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지속적인 행복을 발견하였다
1954년에 ‘월트 디즈니’를 처음 본 순간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행복과 연관시킨 사람—영화 화면에 ‘미키 마우스’, 백설 공주 및 ‘밤비’를 들여온 화가였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이곳에서 영화 편집자로 고용되어 ‘캘리포오니아’ 주 ‘버어뱅크’에 있는 그의 영화 제작 ‘스튜디오’에서 일하게 된 것이었다. 그후 30년 동안 나는 매일 그의 창작품의 온갖 환상과 접하게 되었다.
‘디즈니 스튜디오’에서의 생활은 흥미 진진한 것이었다! 많은 영화 ‘스타아’들과 사진을 찍기 위해 세워진 환상적인 촬영 ‘세트’들을 보고 경탄한 나는 계속 눈이 휘둥그래졌다. 예를 들어, 하루는 음향 장치가 된 전체 ‘스테이지’가 물에 잠겨 6개의 강력한 바람 기계에 의해 출렁이면서 무시무시한 폭풍 분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 모든 와중에서, 배우 ‘커어크 더글러스’는 잠수함 ‘노오틸러스’호가 바닥에 가라앉지 않도록 구하기 위해 거대한 문어를 작살로 잡았다. 아마 당신은 「해저 20,000리」라고 불린 그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그 영화는 ‘주울베른’의 소설에 기초한 것이었다.
날마다 꿈이 실현되는 것 같았다. 나의 일은 직업이라기보다 취미에 더 가까왔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에 대해 보수를 받는 것이었다. 사람들도 상당히 두드러지게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에서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 같이 보였다! 약 160,000평방 ‘미터’에 달하는, 음향 장치가 된 ‘스테이지’, 화가들의 작업장, 기술자들의 작업장 및 중앙 사무실 건물은 항상 일종의 협동 정신으로 불타고 있었다. 명랑한 사람들은 ‘월트’의 세계에 속한 것을 행복해 하였다. 나도 그 당시에 내가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어느 날 나는 참다운 행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마술 왕국”과 행복
1928년의 ‘미키 마우스’ 영화로 시작하여, ‘월트 디즈니’는 수억의 사람들의 즐거움에 기여하였다. 1937년에 그는 최초의 장편 만화 영화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를 완성하였다. 그 영화는 대 성공을 거두었으며 아직도 아주 즐거워하는 새로운 세대의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보도록 7년마다 재상영되고 있다!
‘디즈니’가 개발한 또 다른 것은 위락 시설의 설계였다. 미국의 ‘코니 아일랜드’, 영국의 ‘블랙푸울’ 및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티비다보’와 같이 서로 멀리 떨어진 장소들에 수십년 동안 위락 시설들이 존재해 왔다. 그러나 ‘디즈니’의 착상은 그의 위락 시설들이 하나의 주제를 갖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문을 연 것이 1955년에 ‘캘리포오니아’의 ‘디즈닐랜드’였고 그 다음에 1971년에는 ‘플로리다’ 주에 “마술 왕국”을 갖춘 ‘월트 디즈니 워얼드’가 문을 열었다. 1982년에 EPCOT(Experimental Prototype Community of Tomorrow: 미래 사회의 실험 모형)가 추가되었다. 1983년 이래 일본인들은 그들 자신의 ‘토오쿄오 디즈닐랜드’를 갖게 되었다.
지난 30여년에 걸쳐, 3억 3천 5백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디즈니’ 공원을 구경하였으며, ‘디즈니’가 마술 왕국이라고 부른 곳에서 희망이 실현되는 것을 보고 매혹되었다. 그리고 약속대로, 일단 입장하고 나면, 문제들을 보통 잊게 된다. 그 대신 행복한 기분에 젖어드는 것이다.
더 행복한 왕국은 가능한가?
행복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다. 일부 영화 제작자들은 그것을 돈으로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만들어 내는 데 많은 비용이 들지만 이득도 상당하다. 그러나 그것이 참다운 행복인가? 그것은 지속성이 있는가? 생각해 보자.
영화관을 나오거나 ‘텔레비젼’ 수상기를 끄고 나면 혹은 위락 공원을 걸어 나오고 나면 환상은 사라진다! 냉혹한 현실에 다시 부딪친다. 몇 시간의 즐거운 오락은 행복한 추억이 된다. 현실 세계로 돌아오자마자, 추악한 문제들이 다시 물밀듯 닥쳐 오며—그러한 문제들 가운데는 경제, 범죄, 질병 그리고 물론 죽음도 있다. 오락은 지속성있는 행복이 아니다. 그것은 간주곡에 불과하다.
나는 종종, 매일의 생활에서 행복한 일만 즐거이 새로 맞이하고 괴로움이라고는 없는, 근심없이 마음놓고 활동할 수 있는 나라—결코 늙지 않을 뿐 아니라 결코 죽을 필요가 없는 나라, 진정으로 “그 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로 초대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만일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면,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그런 왕국에 들어가기 위해 기꺼이 값을 치르리라고 생각하는가? 독자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인가?
