아주며, 참고 용서하라고 교훈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잠언 17:9; 에베소 4:32; 골로새 3:13.

오찬에 늦는 것은 하찮게 보이지만, 흔히 사람들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장벽을 쌓는 것은 바로 그러한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다. 그러나 다툼의 장벽은 때때로 간단한 “미안합니다,”라는 말로 없어질 수 있다.

그렇다, 그러나 누가 그 말을 먼저 할 것인가? 우리는 “나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상황을 분석하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판정한다. 우리는 “누군가는 옳음이 틀림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추리는 “상대편”도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그런 식으로 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잠언 18:17) 따라서 교착 상태에 이르게 된다. 사과하는 것을 패배로 간주하고, 양쪽은 그들의 참호를 파고 장기전을 위해 준비한다.

그러나, 성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심을 기꺼이 희생하려고 할 때 오래 계속된 적개심이라 할지라도 해결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예로써, 족장 ‘야곱’을 고려해 보자. 그는 다툼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기꺼이 희생을 하였다. 그의 쌍동이 형, ‘에서’와의 경쟁은 출생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것은 ‘야곱’이, ‘에서’가 자신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았던, 장자권을 획득하기 위해 일들을 계획했을 때 불같은 증오가 폭발하였다. (창세 25:22-34; 27:1-41) ‘야곱’은 생명을 보존키 위해 도망하였다! 여러 해가 지나갔으나 ‘야곱’에 대한 ‘에서’의 증오는 식지 않았다.

드디어, 대면의 날이 왔다. ‘야곱’은 겸손히 사자를 보내서 ‘에서’와의 만남을 청했다. 창세기 32장과 33장의 이야기를 읽어 보면 당신은 이 사이가 나쁜 형제들이 만나기 위한 준비를 할 때 감도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야곱’은 그의 가축 떼와 아이들을, ‘에서’는 400인의 무리를 데리고 나온다! ‘에서’의 정신에 살의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야곱’은 화해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겸손하게 우정적인 행동을 취하였다. 그리고 그의 행동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수백마리의 값비싼 염소와 양 그리고 많은 암소, 약대와 황소를 평화를 위한 예물로 ‘야곱’의 종들이 전달했다. 이러한 관대함을 나타내는 것을 보고 ‘에서’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러나 평화는 그 이상을 요할 것이었다 ‘에서’와 대면해서, ‘야곱’은 어떻게 하였는가?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번 땅에 굽히며 그 형 ‘에서’에게 가까이 하니[라.]” 마치 그는 더 우월한 사람을 대하듯이 그처럼 행동했다. 그 효과는 어떠했는가?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창세 32:13-15; 33:1-4.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개인적 다툼에서, 누가 “옳”고 “그른”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평화를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당신이 의견 대립이 벌어질 때 이렇게 자문해 보라. “나는 문제를 그의 관점에서 보고 있는가? 나는 문제를 그리스도의 방법대로 다루고 있는가? 나는 겸손하려고 하는가? 나는 누군가를 좀 곤란하게 했기 때문에 먼저 “미안합니다” 하고 말해야 할 사람일 수 있는가?”

“‘미안’은 단지 한 단어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힘이 있는 단어이다. 그 말을 먼저 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마태 5:9, 2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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