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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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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3
깨83 9/1 19-21면

환생을 믿어야 하는가?

‘캐나다’, ‘에드먼턴’ 출신의 한 남자는 LSD에 취해 있는 동안 거울을 응시하곤 하였다. “나는 환각에 빠져 전생(前生)의 나 자신이라고 믿어지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나는 수많은 사람을 죽인 책임이 있는 악당 두목으로서의 나를 보았다. 한번은 거울 속에서 그런 악한을 보고 있다가 ‘너는 네가 저지른 이러한 악행으로 인해 고통을 당해야 할 것이다!’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마약을 사용하는 경우 외에도, 사람들은 다른 것들로 인해 환생(還生)을 믿게 된다. 새로운 장소를 방문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전에 분명히 그곳에 있었다는 이상한 감정을 가지게 되며, 그 때문에 그들이 이전에 틀림없이 산 일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낯선 사람들과 만난 후에도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고 말한다. 최면술 역시 한 몫을 차지해 왔다. “오늘날 개업하고 있는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환생을 믿게 되었다. 그것은 최면에 빠진 그들의 환자들 중 얼마가 그들이 태어나기 전 시대의 경험들을 기억해냈기 때문이다”라고 「영과 영계」(Spirits and Spirit World)에서 ‘R. 스테만’은 기술하였다. 동일한 교리가 ‘힌두’교와 불교의 기초를 이루고 있으며, 그 종교의 성원들은 5억 이상을 헤아린다.

동양에서는 오랫동안 두드러졌지만, 환생은 최근에 서구 사회에서 보편적인 주요 화제 거리가 되었다. 그것은 서적과 영화의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한 소설 원작의, 최근 ‘로버트 와이즈’ 영화 제작소 작품인 「오드리 로우즈」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 이야기는, 그들의 사랑하는 딸이 다른 사람의 죽은 자녀가 환생한 것이라는 것을 믿고 괴로와하는 부모를 묘사하였다.

“죽은 후에 사람의 영혼은 다른 사람의 몸으로 재생(再生)한다”고 환생론자들은 말한다. 이러한 신앙은 어디에서 기원하였으며 그것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당신도 역시 그것을 믿어야 하는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죽은 후에 사람의 영혼이 다른 몸으로 옮겨간다는 신앙은 과거의 인간 사회에 널리 퍼져있었으며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 종족 중 하나인 ‘벤다’족은 환생을 믿으며, 마찬가지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남‘아메리카’의 ‘아로카니아’ ‘인디안’ 및 그 외의 많은 사람들도 믿는다.

2,000여년 전에 고대 희랍인들과 서부 ‘유럽’의 ‘켈트’족은 환생을 믿었다. 동시에 ‘브라만’교의 승려들은 그것을 ‘인도’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많은 학자들은 동양의 ‘힌두 브라만’교와 서양의 ‘켈트’족의 ‘드루이드’교는 고대 ‘인도—유럽’ 민족의 사제직으로부터 파생된 잔유물임을 믿는다”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설명한다.

