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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를 위한 그 이상
  • 깨어라!—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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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6
깨86 1/1 4-7면

평화를 위한 그 이상

미국이 참전하기도 전인 1916년에, 윌슨은 지상에 평화를 보장하는 영구적인 마련에 대한 자신의 이상을 진전시키기 시작하였다. 전기 작가 지인 스미드에 의하면, 그는 “만인에게 공평을 시행하고 전쟁의 위협을 영원히 일소하기 위한 공회장이 될 ‘국제 연맹’의 창설”을 구상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917년에, 미국의 참전과 더불어 그는 그가 바랐던 영원한 평화를 실현시키고 그 결과 정치가로서의 영광이 절정에 달하게 할 위대한 개혁 운동가가 되었다.

자신이 구상한 대로, 그는 이제 자신의 ‘국제 연맹’ 복음을 널리 알리는 일에 정력을 쏟았다. 그는 독일 국민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군국주의자인 독재적인 통치자들을 전복시킬 “승리없는 평화”를 목표로 삼았다.

평화 협상의 근거로, 그는 그 유명한 ‘14개 조항’을 마련하였다. 그 조항은 모든 교전국들이 존중해야 할 다섯 가지 일반적인 이상과, 특정한 정치 및 영토 문제들을 처리하는 여덟 가지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열 네번째 조항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그 조항이 바로 윌슨의 개혁 운동의 핵 즉 ‘국제 연맹’의 창설을 표방하였기 때문이다.

‘최대의 성공 아니면 최고의 비극’

그는 자신의 계획을 하나님이 후원한다는 강한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1919년에 ‘파리 평화 회의’ 참석을 고집하였다. 그렇지만 많은 정치 친구들은 미국 대통령이 평화 협상들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그가 모든 정치인들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뒤에는 세계 국민이 있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이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라고 확신하였다. 다른 누구보다도 더욱 그는 파리에 가야 하였다.

그는 개인 비서인 튜멀티에게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이번 여행은 전 역사상 최대의 성공이 되든지 아니면 최고의 비극이 될 것이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있오 ·⁠·⁠· 어떤 인간 기구가 아무리 그들의 힘이나 영향력을 합친다 하더라도 이 거대한 세계적인 계획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오.” (고딕체로는 본지에서) 한 권위자가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과 명성을 사용하여 최후의 평화 해결책에 ‘국제 연맹’ 창설 계획을 포함시킬 결심을 하였다.”

당시 1918년 11월에, 독일군은 패배 직전에 있었다. 그들은 전쟁을 중지시킬 휴전을 제안받았다. 협상이 시작되었고, 영국 웨일즈의 수상 로이드 조오지, 까다로운 프랑스 수상 죠르쥬 클레망소, 점잖은 이탈리아 수상 빗토리오 오를란도 그리고 의중을 알 수 없는 일본 대표 마키노 노부아키 남작이 참여하였다. 윌슨은 그가 주창한 ‘연맹’이 유럽의 문제들과 세계 문제들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임을 그들에게 확신시킬 결심을 하였다.

‘베들레헴의 별이 다시 출현하다’

윌슨은 파리에서의 ‘평화 회의’에 앞서 유럽을 여행하면서 사람들의 영웅이 되었다. 허버어트 후우버는 나중에 이렇게 기술하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거의 종교적인 열정의 환영을 받았다 ·⁠·⁠· 그것은 이제까지 어떤 사람도 받아본 적이 없는 열렬한 환영이었다.” 그의 평화 발의와 이상은 일반 대중의 마음을 흥분시켰다. 이탈리아 여행 중에, 군중은 “평화의 신, 윌슨 만세”라고 외쳤다. 그에게 거의 초자연적인 힘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후우버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들에게는, 그리스도가 ‘산상 수훈’을 설교한 이래 그런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힘을 가진 사람이 그리고 그런 평화의 복음이 등장한 적이 없었다. ·⁠·⁠· 베들레헴의 별이 다시 출현한 것이었다.”

윌슨은 자신의 사명에 대한 복음 전파의 열정을 가지고 지상에 평화가 이룩될 것을 믿었던 것이 분명하였다. 작가 차알스 L. 미이는 이렇게 기술한다. “한번은 그가 로이드 조오지와 클레망소를 놀라게 하였는데, 그것은 ‘국제 연맹’이 어떻게 그리스도교가 실패한 인간의 형제 관계를 확립시킬 것인가를 설명한 것이었다. 로이드 조오지는 윌슨이 이렇게 말한 것으로 회상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설득하는 일에서 왜 그토록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까요? 왜냐하면 그는 그것을 달성할 아무런 실용적인 수단을 생각해 내지도 않고 이상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의 목표를 실행에 옮길 실용적인 계획을 제의하는 것입니다.’”—「질서의 끝, 베르사이유 1919년」(The End of Order, Versailles 1919)

확실히, 윌슨은 여러 곳으로부터 격려를 받았다. ‘미 해군 장관’ 요세퍼스 대니얼즈는 ‘국제 연맹 규약’ 초안의 발표에 대해 이러한 찬사를 보내며 환영하였다. “‘평화 연맹’의 초안은 거의 예수의 한 비유만큼이나 간단 명료하고 또 거의 그만큼이나 빛을 던져주며 고무적인 것이다. 이제 교회는 종을 울리고, 설교자들은 무릎을 꿇고, 정치가들은 기뻐하고,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노래를 부를 때가 되었다!”

