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녹색 식물에 대해 감사하는가?
아마 당신은 식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을지 모르며 특히 흥미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설사 식물학이 당신에게 따분한 것이라 하더라도 당신에게는 녹색 식물에 대해 감사할 만한 좋은 이유가 있다.
완고한 도시 거주자들까지도 바로 녹색 식물이 음침한 사무실이나 ‘어파아트’를 살만 해보이게 해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온이 치솟을 때, 도시 사람들은 설사 혼잡한 공원에서 조그마한 풀밭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 하더라도 나무 그늘 아래 앉는 것을 즐거워한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당신은 땅의 푸른 나무의 훌륭한 점에 대해 참으로 고맙게 여길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우아하게 고안된 ‘카아핏’처럼 장식한다. 녹색으로 뒤덮인 산, 계곡 및 초원을 생각하며 경외감에 사로잡히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숲, 언덕 및 작은 골짜기의 경치를 보고 냄새를 맡으며 즐거워하지 않는가? 당신은 인간이 탐욕적으로 벗겨버린 지역을 방문해 보기만 해도 지구의 푸릇푸릇한 초목이 우리의 가정을 얼마나 아름답게 하는가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우리 대부분처럼, 아마 당신은 바로 우리의 생명이 이러한 녹색 식물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생각지 않고 초목을 짓밟았을지 모른다. 어떻게 우리의 생명이 이러한 녹색 식물에 달려 있는가?
녹색은 성장을 위한 것이다
아무 나무나 풀에서 녹색 잎을 하나 따서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 보라. 그 잎의 대칭과 단순미에 경탄할 것이다. 잎을 견고하게 하는 그 엽맥의 “배관” 조직을 관찰해 보라. 당신이 소형 태양력 발전소인 경이로운 화학 실험실을 손에 들고 있다고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흉하고 매연을 내뿜는 시끄러운 공장들과는 달리 잎은 조용히 공정을 진행시킨다. 그리고 그 일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향상시킨다. 어떻게 그런 작용을 하는가?
우선, 잎은 넓은 표면을 갖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다. 대개, 태양을 향한 쪽의 잎면은 반질반질하다. 그것은 방수 처리가 되어 있기 때문에 수분 증발을 막는다. 더 많은 점을 알아 보기 위하여, 18면의 그림을 조사해 보라. 그것은 잎의 단면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당신은 잎이 층을 이루며 만들어 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질반질한 층 아래에, 작은 원통형 세포들로 이루어진 “울타리” 층이 있다. 그 세포들은 일렬로 행진하는 군인들처럼 똑바로 서있다. 바로 이 작은 세포 안에서 광합성이라고 하는 화학적인 기적이 일어난다.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식물에게 빛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왜 그런가? 그 반들반들한 층을 통과한 빛이 이들 원통형의 세포들에게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이 작은 세포들 속에는 엽록체라고 하는 훨씬 더 작은 입자들이 있다. 그것들은 엽록소라는 놀라운 색소로 채워져 있다. 이 색소로 인해 초목들이 푸른 빛깔을 띠며—생명을 갖게 된다. 엽록소는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한다. 그리고 당신이 “광합성”이라고 말할 수 있기도 전에,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화학 반응이 시작된다. 잎 속에 있는 이산화 탄소(폐에서 내뿜는 공기) 분자들과 물 분자들이 이제 분리되었다가 재결합하여 식물의 식량인 탄수화물, 당분 및 지방을 형성한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씨 맺는 모든 채소”를 먹을 것을 허락하셨을 때부터 인간은 바로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이러한 식물의 열매들에 의존해 왔다. (창세 1:29) 예를 들어, 초라해 보이는 풀을 생각해 보라. 아마 당신은 풀이 잔디밭을 꾸미는 일 외에는 거의 용도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마 당신이 아침에 마시는 ‘코오피’를 달게 한 설탕은 사탕수수라는 풀의 산물이다. 아마 당신이 아침 식사 때에 밀, 보리, 귀리 혹은 호밀로 만든 곡물식을 먹었다면, 그것 역시 풀이다. 당신이 저녁 식사에서 먹을 쌀도 풀이다. 「아메리카나 백과사전」에서 “풀은 모든 식물들 중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식물학자 ‘로오렌 브라운’은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를 굶주리지 않게 해주는 15가지의 주요 농작물 중 10가지가 풀이다.” 이것들은 바로 풀이다. 그 외에도 사과와 살구, ‘바나나’와 월귤, 당근과 양배추, 대추 야자와 민들레 등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잎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세번째 부분은 엉성하게 채워진 세포들로 이루어진 갯솜층으로 되어 있다. 이로 인해 이산화 탄소를 잎의 뒷면에서 “빨아들인” 후에 잎 속을 통과시킬 여지가 있게 된다.
