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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는 너를 사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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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는 너를 사랑했단다’
  • 깨어라!—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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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4
깨84 10/15 3-5면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는 너를 사랑했단다’

살 권리/죽을 권리. 치료 방법에 대한 개인의 선택권.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관심. 이러한 문제들이 주요 기사 거리가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부 신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을 거절하는 ‘여호와의 증인’에 관한 기사를 실어왔다. 그러나 그 외의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는 이유는 의료상의 결정들이 우리 모두의 생명과 건강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문제들을 올바른 견지에서 보는 데 도움이 되도록, 자기 자녀들을 합당하게 돌보기 위해 생활 방식을 크게 바꾼 한 가족의 경험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 다음에는, 자기네 아이가 불치의 병으로 죽자 살인 혐의로 고발당한 ‘이탈리아’에 사는 한 부부의 매우 관심을 끄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기사들과 그 뒤에 이어지는 두개의 기사들은 위에 언급된 문제들 중 몇 가지, 그 중에서도 자신의 건강과 생명에 영향을 끼치는 의료상의 결정을 누가 내려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홉 살의 ‘루이지’와 열한 살의 ‘안토넬라’가 점심을 먹으러 집에 오자, 어머니인 ‘표렐라’는 아이들을 포옹하며 맞이하면서 “오늘 학교에선 어땠니?” 하고 묻는다.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아이들은 세수하고 옷을 갈아 입고 식탁에 앉는다. 어머니가 간단히 기도를 마치자, 아주 맛있게 식사를 한다. 아버지 ‘카를로’는 저녁이나 되어야 집에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애정을 가지고 아버지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또 아버지가 돌아오면 할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이러한 화기 애애한 가족의 모습이 지나간 시대에 있었던 장면이라는 생각이 드는가? 그렇게 보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누구나 아는 것처럼 오늘날의 가정 생활은 대개 그와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네모안 참조) 자녀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가정 환경이 나빠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혼과 별거가 확산됨에 따라, “보따리 자녀”(suitcase children)라는 현상도 점증하고 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마치 일종의 소포와도같이 보내고 반송하고 있는 것이다. 양친과 함께 사는 다른 자녀들도 부모에게 구타당하지는 않는다 해도, 슬프게도 가정 불화를 목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저하된 가정 환경은 흔히 마약 남용 및 청소년 범죄로 인도한다.

‘국제 연합’은 1979년을 국제 아동의 해로 선포했었다. 그러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아동의 해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파브리죠 덴티체’는 「레스프레소」지 1979년 1월 28일자에 기술하였다. “오늘날의 생활 방식이 우리의 사람됨을 틀잡고 있으며, 바로 이것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그 잡지는 말하였다.

그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생활 방식을 바꾸고 자녀들의 가정 환경을 개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카를로’와 ‘표렐라’는 수년 전에 ‘여호와의 증인’들과 성서 연구를 한 후에 바로 그렇게 하였다. 그들은 가정에서 성서 원칙들을 적용시키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제 그들의 가정 생활에는 사랑이 두드러지게 되었고, 이것은 자녀들에게 축복이 되었다.

생활 방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생활 방식과 가정 환경을 변화시킴으로 유익을 얻을 수 있었던 다른 가족들을 틀림없이 독자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러한 변화를 이룩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하는 데에는 생활의 틀을 바꾸는 것이 관련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본위적인 생활을 함으로 자신의 욕구와 야망을 만족시킨다. 많은 사람들은 경력을 쌓거나 쾌락을 추구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배우자에게 싫증이 나면 그저 간단히 배우자를 바꾼다.

그와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생활에서 기본적이고 지속적인 가치관을 우선 순위에 놓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성경의 원칙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카를로’와 ‘표렐라’의 경우처럼 우리의 영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깨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성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리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마태 22:39; 사도 20:35.

이것은 우리 자녀들과의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자녀들은 우리에게 방해가 되는 물체들이 아니라, 인격체들인 것이다. 계획해서 낳은 자녀들이든 아니든, 우리는 자녀들을 부모로서 책임져야 할 인격체들로서 존중할 것이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사랑과 영적인 가치관을 유산으로 물려 준다면 자녀들은 축복이 될 수 있다. 그러한 가치관은 어느 가정에서나 안정시키는 요소가 된다.

그러한 견해를 갖게 되면, 부모들이 출산 전의 자녀들에 대해 갖는 견해에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는 ‘카를로’와 ‘표렐라’의 경험담을 더 살펴봄으로 그 점을 더욱 인식할 수 있다.

자녀들이 태어나기 전과 후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 시편 127:3은 이렇게 말함으로 자녀들이 소중하며, 그들을 매우 보배롭게 여겨야 함을 알려 준다. 무언가 기업을 이어받을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대개 그것을 받아서 돌볼 계획을 세운다.

