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교육”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장소: 학교, 도덕 교육 반.
장면: 마치 교실의 마루가 광대한 대서양이나 되듯이, 다섯 명의 학생들이 가상적인 구명 뗏목을 타고 왁시글거린다. 그들은 모진 폭풍우에 여객선이 침몰한 후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다. 학생들은 각기 다섯 인물들 중 한 역을 맡고 있다. 즉, 쾌활한 신인 여배우, 중년 교직자, 여성 노벨상 수상자인 원자 과학자, 이 집단에서 유일한 흑인인 호전적인 의대 남학생, 그리고 인종적 편견이 강한 남자 올림픽 운동 선수이다. 이 다섯 명의 가상적 생존자들은 도덕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즉, 구명 뗏목에는 오직 네명분의 식량과 공간만 있다. 한 사람이 희생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생명을 잃게 될 것이다. 그들이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은 30분 밖에 없다.
질문: 만일 독자의 자녀가 이 수업을 받고 있다면, 독자는 자녀가 어떠한 선택을 하기를 원하겠는가?
10여년 동안, 도덕 교육면에서 대 변혁이 북미의 여러 학교를 휩쓸어 왔다. 과거에는 가정과 종교가 자녀들에게 그들의 가치 기준을 가르치는 일을 인도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학교가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하바아드 대학교 총장인 데릭 복이 「U. S. 뉴우스 앤드 워얼드 리포오트」지에서 지적했듯이, “가정과 교회들이 사람들에게 가치 기준을 전달하는 면에서 이전 만큼 영향력이 없다”는 것이 여론이기 때문이다.
특수 교육 담당인 한 지도 주임 교사는 이렇게 개탄한다. “우리의 학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도덕 원칙들을, 설사 가지고 있다 해도, 거의 가르치질 않습니다.” “일부 학생들에게는 도덕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학교뿐이죠. 만약 그 아이들이 여기서도 배우지 못한다면, ‘길거리’에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가치 교육이란 무엇인가?
그 목표는 옳고 그른 것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토론회를 열어서 “학생들이 나름대로 자신의 가치 기준을 발견하고 설정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이 교육이 자녀들에게 유익한 것인가의 여부는 누구의 말을 듣느냐에 달려 있다. 일부 가치 교육 담당 교사들은 전통적인 도덕 교육 방식을 주입식이라고 즉 미리 포장된 성인의 가치 기준을 학생들에게 심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투데이」라는 잡지는 이렇게 설명한다. “교사들은 수업중에 토론되는 어떤 윤리 문제에 관해서도 ‘옳은’ 또는 ‘틀린’ 답이 없다고 가르치라는 지시를 받고 있다.”
하지만, 다른 교육가들과 학부모들은 이러한 새로운 방식들이 절대적인 도덕적 진리란 없다고 가르친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방식은 부모에 대한 존경심을 침식한다.
수업 시간에 커닝에 관해 토론한다고 가정해 보자. 사회학자 캐들린 고우 박사에 따르면, 많은 학생들이 이러한 가르침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뭐든지 그때에 자신이 생각한 그대로 행하라. 커닝 자체는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침착해야 된다. 그 상황을 잘 살펴보라. 누가 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흥미롭게도, 커닝에 관한 토론이 한 교실에서 있었을 때, 한 학생은 교사에게 그 수업중에 시험을 치를 때 정직해야만 하느냐는 질문을 하였다. 그 교사는 이렇게 답변하였다. “부정직을 가치 기준으로 택한 사람은 누구나 이 교실에서 그것을 실천해서는 안 됩니다.”
학생들이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가치 기준과 관점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 역할 연기법이 사용된다. 학생들은 본 기사 서두에서 묘사된 것과 유사한 대립되는 상황을 실연한다. 각 학생은 자신이 맡은 인물이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정당한 근거를 대며, 그런 다음 학급 전체는 누가 가장 살 가치가 있으며 또 누구를 죽게 내버려 둘 것인가에 관해 투표한다. 그러한 연습은 죄의식, 혼란 및 악몽을 일으킬 수 있으며, 또 어린이들에게 살인이 용납될 수 있는 것으로 가르칠 수 있다.
