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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 왜?
  • 깨어라!—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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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4
깨84 3/15 17-19면

청소년들은 묻는다 ·⁠·⁠·

독서? 왜?

15세된 ‘피에르’는 독서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는, “물론, 만화책은 읽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경주용 자동차 잡지도 읽지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외에 그가 읽는 것은 거의 ‘파리’에 있는 그의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에 국한된 것이다.

독자 자신은 어떠한가? 비록 이 기사처럼 짧은 것이라 할지라도 독서를 한다는 것은 지긋지긋한 일인가? 만일 그렇다면, 독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프랑스’ TV 주간지 「텔레라마」는 “독서? 농담하고 있군요!”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썼다. “[조사에 응한 청소년들이] 독서에 관해 이야기한 바는 이와 같다. 그들은 매우 솔직했다. 그들은 읽는다 하더라도 극소량만 읽을 뿐이다. 지루하다는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그 기사는 이러한 암울한 결론을 내렸다. “세명 중 한명조차도 진정한 의미에서 독자라고 하기가 어렵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라고 물을지 모른다. 크게 상관이 있다. 18세기 작가 ‘리처드 스틸’ 경이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와 같기 때문이다. “독서가 정신에 주는 영향은 운동이 신체에 주는 영향과 같다.” 그리고 한 면의 인쇄된 지면을 읽고 그것을 이해하는 이러한 능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과학자들은 이 놀라운 기술로 인해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읽는 데에는 눈과 뇌의 엄청나게 복잡한 상호 작용이 관련된다. 그러므로 한 과학자는 「사이언스 다이제스트」지에 인용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컴퓨터 모델’ 수준에서 말하자면, 우리는 눈이 읽을 수 없다고 예측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눈은 읽는다. 그것도 빠르게 효율적으로 읽는다.

그러나 읽는다는 것은 어떤 과학적 호기심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신의 지성과 상상의 문을 열어 준다. 안락 의자에 앉은 채로 땅끝까지 여행하며, 흥미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만나며, 감동적인 시를 음미하며, 새롭고 흥미를 돋구는 사상들을 이해하며, 최신 사건들을 분석하며, 역사를 되새겨 볼 수 있다.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독서가 성서를 이해하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오로지 성서를 읽음으로써만, 우리는 자신이 땅에 사는 이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서는 우리가 읽을 것을, 그것도 잘 읽을 것을 고무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들어가는 중책을 맡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율법을 밤낮으로 낮은 목소리로 읽으라’는 말을 들었다. (여호수아 1:8, 신세 참조) ‘이스라엘’의 왕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율법을 복사해서 ‘평생에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면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하라’는 말을 들었다. (신명 17:19) 그러한 독서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덜 중요한가?

사람들이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소년들은 독서를 매우 지겨워한다. 그리고 어떤 교육자들은 학교에서 읽는 것을 가르치는 방법을 비난한다. 아마 당신은 읽는 것을 배우면서 단조롭고 무미 건조한 “철수야 이리 오너라”형의 문장을 외우던 단조로움을 기억할 것이다. 300명 이상의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한 연구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예외없이, 어린이들은 자기들의 독본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시시한지에 대해 불평했으며, 그들이 그것들을 읽어야만 했던 것이 얼마나 싫었는지 말했다. ·⁠·⁠· 이러한 책들은 어린이들의 지성을 모욕하는 것이다.” 나이들어감에 따라 상태는 별로 나아진 것이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마 그때에는 소위 고전들—문체가 극히 따분하고 이해하기 어려워 보이는 책들—을 읽어야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서가 끔찍한 일이 되었다.