그렇다, 잎의 이면을 살펴보라. 보이지는 않지만, 거기에는 조절 가능한 흡입 및 배출 ‘밸브’로 작용하는 수백만개의 구멍(기공이라 불림)들이 있을 것이다. “흡입 ‘밸브’”는 광합성 작용을 위해 대기 중에서 이산화 탄소를 실제로 빨아들인다. 그 작용이 끝나면, “배출 ‘밸브’”는 매우 귀중한 부산물인 순수한 산소를 뿜어 낸다!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라.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의 약 20‘퍼센트’ 만이 산소이다. 단지 24시간 내에 우리는 약 3,000‘리터’의 산소를 들이 마실 수 있다. 그러나 몸의 필요에 따라 그 양의 약 4분의 1 즉 750‘리터’의 산소를 소비할 뿐이다. 750‘리터’(하루의 소비량)에 세계 인구 수를 곱하면 우리는 산소가 전부 호흡만으로 소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심지어 매초 만 ‘톤’의 산소가 호흡과, 자동차 운행을 위한 연소와 같은 다른 산소 용도로 소비된다고 추정한다. 그러면 우리가 세계의 산소 공급량을 다 써버려 서서히 질식하지 않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육지와 수중 식물의 잎에서 일어나는, 산소를 생산하는 광합성이다!
식물—과거와 미래
인간이 지구의 푸른 나무에 의존해 있음을 언제나 온전히 인식해 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1648년에 인간은 식물의 내부 작용을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그 해에 ‘벨기에’ 화학자 ‘반 헬몬트’는 항아리에 2‘킬로그램’짜리 버드나무 싹을 심었다. 토양의 무게는 91‘킬로그램’이었다. 5년 후에 그가 다시 버드나무의 무게를 달아 보니 77‘킬로그램’이었다. 토양의 무게는 여전히 91‘킬로그램’이었다! ‘반 헬몬트’는 이제 식물이 토양에서 물질을 흡수하여 자라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아주 논리적으로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정확하게!) 그는 나무가 성장하는 것은 그가 수년간 항아리에 부은 물을 나무가 흡수한 결과라고 결론지었다!
1772년에 ‘조셉 프리스틀리’는 사실에 좀더 접근하였다. 이 전도자겸 시간제 화학자는 불타는 초가 밀폐된 용기 속의 산소를 소비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산소가 제거된 용기 속에 쥐를 넣어 두자 즉시 죽었다. 그러나 식물을 용기 속에 넣어 두어 산소를 다시 채워 넣었을 때, 쥐는 밀폐된 환경 속에서 살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네덜란드’ 물리학자 ‘인겐-후즈’는 식물이 산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빛에 노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더우기 그는 (엽록소가 들어 있는) 식물의 녹색 부분만이 이런 작용을 하는 것에 유의하였다. 그 때에 인간은 광합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발견을 하였고 2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간은 광합성 작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인 호기심과 인간의 장래에 대한 염려 및 ‘노벨’ 상을 탈 전망으로 자극을 받아, 수백명이나 되는 과학자들이 이 흥미를 끄는 신비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자연을 모방하여 인류가 지금까지 원한 모든 식량을 제조할 것을 기대한다. 다른 사람들은 무진장의 ‘에너지’ 근원을 개발할 것을 기대한다. 이미 여러 가지 다른 해결책을 연구하고 있다.
이처럼 식물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때에 인간이 이 중대한 자원을 끊임없이 황폐시키며 파괴시키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모순된 상황이다. 예를 들어, 보고된 바에 의하면 미국 농경지의 85‘퍼센트’가 굶주린 사람들이 아니라 살찐 동물들을 먹이는 일에 바쳐지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살코기에 대한 대중의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한 필자에 따르면, 미국의 일인당 고기 소비는 일년에 60‘킬로그램’이라고 한다.) 고기를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 해롭다고 영양학자들이 경고하지만, 계속 먹는 추세에 있다. 경제학자들은 심지어 사람들에게 과도한 육식을 단념시키는 일이 농부들에게 무서운 경제적인 영향을 줄 것을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브라질’과 같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산림이 자연이 대체할 수 있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벗겨지고 있다. 독일에서는 대기 오염과 그 결과로 생기는 산성 비가 산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지구가 황폐하고 불모지가 되도록 결코 허락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기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지구를]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셨다. (이사야 45:18) 그와는 반대로, 예언자 ‘요엘’은 우리에게 이렇게 확약한다. “두려워 말찌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는도다.]”—요엘 2:22.
한편 우리에게는 지구의 녹색 덮개에 대해 감사할 만한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초라해 보이는 풀, 웅장한 떡갈나무와 ‘세퀘이어’나무, 심지어 당신의 식탁을 장식하는 평범한 나무까지도 모두 단순히 미화하는 이상의 역할을 한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며 옷을 공급한다. 그것들은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를 맑게 한다. 그것들은 우리의 생존에 극히 중요하다.
그러므로 지구의 아름다운 덮개를 좋게 보고 감사함으로 바라보라. 이러한 녹색 식물들이 우리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을 감사하라.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는 분인 창조주께 감사하라.—시 147:8.
[19면 삽입]
세계 여러 지역에서 산림이 자연이 대체할 수 있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벗겨지고 있다
[17면 삽화]
인간은 이것을 ···
··· 이렇게 바꾸어 놓았다!
[18면 삽화]
햇빛
이 층에서 광합성이 이루어진다
기공이 이산화 탄소를 흡수한다
기공이 산소를 배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