‘연맹’과 ‘가톨릭 교회’

설교자들은 무릎을 꿇었는가? 일부 설교자들은 분명히 ‘연맹’을 인류의 문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으로 즉시 환영하였다. 저술가 존 도스 패소우스에 의하면, 교황 베네딕트 15세는 1917년 8월에 교전국들에게 “미국이 참전하기 전에 우드로우 윌슨이 한 연설에 들어 있는 말들과 유사한 표현인 승리없는 평화 협상”을 할 것을 호소하였을 때 거의 윌슨의 인기를 가로채려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윌슨은 그의 개인 측근자인 ‘하우스 대령’으로부터 의미심장한 편지를 받을 때까지는, 전쟁을 하는 일에 너무나 바빠서 교황에게 주의를 기울일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 편지 내용은 이러하였다.

“본인은 상황의 중요성에 너무나 염려가 된 나머지 다시 귀하를 귀찮게 해드리고자 합니다. ·⁠·⁠· 본인은 귀하에게 교황에게서 평화 협상권을 빼앗을 기회가 있으며 그러한 권리가 귀하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윌슨은 그가 주도권을 잃지 않았음을 확실히 하기 위해 신속한 조치를 취하였다. ‘국제 연맹’의 이상을 제안한 것은 자기이지, 교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기는 ‘국제 연맹’을 실현시킬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교회’는 ‘연맹’을 지원하였다. 1934년 말까지 웨스트 민스터의 ‘가톨릭 대주교’였던 ‘버언 추기경’은 이렇게 말하였다. “‘국제 연맹’에 무슨 결함들이 있든지, 그것이 ‘가톨릭 교회’의 평화를 이룩하려는 욕망을 달성하고 있으며 또 우리의 ‘거룩한 아버지’ 교황의 소원을 실행에 옮기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국제 연맹’은 복음서에 그 근거를 둔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교직자들 역시 주저하지 않고 ‘연맹’을 지지하였다. 「뉴우요오크 타임즈」지 1920년 1월 11일자는 이렇게 보도하였다. “오늘 저녁에 런던 교회들은 독일과의 평화 체결과 ‘국제 연맹’의 공식적인 탄생을 축하하는 종소리를 울리고 있다.”

「그리스도 교회와 국제 연맹」(The Christian Church and the League of Nations)이라는 제목 아래 영국에서 발행된 한 소책자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영국의 ‘그리스도 교회’는 ‘국제 연맹’을 지지한다. 켄터베리 및 요오크의 대주교들, 35개 영국 교구 주교들, ‘스코틀랜드 국교회’ 대회 의장 및 영국에 있는 모든 ‘독립 교회’들의 공식 대표자들은 이렇게 천명하였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확신한다.

“(1) 지금 하나님께서는 한 가족으로 사는 법을 배우도록 세계의 나라들을 부르고 계시다.

“(2) ‘국제 연맹’이 마련한 국제 협력 기관들은 ·⁠·⁠· 전쟁을 중단하고, 공평을 베풀고, 평화를 조성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복음서에 나오는 원칙들을 적용시키는 일에 이용할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이 된다.”

위의 일이 있기 앞서 1918년 12월에, ‘미국 그리스도 교회 연방 협의회’는 선언문을 발표하였는데 그 일부는 이러하였다.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다가오는 ‘평화 회의’에서 ‘자유 국가들의 연맹’의 설립을 강력히 권하는 바이다. 그러한 ‘연맹’은 단순히 정치적 수단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왕국의 지상의 정치적 표현이다.” (고딕체로는 본지에서) 그런 다음에 그 선언문은 계속 이렇게 말하였다. “‘교회’는 많은 것을 주고 또 많은 것을 얻는다. ‘교회’는 그 새로운 국제 질서에 하나님의 왕국의 어떤 예언적 영광을 부여함으로써 강력한 지지를 나타낼 수 있다. ·⁠·⁠· ‘국제 연맹’은 복음서에 그 근거를 둔 것이다.”

‘연맹’이 참으로 “복음서에 그 근거를 둔 것”이고 ‘하나님의 왕국의 표현’이었다면, ‘연맹’의 운명은 복음서와 왕국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윌슨 자신이 나라들에 영구적인 평화를 가져올 하나님의 도구라고 자처한 것은 주제넘은 것이었는가? 그리고 더욱더 중요한 질문으로, ‘국제 연맹’은 참으로 하나님의 후원을 받았는가?

[6면 네모]

유럽에서의 적대 진영—‘제 일차 세계 대전’ (1914-18년)

중앙 제국 연합국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헝가리 프랑스

불가리아 러시아 (1917년까지)

터어키 이탈리아, 루마니아, 그리이스

세르비아, 폴란드, 벨기에,

포르투갈, 알바니아, 핀란드

[5면 삽화]

윌슨은 특히 유럽에서 인기가 있었다

[자료 제공]

U.S. National Arch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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