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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장래는 어떠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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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장래는 어떠할 것인가?
  • 깨어라!—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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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은 묻는다 ·⁠·⁠·

우리의 장래는 어떠할 것인가?

17세인 그는 국영 ‘텔레비젼’ 방송국에서 자국의 지도자와 대담중이었다. 대면하고 있는 노련한 정치가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장래가 두렵습니다. 핵의 위협으로 뒤덮인 세상의 장래가 말입니다. ·⁠·⁠· 현 정치라는 것 또한 두렵습니다.”

많은 청소년들은 장래에 대한 비슷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당신도 그러한가? 당신도 그러하다면, 오늘날 청소년들이 직면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들을 볼 때, 그것은 이해할 만하다.

예를 들면, 안전한 장래를 위해 준비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훌륭한 교육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기본 교육조차 받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한 평론가는 “실로, 교사들, 학생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부모들 중에, 학교에 대해 만족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많은 교육 기관이 실패하고 있음은 가장 기본적인 기능도 못 갖추고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의 수가 많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다. 당신이 다니는 학교에도 같은 문제가 있는가?

만일 당신이 고등 교육을 받고자 한다면 어떠한가? 어떤 나라에서는 이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독일의 경우, 1985년이면, 매년 청소년 260,000명의 대학 입학 원서가 거절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것은 낙담한 지원자들 및 기타의 사람들 모두에게 욕구 불만을 일으킨다.

한 교육 관계 관리는 설명하기를 대학에 입학할 수 없는 청소년들은 “그들보다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열망하는 직업으로 향하게 되고, 거기서 밀려나게 된 사람들은 차례로 하나 더 낮은 수준의 직업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결국, 기능을 덜 요하는 직업을 찾아 구하는 노동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 시세가 없게 된다”고 하였다. 그들 앞에 놓인 장래는 어떠할 것인가?

현재 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장래를 두려워한다. 청소년들이 점점 더 일어날 것만 같이 느끼고 있는 핵전쟁에서 안전한 직업이나 대학의 학위는 거의 무가치할 것이다. 전쟁을 피한다 하더라도, 만연되고 있는 공해, 악화되고 있는 경제, ‘인플레이션’ 및 기타 오늘날 세상의 냉혹한 현실들은 안전한 장래를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러저러한 문제들은 청소년들에게 욕구 불만을 안겨 주었으며, 그들은 그에 대해 때때로 극단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욕구 불만의 위험

어떤 청소년들은 ‘알코올’과 마약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이것이 어떻게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실업률이 높은 사회에서 마약이나 ‘알코올’에 중독된 청소년이 직업을 얻기가 더 쉽겠는가, 아니면 더 어렵겠는가? 그는 갈망하는 대학에 합격하기가 더 쉬울 것인가, 아니면 더 어려울 것인가?

어떤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욕구 불만을 폭력으로 폭발시킨다. 하지만 진정 이것도 대답이 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폭동을 일으키는 일, 재산을 파괴하는 일, 그렇지 않으면 대 파괴를 선동하는 일 등은 단지 다른 사람의 불안을 증가시키고 당국으로 하여금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파손된 지역을 복구하기 위해 값진 자원을 소비하게 만들 뿐이다.

또, 어떤 청소년들은 뒤로 물러나 노력을 포기한다. 상당수의 청소년들은 희망을 완전히 상실하였으며, 사실—그 수는 너무 많아서 서독에서는 십대 사망의 두번째 원인이 자살이다. 그러나, 어떤 청소년들은 종교에 눈을 돌렸다. 당신은 종교에 대답이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종교는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작년 6월에, 제 19차 복음 교회 회의가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열렸다. 주제는 “두려워하지 말라!”였다. 100,000명이 넘는 참석자의 과반수 이상이 십대였다. 제시할 만한 대답을 종교가 가지고 있다면, 그 때야말로 그들이 대답을 들을 좋은 기회처럼 보였다. 사실이 그러하였는가?

그 회의에 관한 한 신문 보도를 읽어 보면 이러하다: “‘프로그램’도 정신 상태도 모두 두려움이었다—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내적 공허감이 명백히 드러난 적은 별로 없었다. ·⁠·⁠· 두려움, 절망, 불신을 사방에서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전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말이다.” 분명히, 수만명의 십대 청소년들은 그들이 찾아 구하는 희망의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한 일간지(Die Welt)에 실린 이에 대한 보고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이 교회 회의에서 다룬 논제는 ·⁠·⁠· 정치였다. 충성이 아니라 참여에 관한 것이었다. 내세의 구원이 아니라 현세에서의 재난에 대한 두려움이 관심사였다.” 정치에 우선적인 관심을 두었음은, 한 소녀가 소식을 남겨 두는 벽에 꽂아 놓은 안타까운 쪽지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쪽지는 이러하다. “왜 나는 예수에 관해 아무 것도 듣지 못하였나?”

많은 종교들이 이와 같다. 그들의 소식은 성경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이 되었다. 왜 종교가들이 정치 문제에 개입하여 전문적인 정치가들도 오랫동안 노력해 보았지만 성과가 거의 없는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느끼는지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정치가들, 종교가들 및 기타 세계 지도자들이 우리의 장래를 보장해 줄 수 없다면, 그것은 전혀 희망이 없음을 뜻하는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함부르크’에서 열린 그 교회 회의에 참석했던 수만명의 십대들이 만일 몇주 뒤에 다시 그 장소로 왔더라면, 그들은 해결책을 위한 다른 방법을 알게 되었었을 것이다.