그렇지만, 당신이 열심히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학교에게는 단지 부분적인 책임만이 있을 것이다. 이미 언급한 「텔레라마」의 조사에서, 회견에 응한 사람들 중 21‘퍼센트’가 독서를 지루하게 느끼는 이유를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했다. “나는 ‘텔레비젼’ 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어떤 영향이 있는가? 국립 정신 건강 연구소(미국)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알려준다. “증거는 이제 과도한 ‘텔레비젼’ 시청이 읽기, 쓰기, 학교에서 배우는 다른 기술을 연습할 시간을 빼앗는 경향이 있다는 의견을 지지한다. ·⁠·⁠· 또한 ‘텔레비젼’은 대체로 교육 의욕을 방해하는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은 어떤 영향을 주어 왔는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에 나오는 한 기사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전국에 걸쳐 현재 점점 더 많은 수의 학생들이 역사를 공부하는 데 필요한 능숙한 독서력을 구비하지 못한 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년간에 걸쳐 사실상 미국 고등학교에서 하나의 구별된 과목으로서의 역사 과목이 사라져 왔다.” 1979년 ‘포드’ 재단은 이와 비슷하게 2천 5백만명의 미국인이 전혀 읽을 줄 모르며, 또한 그외에 3천 5백만명이 더 사회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읽기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텔레비젼’과 ‘컴퓨터’ 시대에 읽는 것이 그렇게 필요한가? 참으로 필요하다! 읽을 줄 모르며, 이력서를 기재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흔히 육체 노동의 일자리조차 구할 수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아무리 고성능 ‘컴퓨터’라 할지라도 인간의 상상을 대치하게 될 것인가? 독서는 읽고 있는 것을 머리 속에 그려보게 함으로써 상상을 자극한다. 그러나, 12세된 ‘데비’가 말한 것처럼, “TV는 상상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 TV가 교육적일 수 있지만 특정한 정보를 필요로 할 때는 여전히 책이나 잡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가? TV가 당신이 잠간 멈추어 이해하지 못한 점을 다시 읽어 보게 하거나 어떤 인상적인 점을 숙고해 보게 해줄 수 있는가? 그리고 ‘컴퓨터’가 책보다 더 흥미있어 보인다 할지라도, 설명서가 없이 하나라도 조작하는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읽기 능력은 여전히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읽기 능력이 형편없기 때문에 요리책의 조리법이나 간단한 버스 시간표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은 심각한 불편을 겪는 것이다. 그것이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한 교육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문맹은 수족이 없는 것보다 훨씬 더 불리한 장애이다.”

독서 습관의 개선

그러나 읽어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고 수월해지는 것은 아니다. 능숙한 독서가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은 ‘기타아’를 잘 치는 사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그 단계에 이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연습했는지 잠간 멈추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단순히, ‘코오드’를 제대로 잡아 제 화음을 내는 방법이나, 악보를 읽는 방법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는 음계 연습을 하고 훈련을 함으로써 손놀림을 빠르고 기민하게 해야만 했다. 힘든 일인가? 그렇다. 그러나 그는 바친 시간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단순히 단어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훌륭한 독서가가 되기에 불충분하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주간지 「렉스프레스」지는, “자기 나이에 적합한 시험에서 적어도 시간당 8,000 내지 10,000단어”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은 누구나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외관상 인상적인 것으로 보이는 이 속도로 인해 염려하지 않도록 하라. 왜냐하면 당신은 이 기사를 아마도 그 속도로 읽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만일 충분한 빠르기로 읽지 못한다면(최소 1분에 150단어a), 자신이 사상을 분석하는 대신에 단어에 집착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사고의 흐름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다시 읽어야만 한다면, 독서가 힘겨운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비결은 시야를 넓혀서 한번에 여러 단어를 읽는 것이다. 각 단어에 눈이 머무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단어를 웅얼거리며 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분명히 속도가 떨어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때때로 성경적인 내용을 음미할 때와 같은 경우에는 “낮은 목소리로” 읽는 것이 매우 적절하다.) 읽을 때에, 자신이 읽고 있는 것을 이해하는지 자문해 볼 것이다. 다른 출처에서 그 제목에 대해 배운 것과 그것을 비교해 볼 것이다. 이렇게 할 때 관심과 집중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올바른 주위 환경 또한 중요하다. ‘스테레오’ 전축에서 울려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푹신한 안락 의자에 앉아있는 것은 어려운 독서물에 도전하는 방법이 아니다. 또한 통풍이 안 되는 방도 이상적이 아니다. 대신에, 주의를 산만케 할 만한 것들을 깨끗이 치운 책상에서, 정신을 차리고 있게 해줄 의자에 앉아 읽으려고 해야 한다.

미국 철학자 ‘H. D. 도오로우’는 이렇게 기술했다. “참으로 많은 사람이 독서를 함으로써 그의 생애에서 신 기원을 이룩했다.” 당신의 경우에도 곧 그 말이 참될 수 있다. 특히 ‘책 중의 책’인 하나님의 말씀 성서를 읽는 맛을 알게 된다면 그러할 것이다. (베드로 전 2:2) 그렇게 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든다. 그러나 그렇게 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각주]

a 만일 이 기사를 8분 내에 읽을 수 있다면 시간당 약 11,000단어의 비율로 읽고 있는 것이다(1분에 187단어)!

[17면 삽화]

독서는 방대한 분야의 지식을 열어주며 우리의 창조주와 친숙해지게 해준다

[19면 삽화]

주의가 산만하거나 너무 긴장을 푼 상태에서 독서하려고 하는 것은 비생산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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