사실, 수백만명이 이미 그러한 곳에 가고 싶은 자신들의 욕망을 나타내 왔다. 아직 “화판”에 있기는 하지만, 그런 장소의 건설은 보증된 것이다. 성서 예언에 따르면, 그런 제의를 활용할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그곳은 “마술 왕국”이 아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왕국에 의해 변모된 땅이다.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면, 그곳에는 진정으로 영원한 행복이 있게 될 것이다!—계시 21:3, 4; 디도 1:2.
머지않아 땅 전체가 낙원으로 회복될 것이다. 체력과 생명력이 새로와질 것이다. 심지어 동물들까지도 더는 두려움을 주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이 누구나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줄 행복감과 성취감으로 완전히 넘칠 것이다. 이 말이 이상적인 꿈처럼 들리는가?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삶에 대한 새로운 견해
이전에 나는 ‘네브래스카’ 주 ‘그랜드 아일랜드’의 제일 그리스도교 교회 성원이었다. 그러므로 과거 1970년에 ‘여호와의 증인’들과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을 때, 땅에서 영원히 산다는 생각은 나에게 새로운 것이었다. 연구가 진전되면서 나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숭배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들의 행실에 대한 분명한 표준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생활에서 변화를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땅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나와 나의 가족이 분명히 알게 됨에 따라 내가 과도하게 몰두했던 자가용 비행기 운전, 음악회 추진, ‘테니스’ 및 기타 취미 생활과 같은 것들이 점점 덜 중요하게 되었다.
성서는 나의 이전 종교가 참으로 하나님의 목적에 관한 진리를 나에게 가르쳐 주지 못했다는 것과 그분의 왕국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명히 밝혀 주었다. 지옥불이란 없다! 죽을 때 몸에서 빠져 나가는 불멸의 영혼도 없다! 하나님은 예수가 아니라, 여호와 곧 전능하신 창조주이시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지, 아들 하나님이 아니다.—에스겔 18:4, 20; 요한 1서 4:15; 시 83:18.
나는 또한 예수께서 결코 정치 문제에 참여하지 않으셨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분은 심지어 죽은 자들도 부활되게 할 낙원이 들어서도록 결국 인간 정부를 제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임을 아셨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사랑에 찬 마련을 택할 것이라면 어떻게 내가 과격한 범죄, 건강 쇠약, 경제 파탄 및 불가피한 죽음으로 이루어진 타락한 현 제도를 영속시키려고 하는 정치가들을 계속 지지할 수 있겠는가? 나는 하나님의 정부가 곧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시켜 줄 것임을 가능한 한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요한 18:36; 다니엘 2:44; 요한 5:28, 29.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후의 영계에나 모두를 위한 이상적인 나라가 있다고 믿는다. 성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만일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순종하는 길을 택하였다면 그들은 바로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반역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집행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 불완전성으로 말미암아 일시적으로 번창하게 된 악은 절정에 달한 다음 갑자기 끊어지게 될 것이다! 이제 그 절정에 달하였다. 성서에 그토록 자주 나오는 악이 끊어지는 일이 조만간 일어날 것이다.—누가 21:29-36.
나는 나를 ‘딕실랜드 트롬본’을 연주하고 정치를 논하는 것을 좋아하는, ‘스포오츠’광이자 음란한 교제를 즐기는 사람으로 알았던 사람들에게 이상한 존재가 되었다. 한 친구는 나에게 좋은 습관의 새로운 성품을 옷입으려는 나의 노력을 비웃는 사람들이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나를 마주 대할 때에는 사람들이 내가 그 전에는 받아본 적이 없는, 새로운 존중심을 내게 나타내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욕설을 하려다가도 좋은 말로 바꾸느라고 말을 더듬거리기까지 하였다. 그들은 나의 감정을 해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달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아직도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 참다운 행복
내가 침례받은 ‘증인’이 된 지 12년이 되었다. 나의 아내와 세 자녀는 모두 여호와를 사랑한다. 우리는 문명이라고 부르는 이 혼란기 중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행복을 발견하였다. 우리의 인생에는 목적이 있게 되었다! 우리의 영적 필요는 충족되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참 조직 내에서 맛본 여러 가지 축복들에 대해 매우 감사한다.
일시적인 “마술 왕국”이 아닌, 머지않아 전세계를 다스릴 의로운 왕국 곧 정부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참으로 그 가장 행복한 왕국 아래서 영원한 행복에 참여할 것이라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얼마나 가슴벅찬 것인가!—마태 6:9, 10; 계시 21:3, 4.
일부 영화와 오락 ‘센터’들이 우리의 정신에서 매일의 걱정과 문제들을 떨쳐버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그 효과는 일시적이다. 그러므로, 내가 한 것처럼 독자도 어떻게 악과 슬픔으로부터의 영구적인 해방에 참여할 수 있는지 직접 조사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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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형태의 오락들은 일시적인 행복을 줄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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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인 행복은 하나님의 낙원이 된 새 질서에서 발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