‘카를로’와 ‘표렐라’가 바로 그렇게 하였다. ‘여호와의 증인’들과 성서를 연구하기 전에는 성서 원칙들을 따르는 것이 심지어 태아에게까지도 유익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예를 들어, 성서는 우리 자신을 육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깨끗케 할 것을 강조한다. (고린도 후 7:1)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들은 담배를 피우거나 짜릿함을 맛보기 위해 마약을 사용함으로 몸에 해를 입히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태아에게도 분명히 중요한 보호책이 된다. 그래서 ‘표렐라’가 다시 임신하게 되었을 때, 그의 성서 지식은 태내에 있는 아기를 해칠 만한 것은 무엇이든 피하게 하는 부가적인 이유가 되었다. 계속해서 적절하고 균형잡힌 식사를 하고 의약품을 주의하여 사용함으로써 그는 소중한 “기업”인 태아에 대해 사려깊음을 나타냈다.

그러나, 독자도 알다시피 어느 부모에게 있어서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영양가 있는 음식과 적절한 옷을 마련해 주고 치료를 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가족에게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예를 들어, 어떤 부모들은 종종 저녁을 간단히 끝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홀가분하게 연회에 나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려 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이제 자녀들의 필요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자라나는 아기들에게는 균형잡히고 건강에 좋은 식사가 특히 중요하다. 그러므로, 때때로 간이식으로 간단히 식사를 끝낼 필요가 있을 수 있지만, 인자한 부모라면 대개 자신들의 활동을 조정함으로 자녀들이 적절하고 균형잡힌 식사를 하게 할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자녀들을 돌보는 일에는 단순히 물질적인 것들만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자녀들에게는 부모의 사랑과 시간 및 우정이 필요하다. 자녀들의 감정적 필요는 우리가 자녀들을 “귀중히” 여김으로 충족되어야 한다.—데살로니가 전 2:7, 새번역.

‘카를로’와 ‘표렐라’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을 배웠다. (마태 4:4) 이 진리를 인정하는 인자한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영적 훈련을 베푼다. ‘표렐라’와 ‘카를로’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을 때 그러한 훈련이 시행되는 것을 보았다. 이 집회는 단순히 나이든 사람들만 모이는 분위기가 가라앉은 모임들이 아니라, 많은 자녀들도 참석하는 모임이다. 그 자녀들이 구김살없이 행복해 하는 것은 ‘증인’ 부모들이 부모로서 균형잡힌 사랑과 관심을 베풀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아마 독자는 ‘증인’들이 가정 생활을 그토록 중요시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들은 참으로 중요시한다. 그들의 출판물 다수는 그리스도인 부모의 의무들을 다루고 있다. 흔히 그들의 집회에서는 참 그리스도인들이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들을 반영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 자녀들을 돌보도록 권고한다.—고린도 후 1:3.

일부 외부인들은 ‘증인’ 부모들이 나타내는 탁월한 특성들에 유의하였다. ‘이탈리아’의 한 신문은 이렇게 논평하였다. “우리가 알게 된 바에 의하면 그들은 엄격한 도덕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준엄하게 고수한다. 이것은 가정 생활의 가치관과 같은 참다운 가치관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부부간의 관계 및 자녀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무책임하게 별거나 이혼을 택하는 것을 ‘여호와의 증인’들은 관용하지 않는다.”—「라 나쵸네」, 1979년 7월 31일자.

인자한 돌봄과 치료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훌륭한 부모가 되기를 원한다면, 자녀들의 수혈을 거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살인이 아닌가?” 독자도 그런 말을 들은 일이 있는가? 또는 그에 대해 의아해 한 일이 있는가?

그러한 말과 연관된 쟁점에는 ‘여호와의 증인’들만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쟁점은 신문의 주요 기사 거리가 되어 왔다. 쟁점은 이와 같은데, 곧 지적된 바와 같이 인자한 부모는 자녀의 복지를 당연히 돌보아야 하며, 그 가운데에는 분명히 의학적인 측면에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을 위한 의료상의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어떠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은 ‘여호와의 증인’만이 아니라, 모든 부모가 관련되어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증인’들을 염두에 두고, ‘카를로’와 ‘표렐라’와 같은 헌신적인 부모들에 관해 더 생각해 보도록 하자. 그들은 자기 자녀들을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들을 위해서 죽음도 불사할 자세가 되어 있는 부모이다. (요한 15:13) 신문은, 그러한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의사가 처방한 수혈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분명히 그것은 무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자한 부모들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우, 즉 부모의 권리가 관련되어 있는 경우들을 다루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법정이 개정되었다. 이것은 독자가 자녀들, 곧 태어나기 전부터 사랑해 왔을 자녀들을 어떻게 돌볼 것이냐 하는 점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이점을 염두에 둔다면 다음 기사를 매우 흥미있게 읽게 될 것이다.

[3면 네모]

무고한 어린이들이 당하는 현대의 비극

● ‘이탈리아’: 매년 5,000명의 자녀들이 심한 구타를 당한다

● 미국: 전화기와 함께 집에 홀로 남아서 부모가 귀가하기만 기다리는 자녀들이 23,000,000명이나 된다

● 영국: 100,000명의 자녀들이 부모들에게 유기당하였다

● 서독: 매년 학대로 말미암아 죽는 자녀들이 1,000명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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