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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N—그것은 나라들을 연합시켜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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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N—그것은 나라들을 연합시켜 왔는가?
  • 깨어라!—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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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6
깨86 1/15 4-7면

UN—그것은 나라들을 연합시켜 왔는가?

“누가 영속적인 평화를 이룩할 것인가, 그리고 언제?” ‘여호와의 증인’은 1942년에 발간된 「평화—그것은 지속될 수 있는가?」라는 소책자에서 그러한 질문을 하였다. ‘제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하여, ‘국제 연맹’은 성서에서 묘사한 바대로 ‘무저갱에 들어간’ 즉 활동 중지 상태에 처하였다. (계시 17:8) 따라서, 이러한 질문이 또한 제기되었다. ‘연맹’은 무활동의 구덩이에 그냥 묻혀 있을 것인가?

아주 초기부터, ‘증인’은 성서에서 그 대답을 발견하였다. ‘제 2차 세계 대전’이 한창 진행중이던 때에, 「평화」 소책자는 이렇게 예견하였다. “세계 나라들의 결속체가 다시 등장할 것이다.” 그 예측은 적중하였는가?

1945년 4월에, ‘국제 연합’ 헌장을 채택하기 위하여 한 회담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었다. 「위대한 구상」(The Great Design)이라는 서적에서 코오닐리어 메이그스는 그 회합이 열리기로 된 때에 발생한 사태를 이렇게 기술한다. “워싱턴 대성당에서는 그 새로운 기획에 대한 하느님의 도움을 구하는 거대하고 인상적인 종교 의식이 거행되었다. ·⁠·⁠· 그 ‘회담’ 자체에서만도, 아주 많은 주요 연사들이 개막 및 폐막 연설들에서 자기들의 손으로 본격적으로 착수한 그 일에 하느님의 도움이 있기를 간구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헌장’에 ‘신’이라는 말이 언급되기를 원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반대한 사람들도 있었다. 나라들이 연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이란 말은 삭제되었다. 그러한 의견의 분열은 분명히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초기 경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개 창립국들은 ‘UN 헌장’에 서명하였으며, 소멸했던 ‘연맹’이 그 잿더미로부터 기어 올라왔던 것이다.

UN은 ‘연맹’과 어떻게 달랐는가? 그리고, 그것은 평화 유지에 있어서 더 많은 성공을 거두었는가? 그것은 참으로 나라들을 연합시켜 왔는가?

사무총장

더 강하고 더 효율적인 조직을 위한 토대는 프랭클린 D. 루우스벨트, 윈스턴 처어칠, 죠셉 스탈린 및 그들의 고문들에 의하여 놓여 졌다. 이들은 모스크바, 테헤란, 얄타 및 덤버어튼 오우크스(워싱턴 D. C.)의 회담에서 ‘3대 강국’—미국, 영국 및 소련—을 대표하였다. 사실상, ‘국제 연합’(United Nations)이라는 명칭을 최종적으로 선정한 것은 루우스벨트 대통령이었다.

‘UN 총회’는 1946년 1월에 그 최초의 회기를 개최하였다. 2월 1일까지 UN은 초대 사무총장으로 노르웨이의 트리그브 리를 임명하였었다. 그는 자신의 임명을 어떻게 보았는가? “불안, 빈곤 및 강대국간의 경쟁에 둘러 싸인 세계에서 평화를 보존하고 발전을 진척시키기 위하여, 나는 이 새로운 국제 조직의 ‘사무총장직’에 내던져 졌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내가 감히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한 도전이었으며, 악몽이기도 하였다. ·⁠·⁠· 나는 왜 이 외경스런 과업이 노르웨이 출신의 노동 문제 법률가에 떨어졌는지 몇번이고 자문해 보았다.”

전의 ‘연맹’에서처럼, 사무총장으로부터 원래는 그렇게 많은 것이 기대되지 않았다. 작가 앤드류 보이드에 따르면, UN 창립국들은 사무총장의 권한이 얼마나 광범위할 것인지를 예측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보이드는 그의 저서 「한 가루통 위에 선 15명의 사나이들」(Fifteen Men on a Powder Keg)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들[3대 강국]은 새로운 세계 조직의 주요 관리가 그 국제 세력을 지배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결코 눈치조차 채지 못하였다.” 그는 이렇게 부언한다. “그들은 그를 자기들의 꼭둑각시, 그것도 아주 소심한 꼭둑각시로 보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UN 헌장’ 제 99조는 이렇게 명시하였다. “사무총장은 자신의 판단으로 국제 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협한다고 사료되는 어떤 문제에도 ‘안전 보장 이사회’의 주의를 이끌 수 있다.” (고딕체로는 본지에서) 트리그브 리가 이렇게 쓴 바와 같다. “이 ‘조항’은 이전에 어떤 개인이나 단일 국가의 대표자도 가지지 못했던 세계 정치 책임을 ‘국제 연합’의 ‘사무총장’에게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세력이 될 것이었다.

