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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연 비폭력 세계가 실현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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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연 비폭력 세계가 실현될 것인가?
  • 깨어라!—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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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4
깨84 7/15 8-11면

과연 비폭력 세계가 실현될 것인가?

“인생은 단순히 생존 문제일 뿐이죠.” 만원 열차가 ‘봄베이’를 향해 질주하고 있을 때 한 여자가 한 말이다. 그는 드문드문 보이는 판자촌으로 멋을 잃은 바깥 경치를 내다보고 있었다. 우기에 그칠 줄 모르고 퍼붓는 비로 그 판자촌들은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요즈음 사람들에게는 가치관이 없어요. 자기 외에는 아무에게도 관심을 쏟지 않지요. 심지어 전통적 가치관까지도 그 영향을 상실하였어요.”

그의 말은 오늘날 어떤 고정된 윤리적 가치 체계 없이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반영해 주었다. 빈부를 막론하고 그들은 심지어 유전받은 도덕률까지도 배척하고 내던져 버렸으며, 그것들이 무익하다고 여기거나 현대 생활을 너무 구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것들을 자기의 법—자기 생존 및 자기 만족—으로 대치하였다.

어떤 안정된 가치관도 없이 많은 사람들은 괴로와하며 화를 낸다. 폭력적 세계에서 자기 방어가 보편적인 전략이 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고 믿기 때문에 폭언과 폭행에 의한 폭력이 폭력을 낳고 있다.

“위험으로 가득찬 때”

모든 인류의 창조주께서는 이러한 때, 곧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가치관을 거절하여 허둥댈 때가 있을 것을 예견하셨다. 그 결과가 거의 2천년 전에 명시된 지혜의 말씀 가운데 우리를 위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알아두시오. 마지막 날에 어려운 때[위험으로 가득찬 때, 현대 영어 신약, ‘J. B. 필립스’]가 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과장하고 자만하고 하나님을 모독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경건하지 않고 무정하고[정상적인 인간애가 없고, 현대 영어 신약] ·⁠·⁠· 경건의 모양은 가지고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디모데 후 3:1-5, 새번역.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이 말이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세계는 “정상적인 인간애”가 없는 사람들이 사는 매우 불친절한 곳이 아닌가? 사람들은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학대받고 있다. 인간 존엄성이 대규모적으로 그릇된 대우를 받고 있다. 자기 중심적인 철학으로 가득찬 오늘날에는 정상적인 인간적 친절을 보이는 행동마저도 때로 매우 보기 힘들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친절하고 인간적인 행동을 하면 그 사람을 흔히 특이한 사람으로 여긴다!

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는가? 인간의 마음에서 폭력을 근절시킬 수 있는 어떤 세력이나 힘이 있는가? 변화를 가져올 만한 어떤 강력한 자극제가 있는가?

마음을 재교육함

교육은 인격 형성을 그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들 한다. 그리고 가치관의 형성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비폭력이라는 말이 상투적인 말이나 진부한 표현에 불과한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전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과 그 이웃을 사랑하도록 재교육받아야만 한다. 이러한 교육은 분석적인 정신에만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으로서, 동기를 일으키는 마음에 이르러야만 한다.

그러나 그냥 아무에게서나 가치 규범을 받아들일 것인가? 분명히 그렇지 않다. 독자는 건전한 판단력을 가졌으며 흠잡을 데 없는 개인 기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의 가치관은 오랜 시련을 거친 것이어야 할 것이며, 광범위한 계층의 인류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온갖 국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융합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마음이 움직여져야 할 것이다.

이 위험하고 고난으로 가득찬 때에 누가 그러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 인내하도록 도와줄 가치관을, 절망이 아닌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줄 가치관을 누가 제시해 줄 수 있는가? 누가 우리의 마음에 이르러 폭력과 증오 대신에 평화와 친절을 심어 줄 수 있는가?

역사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 일을 할 수 없음을 알려 주어 왔다. 그러므로 연로하고 존경받았던 사람인 ‘모세’가 우리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에 관해 기록한 내용을 간단히 고려해 보도록 하자.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찌어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그 점 곧 공평하고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며 또한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생각해 보라.—신명 32:3, 4.

고대 ‘다윗’ 왕은 이렇게 기록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시 19:7, 8) 그렇다. 여호와의 율법과 증거는 우리의 마음에 파고 들어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따라서 우리의 행동도 변화시킬 수 있다. 폭력적인 사람이 평화롭고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누가 평화로운 사람인가?

거의 2천년 전에, 인류에게 가장 사랑 많은 선생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산기슭에서 한 군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라.]” (마태 5:5-9) 그러한 온유하고 평화로운 사람들이 오늘날 이 땅에 존재하는가? 분명히 전쟁 도발적인 그리스도교국은 그러한 사람들로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도처에는 자기들이 이전에 가졌던 폭력적 사고 방식을 변화시켜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인, 온갖 국적에 속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재교육받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음에 감동을 받았으며, 다음과 같은 초대에 기꺼이 응하였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이 예언에 의하면 “말일에” 비폭력적인 한 백성이 형성되게 되어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이사야 2:2-4.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세계에 수백만명이나 있다. 아마 독자가 살고 있는 곳에도 그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집집으로 방문하며 여호와의 의로운 길에 관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평화로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느 나라에서도 무기를 들지 않는다. 그들은 정치와 그 폭력에 연루되지 않는다. 그들은 참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며, 비폭력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류의 병폐에 대한 해결책으로,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하나님의 왕국 정부를 옹호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조만간 이 땅에서 모든 폭력과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제거하실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의 생활은 비폭력이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증거한다.—다니엘 2:44; 계시 21:3, 4.