‘인도’, 서부 ‘유럽’ 및 희랍에서 중심을 이루던 하나의 ‘고대 사제직’은 ‘바벨론’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환생 교리는 그곳으로부터 기원한 것인가? ‘바벨론’ 종교에는 그들이 신격화한 죽은 영웅 ‘담무스’ 또는 ‘두무지’에 대해 매년 애곡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를 환생시킨 왕들은 매년 세계의 재창조를 기념했다. ·⁠·⁠· ‘담무스’는 6개월 후에 다시 나타나기 위해 사라진다. 이러한 교체—신이 주기적으로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는 인간의 구원, 사후의 운명에 관하여 ‘신비’를 조작할 수 있었다. ·⁠·⁠· 마침내 모든 인간은 이러한 특권을 즐길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고 ‘프랑스’ 교수 ‘엘리아드’는 썼다.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오드리 로우즈」라는 소설에 묘사된 것처럼, 환생은 부모에게 혼란과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는가? ‘인도’에서 ‘비노다 머디’ 박사는 보고된 “재생”의 사례들을 조사하였다. 한 가지 경우는 매일 저녁 울면서, 자기가 다른 장소에 속해 있었다고 말하는 한 어린 아이에 관련된 것이다. 마침내 그는 멀리 떨어진 마을로 보내졌으며 그곳에 있는 집 한 채와 그 안에 살고 있는 부부를 가리켜 바로 자기 집이며 자기 부모라고 하였다. 과학 저술가인 ‘라다크리쉬나 라오’에 따르면, “그 이야기는 유감스러운 결과를 초래하였다. 왜냐하면 그 소년은 이쪽과 저쪽 부모 사이에서 열띤 논쟁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환생에는, 현생에서의 불행은 전생에서 행한 일에 대한 형벌이라는 신앙이 관련되어 있다. 이것을 “‘갈마’의 법칙”이라고 한다. 이 신앙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게 하지 않으면서 또한 선을 행하게 하는 적극적인 힘인가? 그 대답은, 수많은 사람들이 부담스럽고 압제적이라고 생각하는 ‘카스트’ 제도를 주도해 온 ‘브라만’ 승려의 신분에서 반영된다. 또한 사회에서 벗어나 은둔 생활을 하는 승려들을 고려해 보자. “만일 사람이 그의 악한 전생과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법령을 거스리거나 방해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인간, 신화 및 마법—초자연 현상 도해 백과사전」(Man, Myth and Magic—An Illustrated Encyclopedia of the Supernatural)에서 말한다.

자기들의 “전생”을 조사하다가 어떤 사람들은 위험한 초인적인 힘의 영향력 아래 들어 가게 되었다. “영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을 느꼈다”라고 이 기사 서두에서 언급한 그 사람은 기술하였다. “때때로 나는 오로지 죽어서 결코 다시 태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 나는 자살하려고 수차례 시도하였다.”

성서는 무엇이라고 가르치는가?

성서는 사후에 살아남아 어떤 다른 사람으로 재생하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없다고 가르친다. 영혼은 그 사람 자신이다. 예를들어, 첫 사람이 창조된 후에 그가 “영혼”이라고 불렸다는 것을 성서에서 읽을 수가 있다. 따라서, 그가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 “영혼”은 하나의 종말에 이른 것이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성서는 다른 곳에서도 인간 “영혼”이 죽는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알려 준다.—창세 2:7, 신세; 3:19; 여호수아 10:32, 신세; 에스겔 18:4; 야고보 5:20; 계시 16:3, 신세.

죽은 후에 몸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환생의 신앙과 관련된 현상들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성서는 불충실하게 된 천사들인 악귀들이 이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알려준다. (디모데 전 4:1) 사후 생명의 희망에 대하여, 우리는 창조주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을 다시 불러주실 능력을 확고히 믿을 수 있다.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확증하신 바와 같다. “때가 올 터인데 그때에는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의 소리를 듣고 나올 것이[다.]”—누가 20:35; 요한 5:28, 29, 새번역.

하나님의 말씀의 이러한 지식은 한 때 고통을 받던 ‘캐나다’, ‘에드먼턴’ 출신의 남자를 포함하여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가져다 주었다. 이전에 ‘인도’의 ‘힌두’교인이었던 또 다른 사람은 그것을 이와 같이 표현하였다. “환생에 따르면, 사람들이 병들고 죽는 이러한 상태하의 현 제도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부활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왕국 정부를 통하여 이 부패한 제도의 종말을 가져 오신 후에 있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 질병, 슬픔, 심지어 죽음까지도 옛일이 될 것이다!”—계시 21:3, 4.

[19면 삽화]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전에 살았던 적이 있다는 느낌을 가진다

[20면 삽화]

‘갈마’의 법칙은 끝없는 “윤회”(輪廻)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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