사실상, 분쟁 해결자로서의 사무총장의 영향력은, 1961년 콩고 위기 당시, 트리그브 리의 후임이었던 다그 하마슐드가 그 분쟁을 종료시키기 위하여 18개국에서 20,000명의 병력 및 기술 하사관들을 모병할 수 있을 정도까지 커졌다. 1964년에, 그 다음으로 그 직을 담당한 우 탄트는 동시에 3개의 UN 평화 유지군. 책임자가 되었다.

현 사무총장인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는 아직도 사이프러스와 ‘중동 지방’에서 작전중인 UN 평화군을 통솔하고 있다. 그는 또한 현재 뉴우요오크의 UN 본부에서 약 7,400명의 직원이 있는 사무국의 우두머리이다. UN의 후원하에 다른 나라들에서도 약 19,000명이 더 근무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모든 인적 자원을 장악하고 있는 UN은 지난 40년간 전쟁을 방지하는 데 효율적이었는가?

짖기는 하지만 물지는 못한다

그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예’든가 ‘아니오’여야만 한다. ‘국제 연맹’은 1919년에 창설된 지 20년 후에, ‘제 2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함께 죽음의 단말마에 처해지고 말았다. UN은 창설된 지 40년이 된 현재 아직도 건장하다. 그러나, 3차 세계 대전은 아직 발발하지 않았지만, 확실히 숱한 가공할 전쟁들이 터져 왔으며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 전쟁의 결과로 고통을 겪어 왔다. 한국 동란 (1950-53년), 중동전(1948-49, 1967 및 1973년) 그리고 인도 차이나/베트남전(1945-54년과 1959-75년) 등이 즉각 기억에 떠오른다. 논리적으로 이러한 질문이 생긴다. UN이 그러한 전쟁들을 막을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UN 관리들의 대답에 의하면, 그 조직은 그 회원국들이 받아들일 때만 효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폴란드 외상 스테판 올스조우스키는 1985년 5월 9일자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 기구가 내린 완벽한 결정들마저 회원국들의 정치적 의지가 담긴 반응과 지지를 받지 않는 한 그리고 받을 때까지는 예상한 실질적 결과를 거둘 수 없다. 나는 인류가 벼랑을 향한 진로를 정지하고 역전시키는 데 성공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므로, UN은 하나의 설득력있는 세력일 뿐이지, 체포권을 가진 경찰 세력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는 나라들이, 원한다면, 자국의 불만들을 토로하는 세계 공개 토론장 즉 논쟁 장소이다. 전 ‘사무총장’인 쿠르트 발트하임은 이렇게 기술하였다. “만일 나라들이 어떤 문제를 [안전 보장] 이사회에 의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국제 연합’은 거의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 ‘안전 보장 이사회’를 회피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안보 이사회의 명성을 침식하여 그 지위를 약화시킨다. ·⁠·⁠· 나는 그 점이 장차 ‘국제 연합’ 역사상 가장 위험한 추세 중 하나가 되리라고 본다.”

하지만, 나라들이 자국의 문제들을 UN에 가져간다 하더라도 대개 비난을 주고 받는 일로 끝나게 된다. UN이 정치 선전을 하기 위한 공개 토론장이 된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독자는 이렇게 질문할지 모른다. ‘UN은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그 영향력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가?’

UN 관리들의 대답에 의하면, UN은 문제들을 알려서, 정부들이 반응을 보이도록 세계 여론을 주도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래 UN은 전쟁을 방지하거나 저지할 어떤 군사 행동도 취할 수 없다. 그 경우에 그 자체의 UN군은 어떠한가?