그 외에, 교사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도덕적 딜레마를 제시하기도 한다.
◻ 화재가 발생한 집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구출될 수 있을 때, 두 어린 아이 중에서 선택해야 할 경우.
◻ 아사 직전에 있을 때, 사람의 시체를 먹을 것인지 판단해야 할 경우.
◻ 부부 쌍방이 동의할 때, 부부 교환이 괜찮은 것인지 토론하는 경우.
이러한 딜레마들을 제시한 후, 질의 시간을 가져 문제점들과 가능성들을 검토한다. 하지만, 또 다시 그 딜레마는 해결책이 없는 상태에 있게 되며 지침도 없는 상태에 있게 된다.
또 다른 접근 방식은 학생으로 하여금 그가 채택하고 있는 가치 기준들을 자신의 생애의 목표에 비춰 생각해 보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러한 궁극적 개인 목표들—생존, 쾌락, 자유 혹은 그외의 어떤 것—이 그 학생의 우선적인 고려 사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접근 방식은 “네 방법대로 하라”는 식의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학생은 결국 쾌락을 그 무엇보다 더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고, 그럼에도 건전한 도덕 가치 기준을 가진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학생이 자신의 인생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타협하는 것도 권장되고 있다. “우리는 도덕적인 면에서 이치적이 되려고 해야지 극단적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또한 “본질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것은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타협이 정당화 된다. 그러나, T. W. 하아퍼는 「터론토 스타아」지에서 이런 방식이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결정하기 위한 어떤 근거도 전달해 주지 못한다”고 기술한다. 그는 “어떤 합의된 절대적인 표준들이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도덕을 가르치기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월 스트리이트 저어널」지는 이 모든 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논평을 게재하였다. “‘가치 해명’에 따르면, 학생에게 도적질은 나쁘고 친절과 충성은 좋은 가치 기준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학생을 교묘히 조정하여 강요하는 것이 될 것이다. ··· 사춘기인 사람들에게는 사실상 부모, 학교 혹은 사회는 그들에게 어떤 표준이 성행위의 지침이 되는지를 말해 줄 권리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를테면, 혼전 성 관계가 옳은지 그른지의 여부는, 사춘기인 사람들이 개인의 가치 기준을 명료하게 하도록 도움받게 되면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 만약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마약 사용이나 혼전 성 관계를 반대한다면, ‘가치 해명’을 뒷바침하는 이론에 의하면 자녀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합당한 일이 된다. ‘그러나, 그건 부모님의 가치 판단일 뿐이지요. 제게 그런 것을 강요하지 마세요.’”
그런 다음, 그 「저어널」지는 이렇게 부언한다. “이러한 입장들은, 하나님이 최고의 입법자이며 훌륭한 삶이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봉사에 전념함으로써만 영위할 수 있다는 성서의 견해와 정면으로 대립된다.” 하지만, 정통파 그리스도교 교인들만 가치 해명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일류 대학 출신의 비정통파 그리스도교 학자들도 최소한 12가지 사항에 있어서 ‘가치 해명’의 결함을 지적하였다”고 「저어널」지는 밝힌다.
부모의 책임
책임감있는 부모라면 자기 자녀들이 도덕에 관한 문제들을 깊이 생각하고 추리하며 또 그러한 아무 가치없는 “가치 교육”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원할 것이다. 비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부모들은 부도덕을 허용하고 부모의 권위에 대한 건전한 존경심을 침식하는 교수 방식에 대항하여 자기 자녀들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우기 그리스도인 부모라면 인간이 창조주로부터 독립해서는 성공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으며 그분의 도덕 원칙과 법들은 따라야 할 최상의 것이라는 사실을 자녀들이 알기를 원할 것이다.—이사야 33:22.