‘여호와의 증인’들은 성서에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신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사도 10:34, 35) 그러므로 그들은 사회적 배경이나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든 남자, 여자, 어린이의 존엄성을 존중한다. 어떤 계급 제도도 그들의 형제애를 갈라놓지 못한다.

당신은 공평을 갈망하는가?

독자는 어떠한가? 차별 대우를 받는 말 없는 희생자인가? 자신이 보고 느끼는 불공평에 대해 마음이 울부짖는가? 편벽되지 않으며 공평한 상태를 갈망하는가?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필요를 알고 계심을 확신하라.—에스겔 9:4.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한 시인은 성서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리이다.]” 당신은 기꺼이, 조만간 도래할 비폭력적인 새 사물의 제도를 위해 지금 여호와께서 당신의 마음을 예비하시게 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당신이 이 잡지를 전한 전도인이나 다른 ‘여호와의 증인’들과 만나도록 권하는 바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이 조만간 어떻게 전세계에 비폭력을 실현시킬 것인지 당신이 이해하도록 기쁘게 도울 것이다.—시 10:17.

[11면 네모와 삽화]

어느 불촉천민의 눈에 비친 인생

‘루크마니’는 40세의 여인으로서 ‘마라티’어를 사용한다. 우리는 ‘봄베이’의 한 시장 모퉁이에 있는, 사람 붐비는 길가에 앉아 채소를 팔고 있는 그를 볼 수 있다.

“나는 타고난 ‘힌두’교인이지요” 하고 그는 설명한다. “우리는 ‘힌두’교인들 사이에서 하층 계급으로 간주되는 ‘하리잔’(‘비쉬누’신의 백성)이었어요. 어린 소녀 시절에, 나는 왜 내 또래의 다른 소녀들과 놀아서는 안 되는지 이상하게 여기곤 하였지요. 나의 아버지는 그 이유가 우리 계급이 그 애들보다 낮기 때문이라고 말하였어요. 심지어 학교에서조차, 우리 ‘하리잔’ 아이들은 따로 격리된 긴 의자에 앉아야 했기 때문에 나는 매우 상심하였지요. 다른 학생들은 우리를 쳐다보거나 말을 걸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우리에게는 ‘힌두’교 사원에 들어가거나 상류 계급의 ‘힌두’인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거예요. 우리는 불촉천민들이었고, 이러한 사실은 나와 가족을 비참한 상태에 처하게 하였지요.”

더 나은 생활 방식을 영위하기 위하여, ‘루크마니’와 그 가족은 ‘암베드카르’ 박사라는 이름의 한 ‘힌두’교 혁신주의자를 추종하기 시작하였다. 1956년에 그 사람은 ‘하리잔’의 전체 지역 사회가 불교로 개종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개종한 후에도 ‘루크마니’는 행복하지를 못하였다. 왜 그랬을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힌두’교인들과 불교도들이 서로 평등하다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어요. 우리는 여전히 하층 계급으로 간주되었으므로 ‘힌두’교인들과 결혼할 수 없었던 거예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루크마니’는 부처 숭배를 그만두고, 고 ‘암베드카르’ 박사를 숭배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혼란과 슬픔을 느꼈다. “이제 나는 한 사람을 숭배하기 시작하였던 거예요. 매일 나는 그의 초상화에 화환을 사다 바치고 그 앞에서 기도하곤 하였지요.” 그러나 이것은 ‘루크마니’를 행복하게 하였는가? “그렇질 못했어요. 내심으로는 불행하였지요. 내게는 미래가 없었던 거예요. 나는 내 인생의 올바른 방향을 찾아 헤매었으나, 아무런 도움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 이웃 사람이 와서 「관심을 가진 하나님이 계신가?」라는 소책자 한권을 우리에게 권하는 거예요. 그 이웃 여자는 자기가 참 하나님 여호와를 숭배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깨끗한 조직에 속해 있다고 말하였어요. 나는 이 소식에 관심을 나타냈고, 성서와 함께 그 소책자를 연구하기 시작하였지요. 그것은 나의 전체 사고 방식을 바꾸었답니다. 나는 곧 부처의 형상과 ‘암베드카르’ 박사의 초상화를 제거하였어요. 나는 지방 왕국회관에서 개최되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지요. 난생 처음으로 내가 청중 앞에서 5분 동안 성서 학생 연설을 하였을 때 나의 감격이 어떠하였겠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불촉천민인 내가 바로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에서 학생 연설을 하였던 것입니다.”

‘루크마니’의 마음을 ‘여호와의 증인’에게로 이끈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과 연합이었지요. 이 종교에는 계급 구분이 전혀 없어요. 수년 동안 나는 그러한 차별 대우의 무언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그것은 그만큼 내게 중요하였던 거예요. ‘증인’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더 이상 불촉천민이 아니라—한 자매이지요! 나는 이렇게 친절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알게 된 데 대하여 매일 기뻐하고 있답니다.”

[10면 삽화]

조만간 모든 폭력, 불공평, 가난이 영원히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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