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받고 취업하고 유능한 사람이 되다—그것도 맹인이!
「깨어라!」 일본 통신원 기
평일 아침이면 언제나, 일본의 이 쾌적한 시골 읍에서, 복숭아와 포도 과수원 가운데로 뻗어난 좁은 샛길을 따라 ‘스스무’가 활발하게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기차역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를 차로 태워다 줄 수 있지만, 자신의 말대로 그는 “운동삼아 걷기를” 좋아한다. 관찰해 보면, 그는 시간에 맞춰 출근하느라 여념이 없는 여느 다른 교외 통근자들과 거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그는 거의 앞을 못보는 맹인인 것이다! 그는 유능하게 일을 처리할 뿐만 아니라 도움없이 출근할 수 있게 되는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 많은 도전들을 극복해야만 했다.
몇년 동안, 규모가 큰 한 시립 병원에서는 ‘스스무’를 안마사와 침술 요법사로 그 병원의 물리 회복실에서 근무하도록 고용해 왔다. 그 기량과 전문 지식으로 인하여 그는 의료진과 환자들 양편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경우는 드물거나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여러 세기 동안 일본의 맹인들은 거의 전적으로 고대 동양의 치료 기법들을 시술해 왔다. 그 중에는 침술, 동양식 안마, 뜸 등이 있다. 사실상, 최근까지 이러한 직업들은 맹인들의 생계를 보장해 주기 위하여 국가적으로 보호되어 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게 되었는가? 그러한 맹인들은 어떠한 종류의 훈련을 받는가? ‘스스무’의 이야기와 일본의 맹인들에 관한 약간의 배경 지식은 얼마의 흥미롭고 만족스런 대답을 알려 줄 것이다.
오랜 전통
전통적으로 일본 사람들은 심신장애자들에 대하여 깊은 존중심과 돌보려는 태도를 나타내 왔다. 이 점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맹인들에게 생활상의 위안과 필수품을 마련해 주려 했던 개인들 및 지역 사회의 노력에 대하여 알려 준다.
예를 들어, 7세기까지 소급해 보면, 맹인들에게 직업을 마련해 주려는 진지한 시도가 있었고, 얼마의 맹인들은 음악가가 되는 훈련을 성공적으로 받았다. 그때부터 맹인들의 신분은 점차적으로 향상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15세기 경에는 맹인들의 “황금 시대”가 도래하였다. 당시에 맹인들의 상호 보호와 직업 훈련을 위해 굳게 결속된 공동 사회가 ‘쿄오토오’에 있었다. 바로 여기에서 침술, 안마, 뜸이 맹인들의 훈련 계획에 도입되었고, 맹인들의 가장 인기있는 직업으로서 음악을 압도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망자가 선택한 직업에 상관없이, ‘쿄오토오’ 구내에서의 엄격한 훈련은 많은 맹인들에게 재정적으로 안전한 생활을 보장해 주었다. 물론 이러한 마련에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심신 장애자들의 필요를 공정하고 동등한 방법으로 다루지는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년 동안 일부 맹인들은 지역 사회에서 존귀한 신분을 누렸다.
1800년대 말에 일본은 정치 사회적 변혁기를 맞이하였다. 빈한한 사람들과 신체 장해자를 위한 계획이 국가적인 규모로 시행되었다. 하지만, 이전의 면허와 특권들이 모두 폐지됨으로써 여러 면에서 이 시기는 맹인 공동 사회에게 혼란과 고난의 시기가 되었다. 그러나, 조만간 맹인들을 위한 국립 학교들이 설립됨으로써 그 공백은 채워졌다. 그리고 이제 새로 설립된 모든 학교들은 무상으로 베풀어졌다.
보다 최근에, 일본은 맹인 주민들이 최신식 장비와 시설들을 갖추도록 조처해 주는 데 있어서 다른 나라들과 보조를 맞추었다. 1965년에 최초의 맹인 재활 ‘센터’가 ‘오오사카’의 ‘헬렌 켈러’ 재단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이 국제 비영리 기구는 맹인들과 거의 맹인에 가까운 사람들을 위한 실질적 훈련을 증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해 왔다. 특히 ‘스스무’같이 태어난 이후에 시력을 상실한 사람들의 경우에 그러하였다. 이제 그의 경험을 고려해 보자.
“나는 항상 집안에 앉아 있기만 하였다”
‘스스무’는 자신이 시력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자활하거나 스스로 돌볼 수도 없음을 깨달았을 때의 절망감을 그렇게 묘사하였다. 그는 겨우 23세였던 것이다. 자기 연민이 물밀 듯 밀려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맹인들을 위한 훈련 계획 과정이 있다는 ‘라디오’의 발표를 듣게 되었다. 이것은 그의 흥미를 일으켜 우울증을 떨쳐버리게 하기 시작하였다.
곧 그는 독립하여 스스로를 돌보는 데 필수적인 세 가지 것을 가르쳐 주는 학급에 등록하였다. (1) 기동성 지도: 여기에는 지팡이, 맹인 안내견, 투시 음파 탐지 ‘프로그램’ 등의 사용이 포함됨. (2) 일상 생활 활동 참여: 음식 준비, 집안 생활 지도 등. (3) 의사 소통: 주로 점자 읽기와 타자기 같은 기계 장치인 ‘브레일러’의 사용을 가르치는 데 주안점을 둠.