한 UN 간행물은 이렇게 답변한다. “[‘안전 보장 이사회’나 ‘총회’에 의해 권한이 부여될 경우] 그 군대는 대개 전투의 재발을 방지하고 질서를 회복시켜 유지하며 정상 상태로의 환원을 촉진시키는 데 협조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평화 유지군은 필요시에 협상, 설득, 감시 및 진상 조사 등을 할 권한을 위임받는다. ·⁠·⁠· 그들이 무장은 하였지만, 오로지 자기 방어에만 그 무기들을 사용하는 것이 허용된다.” (고딕체로는 본지에서) 따라서 그 군대의 목적은 다른 나라들을 설득하여 분쟁을 끝내고 자신은 그 분쟁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UN은 무엇이 되고 마는가? UN은 짖을 수 있지만 물 수는 없는 경비견으로 전락하고만 것이다. 하지만, 짖어대는 개는 최소한 분쟁에 대해 경고를 해준다. 그러면, UN이 별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상의 권력이 있는 곳

앤드류 보이드에 의하면, UN의 문제들은 ‘3대 강국’이 작성한 ‘헌장’에 내재되어 있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강대국들은 힘없는 나라들에게 전적으로 자신들의 통제를 받을 UN의 안전 구조에 대하여 자신들이 이미 결정해 놓았다고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 루우스벨트와 처어칠과 스탈린 사이에, 제안된 국제 연합 조직을 3대 강국이 (특전이 부여된 동료 국가로서 중국 및 프랑스와 아울러) 공동으로 내린 결정들의 시행 도구로 삼기로 완전한 합의가 이뤄졌던 것이다.”

보이드는 계속 이렇게 설명한다. “분명히 3대 강국은 자신들이 결성한 체제가, 자기들의 방대한 군사력의 일부라도 더 작은 국가들의 총체의, UN 사무총장의 ·⁠·⁠· 또는 ‘국제 사법 재판소’나 다른 누군가의 통제를 받도록 넘겨 주는 일이 관련된 체제가 되게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 3대 강국은 자신들의 권력 및 통제의 독점권을 어떻게 보호하였는가?

보이드는 이렇게 설명한다. “3대 강국은 서로 신임하지 않았다. 서로에 대하여 그리고 약소 국가들의 몰표 세력에 대하여, 거부권은 그들의 방패가 되었던 것이다.” 거부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거부 투표에 의해 어떤 결정을 저지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것은 15개 ‘안전 보장 이사회’ 이사국들 중에서 5개 상임 이사국 (중국, 프랑스, 소련, 영국 및 미국)에게 부여되어 있다. 따라서, 이사회의 주요 결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5개 상임 이사국의 동의 투표를 포함하여 최소한 9개국의 찬성표를 얻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권은 거부권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렇게, 거부권을 포함하여, UN 헌장은 “강대국들이 티격태격하게 될 소지를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 시작부터 이런 지경이니, 국제 “연합”은 좋은 출발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6년이 되었으며, 지금까지 ‘제 3차 세계 대전’을 면해 왔다. UN은 여전히 세계사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UN이 아직도 평화를 위한 하나님의 수단일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이치적인가?

[6면 네모]

UN 사무총장 및 그가 겪은 일부 문제들

트리그브 리 (1946-53년) _______한국 동란; 중동;

베를린 봉쇄

다그 하마슐드 (1953-61년) ______콩고 전쟁;

소련의 헝가리 개입;

중동

우 탄트 (1961-71년) _________베트남 전쟁;

나이지리아/비아프라 간의 내란;

로디지아 위기; 인도/파키스탄 전쟁;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개입;

중동; 사이프러스; 쿠바 위기

쿠르트 발트하임 (1972-81년) _____베트남 전쟁; 캄푸치아;

아프가니스탄; 중동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1982년)___레바논 전쟁; 아프가니스탄;

이란과 이라크

[4면 삽화]

트리그브 리는 ‘왜 이 외경스러운 과업이 내게 떨어졌는가?’하고 질문하였다

[자료 제공]

UN 사진 제공

[5면 삽화]

우 탄트는 동시에 3개의 UN 평화 유지군을 통솔하였다

[자료 제공]

UN 사진 제공

[6면 삽화]

쿠르트 발트하임은 “‘국제 연합’ 역사상 가장 위험한 추세 중 하나”에 관하여 기술하였다

[자료 제공]

UN 사진 제공

[7면 삽화]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는 약 26,000명의 직원의 우두머리이다

[자료 제공]

UN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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