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기술—노예인가 아니면 주인인가?
한 어머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어린 딸을 꼭 껴안고 있다. 그는 직장에서 귀가한 여느 어머니와 다름이 없었으나, 이제 1면 뉴우스 사진의 설명문은 이렇게 되어 있다. “우주 비행을 마치고 귀환한 후 딸 크리스틴을 껴안고 있는 안나 L. 피셔 박사”. 그는 8일간의 우주 비행을 마치고 막 귀환한 것이었는데, 그동안 우주 비행사들은 궤도를 이탈한 2대의 인공 위성을 구조하여 우주 왕복선에 싣고 지구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 신문의 같은 페이지에는, 역사적 심장 이식 수술에서 한 여아에게 시술하여 이룩한 가장 최근의 발전 사항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다. 비록 그 아기는 21일간의 투병 끝에 사망하긴 하였지만, “그 아기에게 비비의 심장을 이식했던 수술이 과학을 진전시켰으며 언젠가는 많은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하게 될 것이라고 그 아기의 담당 의사는 오늘 말하였다.”
이와 같은 과학 기술상의 혁신들은 불과 50년 전만해도 공상 과학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러한 혁신들은 어쩌면 해외 여행에서 귀국한 어떤 친구 또는 편도선을 제거하러 병원에 간 어떤 사람만큼이나 흔한 일이 되었다.
어리둥절했던 많은 사람들은 이제 현대 과학 및 과학 기술로 못하는 게 없다고 느끼기 시작하였다. “유형적 이득을 산출하는 데 거둔 그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 과학자와 과학 기술 자들이 산출한 모든 것을 성우(聖牛)로 간주하게 되었다”고 과학 교육자 존 기본즈는 소견을 피력했다. 그러한 낙관적인 태도는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1983년 대통령 연두 교서에서 발표한 이러한 성명에 잘 반영되어 있다. “미국의 개척 정신이 우리를 20세기의 산업 대국으로 만들어 준 것 만큼이나 확실하게, 오늘날도 그 동일한 개척 정신이 또 다른 거대한 기회의 문—고도의 과학 기술의 미개척 분야를 열어놓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열렬하지 못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과학 교수인 메리 일리아노어 클라아크는 한 회견에서 이렇게 언성을 높였다. “미국 및 기타 선진 문화권에서, 과학 기술에 대한 신념은 하나의 종교적 신앙이 되어 왔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과학 기술상 아주 똑똑하다고 여기고 있어, 어떤 위기라도 언제든지 헤쳐 나갈 만한 경지에 도달해 있다고 자부하여 왔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그 문제에 대해 거의 불길하기까지 한 견해를 보인다. 한 작가의 묘사에 따르면, 컴퓨터 과학자 쟈크 발레는 ‘고도의 과학 기술이 그 자체에 의해 박차가 가해져 왔으며, 사회가 고도의 과학 기술을 통제하고 있는 것 만큼이나 현재 고도의 과학 기술이 사회를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 기술은 참으로 새로운 기회의 문, 즉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단인가? 아니면 과학 기술은 우리의 사고 및 생활 방식에 너무나 영향을 준 나머지 신속히 우리의 노예가 아니라 우리의 주인이 되어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