여기서 또한 ‘스스무’는 완전한 재활을 하는 데 실제 관건인 새로운 직업을 배울 기회를 발견하였다. 몇 가지 가능성을 타진해 본 다음, 그는 침술과 안마 요법 분야에 착수하기로 작정하였다. 그가 쌓은 훈련에는 단순히 기술이나 신체 촉진(觸診)을 배우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강도있고 의학상 견실한 교육 과정이 베풀어진 것이다. 기타의 것들 중에서는 해부학, 생리학, 위생학, 병리학, 의료법 그리고 동양 물리요법의 제반 이론들이 연구되었다. 또한, 침술과 뜸 요법이 일본에서는 매우 정확한 학문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고려해 보라.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해부학의 대가’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맹인들이 이 기법들을 익힐 수 있는가? 명백히 볼 수 있는 맹인들의 예리해진 촉각과 더불어 좋은 훈련이 ‘스스무’와 같은 훈련생들을 이러한 종류의 일에 숙달하게 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의 급우들(18세에서 50세에 이르는)이 전 과정을 마치는 데 3년이 걸렸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성인이 된 후에 눈멀게 된 사람들이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이러한 정교한 기술을 배워야 할 뿐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일상 업무들을 다시 배워야 함을 의미하였다.
그들이 직면한 난관들을 잘 알려 주는 예로서 처음에 그들 중 얼마가 단 한면의 점자를 읽는 데 한시간 이상 걸렸다는 사실이 있다. 일본의 점자 체계는 꽤 복잡하다. 점자의 문자 하나는 6개의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본어는 문자가 아니라 음절로 기록해야 한다. 삼분의 이 이상의 음절들이 6개의 점으로 된 문자 두개가 있어야 구성된다. 이것은 일본어의 수많은 자모음 결합을 구성하기 위하여 필수적이다. 이러한 새로운 양식의 독서법에 숙달하는 것은 때때로 실망을 줄 수 있는데도, 한 학생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고된 노력과 상호 간의 격려로 우리의 문제들을 극복하였읍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흥미있는 권고를 하였는데, 맹인이 된 사람들은 가능한 한 빨리 활동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위하여 이용할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과 교육 시설들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명한 충고이다. 특히 맹아(盲兒)들이 그러한 훈련으로부터 유익을 받고 있다. 노련한 타자수들처럼 용이하고 자신있게 ‘브레일러’를 쳐나가는 3, 4학년 맹아 학생들을 만나 보는 것은 실로 가슴 뭉클한 경험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날 때부터 맹인이거나 어릴 때 맹인이 된 사람들은 그 이상의 어떠한 훈련 마련을 이용할 수 있는가?
실용적인 학업
100여년 전에 개설된 한 맹인 학교는 성장하여 일본 전역에 잘 운영되고 잘 시설된 공립 학교들의 조직망이 되었다. 한 학교는 교사 한명당 학생 두명의 비율로 되어 있다. 자연히 이것은 따뜻하고 개인적인 학습 분위기를 마련해 준다. 보통 모든 학년이 같은 교정 내에 수용되어 있고, 교과 과정은 여느 다른 학교와 거의 같이 읽기, 쓰기와 산수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일찌기 중학교 일학년 때부터 직업 훈련—특히 안마 치료법에 각별한 중점이 주어지고 있다. 졸업생들 중 약 75%가 물리 요법사와 같은 어떤 자격으로 취업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리고 반 이상이 조그만 안마 및 침술 진료소를 대부분 자신의 집에서 개업한다.
하지만, 많은 젊은 사람들은 전화 교환대나 산업용 기기 조작,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나 기타 관련된 기술들과 같은 다른 분야의 직업 훈련에까지 손을 뻗는다. 어떤 다른 사람들은 가르치는 일, 공무원직, 법률 등의 경력을 쌓기 위하여 대학에 진학한다. 하지만 근면한 맹인 안마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직도 많은 것 같다. ‘스스무’는 그 점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나는 하나의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나의 가족을 위한 생계비를 벌 수 있고, 다시 사회의 한 부분으로 느끼고 있지요. 그 점에 관해서 나는 매우 감사하고 있읍니다.”
몇년 전에 ‘스스무’는 그에게 더한 행복을 가져다 준 다른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고통을 덜고 괴로운 몸을 위로해 보려는 나의 노력이 단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읍니다. 그러므로 성서 이사야 35:5, 6에 기록된 예언을 내가 처음 읽었을 때의 기쁨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귀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라.]’ 성서를 연구함으로써, 해부학의 참다운 대가이신 우리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구를 다시 낙원으로 만드실 때에야 비로소 항구적 치유가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읍니다.”
[20면 삽화]
좋은 훈련과 예리해진 촉각으로, 맹인들은 침술에 숙달된다
점자를 치고 있는 맹인 학생들을 보는 것은 가슴 뭉클한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