해결책을 위한 다른 방법

그 때 ‘함부르크’에서는 ‘여호와의 증인’에 의하여 또 다른 대회가 열렸다. 한 기자는 여기에도 “놀랄 만한 수”의 청소년들이 참석한 점에 유의하였다. 하지만 이 청소년들은 정치에 관한 토론을 들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증인’들은 ·⁠·⁠· 정치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하나님의 정부가 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여호와의 증인’들은 세계의 전체 역사가 가르쳐 준 교훈 즉 인간이 이 지상에 평화와 안전을 갖다 줄 수 없다는 교훈을 현실적으로 배워 알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성서는 “방백들[인간 지도자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그 귀절은 계속하여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한다.—시 146:3, 5.

왜 여호와께 소망을 두어야 하는가?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자신의 방법으로 인류의 문제들을 해결할 목적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나라[왕국, 신세]이 임하옵시며 뜻이 ·⁠·⁠·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마태 6:9, 10) 이 왕국은 하나님께서 설립하시는 하늘 정부로서 땅을 공의로 다스리고 악을 제거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왕국이야말로 안전한 장래를 갖다 줄 유일한 수단이라고 선언하셨다. 인간 노력의 분명한 실패로 볼 때, 선택해 볼 만한 다른 것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자신의 역할을 다함

하지만, 당신은 아마 이것을 너무 안이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손쉬운 해결책 즉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 것을 기다리기만 하는 방법을 취한다고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더 나은 세상을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신들을 그러한 세상에서 살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따라서, 그들은 정직성, 충성심, 비이기심 및 진실성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노력한다. 그렇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진력한다. 이에 부가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 아래서 보게 될 더 나은 세상에 관한 희망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준다.

이러한 태도는 청소년들에게 참다운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오바니’는 십대 초에 나쁜 친구들과 사귀게 되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곧 자전거와 ‘오오토바이’를 훔치는 방법, 그리고 열쇠를 따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 열여섯 살이 되자마자, 나는 정기적으로 마약을 복용하였고 ·⁠·⁠· 그로 인한 나쁜 영향 때문에 종종 나는 자살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은 스물 여섯 살이 된 ‘지오바니’는 더는 사회나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무엇이 변화를 갖다 주었는가? 그는 대답한다. “내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인 것은 무엇보다도 성서의 소식 즉 장래에 이 땅은 온갖 부패와 악으로부터 깨끗해져 전세계가 낙원이 된다는 소식이었다.”

매년, 수천명의 청소년들이 이 희망에 관해 배움으로써 자신들의 생활에 그와 비슷한 변화를 하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변화하기 때문에 사회는 그만큼 더 좋아진다.

물론, 이 신앙이 현 문제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들을 더 쉽게 대처하도록 해 준다.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확실한 지식은 장래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한다. 그리고 정직하고, 상대하기가 유쾌하고, 낙관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열려 있는 모든 교육의 기회들을 최대한으로 이용한다. 나중에 그들은 욕구 불만 때문에 험악해지거나 마약과 ‘알코올’에 눈을 돌린 사람들보다 훨씬 더 쉽게 일자리를 구하게 됨을 알게 된다.

얼마나 더 오래?

만일 현재와 같은 상태가 계속된다면, 인류는 거의 틀림없이 마침내 자멸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왕국이 개입할 때까지 우리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 것인가? 분명히 긴 기간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청소년인 자기의 한 벗에게 현 사물의 제도의 종말에 관하여 토론하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당신이 직접 그 내용을 읽어 보면 이러하다. “이것을 알아 두시오. 마지막 날에 어려운 때가 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과장하고 자만하고 하나님을 모독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경건하지 않고 무정하고 원한을 풀지 않고 비방하고 절제가 없고 난폭하고 선을 좋아하지 않고 배신하고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교만하고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고 경건의 모양은 가지고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디모데 후 3:1-5, 새번역.

당신은 이 말씀의 성취를 인식하고 있는가? 청소년들이 장래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이해할 만하게도, 오늘날 사람들이 위와 같은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바울’이 그러한 태도가 마지막 날, 즉 하나님께서 인간사에 개입하시기 직전에 만연할 것이라고 말한 점에 유의하였는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곧 개입하실 것임을 증명하는 많은 성귀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여호와의 증인’들을 만나 이 문제를 더 토론해 보고 이 논제에 관한 다른 성귀들을 더 살펴보는 것이 어떠한가?

서두에 언급한, ‘텔레비젼’ 회견에 나온 십대가 표현한 두려움은 사실이었고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장래를 꼭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목적이 무엇인지를 성서에서 배울 수 있다. 그 다음, 원한다면, 안전하고, 보람있고, 희망으로 가득찬 장래를 위해 일할 수 있다.

청소년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 성서 필자와 같은 확신을 갖게 될 수 있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 37:10, 11.

[21면 삽화]

대학의 학위는 핵전쟁에서 거의 무가치할 것이다

[22면 삽화]

중독은 직업 얻는 일을 더 쉽게 만들 것인가?

[23면 삽화]

사람들은 삶의 질을 개선시키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23면 삽화]

‘증인’들은 하나님의 왕국 아래 있게 될 더 나은 세상에 관한 희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준다

[23면 삽입 성구]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 12: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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