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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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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4
깨84 9/1 22-23면

종교적 열정—이로운가, 해로운가?

요 얼마 전에, 미국에 사는 “매우 독실한” 여자 두명이 친척들을 위해 단식 기도에 들어갔다. 그들은 굶어 죽을 때까지 계속하였다. 인도의 한 과부는 죽은 남편을 따라 함께 타죽는 금지된 ‘힌두’교의 관습에 따라, 구경꾼들 앞에서 남편의 화장(火葬)용 장작더미에 자신의 몸을 던져 불에 타 죽었다. 이 나라에서, 남자들이 종교 의식에서 갈고리로 자기들의 몸을 꿰뚫고는 불이나 칼날 위를 걷는다.

‘캐나다’에서는 다섯명의 독실한 여자들이 한 종교에서 파문당했다는 이유로 종교 지도자의 집과 기타 여러 건물들에 방화를 꾀했다. ‘가이아나’의 밀림에서는 ‘카리스마’적인 종파 지도자 ‘짐 존스’의 900명의 추종자들이 그의 명령에 따라 자살한 일이 있었다.

‘에이레’와 ‘레바논’ 같은 나라에서는 강한 종교적 감정들이 유혈과 민쟁의 근본 원인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의 귀에는 “종교적 열정”이라는 말이 불길한 소리로 들린다. 오늘날 우리에게 그런 열정이 필요한가? 사람들이 종교에 관해 열정을 덜 가진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예수께서는 열정을 가진 분이셨다. 그분의 강한 열정은 여러 가지 면으로 나타났다. 그분은 침례를 받고나서 전력을 다해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하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결코 거절함이 없이 아낌없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셨다. 그분은 물질의 안락을 희생하셨고 세상의 영광을 거절하셨으며, 마침내 괴롭고 굴욕적인 죽음에 자신을 내맡겨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다.—마태 20:28.

예수의 열정에는 또한 ‘불법에 대한 미움’도 포함되어 있었다. (히브리 1:9) 따라서 그분은 담대하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폭로하여 그들을 “소경된 인도자”, ‘외식하는 자’로 낙인 찍으셨다. (마태 23:15, 16) 또한 두번에 걸쳐 그분은 충실한 ‘유대’인 숭배자들의 돈을 이용해서 부당 이득을 취하여 부를 쌓던 상인들을 성전에서 추방하셨다. 이러한 행동은 그분의 추종자들에게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는 예언을 기억나게 해주었다.—요한 2:13-17; 마태 21:12.

예수께서는 자기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과 관련하여 열정을 가지고 계셨으며, 오늘날 그 뜻은 성서에 밝혀져 있다. 그 책을 주의깊이 읽는다면, 하나님께서 결코 그리스도인들이 광신적이 되거나 자살을 하거나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도록 요구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성서에서는 “조작된 종교와 금욕주의와 자신의 육체 학대 같은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골로새 2:23, 새번역.

예수의 ‘불법에 대한 미움’은 그분을 혁명이나 유혈을 옹호하는 자가 되게 하지 않았다. 사실, ‘유대’교 지도자들의 죄를 적나라하게 폭로하셨지만, 그분은 ‘유대’ 나라에서의 그들의 지위를 인정하시고 자기의 추종자들에게 이러한 균형 잡힌 충고를 주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느니라.]”—마태 23:2, 3, 13-36.

예수께서는 그들 중 얼마가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아셨지만, 그 집단에 대해 피의 복수전을 벌이시지도 않으셨다. 개개의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접근하였을 때, 그들의 동기가 선한 경우 그분은 그들에게 친절을 보이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는, 사람들이 매우 잘 기억하고 있는 말씀을 하신 것은 예수께서 ‘바리새’인 ‘니고데모’와 토론하실 때였다.—요한 3:16.

예수께서는 항상 사람들을 도울 준비를 갖추고 계셨다. 그러나 그분은 폭리, 탐욕, 가난한 자에 대한 학대, 부도덕, 도둑질, 살인과 같은 나쁜 행실을 미워하셨다. 예수께서는, 열정적이셨지만, 인간다운 친절을 잃지 않으셨다. 한번은 군중이 예수를 여러 날 따라다녔다. 그들에 대한 예수의 실질적인 관심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기적으로 음식을 마련하셨을 때 나타났다.—마태 15:32-38.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유익한 일을 위하여 열정적이셨다. 그분은 부모에 대한 존경, 용서 및 사랑을 강조하셨다. 산상 수훈에서, 그분은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심으로 놀라울 정도로 높은 표준을 세워 놓으셨다.—마태 5:43, 44.

긴장과 증오로 가득찬 오늘날의 세상에서, 싸움과 혁명과 적의를 고무하는 강한 종교적 감정은 확실히 해롭다. 그러나, 예수께서 가지셨던 것과 같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경건한 특성들을 배양하고, 우리의 이웃을 섬기기 위한 균형잡혀 있으면서도 강렬한 열정은 분명히 이롭다.

그러한 열정이 오늘날 존재하는가? 예수의 열정을 본받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의 도움을 받아 “열심으로 선을 행”한다.—베드로 전 3:13.

영국 ‘런던’ 「데일리—텔레그래프」지의 한 논평은 이것이 세계의 일부 지역에 살고 있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줘왔는지를 알려 준다. 내용은 이러하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전 ‘아프리카’에서, 자신들이 높은 도덕률을 지키는 단정하고 질서있는 사람들임을 나타내 왔다. ·⁠·⁠· 그 종파는 검약, 시간 엄수, 정직성 그리고 순종의 습관을 가르친다.”

‘증인’들이 나타내는 종교적 열정의 으뜸되는 부면이 이런 설명을 하게 만들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문자 그대로 그들의 증거 활동으로 전세계를 뒤덮었다. ·⁠·⁠· 이 세상에서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여호와의 증인’들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끈기있게 전하는 종교 단체는 하나도 없다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다.”—‘C. S. 브라든’ 저 「이들도 믿는다」(These Also Believe).

의심의 여지없이, 그리스도인 열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이롭다. 그러한 열정은 개인을 도와 높은 표준을 유지하게 할 수 있다. 그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한 희망찬 전망을 그에게 줄 수 있다. 그러한 종교적 열정은 단순히 이로울 뿐만 아니라, 성실한 사람에게 있어 그것은 최선의 생활 방식인 것이다.

[22면 삽입]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리스도인들의 자학을 요구하신 일이 없다

[23면 삽입]

그리스도인 열정이 결코 혁명이나 유혈을 옹호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23면 삽입]

그리스도인들은 “열심으로 선을 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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